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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걸어 다님: 야후슈아께서 마지막 교황을 예언하신다!

야후슈아께서 마지막 교황을 예언하신다!

속보!! 교황 프란치스코가 정말로 여덟째며 마지막 교황이라고 확인해주는 새로운 성경적 관점이 야후슈아의 말씀들에서 발견되었다! 성경에서 발견된 이 새롭고 놀라운 증거를 읽어 보세요 . . . .  

“멈추세요!”

“조심하세요!”

“주의 하세요!”

father holding child's hand사랑의 부모들은 위험이 있을 때 자녀들에게 경고한다. 그러면 그들이 조심할 것이다. 경고가 주어질 때, 사람들은 위험을 인지하게 되고, 예방책을 간구한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도 역시 그분의 자녀들에게 경고해왔다. “야후와께서는 . . .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야후와께서 이 땅 역사의 마지막 장면들을 위하여 그분의 자녀들을 준비케 하신다.  그분께서 미래에 대한 휘장을 잡아 당기셔서 신도들로 하여금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해 경고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예언은 그분의 신실한 자들로 이 마지막 날의 사건들을 확실히 준비케 하기 위한 그분의 사랑의 선물이다. “분명히 야후와 엘로아께서는 자신의 은밀한 일을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계시하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모스 3:7)

야후슈아의 죽음 며칠 전에, 그분께서 감람산에 앉으셨고,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께 나아와 물었다: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마태복음 24:3)  제자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배워왔었다. 그들은 야후슈아께서 재림하시는, 세상의 마지막까지 성전의 파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야후슈아]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당신의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제자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이 두 사건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미래의 사건들을 그대로 열어 보이셨다면, 그들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비로써 그분은 그 두 큰 위기에 대한 묘사를 섞으셔서, 제자들이 스스로 그 뜻을 연구하도록 하셨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셨을 때 그분의 예언의 말씀은 그 사건을 넘어 [야후와]께서 일어나사 세상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셔서 땅이 더 이상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를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 놓을 수밖에 없는 그 최후의 날에 일어날 대재화의 사건에까지 미쳤다. 이 모든 말씀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서도 주어졌다. 1. . .”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이 예언은 이 땅의 마지막 날들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더욱 특별히 적용되는 성경의 다른 예언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경고들을 담고 있다. 마태복음 24장에 추가하여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21장의 상응하는 설명들과 함께), 요한계시록 전체와 일부 구약 성경의 예언들이 신실한 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때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 세대에게 특별히 중요한 한 예언이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발견된다:

“일곱 왕이 있는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으되 그가 오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물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곧 여덟째며 그 일곱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느니라.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인데 그들이 아직 아무 왕국도 받지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으로서 권능을 받느니라.

이들이 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의 권능과 힘을 그 짐승에게 주리라.

이들이 어린양과 전쟁을 하려니와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시리니 그분은 주들의 주시요 왕들의 왕이시며 또 그분과 함께 있는 자들은 부르심을 받고 선정된 신실한 자들이니라.” (요한계시록 17:10-14)

월드 라스트 챈스는 요한계시록 17장의 왕들이 이 땅 역사의 마지막 교황들이라고 오랜 동안 전파해왔다. 이 예언의 첫 왕은 교황 비오 11세 (1922-1929)다.  라테란 조약이 그 교황권에 바티칸 도시를 주면서, 그가 첫 왕이 되었다.  베네딕토 16세 (2005-2013)는 일곱째 “왕”이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야후슈아의 재림 전의여덟째이자 마지막 교황이다.

8 Kings of Revelation 17; Francis I = 8th King, the last pope

WLC는 야후슈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과 그 때는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끝난다는 것을 세상에 경고하면서 이 해석을 수년 동안 담대하게 선포해왔다. 이제, 이 가르침을 지지하는 성경적 증거가 마태복음 24장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야후슈아의 경고 중 한 가운데 감추어진 한 특별한 구절이 요한계시록 17장에 대한 이 이해를 확인해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으로, 그 의미가 충분하게 이해되지 않았었다; 하늘이 이제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마지막 세대에게 공개하신다.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하거나, 저기 있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 받은 자들을 속이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가 사막에 있다, 해도 나아가지 말고, 보라, 그가 은밀한 방에 있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또 어디든지 사체가 있으면 거기로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리라.” (마태복음 24:23-28)

 “사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ptoma에서 왔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몸체 (송장, 썩은 고기)를 의미한다: -- 죽은 몸체2 . . .  [문자적으로,] 죽음 . . .그러므로, ‘그 죽은 것은, 송장.’ ” 3 (Ptoma, #G4430, 뉴 스트롱스 Expanded 성경 단어 사전, 1348쪽.)

크리스챤들이 아는 대로, “떨어지다”는 영어 단어에는 한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람이 발을 헛디딜 때, 밑으로 떨어진다는 문자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아담과 이브가 창조주께 대한 충성에서 돌아서서 죄를 지었을 때, 영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의미가 “사체”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있다. 이 구절 안에 확실히 영적 타락에 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Jesuit Pope Francis, the last pope (antichrist)

카톨릭 기밀사항 | 통탄할 제수잇의 비밀이 밝혀진다!

어떤 사제가 제수잇 조직에 가입할 때, 그는 극한의 가입 맹세를 한다. 그 맹세가 복창된 후에, 상관은 일련의 질문들을 하고, 신임 지원자는 대답한다.

질문: “당신은 맹세하였는가?”

: “네, 저는 나이, 성별, 어떠한 조건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정부들과 통치자들을 파괴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송장으로서 나 자신의 어떠한 의견이나 의지도 없이, 나의 상관의 모든 명령에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없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상관에게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은, 그 제수잇 조직을 교황의 권력 하에 있는 어떤 다른 조직과도 구별되게 만들었다. 그것은 “교황의 뜻 앞에서 송장처럼”을 의미하는 라틴어, Perinde ac cadaver에서 압축해서 드러난다. 그들 자신의 의지로 말하는 맹세에 의해, 제수잇은 송장과 같이 다른 이의 뜻에 통치된다. WLC는 이 개념이 프란치스코 1세를 예언의 여덟째이자 마지막 교황으로 확립한다고 믿는다.그가 마태복음 24장에서 언급된 사체다.

2013년 3월 13일은 상서로운 날이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가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1세로 선서했다. 제수잇 조직의 역사상 처음으로, 제수잇이 교황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 체계는 19,000명의 요원들로 카톨릭계에서 가장 큰 조직인 제수잇 조직을 언제나 경계해왔다. “제수잇은 언제나 매우 강력한 사제들의 조직이었다. 이로 인해 그 교회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매우 신중히 행동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들을 해산시켜야 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4

예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요한계시록 17장의 여덟째 교황이 이 조직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월드 라스트 챈스는 마태복음 24장의 예언을 더 깊이 이해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야후슈아 우리의 메시야의 재림 전에, 정말로 마지막 교황이라는 우리의 신념을 확인해주는 신성의 암시라고 본다: “어디든지 사체가 있으면, 거기로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리라.” (마태복음 24:28)

성경에서 상징들이 자주 사용된다. 왜냐하면 상징들은 많은 의미들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그 자체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eagles feeding on a carcase

“어디든지 사체가 있으면, 거기로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리라.” (마태복음 24:28) (Image courtesy of images.nationalgeographic.com.)

“독수리들”이라는 단어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독수리는 썩은 고기를 먹는다. 썩은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들은 성경에 부정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곡식이나 열매를 먹는 다른 새들과는 다르게, 독수리는 썩어 가는, 죽은 고기를 먹는다. 독수리는 로마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신명기의 후반부에서, 야후와는 이스라엘이 그분을 거절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파멸을 경고하기 위해 독수리라는 상징을 사용하셨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멀리 각 시대를 내려다본 모세는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최후의 무서운 전복의 장면과 예루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야후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데려오사 빨리 나는 독수리같이 너를 치게 하시리니 이 민족은 네가 그 언어를 깨닫지 못하는 민족이요,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니라. 그들이 노인들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어린것들에게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28:49-50] 수 세기 후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있는 동안 땅은 완전히 황폐되고 백성들이 무서운 고통을 당하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였다.”5

여기서, 로마의 군대들이 독수리들로 비유되었다. 독수리가 이교 로마의 문장이었던 대로, 이것은 우리에게 적절한 상징이다.

그러나 야후슈아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그 묘사를 세상의 마지막 때와 함께 섞어 놓으신 것처럼 마태복음 24:28에 기록된 “독수리들”에 대한 두번째 적용이 여기에 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세계의 “슈퍼 파워”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라 (미국)의 문장이 이것이다.

Pagan Roman Flag - SPQR

이교 로마의 문장이 독수리였다. 후에 나치 정권이 제3로마 제국, 곧 제3제국을 건설하고자 할 때 이 철저한 이교 문장을 사용했다.  (Image courtesy of galleryhip.com.)

예루살렘은 서기 70년에 로마라는 독수리에 의해 파괴되었다.  오늘날, 세계는 전례 없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 모두에게 미국의 의견에 따르거나 아니면 그 군사력에 맞설 것을 강요하며, 미국이라는 독수리가 전 세계 위에 그 압제적 권세를 발휘한다.  제수잇 교황이 군림하면서, 미국의 독수리가 예언대로 교황의 안식일 (일요일)을 지키도록 강요하기 전에 매우 짧은 약간의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13:11, 15-17)

역사의 마지막 교황, 프란치스코가여덟째 왕으로서 세계 무대를 차지할 때, 그는 세계 모든 지도자들을 그의 통제와 영향력 하에 둘 것이다. 성경에서, “뿔”이라는 영어 단어는 권력을 상징하며, 열이라는 숫자는 세계 전체를 상징한다.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인데 그들이 아직 아무 왕국도 받지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으로서 권능을 받느니라.

이들이 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의 권능과 힘을 그 짐승에게 주리라.

이들이 어린양과 전쟁을 하려니와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시리니 그분은 주들의 주시요 왕들의 왕이시라.” (요한계시록 17:12-14)

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안목이 있는 사람은 이교 로마의 문장과 미국의 문장 사이에 충분한 근거를 둔 유사성들을 볼 수 있다: 둘 다 전 세계적인 박해를 가하는 세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태복음 24:28의 송장으로서, 대장 독수리 미국의 강압 아래 모든 독수리들을 그에게로 이끌 것이다. 독수리들이 자연스럽게 사체로 모여드는 것처럼, 세계 지도자들이 그들의 권력과 권위를 교황에게 내어 줄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악화됨에 따라, 전 세계적인 공황 상태로 변하고 있고, 전 세계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을 것이며 교황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여덟째이자 마지막 교황이 지금 “성 베드로의 왕좌” 위에 앉아 있는 이 시점에, 100년도 더 전에 기록된 글에서 특별한 의미가 드러난다: “악의 세력들은 그들의 힘을 결속하여 강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마지막 큰 위기를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다. 큰 변화가 미구에 이 세상에서 일어날 것이고 마지막 동요가 신속히 이루어질 것이다.”6 오늘날 세계의 사건들이, 재림이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준다. 오래 전부터 예상되어 온 법의 명령에 의한 일요일 안식일 준수가 곧 세상에 나타날 것이며, 순응하기를 거절하는 모든 자에게 박해가 다가올 것이다.

초기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황량하고 외진 장소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멀지 않았다.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법왕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한 우리 나라 (미국)에서의 권력 장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대도시들을 떠나고, 산간(山間) 한적한 곳에서 궁벽한 거처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 작은 도시들을 떠나갈 준비를 할 때이다.7

WLC는 구체화된 바로 이 때에 이 예언을 펼쳐 주신 야후와를 찬양한다.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이 구절이 요한계시록 17장에 예언된 여덟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것을 확인해준다.

진리는 “영광스럽게” 승리할 것이다.  하늘의 군대들은 어둠의 권세들을 정복할 것이다. 많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의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피는 이 마지막 날들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 위한 씨앗이었다.

young woman holding Bible and looking to heaven폭력으로 그리스도 교회를 멸하려던 사단의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야후슈아]의 제자들이 생명을 바친 대쟁투는, 그 충실한 기수들이 자기의 담당 구역에서 싸우다 쓰러졌을 때 끝나지 않았다. 패배함으로써 그들은 승리했다. [야후와]의 일꾼들은 죽임을 당했으나, 그분의 사역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복음은 계속 전파되었고, 믿는 자의 수효는 더욱더 증가되었다. 복음은 로마의 독수리들조차도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까지 침투해 들어갔다.8

이제, 이 땅 역사의 마지막 날들에, 야후와의 백성들이 다시 승리할 것이다. 진리는 종교적 독수리 로마와 군사적 독수리 미국에 맞서 겁내지 않고 한결같이 충성스럽게 설 것이다.


관련 내용:


1 Ellen G. White, 시대의 소망, p. 628, emphasis supplied.

2 Ptoma, #4430, The New Strong’s Expanded Dictionary of Bible Words, p. 1348.

3 Ibid.

4 http://papafrancis.net/2013/03/why-there-hasnt-been-a-jesuit-pope-before-francis-i/

5 Ellen G. White, 부조와 선지자, p. 467.

6 Ellen G. White, 교회를 위한 증언, Vol. 9, p. 11.

7 Ellen G. White, 교회를 위한 증언, Vol. 5, pp. 464-465.

8 Ellen G. White, 각 시대의 대쟁투, p.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