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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슈아의 갑작스러운 재림을 위해 마음과 정신을 준비하세요!

야후슈아의 갑작스러운 재림을 위해 마음과 정신을 준비하세요!

시대마다, 무신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은 야후와와 그분의 말씀에 대해
비난할 만한 것들을 찾아왔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집단 학살광이다!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많은 나라들을 마음대로
멸했다! 그는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이런 희한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 구절이 종종 인용된다. 이 구절에서, 야후와께서 일곱 나라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다: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야후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야후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신명기 7:1-5)

이스라엘 침공 전의 가나안 나라들 (거인 / 네피림)

이스라엘 침공 전의 가나안 나라들
http://www.bible-history.com

멸망되어야
할 일곱 나라들:

  1. 기르가스

  2. 아모리

  3. 가나안

  4. 브리스

  5. 히위

  6. 여부스

다음 구절을
통해, 야후와께서 멸망 받아야 할 나라들 (가나안 나라들) 과 자비를 입게 될 나라들 사이를 확연히 구별하신다.

자비를 나타내라: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야후와 엘로힘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니라.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신명기 20:10-15)

완전히 멸하라:

오직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야후와 너희의 엘로힘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신명기
20:16-18)1

야후와께서
왜 가나안 나라들과 다른 나라들을 구별하시는가? 야후와께서 왜 그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명하시는가? 성경은 가나안 사람들의 전염성 있는 우상
숭배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명확하게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욱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여기에서 더 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노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창세기 6장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나매 엘로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엘로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그들이 저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창세기
6:1-2, 4)

성경을 읽으며 당혹스러워하는 남성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가 오랫 동안 묻혀져 왔고, 학자들과 성경 연구가들에 의해 종종 간과되고 있다. 이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엘로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에서 “엘로힘의 아들들”은 B’nai HaElohim 이다. 이 문구는 구약 성경에서 오직 다른 세 구절에서 발견된다. 이 세 구절이 모두 욥기서에 나온다.2

이제 하루는
엘로힘의 아들들이 자기를 야후와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오니라.
(욥 1:6)

또 하루는
엘로힘의 아들들이 자기를 야후와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와서 야후와 앞에 자기를 보이니라. (욥 2:1)

그때에 야후와께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지식이 없는
말들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이제 남자답게
허리를 동이고 내가 네게 물을 터이니 너는 내게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의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것 위에 줄을 팽팽히 쳤느냐? 그것의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욥 38:1-7)

위의 모든
구절들에서, 저자3 는 그 “엘로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명확하게 하고 있다. 창세기 6장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천사들이 여인들과 동거했으며
그들의 자녀들이 거인들 (히브리어로 네피림) 이었다고 모세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구절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창세기 6장에 기록된 그 이상한 사건들은, 인간 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네피림”이라고 알려진
기괴한 잡종 자녀들을 낳은 타락한 천사들을 언급함으로써 70인역 번역자들뿐만 아니라 고대 랍비의 자료들에
의해서도 이해되었다. 또한 그것은 초기 교회 선조들에 의해서도 이해되었다. 이런 특이한 사건들이 지구상의 모든 고대 문화권의 전설들과 신화들, 고대 그리스인,
이집트인, 힌두인, 남양 제도인,
아메리칸 인디언, 그리고 실제로 모든 다른 인종들에서도 반복된다.4


더 나가기 전에, 창세기 6장에 대해 인기 있는
“Sethite” 해석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간단하게 짚어 보자.

Sethite 이론은 “엘로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이며 “사람의 딸들”이 가인의 후손이라고 가정한다. 이 이론은 셋의 의로운 후손들과 가인의 악한 후손들 간의 근친
결혼을 통해 세상이 만회할 수 없게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야후와께서는 세상에 홍수를 일으키시고 의로운 노아와 그의 가족으로 다시 시작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문제점 #1: 성경 어디에서도 셋의 후손들이 “엘로힘의 아들들” (B’nai HaElohim)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B’nai HaElohim 은 구약 성경에서 천사들을 의미할 때만 사용된다. 욥기 38장은 B’nai HaElohim 이 천사들이라는 것에 특별히 분명하다.
야후와께서 이 땅의 기초들을 놓으실 때 어떤 사람이 거기에 있었는가?

그때에 야후와께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 . .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의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것 위에 줄을 팽팽히 쳤느냐? 그것의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엘로힘의 모든 아들들 [B’nai HaElohim] 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 38:1-7)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엘로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이라고 추론할만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

창세기 6장의 “엘로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

“셋의 아들들과 가인의 딸들”이라는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아담의 딸들 사이의 의도된 문법적 대립을 무리하게 사용하며 이해를 어렵게 한다. 그 문장에 어떤 다른 견해를 전가시키려는 시도로서, 랍비와 초기 교회 학문 둘 다의 히브리
문장을 이해한 더 앞선 세기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 사전적 대립 관계는 “천사들”과 이 땅의 여인들 사이의 대립 관계를 세우고자 분명히 의도하고 있다.

만약 그 문장이
“셋의 아들들과 가인의 딸들”의 대립 관계를 의도한 것이라면, 왜 그렇게 표현하지 않은 것일까? 셋은 하나님이 아니며, 가인은 아담이 아니었다. (왜
“가인의 아들들”과 “셋의 딸들”이 아닌가? 그 문장을 아담의 후손들 중 어느 부분 집합으로도 제한할 근거가 없다.
게다가, 거기엔 엘로힘의 딸들이라는 언급이 없다.)

또한 “Sethite” 해석이 어떻게 그 문장의 주요 취지인
홍수에 대한 표면상의 이유에 공헌하는가? 그 전체 관점이 성경의 근거 없이 일련의 추정들을 이용하여 억지로
꾸민 듯하다. . . .

“엘로힘의 아들들”이라는 용어를 넓은 의미로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원문의 근거가 없으며 그것의 외연적 사용의 정확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것은 그 추정이 그 용어의 성경적 사용과 조화를 이루지 않고 반대된다는 것을 입증한다.5

여기서 또
고려할 점은 성경은 셋의 후손들이 의로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그가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야후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 (창세기 4:26)

위의 구절이
셋과 그의 후손들이 의로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종종 인용되지만,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분명한 문제점이 있다: (1) 그 문장은 “그 때에 사람들이 야후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더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셋의 후손들이 야후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더라”고 말하지 않는다. (2) 이것에 더하여,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이 정확히 번역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좀 더 정확한 번역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매 그가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야후와의 이름을 모독하기 시작하였더라.”

우리가 시작했다라고
번역하는 הוחל huchal 이 ‘신성 모독적으로 시작했다’ 이거나 또는 ‘그 때에 신성
모독이 시작됐으며, 그들이 이 때를 우상 숭배가 시작된 날로 보고 있다’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많은 저명한 사람들이 주장해왔다는 사실이 숨겨져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유대인 박사들이 이 의견에 속했었으며, 마이모니데스는 우상 숭배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자세하게 거론했다;
이 부분은 기이하며, 우상 숭배의 기원과 진전에 관한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 . . (Adam Clarke’s Commentary on the Bible)

성경 자체
(여호수아 10:13; 사무엘하 1:18) 에 의해서도 권장되는 야셀의 책은 이 해석을 확증한다.

셋은 백오세를
살았고 아들 하나를 낳았으며, 셋은 그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 불렀더라. 그 때에 사람의 아들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며
[엘로힘]에 대적하여 범죄함으로써 그들의 영혼과 마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노스의 시대에 사람의 아들들이 [엘로힘]에 대적하여 범죄하기를 계속했고, 사람들의 아들들에 대한 [야후와]의 노가 증가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들이 나아가
다른 신들을 섬겼고, 그들이 이 땅에 그들을 창조하신 [야후와]를 잊었다. 그 시대에 사람의 아들들이 황동과 철, 나무와
돌로 우상들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절하고 그것들을 섬겼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절했으며, 사람의 아들들이 에노스와 그의 자녀들의 모든 시대에 [야후와]를 버렸다. 그들이 이 땅에서 행한 행위들과 가증한 것들로 인하여 [야후와]의 노가 점화되었다. (야셀
2:2-5)

문제점 #2: “사람의 딸들”이 구체적으로 가인의 후손들을 말하고 있다고 믿을 근거가 전혀 없다.
문맥 속에서, “사람의 딸들”은 단순하게 이
땅의 여인들, 즉 사람의 수가 이 땅에 크게 증가하면서 그들에게서 태어난 딸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나매 엘로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 (창세기 6:1-2)

문제점 #3: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의 결합으로 거인들 [네피림]이 생겼다고 믿을 근거가 전혀 없다.

다른 종교관을
가진 부모들의 출산으로 비정상적인 자녀가 출생하지는 않는다.
. . . 이 이상한 출산과 비정상적인 피조물들을 초래한 것으로 인해 홍수 심판의 주 원인이 되었다.

노아의 경우에서
인간 족보의 어떤 혼입이 없었다는 것 또한 창세기 6:9 에 기록되어 있다. 노아의 가계도에는 분명 오점이 없었다.6

하늘로부터 쫓겨난 천사들

문제점 #4:
신약 성경은 천사들이 어쨌든 노아의 시대에 여인들과 함께 하여 자녀를 출산했다는 해석을 지지한다. 심지어 그들의 심판이 이 큰 죄로 인한 것임을 언급한다. 다음 구절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홍수 전의 천사들이 죄를 지었고, 그에 따라 심판을 기다리기 위해 지옥
[그리스어 타타루스]로 쫓겨났다고 말한다.

야후와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베드로후서 2:4-5)

다음 구절에서, 유다는 죄를 지은 천사들에 관한 베드로의 증언을 반복한다.
유다는 이러한 천사들의 죄를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한다. 그들이 “자신들을 음행에 내어” 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
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 (유다서 1:6-7)

이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더
상술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 여기에서 요지는 창세기 6장의 “엘로힘의 아들들”이 사람 (즉, 셋의 후손들) 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엘로힘의 아들들”이 실제로 “셋의 아들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그 문장 상으로도 옳지 않다. 만약 우리가 정직한 성경 연구가라면,
우리는 성경이 성경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모든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방식으로, 증거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우리는 그것을 편견 없이 따라가야 한다.

성경을 진지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천사 관점”을 지지하는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구절의 명확한 의도를 제멋대로 사용하는 자들에게, 어떤 최종적 근거도 무의미하다.

성경을 진지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천사 관점”을 지지하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문장의 명쾌한 설명을 제멋대로 고치는
데에 기꺼이 열중하는 자들에게, 어떤 변호도 최종적으로 입증해주지 못한다.7

메모:
창세기 6장과 관련하여 갑작스럽게 등장한 천사 해석에 대해 어떤 이들은 “천사들은 결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 반대
의견을 지지하기 위해 제시되는 구절들에는 특별히 하늘의 천사들과 결혼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마태복음 22:30, 마가복음 12:25, 누가복음
20:34-36)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유다서 1:6) 타락한 천사들이 자녀를 생산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곳은 없다.


이 해석 안에 있는 더 큰 함축적 의미와, 그것이 어떻게 가나안 나라들을 멸하라는 야후와의 명령과 관련되는지
이제 조사해보자.

야후와께서 가나안 나라들을 멸하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그 나라들이 네피림 (천사/인간 잡종) 유전학으로 완전히 오염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태초에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류를 위한 그분의 계획과 반대된다. 만약 내버려 두었다면, 이 유전적 오염이 아주 만연하게 되어 메시야께서 흠 없이 순결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8 만약 야후와께서 이스라엘의 검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하지 않으셨더라면 모든 혈통이 네피림 유전자로 결국 오염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약속된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모든 희망은 사라졌을 것이다.

성경이 둘째
천사의 등장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네피림 유전자가 방주 안에 탔던 노아의 아들들의 아내들을 통해 홍수 중에서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론되어야 한다.
홍수 후에, 노아의 가족이 가지를 뻗어 나가고 땅 위에서 그 수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네피림 유전자가 다시 드러났다. 이것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에 가나안 땅에 번성했던 네피림 나라들에
의해 증거된다. 이런 주장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이것은 성경을 근거로 한 가장 논리적인 추론이다.

창세기 6장과 홍수 후 사건들의 순서:

(1)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 (이 땅의 여인들)과 짝짓기를 했다.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 [네피림] 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엘로힘의 아들들 [천사들] 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그들이 저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창세기 6:4)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나매 엘로힘의 아들들
[천사들] 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 야후와께서 이르시되,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이는 그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그의 날들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
[네피림]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엘로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그들이 저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창세기 6:1-4)

[엘로힘]의 많은
천사들이 여인들과 함께하며 아이를 낳은 것은 의롭지 않으며 선한 모든 것을 경멸하는 것으로 입증되었고, 이는
그들이 갖고 있던 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거인이라고 부르던 자들의 행동들과 유사한
일들을 이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행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Antiquities
of the Jews
, Book 1, Chapter 3, 1.3.1, http://www.biblestudytools.com/history/flavius-josephus/antiquities-jews/book-1/chapter-3.html)

위에 인용한
플로비우스 요세푸스의 글에서 보여지듯이, 반역한 천사들이 홍수 (창세기 6장) 전에 여자와 짝짓기를 했다는 해석은 일세기에 일반적인 견해였다. 5세기까지 창세기
6장에 대한 “Sethite” 해석은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창세기 6장에 대한 “천사” 해석이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으며 당혹스러운 의견으로 점차 비춰지게 된 것은 서기
5세기였다. . . .

켈수스와 줄리안
배교자는 전통적인 “천사” 신념을
기독교를 공격하는 데에 이용했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Sethite 해석이 더 편안했기 때문에 그것을 의지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 역시 “셋의 혈통” 해석을 지지하며 전통적인 “천사”
입장을 거부했다. 어거스틴 역시 Sethite 이론을 수용했고, 따라서 그것이 중세 시대에 만연하게 되었다.10

(2) 창세기 6:1-4에 언급된 천사의 갑작스런 등장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가차없이 악한 생각들로 둘러 쌓이게
된다.

엘로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야후와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세기 6:5-6)

(3) 야후와께서 이 땅에서 사람을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야후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창세기 6:7)

야후와께서
“짐승과 땅에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
역시 멸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하라. 왜 그 많은 동물들 역시 멸절되어야
했는가? 야셀의 책은 “심판자들과 통치자들” (천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 이 “사람의 딸들”을 그들의 남편들로부터 도적질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까지 교배시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동물들도 오염되었다.

그들의 심판자들과
통치자들은 사람의 딸들에게로 나아갔고 힘을 이용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남편들로부터 그들의 아내를 취했으며, 그 시대의 사람의 아들들은 땅의 소,
들의 짐승들과 공중의 날짐승들을 취하여 서로 다른 종류의 짐승들 간에 교배11 를 시켰다. 이것은 [야후와]를 격노케 했고, [엘로힘]께서 온 땅이 오염된 것을
보셨으니, 이는 땅 위의 모든 육체,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더라. (야셀 4:18)

키메라, 거인과 네피림에 관한 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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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세가
방주에 탑승한 동물들을 말할 때 “그것의 종류대로” 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동물들은 유전적으로 순결했고, 야후와께서 의도하셨던 대로 그 종류대로였으며 그분께서 그것들을
태초에 창조하셨던 것과 같았다. (창세기 1:20-25)

그러나 너와
더불어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너와 함께한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올지니라. 너는
모든 육체의 살아 있는 것 중에서 종류마다 두 마리씩 방주로 데리고 들어와 너와 함께 그것들이 살아남게 할지니 그것들은 수컷과 암컷이어야 하리라. 날짐승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가축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의 기는 모든 것이 그것의 종류대로 종류마다 두 마리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것들을 살아남게 하라. (창세기 6:18-20)

바로 그 날에
노아와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과 함께한 그들의 세 아내가 방주로 들어가되 그들과 모든
짐승이 그것의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이 그것의 종류대로, 모든 날짐승 곧 모든 종류의 모든 새가 그것의 종류대로
들어가고 (창세기 7:13-14)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만 유전적으로 순수했던 것이 아니라, 노아도 역시 유전적으로 깨끗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4) 노아는 유전적으로 순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아는
야후와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엘로힘과 함께 걸었더라. (창세기 6:8-9)

위의 구절에서
“완전한” 으로
번역된 단어는 tamiym [스트롱스 H8549]이다. 문맥에서, 이 단어는 노아의 행위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유전적 순결함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유월절 어린양과 붉은 어린 암소는,
모든 속죄 제물이 그러해야 했던 것처럼, tamiym (물리적으로 흠이 없는) 이어야 했다.
(출애굽기 12:5, 민수기 19:2, 레위기
4:3)

노아의 경우에서
인간 유전자에 어떠한 불순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창세기 6:9에 기록되어 있다. 노아의 가계도에는 분명히 흠이 없었다. 사용된 용어 tamiym 은 물리적 흠과 관련되어 사용된다.13

히브리 단어
tamim 은 흠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도덕적 단어가 아니라,
신체적 물리적 완벽함을 위한 기술적 단어다. 따라서 그것은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깨끗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그것은 출애굽기 12:5; 29:1. 레위기
1:3,10; 3:1,6; 4:3,23,28,32; 5:15,18; 6:6; 9:2,3; 14:10; 22:19; 23:12,18. 민수기 6:14; 28:19,31; 29:2,8,13,20,23,29,32,36. 에스겔
43:22,23,25; 45:18,23; 46:4,6,13. 에서 흠 없는 것으로 번역된다. 민수기 19:2; 28:3,9,11; 29:17,26. 에서는 점 없는 것으로 번역된다.
시편 119:1. 에서 더럽혀 지지 않은 것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창세기 6:9이 노아의 도덕적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에 의해 초래된 만연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가족만이 그들의 혈통을 보존했고 그것을 순수하게 지켰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14

(5) 노아는 유전적으로 순결한 세 아들을 낳았다.

노아가 세
아들 셈, 함, 그리고
야벳을 낳았더라. (창세기 6:10)

야셀의 책에
따르면, 노아는 에녹의 딸들 중 한 명을 아내로 삼았다.

. . . 노아가 나아가 아내를 취했으니,
그가 에녹의 딸 나아마를 택했고, 그녀는 오백팔십세였더라. 노아가 나아마를 아내로 삼을 때, 노아의 나이 사백구십팔세였더라. (야셀 5:15-16)

에녹의 분명한
의로운 행적을 고려할 때 (창세기 5:18-24), 노아의 아내 (에녹의 딸) 는 유전적으로 순수했으며,
따라서, 노아의 아들들도 그러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논리적이다.

유전자

(6) 그 땅과 모든 육체가 타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땅도 엘로힘
앞에 부패하여 폭력이 땅에 가득하더라. 엘로힘께서
땅을 보시니,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더라. 이는 땅 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의 길을 부패시켰기 때문이라. (창세기 6:11-12)


(7) 야후와께서 모든 육체를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엘로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해 폭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세기 6:13)

(8)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너는 고펠나무로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 방들을 만들며 역청으로 그것의 안팎을 칠할지니라. 네가 만들
방주의 모양은 이러하니 방주의 길이는 삼백 큐빗이요, 너비는 오십 큐빗이며 높이는 삼십 큐빗이니라. 너는 방주에 창을 만들되 위에서부터 일 큐빗 안에 그것을 완성하고 방주의 문은
방주 옆으로 내며 그것을 아래층 둘째 층 셋째 층으로 만들지니라. 보라, 나 곧 내가 땅 위에 물들의 홍수를 일으켜 속에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육체를 하늘 아래에서 멸하리니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죽으리라. (창세기
6:14-17)

(9) 성경이 노아의 아들들의 아내들을 처음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너와
더불어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너와 함께한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올지니라. (창세기 6:18)

이 전까지
모세가 노아의 아들들의 아내들을 언급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노아의
아들들의 아내들이 유전적으로 순결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들은 최소한 네피림의 유전자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세 가지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 (1) 둘째 천사의 등장 없이, 홍수 후에 거인들이
다시 나타났다. (2) 노아는 유전적으로 순결했고, 문맥상 증거는 그의
아들들 또한 순결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3) 모든 육체가 오염되었다고 언급된 후에야 그 아내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야셀의 책은 우리에게 그 아내들이 방주가 지어진 후에야 택해졌다고 말함으로써 이 해석을 확증한다.
야셀 5:33-35 참조)

다시 말하지만, 이 주장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근거로 한 가장 논리적인 추론이다.

[메모: 네피림 유전자 (여느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녀에게 모두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함의 아들들의 경우, 특별히 가나안의 경우, 그것이 분명했다. 역사의 기록은
야벳의 아들, 마곡 역시 그 유전자를 물려 받았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유전자가 셈의 후손에서 나타났다는 증거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부모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노아의 아들들의 아내들이 네피림 유전자의 흔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그들이 자동적으로 정죄 받아서는 안 된다.]

(10) 야후와께서 이 땅에 홍수를 일으키신다.
(창세기 7-8장 참조.)

노아의 방주

(11) 네피림 (거인들)이 홍수 후에 다시
나타난다.

아말렉 족속은
남쪽 땅에 거하고 헷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은 산지에 거하며 가나안 족속은 해변과 요르단의 지경에 거하더이다, 하니라.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켜 이르되,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소유하자. 우리가 능히 그것을 이기리라, 하였으나

그와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니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기들이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쁘게 보고하며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것의 거주민들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가 그 안에서 본 모든
백성은 키가 큰 사람들이며

거기서 우리가
거인들에게서 나온 아낙의 아들들 곧 거인들을 보았는데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하니라. (민수기
13:29-33)

여기에 기록된
“거인들” (네피림)의 나라들이 모두 가나안 나라들 (그들이 모두 노아의 손자, 가나안의 후손들이라는 것을 의미) 이라는 점과 야후와께서 그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명하신 나라들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일곱 가나안 나라들 중 여기에서 오직 네 나라만 정탐꾼들에 의해 언급되었지만,
나머지 셋 (기르가스, 브리스,
히위)도 가나안에 속하므로 그들도 포함되었다고 이해되었을 것이다. 정탐꾼들이 그 땅에 나아가 정탐할 때 그들이 택했던 경로 때문에, 정탐꾼들이 기르가스,
브리스, 히위를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 정탐꾼들은
남쪽의 신 광야를 통해 왔고 북쪽으로 르홉까지 나아갔다.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사람들이 하맛에 이를 때에 하듯이 그 땅을 신 광야에서부터 르홉에 이르기까지 탐지하였고 또 남쪽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아낙의 아이들인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더라. (그런데 헤브론은 이집트의 소안보다 칠 년 먼저 세워졌더라.) 또 그들이 에스골 시내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잘라 두 사람이 막대기에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가져오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베었으므로 그곳을 에스골 시내라 불렀더라.
그들이 그 땅을 탐지하는 일을 마치고 사십 일 뒤에 돌아오니라. (민수기
13:21-25)

Path of the spies when investigating Canaan (land of the Nephilim) in Number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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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나라들만이
거인들 (네피림)의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가장 컸으며, 좀 더 작은 다른 종족들보다 전체적으로
더 많은 땅을 점유했다.

아래는 성경에
언급된 다른 거인 종족들이다:

화석화된 아일랜드 거인

아일랜드, 앤트림 주에서 채광 작업을 하다가 발견한 화석화된 아일랜드 거인 (약 1876년): 키는 12’2”이며 오른발에 여섯 개의 발가락이 있다. 성경은 거인들 (르바임)이 6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여전히 가드에서 싸움이 있었고 거기에 키 큰 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손마다 손가락이 여섯 개요, 발마다 발가락이 여섯 개로 개수가 스물네 개더라. 그도 그 거인에게 태어났더라. [H7498: râphâ’].” (사무엘하 21:20; 역대상 20:6도 참조.)

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에 따르면, “그들 [르바임,
아낙, 삼숨밈, 에밈 족속]이 모두 같은 혈통으로서, 그들과 접하게 되었던 서로 다른 종족들에 의해 서로 다른 이름들로
불렸을 개연성이 있다.” 호리 족속과 다른 족속들과의 성경상의 그리고 지리적 제휴 관계는 그들 역시 더 큰
혈통에 속했었음을 암시한다.

메모: 위의 모든 종족들은 창세기 14장 전쟁에 모두 관여되었다. 이 전쟁은 일상적인 갈등이 아니었다. 이 전쟁은 사람들과 거인들 (네피림)의 전투였다! 이 해석은 일세기 역사가, 플로비우스 요세푸스의 글에 의해 확증된다. 그는 그 “거인들의 후손”이 이 전투에서 타도되었다고 말한다.17

(12) 야후와께서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비를 나타내시면서, 네피림 나라들은 멸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자비를 나타내라: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니라.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신명기
20:10-15)

네피림 나라들을
멸하라
:

오직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신명기 20:16-18)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야후와 너희 엘로힘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야후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야후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신명기 7:1-5)

거인 백과, 스티븐 퀘일

스티븐 퀘일의 거인 백과

씨를 보호하기
위함…

야후와께서
네피림 족속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명령하신다는 점에 주목하라: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신명기 7:3)

이것은 분명히
야후와 아버지께서 메시야로 이어질 씨를 보호하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나라들과 함께 거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하셨다. 이
추론에 대한 또 다른 강력한 증거가 이 땅에서의 야후슈아의 혈통이 유다와 그의 가나안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통해 오지 않고,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를 통해 왔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유다가 거기서
수아라는 이름의 어떤 가나안 족속의 딸을 보고 그녀를 취하여 그녀에게로 들어가니.
. . . 시간이
흐른 뒤에 유다의 아내 곧 수아의 딸이 죽으매 유다가 위로를 받은 뒤에 자기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낫으로 올라가 자기의 양털 깎는 자들에게
이르렀더라. 어떤 이가 다말 [유다의 며느리] 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보라,
네 시아버지가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려고 딤낫으로 올라간다, 하므로, 그녀가 자기의
과부의 옷을 벗고 베일로 몸을 가린 채 몸을 감싸고 딤낫으로 가는 길 곁의 트인 곳에 앉았으니 . . . 그녀가 자기 얼굴을 가렸으므로 유다가 그녀를
보고는 그녀를 창녀로 여기고 돌이켜서 길 곁으로 그녀에게 가서 . . . 그녀에게로 들어가매 그녀가 그로
말미암아 수태하였더라. . . . 그녀가 해산할 때에 보니 그녀의 태에 쌍둥이가 있더라. 그녀가 해산할 때에 한 아이가 자기 손을 내밀매 산파가 이르되, 이 아이가 먼저 나왔다,
하고 그의 손을 잡아 주홍색 실로 그의 손을 매었더라. 그가 손을 도로 넣으매,
보라, 그의 형제가 나오므로 그녀가 이르되, 어찌 네가 튀어나왔느냐? 이 찢어짐이 네게 있으리라, 하였으므로 그의 이름을 베레스라 하였고 그의 형제 곧 손에 주홍색 실이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하였더라.
(창세기 38장 참조.)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기름부음 받은 자 야후슈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 . (마태복음 1:1-3; 누가복음 3:33 참조.)

이스라엘의
씨가 가나안의 네피림 유전자로 오염되는 것을 막으시려는 야후와의 의도에 대한 마지막 증거 하나가 그분의 섭리에서 발견된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으로 모으셨다.
그곳은 외떨어진 곳으로서, 그들의 수가 증가하며 강성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출애굽하기 400년도 더 전에, 야후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또 다른 땅 (애굽)에서 낯선 자들이 될
것이나, “아모리인들의 불법”이 가득 차면 거기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 [야후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가겠고 또 충분히 나이 들어 묻힐 터이나 그들은
사 대 만에 여기로 다시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가득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 하시니라. (창세기 15:13-16)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우리는 야후와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을
본다. 그분께서 아모리인들과 다른 네피림에 의해 점령된 그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오르는 등불이 그 조각들 사이로 지나가니라. 바로 그 날에
야후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의 강에서부터 저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었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15:17-21)

야후와 아버지께서는
가나안의 족속들 (네피림)의 수가
증가하고 강성해지도록 허락하셨다. 그분의 완벽한 때에, 그분께서 반역의
씨를 뿌리 뽑으시고, 신실하게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가나안 나라들을 멸하라는 하늘 아버지의 명령은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가나안인들을 멸절한 것은 제멋대로의 집단 학살과는 전혀 관계 없는, 비할 데 없는 섭리무아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놀라운 조치였다.

결론:

가나안의 나라들을
멸하라는 하늘 아버지의 명령은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작위적 집단 학살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으로서, 가나안인들의 멸절은 비할 데 없는
섭리와 무아적 사랑의 놀라운 조치였다. 만약 야후와 아버지께서 우상 숭배하는 네피림 나라들을 계속 방치해두셨더라면,
온 세상은 다시 타락했을 것이며 약속된 메시야의 혈통도 오염되어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야후와]께서
왜 미세한 유전 코드들 (유전 정보의 남은 부분)이 살아 남게 허락하셨는지
완벽히 이치에 맞는다 – 그분의 백성들이 그들을 딱 일소할 만큼의 기간이었다. 왜일까? 왜냐하면 . . . 홍수 후의 온 세상이 그들과
그들의 야후와 엘로힘 –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참 [엘로힘]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히브리 백성들의
그 영웅적인 업적들을 통해서였다. [야후와]께서 그분의 택한 백성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고 이 “거인들을 살육”한 새로운 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들에게 하늘과 땅의 살아계신 창조주의 놀라운 능력과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 섰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녀가 지붕에 올라가 그들에게 이르러 그 사람들에게 말하되, “[야후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너희의 두려움이 우리에게 임하였고 또 이 땅의 모든 거주민이 너희로 인하여 기력을 잃었나니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후와]께서 너희를 위해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르단 저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진멸한 일을 우리가 들었노라. 우리가 이 일들에 관하여 들을 때에
곧 우리 마음이 녹았고 또 너희로 인하여 어떤 사람에게도 더 이상 용기가 남지 아니하였나니 [야후와 너희
엘로힘] 즉 그분은 위로 하늘에서와 아래로 땅에서 [엘로힘]이시니라.” (여호수아 2:8-11)

매우 작은
이 나라가 홍수 후의 거대한 거인들 전부에게 행한 것을 당신이 생각할 때,
왜 [야후와]께서 네피림 유전자의 생존을 “허락” 하셨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쉽다 – 그분의 백성들에
의해 일소될 때까지 생존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야후와]께서 세상과 타락한 천사들에게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백성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나타내셨다.18

비할 데 없는
야후와의 이름을 이제와 영원히 찬양한다. 시작부터 끝을 아시는 그분은 그분의 모든 방식에 있어서 의롭고 공의로우시다!


창세기 6장의 천사의 등장과 관련하여 세부적인 내용들을 많이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자세히 설명되어 왔으므로 이 특정 연구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다. 여기에서 요지는 위의 결론에서 간단 명료하게 언급되었다.



에녹의 책

많은 이들이
에녹의 ‘파수꾼들의 책’ 이 천사의 등장이라는 통찰력에 대한 믿을만한 출처라고 주장한다. WLC는 이 가능성을 지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성경만을 이용해 창세기 6장 논란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이 연구에서 몇 가지 요점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야셀의 책이 사용되었지만, 천사의
등장과 그 영향들의 실제를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박의 여지 없이, 성경만으로도 충분하다.

노아의 시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7)

새로운 이
빛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 예언적 경고의 암시에는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

노아의 시대에, 서로 다른 종류끼리 교배하는, 가증하고 금지된 교배를 통해 모든 육체가 타락했다. 네피림/거인들 (창세기 6:4)과 키메라 (야셀 4:18)는 불경건하고 고압적인 반역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이러한 혐오스러운 행동들을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주제넘게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를 다루며 오염시키고 있다. 야후와께서 태초에 “매우 좋다”라고 선포하신 것을, 그들은 사과도 없이 망쳐
놓고 있다. (창세기 1:31) 정말로, 우리는 “노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에 현대
과학의 끔찍한 일들 중 몇 가지만을 나열한다. (모두 영어)

인간과 동물의
혼합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GMOs
(유전자 변형 생물)이 빠르게 식품 생산과 소비의 기준이 되고 있다.
GMO는 분명 야후와께 모욕이 된다!
“과학”이라고 거짓되이 불리는 것들을 진행하며, 야후와께서 “매우 좋다”고 선언하신 것들을 인간들이 개선할
수 있다고 뽐내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징조다.

오늘날 많은
성경 연구가들과 네피림 연구가들은 우리가 이 마지막 시대에 네피림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일은 분명 가능성이 있으며,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 “노아의
시대와 같이, 인자의 시대에도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17:26) 야후와께서 그 시대에 앞서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1 기르가스 족속이 신명기 20장에서 가나안의 나라들 목록에 빠져 있지만, 신명기 7장, 여호수아 3:10과 24:11에는 나온다.

2 “엘로힘의 아들들” (B’nai HaElohim)은 5 개의 구약 성경 구절에서 발견된다: 창세기 6:2과
4, 욥기 1:6과 2:1과
38:7

3 모세는 일반적으로 욥기의 저자로 인정된다.

4 Chuck Missler, Textual Controversy:
Mischievous Angels or Sethites?
, http://www.khouse.org/articles/1997/110/.

5 Ibid.

6 Ibid.

7 Ibid.

8 야후슈아께서는 “야후와의 어린양” 예표로서 흠이 없으셔야 했다. “너희의
[유월절] 어린양은 흠이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
너희는 양이나 염소 중에서 그것을 취하고” (출애굽기 12:5)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9 어떤 이들은 홍수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천사들이 여인들과
짝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며 둘째 천사의 등장이 있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증거는, 이것이 오직 한번만 발생했다고 암시한다. 이것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보기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Archon Invasion: The Rise Fall and Return of
the Nephilim
by Rob Skiba, pp. 31-64.

10 Chuck Missler, Textual Controversy:
Mischievous Angels or Sethites?
, http://www.khouse.org/articles/1997/110/.

11 키메라의 전설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조직의 혼합체를 지닌 유기체,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들의 혼합,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 간의 혼합 등) 은 역사의 기록에 걸쳐 유명하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허구로 일축하지만, 키메라들이 실재했었다 (아마도 지금도
존재한다) 는 것이 진실이다. (Jasher 4:18; 36:32; 61:25) “Human,animal hybrids and Chimeras in the
Bible?

12 (1) 청동상 “아레초의 키메라”는 에투루리아의 예술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예들 중 하나다.
(기원전 400년)
(2) “Centaur…” by Laurent Marqueste (French, 1850–1920). Marble,
1892. In the Tuileries Gardens, Paris.
(3) Great Sphinx of Giza
(4) Chimera statue at Fontaine Saint Michel, Paris, France.
(5) Egyptian Griffin
(6) Griffin vase, trefoil-mouth oinochoe, 420BC-400BC, Made in: Attica (Europe,
Greece, Attica (Greece))
(7) Theseus fighting the Minotaur by Étienne-Jules Ramey (French, 1796–1852).
Marble, 1826. In the Tuileries Gardens, Paris.
(8) 샬마니저르 III 의 검정 오벨리스크는 이라크 북부에 있는 니므롯
(고대 칼후) 의 신-앗시리아 제국의 얕은
양각의, 검정 석회석 조각품으로, 샬마니저르 III (기원전 858-824 통치) 의 행적을 기념하고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석고 모형 모습
(9) Assyrian Shedu

13 Chuck Missler, Textual Controversy:
Mischievous Angels or Sethites?
, http://www.khouse.org/articles/1997/110/.

14 Dr. E. W. Bullinger, Appendixes To The
Companion Bible
, Appendix 26, http://www.markfoster.net/rn/companion_bible_appendices.pdf.

15 “Raphah 는 르바임의 족장이었다. 르바임은 고대 거인 종족으로, 모세의 시대에서 조차도 그들 중 단지 몇 가정만이 살아 남았었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ume 2, Joshua,
Judges, Ruth, 1 and 2 Samuel
, 2006, p. 680.

16 옥의 침상은 약 13.5 피트 길이에 6 피트 너비였다. 이것은
18” 규빗으로 계산한 보수적 추정이다.

17 플로비우스 요세푸스, 유대인 고대사, 제 1권, 9장, 1.9.1, http://www.biblestudytools.com/history/flavius-josephus/antiquities-jews/book-1/chapter-9.html

18 Rob Skiba, Archon Invasion: The Rise,
Fall and Return of the Nephilim
, 2012, pp. 157-158

우리는 누구와
씨름하고 있는가
?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에베소서 6:12

악한 천사들이 처음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어디로 그리고 왜 쫓겨났는가?
“[야후와]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베드로후서 2:4.

사단은 자신을 무엇이라 불렀는가?
이 세상의 신.” 고린도후서4:4. “이 세상의 통치자.” 요한복음 14:30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에베소서 2:2.

마귀와 그의 천사들의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 어떻게 그가 이 일을 계속 열심히 하는가?
“그분께서 거기서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마가복음 1:13.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참조 요한계시록 12:9, 12; 16:14.)

우리는 무엇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는가?
“너희는 화를 내도 죄는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진노하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6-27.

우리가 사람들을 위한 유예 기간의 마침과 시대의 마지막에 가까이 가면서, 왜 우리는 마귀의 현현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귀가 자기 때가 조금만 남은 줄 알므로
크게 진노하여 너희에게로 내려갔도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2:12.

이 마지막 날들을 사는 우리들에게 특별히 어떤 경고가 주어졌는가?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
.” 디모데전서 4:1.

사단, 그의 천사들, 땅의 악한 모든 자들의 마지막 운명은 무엇인가?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마태복음 25:41

“보라, 화덕같이 불태우는 날이
임하나니 참으로 교만한 모든 자와 악하게 행하는 모든 자가 지푸라기가 되리라. 다가오는 그 날이 그들을 불태우고
그들에게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야후와]가 말하노라.” 말라기 4:1.

“성경을 가장 잘 알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대학들과 연구 기관들에서 보다 더, 성경, 특히 창세기,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이사야, 에스겔서에 더 진정한 과학이 있다. 참 지식의
큰 덩어리들이 그 안에 가득히 박혀 있으나,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찾아야 한다. 이는 “[야후와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 야고보서 iv. 6. 우리의 [주께서] 말씀하셨다—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좋습니다.” — 마태복음 xi. 25, 26. (Terra Firma: Earth
Not a Planet, Proved from Scripture, Reason, and Fact
, David Wardlaw Scott,
p.166)

우리는 이제 WLC로 하여금 “평평한 지구”를 받아들이도록 이끈 몇 가지 내용들을 살펴볼 것이다. 모든 증거들을 다 나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정직한 조사를 시작하도록 고무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끊임없는 상황
조절과 기만적 선전의 전 기간을 떨쳐낸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버지의 은혜에 의해, 그것은 성취될 수 있다. 당신의 편견과 전제를 조사라는 문 앞에 내려 놓고 열린 마음과 정직한 정신으로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 당신이 시간을 내기를 우리는
기도 드린다.

“진리는 완전한 조사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와드로우 스콧)

놀란 남자

우리는 이해한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은 미친 소리로 들린다. 우리도 처음에 이 주제에 대해 들었을 때 그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철저한 조사 없이 어떤 것도 거절하지 않기에, 우리는 기도하며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증거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 증거에 충실하게 따르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하였다. 수 주 그리고 수 개월 동안 마음을 살피고 부지런히 연구한 후, 우리는 이제 “구체” 모델이 미친 것임을 확신한다.

“문제를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요, 수치니라.” (잠언 18:13)


안정되어 있는 평평한 지구를 지지하는 성경의 증거:

지구는 안정되어 있다:

지구와 하늘의
천체들은 궁창에 의해 보호되어 있다:

엘로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시고 엘로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엘로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더라. (창세기 1:6-8.)

여기에서, 야후와께서 “궁창 위에 있던 물로부터 궁창 아래에 있던 물”을 분리함으로써 하늘들의 공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는 없다; 궁창 아래에도 물이 있고 궁창 위에도 물이 있다.

하늘들의 하늘들아, 또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시편 148:4, KJV)

평평한 지구의 궁창 – 위의 물과 아래의 물

창세기 1:6-8에 따르면, 궁창 위에도 물이 있고 궁창 아래에도 물이 있다.

여기에서 “궁창”으로 번역된
단어는 H7549 (râ̂ya)이다:

H7549 – râqı̂ya
BDB 정의:
1) 확장된 표면 (견고한), 공간,
궁창
1a) 공간 (토대처럼 평평한, 지지대)
1b) 궁창 (위의 물을 지탱하고 있는 하늘의 둥근 천장의)
1b1) 위의 ‘물들’을 지탱하는 견고한 것으로
히브리인들에 의해 간주되는

궁창은 “위의 물들을 지탱하는 하늘의 둥근 천장”을 말하며 그것은 “히브리인들에 의해 위의 ‘물들’을 지탱하는 견고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BDB의 평가에 주목하라.

H7549 (râqı̂ya)
의 어원은 H7554 (râqa)
서,
스트롱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원근; (열정의
표징으로서) 땅을 두드리는; (망치질에 의해) 확대시키는 비유에 의해; (얇은 금속 시트로) 위에 가로놓는
암시에 의해: – 두드리다, 넓게 하다, 넓게 뻗다 (판으로, 뻗고, 넓히고, 펼치고) 새기다, 늘이다” –Strong’s Concordance

위의 물을
지탱하고 있는 궁창은 그것의 어원으로부터 견고한 것으로 보이며, 마치 망치질된 금속 판과 같다.

성경은 하늘의
천체들이 궁창 안에 놓였다고 말한다.

엘로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들이 있어서 밤에서 낮을 나누고 또 그것들은 표적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들을 나타내라. 또 그것들은 하늘의
궁창에서 빛이 되어
땅 위에 빛을 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엘로힘께서 커다란 두 광체를 만드사 큰 광체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광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또 별들도 만드시고 엘로힘께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사 땅 위에 빛을 주게 하시며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고 어둠에서 빛을 나누게 하시니라. 엘로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4-18.)

평평한 지구의 궁창 – 하늘, 달, & 별들

성경은 명확한 언어로 말한다:
(1) 궁창 위에도 물이 있고 궁창 아래에도 물이 있다. (창세기 1:6-8 참조)

(2) 하늘의 천체들은 궁창 안에 놓여 있다. (창세기 1:14-18 참조)

궁창은 그
속성이 견고하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엘리후가 욥과 대화할 때 우리가 창세기에서 창조에
관한 설명으로부터 이미 배운 것을 확인해준다. 즉, 물들을 나누고 하늘
천체들의 거처를 제공하는 궁창은 견고하다는 것이다. 엘리후 H7554 (râqa)를 사용했으며, 그것은 궁창의 어원으로, 그것은 “(망치질에 의해) 확대시키는 비유에 의해; (얇은 금속
시트로) 위에 가로놓는 암시에 의해: – 두드리다, 넓게 하다, 넓게 뻗다 (판으로, 뻗고, 넓히고, 펼치고) 새기다, 늘이다” 를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하라.

그대가 그분과
더불어 단단하고 부어 만든 거울과 같은 하늘을 펼쳤느냐 [H7554
ra
̂qa]? (욥 37:18, KJV)

이제, 구체 모델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는
주요 구절을 조사해보자:

땅의 [H2329 – chûg] 위에 앉으신 이가 바로 그분이시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분께서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시며 그것들을 거주할 장막같이 펴시고 (이사야 40:22, KJV)

지구는 구체 (공) 가 아니다“원”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H2329 (chûg) 이다. 이것은 분명 문자적으로 원, 순환, 범위를 의미하며, 더 나아가 하늘들의 둥근 천장을 의미할 수 있다. 그것은 “공” 또는 “구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H2329 – chûg
BDB 정의:
1) 원, 순환, 경계
2) (BDB) 둥근 천장 (하늘들의)

H2329 (chûg)
은 어떤 방식으로도 공이나 구체를 나타내지 않는다. 신성의 영감 아래,
이사야는 여기에서 그의 단어 선택에 신중했다. 다음 구절에서 명확하게 확인되는 것처럼,
그는 “공”이라는 단어를 빠트리지 않았다:

그분께서 참으로
너를 [H1754 – dûr] 같이 맹렬히 돌리며 큰 지역으로 던지리니
. . . (이사야 22:18, 킹제임스 버전)

공을 말하면서
이사야는 H2329 (chûg)
이 아니라 H1754 (dûr)
을 사용했다. 이것들은 서로 배타적인 표현들이다.

여기에서 H2329 (chûg)
이 문맥상으로 “하늘들의 둥근 천장”을 말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 구절에서 그 용도에 가장 잘 맞는 적용으로 보인다.
이 구절을 다시 살펴보자:

땅의 [H2329 – chûg] 위에 앉으신 이가 바로 그분이시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분께서 하늘들 [H8064 – shâmayim]
을 휘장같이 펼치시며 그것들을 거주할 장막같이 펴시고 (이사야
40:22, KJV)

이 구절은 우리에게 야후와께서
지구1
위 하늘의 둥근 천장 위에 앉아 계시며, 그분의 위치에서 볼 때 지구의 거주자들은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물론, 야후와께서는
동시에 어디에나 계시며 땅의 거주민들을 보기 위해 그분의 눈을 긴장시킬 필요도 없는 분이지만, 이사야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꽤 분명하다.

이 구절 역시
야후와께서 하늘들 [H8064 – shâmayim] 을 “커튼”과 같이 펼치시며 “텐트”와 같이 펼치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여기에서 “하늘들”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는 창세기에서 궁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와 같다:

엘로힘께서
궁창
[H7549 – râqı̂ya]
을 하늘 [H8064 – sha
̂mayim] 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더라. (창세기 1:8.)

그리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던 것은 야후와께서 텐트처럼 땅 위에 펼쳐진 궁창에
(위에) 앉으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계속적으로 야후와께서 하늘들, 또는 shâmayim
펼치셨다고 말한다: 시편 104:2, 욥 9:8, 이사야
40:22; 42:5; 44:24; 45:12; 51:13, 렘 10:12; 51:15, 스가랴 12:1)

평평한 지구의 궁창 – 텐트와 같다

이사야는 야후와 아버지께서 궁창에 (또는 위에) 앉아 계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 궁창은 그분께서 지구를 “커튼” 또는 “텐트” 처럼 펼치신 곳이다. (이사야 40:22 참조) 이런 비유는 구체라는 개념 속에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욥기에서, 엘리바스는 이 해석에 동의한다. 이는 하늘의 둥근 천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에 의해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인 chûg
(H2329) 위를 야후와께서 걸으신다고 그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욥기 22:14에 대한 J.P. Green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

욥기 22:14에 대한 J.P. Green의 문자 그대로의 해석 –
“그리고 둥근 천장 [H2329] – 하늘들 [H8064] – 그분께서 걷는다”

빽빽한 구름들이
그분을 덮은즉 그분께서 보지 못하고 하늘
[H8064 – sha
̂mayim]
순환 회로 [H2329 – chûg] 에서 다니실 뿐이라, 하는도다. (욥 22:14, KJV)

엘리바스는
야후와께서 궁창의 천정에 거하셨다 [거하신다] 고 분명히 믿었다.

엘로힘은 하늘 [H8064 – shâmayim]
높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냐? 별들의 높음을 보라. 그것들이 얼마나 높이 있는가! (욥 22:12.)

솔로몬은 창조에
관한 그의 설명에서, 우리가 모세와 이사야와 욥기의 저자의 펜으로부터 배운
것을 보강해준다:

그분께서 하늘들 [H8064 – shâmayim]
을 예비하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분께서 깊음의 표면에 한계 [H2329 – chûg]
를 정하시고

위로 구름들을 굳게 세우시며 깊음의 샘들을 강하게 하시고 바다에게 자신의 칙령을 내리사 물들이 그분의 명령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들을
지정하신 그때에 (잠언 8:27-29, KJV)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궁창, 또는 하늘들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를 발견한다: chûg
(H2329)

“해와 달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빛을 내는 모든 별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하늘들의 하늘들아, 또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아. . . . 그분의 이름은 홀로 뛰어나시며 그분의 영광은 땅과 하늘보다 높도다.” (시편 148:3-4, 13)

솔로몬은 위의
구절에서, 야후와께서 창조 주간 동안 하셨던 것을 다시 말하고
있다. (창세기 1:2 참조) 문맥에서, 솔로몬은 실제 궁창이 깊음 위에 있는 곳에 관하여 특별히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하늘들 [H8064 – shâmayim]
의 예비에 대해 말한 후에 “깊음의 표면 위에” chûg
(H2329) 가 정해졌다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논리적인 또 다른
해석은, 야후와에 의해 바다들을 담도록 세워진 바깥 얼음 둘레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바다에게
그분의 칙령을 내리사 물들이 그분의 명령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들을 지정하신 그때에 (잠언
8:29, KJV)

이러한 해석들
중 어떤 한 가지를 고수하는지에 관계 없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어디에도 지구가 구체라는 힌트조차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성경의 모든 언급들은 하늘의 궁창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평평한 지구를 묘사한다.

이제 선지자
에스겔에 의해 기록된 가장 놀라운 계시를 조사해보자:

이제 제 삼십년
사월 곧 그 달 오일 내가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에 하늘들 [H8064 – shâmayim]이 열리며, 엘로힘의 환상들이 내게 보이니라. .
. . 내가 보니, 보라, 북쪽에서 회오리바람과
큰 구름과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불이 왔는데 그것의 주변에 광채가 있었으며 그것의 한가운데 곧 그 불의 한가운데로부터 호박색을 띤 것 같은 것이
나오고, 또 그것의 한가운데로부터 살아 있는 네 창조물의 모습이 나오더라. . . . 그 살아 있는 창조물의 머리들 위에 있는 궁창 [H7549 – râqı̂ya]
의 모습은 무서운 수정 색깔 같았으며 그들의 머리들 위로 펼쳐져 있더라.
그리고 그 궁창
[H7549 – ra
̂qı̂ya] 밑에는 그들의 날개들이 서로를 향해 곧게 펴져 있었는데 그들이 각각 두 날개를 가지고 그것들로 이쪽에서 덮었으며 또 각각 두 날개를
가지고 그것들로 저쪽에서 자기들의 몸을 덮었더라. 그들이 갈 때에 내가 그들의 날개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큰물들의 소리와도 같고 전능자의 음성 곧 말하는 음성과도 같으며 군대의 떠드는 소리와도 같더라. 그들이 설
때에는 자기 날개들을 내렸더라. 그들이 서서 자기 날개들을 내렸을 때에 그들의 머리들 위에 있던 궁창[H7549 – râqı̂ya]
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들의 머리들 위에 있던 궁창 [H7549 – râqı̂ya]
위에 사파이어 돌 같은 모양의 왕좌의 모습이 있었고 그 왕좌의 모습 위에는 위로 그것 위에 사람의 모양을 닮은 모습이
있더라.
또 내가 보니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위는 마치 속에서 사방으로 불타는 불의 모양과도 같았고 호박색과도 같았으며 내가 보니 그분의
허리 모양으로부터 아래는 마치 불의 모양 같았고 그것이 사방에 광채를 가지고 있더라.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 모양 같았더라. 이것은 야후와의 영광의 모습을 가진
모양이더라.
내가 그것을 볼 때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말씀하신 분의 음성을 들으니라.
(에스겔 1:1,4,5,22-28.)

성경

여기에서, 에스겔은 우리에게 말한다:

  1. 하늘들 [H8064 – shâmayim]이 열렸다. (에스겔 1:1 참조)
  2. 회오리바람과 큰 구름과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불이 북쪽으로부터 나왔다 (에스겔 1:4 참조) 여기 문맥에서, “북쪽”은 그에게 열렸던 하늘들의 천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욥은 이 해석에 동의한다:
    “그분께서는 북쪽을 빈 곳에 펴시며 . . .” (욥
    26:7 참조)
  3. 이 불 회오리바람으로부터 살아 있는 네 창조물이
    나왔다. (에스겔
    1:5 참조)
  4. 살아있는 생물들이 나온 후에, 에스겔은 궁창 [H7549
    râqı̂ya] 이 “그들의 머리 위로 펼쳐진”
    것을 본다. 에스겔은 그 궁창을 “무서운 수정” 과 연결 짓는다. (에스겔
    1:22 참조) 여기에서 “수정”으로 번역된 단어는 H7140 (qerach) 로서 “결빙, 얼음, 얼음 결정”을 의미한다. 이것은 궁창 위의 물이 얼어 있음을 (또는 적어도 얼음의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사도 요한 역시 그의 계시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다:
    “그 왕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왕좌 한가운데와 왕좌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4:6) 여기에서 “수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krustallos (G2930) 로,
    이것은 “전통 그리스어에서 얼음에 대하여 사용” (Vincent’s
    Word Studies
    ) 된다. 이것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이 특정 금광을 더 파는 것은 이 연구의 범위가 아니다.
  5. 그들 위에 있던 궁창 [H7549 – râqı̂ya] 에서부터 그 살아있는 생물들에게 한 음성이 들렸다. (에스겔 1:25 참조)
  6. 에스겔은 궁창 [H7549 – râqı̂ya] 위 그분의 보좌에 계신 야후와를 본다. (에스겔 1:26-28 참조)

여기에서, 에스겔은 야후와께서 궁창 위 그분의 보좌에 영광 중에
앉으신 것에 관해 놀랍도록 생생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궁창은 그에게 얼음 결정처럼 보였다.

이 선지자는
또 다른 계시에서 다시 이 모습에 관해 확인해준다:

그때에 내가
보니, 보라, 그룹들의 머리 위에 있던 궁창 [H7549 – râqı̂ya]

사파이어 돌 같은 것이 그들 너머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왕좌의 모습 을 닮은 모양 같더라. (에스겔 10:1)

야후와께서
견고한 궁창 위에 좌정하고 계시다는 것에 이사야, 엘리바스, 엘리후, 에스겔 모두 동의한다.
그것은 지구가 문자적 의미에서 야후와의 발판인 것으로 나타난다:

야후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 [H8064 – shâmayim]
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짓는 집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에 있느냐? (이사야 66:1.)

지구는 평평하다:

욥기에서, 우리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통찰력 있는 대화를 발견한다.
38장에서, 야후와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질문하기 시작하신다.
그 질문들 중 하나가 특별히 이 연구와 관계가 있다:

네가 땅의
너비 [H7338 – rachab] 를 깨달아
안 적이 있느냐? 네가 그것을 모두 알거든 밝히 고할지니라. (욥
38:18, KJV)

여기에서 “너비”라는 단어는 rachab
(H7338)
로서, “너비, 넓은 또는 넓게 확장된.”을 의미한다.
(BDB Lexicon) 이것은 평평한 지구
상에서 타당한 질문이다. 그러나 구체 지구에서는 설명이 안 된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가넷살의 예언적 꿈의 내용 역시 평평한 지구를 나타낸다:

내가 침상에서
본 내 머리 속의 환상들은 이러하니라. 내가 보니, 보라, 땅의 한가운데 한 나무가 있는데 그것의
높이가 높더라. 그 나무가 자라서 강하게 되고 그것의 높이가 하늘에까지 닿아 그것의 모습이 온 땅의
끝까지 보이더라.
(다니엘 4:10-11, KJV)

느부가넷살은
한 나무를 꿈에서 보았는데, 그 나무가 매우 높이 자라 “온 땅의 끝에서도 보일 수 있다” 고 말했다. 이것이
꿈이었지만, 이것은 평평한 지구에 관해 설명한다. 왜냐하면 오직 평평한
지구 상에서만 이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구체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구체와 비교되는 평평한 지구 (다니엘 4장 – 느부가넷살의 꿈)

이제, 우리의 사랑의 구주의 재림에 대한 영광스러운 묘사들을
살펴 보자:

그분께서 여섯째
봉인을 여셨을 때에 내가 보니, 보라, 큰 지진이 나며 해는 머리털로 짠 상복같이 검게 되고 달은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니
, 마치 무화과나무가 강풍에 흔들릴 때에 설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 같더라. 하늘은 두루마리가 함께 말리는 것 같이 말려 떠나가며 모든 산과 섬도 그들의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왕들과 위대한 자들과 부자들과 총대장들과 용사들과 모든 남자 노예와 모든 자유로운
남자가 동굴과 산들의 바위들 속에 숨고 산들과 바위들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왕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기라.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 6:12-17, KJV)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요한계시록 1:7, KJV)

계시자 요한에
따르면:

  1. 별들이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6:13) 이 주제를 설명하는 다른 선지자들과
    같이, 요한은 별들이 (지구보다 훨씬 더 크고)
    수 백만 마일 떨어져 있는 거대한 천체들이라고 분명히 믿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현대 천문학이 지지하는 것처럼, 한 별의 충격으로 지구 전체가 전멸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별들이 땅에 “떨어졌다”고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하라; 그는 별들이 땅을 향해 돌진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2. 하늘들이 두루마리처럼 떠나갈 것이다. (요한계시록 6:14) 이것은 성경 도처에 존재하는,
    하늘들이 커튼과 텐트처럼 펼쳐져 있다는 묘사들과 일치한다. 만약 지구가
    구체라면 이러한 설명이 전혀 맞지 않는다.
  3.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야후슈아께서 영광 중에
    오시는 것을 볼 것이다
    .
    (요한계시록 1:7)
    이것은 평평한 지구에서는 완전히 이해된다. 그러나 만약 지구가 구체라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4. 악한 자들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어린양의 진노”와 “보좌에 앉으신 그분의 얼굴”로부터 숨고자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6:15-16)
    하늘들이 “두루마리처럼” 말릴 때에, 악한 자들은 보좌 (하늘의 둥근
    천장 위, 또는 지구의 ”원 [H2329- chûg]“ 이사야 40:33) 에 앉으신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 스스로 숨고자 할 것이다.

평평한 지구의 궁창 – 두루마리처럼 말리며 모든 눈이 그분의 보좌에 앉으신 야후와를 볼 것이다

성경은 야후슈아의 재림 때에 하늘들이 “두루마리처럼 함께 말리며” 떠나가고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7;
6:12-17 참조) 이것이 구체 모델과 조화를 이루려면 엄청난 추측과
교묘한 처리가 필요하다. 하늘이 말릴 때에, 악한 자들은 그분의 보좌에
계신 야후와를 보게 될 것이며, 그분의 놀라운 임재로부터 그들 스스로 숨고자 할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하늘의 천체들이 아니라, 지구다.

그때에 야후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모리 족속을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야후와께 아뢰고 또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이르되, 해야, 너는 기브온 위에 멈추어 서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 하매

해가 멈추어
서고
달이 멈추어서 마침내 백성이 자기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니라. 이것이 야셀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이와 같이 해가 하늘 한가운데 머물러 서고 온 종일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수아 10:12-13.)

이 문장보다
더 명확할 수는 없다: “해가 하늘의 가운데 멈추어 섰다.”
여호수아는 해와 달에게 하늘들에 멈추어 서라고 명령한다. 그는 지구에게 회전하는
것을 멈추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정직한 성경 연구가로서, 우리는 이
구절의 명확성을 인정해야 한다. 야후와께서는 우리가 코페르니쿠스의 인위적, 사이비-과학적 (태양-중심) 이론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비트는 것을 금하신다. 그 이론은 창세기의 시작으로부터 성경과 상충된다. (실험할 수 있고 관찰 가능한)
진정한 과학은 안정되어 있는 지구의 실제를 입증한다: Experiments, The Alleged Coriolis Effect.

이사야서에서, 우리는 야후와께서 어떻게 하늘을 되돌아가게 하셨는지에
관한 기록을 본다.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이동하게 하셨다:

보라, 내가 아하스의 해시계에서 내려간 각도들의 그림자를
뒤로 십 도 물러가게 하리라, 하라, 하시니 이에 해가 자기가
내려간 각도대로 십 도 만큼 되돌아가니라
. (이사야 38:8, KJV)

이사야는 우리에게
“태양이 십도 물러갔다”고 명확한 언어로 말한다. 그것에 관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사야는 움직인 것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었다는 것을 믿었다.

우리가 선지자들의 증언을 제쳐두고 오류의 이론들과 속이는 사람들에게 굴종하는 것을 야후와께서 금하신다.

다윗 왕 역시
움직인 것은 태양이었다는 것을 믿었다:

하늘들이 엘로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 그것들의
줄이 온 땅에 두루 나갔고 그것들의 말들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그분께서 해를 위하여 하늘들 안에 장막을 세우셨으므로 해는 자기 침소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려는 힘센 자 같이
기뻐하는도다
. 해가 하늘 끝에서부터 나아가며 그것의 순환 회로는 하늘 끝들에까지
이르나니
해의 열기에서 숨을 것이 없도다. (시편
19:1-6.)

솔로몬은 땅에서의
활동들을 언급하면서, 전도서에서 25 번 이상이나 “해 아래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솔로몬은 지구 를 움직이는 것이 태양임을 분명히 믿었다.

야후와께서는
우리가 선지자들의 증언을 제쳐두고 오류와 속이는 사람들의 이론들을 따르는 것을 금하신다.

평평한 지구를
지지하는 경험에 의한 증거:

이제, 우리는 평평한 지구를 지지하는 몇 가지 경험적 증거들을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모든 자료들을 다 열거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사항들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정직하게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유용한 매우 많은 정보들이 온라인 상에 이미 있기 때문이다.

  • 굴곡이 분명 없다: 나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지구가 원주 25,000 마일의 공이라면, 정수는 반드시 거리의 제곱 마다, 마일 당 8 인치씩 아래로 굴곡을 이루어야 한다. 멀리 있는 물체들의 고도에서 관측 가능하도록 낙하되어야 한다. 이것을 테스트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져 왔지만, 모든 실험들이 굴곡을 증명하는 데에 실패했다.
    물은 언제나 완벽하게 수평을 이룬다. 물은 굴곡지지 않는다. (A few examples)
  • 측량사들, 엔지니어들, 건축 기사들, 해군 사관들, 등은 그들의 프로젝트를
    구성/계획함에 있어서 지구의 곡률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 (어떤 다리들은 곡률을 반영하며 건축되었다고 어떤 이들은 주장하지만, 다리 아래에 있는
    물은 그 다리의 굴곡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물은
    언제나 그 자체의 수평을 찾는다. 물은 굴곡지지 않는다.)
  • 비행기 조종사들이 같은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또한 비행기를 우주로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그들의 비행기의 코 부분을 하강시키지 않는다는 사실. (만약 구체 상에서 시간 당 수백 마일로 비행한다면 분명 필요로 되는 작업이다.)
  • 강이 최소 저항선을 따라간다는 사실. 그러나 수 마일의 곡률이 있다면,
    강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위로 흘러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예:
    미시시피는 멕시코 만에 이르기 전 11 마일을 상승해야 할 것이다.)
  • 배들이 관측자로부터 멀어지면서 배들의 선체가
    사라지는 것은 지구
    (또는 바다)의 곡률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원근법”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육안으로 봤을 때 배 전체가 사라졌을지라도, 망원경이나
    그것과 유사한 확대 장치의 도움을 얻으면 쉽게 그 배를 볼 수 있다.
  • 중력은 결코 증명된 적 없다. 그것은 구체 모델을 고수하기 위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중력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진리라고 생각해왔지만 (우리가 “교육” 시스템에 의해 주입되고/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론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대양 전체를 지구에 고정시키고 있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 이라고 불리는 마술적 힘이 있다고 우리가 정말 믿어야 하는가,
    그런데 왜 가장 작은 구름이나 심지어 가장 작은 날개 달린 곤충은 중력이 강제하지 못하는가? “중력” 이라고 불리는 이 상상의 힘이 비를 거꾸로 내리게 하고 작물들을 옆으로 자라게
    만든다고 우리가 정말로 믿어야 하는가?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모든 일들이?
    (그런데, 중력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한 지구가 시속
    1,000 마일로 회전하며, 태양 주위를 시속 67,000
    마일로 공전하고, 우주 속에서 시속 420,000 마일로 달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앉아서 컴퓨터로 이 글을 읽으면서도 심지어 가장 작은 움직임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현대 사이비-과학은 본질적으로 “당신의 성경, 당신의 감각들, 당신의 논리와,
    모든 반복적이고 테스트할 수 있고 관측 가능한 자료들을 무시하고… 당신의
    교과서를 통해 당신이 들은 것을 맹목적으로 믿으라” 고 말한다. 세상 권위 안에 있는 사람은 “만약 당신이 충분히 큰 거짓말을 말하며,
    그것을 충분히 자주 말한다면, 그것이 믿어질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라는 것을 잘 안다. 정말이다.
    적수는 안건을 가지고 있다. (짧은 동영상: Gravity or Density?)

    중력의 불합리성을 나타내는 구체 모델에 관한 카툰

  • 수평선은 언제나 관측자의 눈으로 올라온다 (지구 위 30,000 피트에서 비행하고 있을 때 조차도 그러하다.) 주장되는 구체 곡률의 수평선을 찾기
    위해 관측자가 아래를 내려다 보아야 할 지점은 전혀 없다.
  • 나사 로고

    나사 로고에 있는 뱀의 갈라진 혀를 보라.

  • 수평선은 언제나 완벽하게 평평하게 나타난다.
  • 지구가 구체라고 가정할 때 배의 선장들이
    “남반구”를 항해하고자 시도하며 겪은 어려움들에 관한 기록들이 있다 (만약 지구가 구체라면,
    당신이 적도로부터 주장되는 “남극점”으로 향해감에 따라 좁아져야 한다. 그러나, 평평한 지구에서, 경선은 북극점으로부터 바깥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당신이 남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경선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탐험가들이 1700년대와 1800년대에 남극 대륙을 일주하고자 시도했을 때 그들이 50,000 마일 이상을 횡단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그 남극 대륙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평평한 지구 상의 바깥 얼음 고리다
    (예, 제임스 쿡, 제임스 클락 로스,
    영국 “챌린저” 탐험대)
    나사에 따르면, 구체 지구의 원주가 25,000 마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비교해보라.
  • 민간 비행기들의 비 상식적인 비행 노선들
    (짧은 동영상: Down South)
  •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들이, 육안으로 봤을 때 원근법에 의해 그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보일 때 조차도, 관측자로부터 기울어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만약 그것들이 주장되는 구체 지구의 곡률점 너머에 있다면 기울어져 보여야 한다) 구체
    지구의 “중력”의 힘 하에서, 열기구들은 그것들이 관측자로부터 먼 하늘로 날아감에 따라, 그 바구니의 아래는 점점
    더 크게 보이게 만들며 뒤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나타나야 할 것이다.
  • 폴라리스 (북극성) 는 남위 20도에서도 보인다는 보고들. 그러나
    주장되는 남극성 (팔분의 자리 시그마) 은 적도에서조차도
    (또한 다른 볼 만한 별자리 변칙들) 모든 자오선으로부터 일관되게 관측되지
    않는다.
  • 기후 유형들과 바다의 해류들은 평평한 지구
    상에서 훨씬 더 이치에 맞다: Azimuthal Equidistant
    Map
    (관측 옵션들을
    더 많이 보기 위해 이 링크에서 보이는 지도의 왼쪽 아래에 있는 “earth”를 클릭)
    그런데, 이 지도는 UN이 그들의
    로고

    사용하는 지도와 같은 것이다.
  • 나사 (군사 비밀 단체) 는 결코 지구의 실제 사진을 제작한 적이 없으며 계속 속이고 있다는 사실…

블루 마블 앞에 있는 로버트 심몬

블루 마블” 앞에 있는 Robert Simmon 사진
Credit: NASA/W. Hrybyk

나사는 그들의
이미지들이 컴퓨터 자료와 함께 제작되었으며 그것들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고다드에서 당신이 일할 때 당신이 경험한 가장 멋진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나사의 데이터 비주얼라이저이자 디자이너인 로버트 심몬이 받았을 때,
그는 대답했다:

지구의 낮은 궤도 위로부터 전체 반구
(구체의 한쪽 면) 를 보여주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은 것은
1972년 아폴로 17호 동안이었다.
나사의 지구 관측 시스템 (EOS) 위성들은 지구의 건강에 대한 검진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2002년까지, 우리는 마침내 지구 전체에 대한 스냅 샷을 만들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행하였다. 힘든 부분은 사개월의 위성
데이터를 가지고 지구의 표면에 대한 평평한 지도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Swiss
Federal Office of Meteorology and Climatology에 있는, Reto
Stockli 가 이 작업의 많은 부분을 진행했다. 그 다음,
우리는 그 평평한 지도를 공 위에 감쌌다. 나의 역할은 지구가 우주로부터 어떻게
보일지에 관한 사람들의 예상에 맞게 표면, 구름, 대양을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그 공이 유명한 블루 마블이 되었다. 나는 그 작품에
만족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우리는 그것이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결코 없다. 내가 “미스터 블루 마블”이 될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결코 생각한 적 없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해상도를 늘림으로써 기본 지도들을 업데이트해왔고, 2004년,
우리는 월간 지도 시리즈를 만들었다.” (http://www.nasa.gov/centers/Elohimdard/about/people/RSimmon.html)

어떻게 지구에 대한 “블루 마블” 이미지가 생겨났는가? 나사에 따르면, “평평한 지도”가 위성이라고 주장되는 것의 자료로부터 만들어지고, 그 다음, “공으로 둥글게” 감싸게 된다. 그 다음, 그 이미지를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에 맞도록” 손을 보게 된다.

자기 계획을
야후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들의 일들은 어둠 속에 있은즉 그들이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나니 참으로 너희가 일들을 뒤집는 것은 토기장이의 진흙같이 여겨지리로다. 물건이 자기를 지은 자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또
빚어진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지각이 없다, 하겠느냐? (이사야 29:15-16.)

당신은 누구를
신뢰하는가? 야후와의 선지자인가 아니면 군사 비밀 단체 나사인가?

야후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야후와로부터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사막의 히스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때에 그것을 보지 못하며 다만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메마른 곳에 거하리라.

야후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야후와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 곧 뿌리를 강가로 뻗은 나무 같아서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잎이 푸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 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17:5-8.)

구체 지구 모델을 버리는 남자


관련 내용:

나사의 사기꾼들:

위의 링크들은 나사가 끊임없이 선전하고 있는 거짓말들의 일부를 다룬 것뿐이다.


1 이것이 많은 성경 해설가들에 의해 지지되는 해석이지만,
이사야 (이사야 40:22) 에 의해 언급된
“땅의 원”은 실제로 지구의 원형 형태를 말하는 것임에는 논쟁의 여지가
상당하다. 이것은 분명 그럴듯하다. 그러나, 선지자는 분명히 지구가 구체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다.

땅은 지구본이 아니다!

진실이 당신을 놀라게 것이다.

영원무궁토록 [야후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니 지혜와 능력이 그분께 속하였도다…그분께서는 깊고 은밀한 것들을 계시하시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분과 함께 거하는도다.” (다니엘 2:20, 22)

Leaning Tower of Pisa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은 어떤 것이든지 반드시 무너진다.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그것이
유명한 이유는: 더 안전한 3.99도 각도로 되돌린 최근의 복구 노력이
있기 전까지는 그 탑을 5.5도 각도까지 기울게 만들었던 잘못된 기초에 있다. 어떠한 건축물이라도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질 때, 그것은 결국에 무너진다.

나사의 “우주 프로그램”은 하나의 본질적인 거짓말 위에 세워져 왔다: 땅이 태양을 도는 하나의 공이다라는 이론. 이제는 그 거짓말과 그 위에 세워진 모든 것이 무너질 때다.

WLC는 그 시작부터 그 존재 목적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더하여, 진리를 활발하게 찾고 그것이
발견되는 대로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WLC는 어떤 종파적 연결로부터도 독립성을 유지해왔기에 자유롭게 “사람들로 곧 오시는 구주의 재림을
준비케” 할 수 있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끝이 임하는
때,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고 지식이 증가하리라.”고 말했다.
(다니엘 12:4) 더 많은 빛이 올 것이라는 이 암시된 약속은
WLC팀을 고무시켜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잘못된 추정들에 기초한 신념들을 바로 잡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진리가 밝혀짐에 따라, WLC팀은 과거의
잘못된 가르침들을 회개해야만 했다. 이제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 떠 올랐다: 땅의 진정한 형태. 이 특별한 주제는 전에 있었던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 WLC팀이 연구해온 어떤 다른 진리도 이렇게 한눈에 명백하게, 일반적으로 인정된 과학적 “사실”에 위배되는 것으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세상이 둥그런 공이며 태양을 돌고 있다는 신념은 매우 오래 인정되어온 것으로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실”로 인정된 이론이다.
부지런히 연구하면, 땅이 실제로는 우주의 무한한 공간 속을 돌고 있는 둥근 구형체가아니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사람이 계속 걸어가다 보면 끝에 이르러서 추락하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평평한”
것이 아니며, 지난 500년간 모든 사람이
배워온 그런 지구본 모양의 형태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정확히 성경과 모든 고대인들이 가르쳤던 것과 같다:
반구형 보호 지붕 안에 둘러싸여 있는 고정된 땅과 바다.

역사에 걸쳐 세계 문화권들이 모두 지구 중심의, 안정된
평평한 땅에 대한 묘사와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 인도,
마야, 중국,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땅 위의,
문자 그대로 모든 문명이 지구 중심의, 평평한 땅이라는 우주관을 가졌었다. 피타고라스 전까지, 돌고 있는 공 모양의 지구라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타고라스 후에도,
그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었고,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설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던
때인 2,000년 후까지 소수의 관점이었다.1

WLC는 이용 가능한 과학적이고 천문학적인 자료들을 부지런히 연구한 후에 안정된
땅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였다. 움직이지 않는 땅을 지지하는 성경의 언급들도 항상 있어왔지만 시적 허용으로 간과되어왔다.
WLC팀은 전에 이 아름다운 성경적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회개한다. 야후와는
창조주시다.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의 과학의 법칙 안에서 일하신다. 실재,
과학, 천문학, 응용수학이 반구형 지붕 안에
있는 고정된 땅을 지지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똑같이! 과학의 법칙들이 이 진실을 지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WLC는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전능하신 분의 말씀은 어떠한 신념이나 교리를 지지할 충분한 증거가 된다.

더군다나, 이 땅의
참 평면도를 이해하면 예언에 대한 더 많은 빛이 비춰진다. 성경이 미리 말한 것처럼: “네가 다시 대언하여야 하리라.” (요한계시록 10:11), 에워싸인 땅에 대한 이해는, 세상이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듣게 되면서, 세 천사들의 기별의 온전하고 최종적인
성취를 허락한다. 이 진실이 퍼지면서, 바빌론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종교적 조직들이 예외 없이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거절할 것이다. 그리하여, 바빌론의 무너짐이라는 둘째 천사의 경고가 그 최종적인 성취에 이를 것이다. 세상의 단일 종교의 수장으로 세워진
교황이 지구본 모양의 지구를 가르칠 때 이 진리를 위하여 서는 모든 자는 셋째 천사가 예언한 대로 박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온 땅이여, 그분 앞에서 두려워할지어다. 세상도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역대상 16:30)

앞으로 수주 수개월 넘도록, WLC는 태양 중심설 지구본 모양의 지구 이론과 관련된 모든 기사들과 동영상들을 수정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 동안 여러분의 인내를 부탁 드린다. 웹사이트의 용량 때문에, 그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벅찬 업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LC는 하늘이 밝혀주는 전진하는 모든 진리에 헌신한다.

WLC는 여러분 스스로 그 증거를 주의 깊이 연구하도록 초청한다.2
여러분이 더 많은 정보들을 모으는 동안 이 주제를 뒷전으로 미루고 천천히 연구해도 괜찮다.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인정해도 괜찮다. 그러나 부디
모든 이용 가능한 증거들에 대한 자세한 검토 없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독단적으로 그 가능성을 닫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운 빛에 대한 위험은 그것이 새롭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진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라오디게아와 같은 가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은 감정적이고 심지어, 새롭고 전혀 다른 인식 체계를 소화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곤란함 안에 있다. 그것은 마음 속에 혼란을 만들 수 있으며 또한 다시는 결코 그렇게 속지
않으리라는 단호한 결정을 만들 수도 있다. 심지어 자신이 이미 그 진실을 알았다 해도, 자신의 모든 신념들을 던져 버려야 한다는 시험이 있다. 확립된 다른 진리들을 성급하게 버리지
않는 자기-방어 작용을 위한 이 반응을 이해하라.

이것이나 또한 어떠한 주제라도 부디 기도하면서 신중하고 자세한 연구 없이 거절하지 마세요. 진리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것을 따를 준비를 하세요.

Flat Earth AE Map

By Strebe (Own work) [CC BY-SA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1 Eric Dubay, 땅이 돌고 있는 공이 아니라는 200가지 증거들. WLC는 땅의 형태에 관해 뛰어난 연구를 해온 두베이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비기독교적인 신념들에 대해서는 동의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

2 어떤 둘러싸인-지구 연구가들은 성경과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 다른 신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디 염두에 두세요. 많은 가치 있는 정보들을 배울 수 있는 동시에, 부지런한 학생은 좋은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둘러싸인 땅을 연구하면서 심지어 어떤 무신론자들이 이 진실의 아름다움으로 야후와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크리스챤이 되어 왔다.

시내산에
있을 때 모세에게 [야후와]의 명령이 내려졌다 . . . “그들로 내 앞에
성소를 만들게 하라;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리라.” 완벽한 세부 지침들이
성소 건축을 위해 주어졌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신성의 임재의 축복을 박탈했고, 그들 사이에 거하실 [야후와]를 위한 성소를 짓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늘의 호의가 다시 주어졌고, 위대한
지도자가 신성의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나아갔다.

거룩한 장막의
건축을 위해 선택된 남자들은 기술과 지혜를 지닌 자들로 [야후와]에 의해 특별하게 임명되었다 . . . [야후와]
그분께서 직접 모세에게 크기와 형태와 재료들과 모든 기구들에 관한 세부 지시 사항들을 포함한 그 구조물의 계획을 주셨다.
손으로 만든 거룩한 장소들은 "참 것의 그림자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이었다.
(히브리서 9:24, 23) — 우리의 대제사장 [야후슈아 아들]이 계신 하늘의 성전을 나타내는 작은 모형이었다. 희생제사로서 자신의 생명을 드리신 후에 죄인들을 위하여 사역하셨다. 시내산에서.
. .[야후와]께서 모세 앞에 하늘 성소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그 양식에 따라 모든 것들을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이러한 모든 지시사항들이 모세에 의해 주의
깊이 기록됐고, 모세는 그것들을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알렸다.

성소를 짓기
위해 값비싼 재료들이 많이 필요했다; 가장 귀하고 비싼 재료들의 많은 양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야후와]께서는 자원하는 예물들만 받으셨다. “즐거이 내는
자들의 예물만 받으라”는 신성의 명령이 모세에 의해 회중에게 전달됐다. [야후와]께 대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 가장 높으신 분이 거할 장소를 준비하는 데 있어 필요한
첫째 요건이었다.

모든 백성들이
일심으로 응답했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야후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야후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야후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출애굽기 35:21-28

성소가 지어지는
동안, 나이 든 자나 젊은 자나 남자나 여자나 자녀들이
그들의 예물들을 계속 가져 와서, 건축하는 데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이 채워졌다. 그리고 모세가 진영에 외치게 되었다. “남자나 여자나 성소를 위한 예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 그러므로 백성들이 예물 가져오기를 그쳤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그들의 죄에 대한 [야후와]의 심판으로서의 고난들이 다음 세대들에
대한 경고로 기록됐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 열심, 인색하지 않음은 따라 할 만한 모본이 됐다. [야후와 아버지]를 경배하기 좋아하며 그분의 거룩한 임재의 축복을 얻는 모든 자는, 그분이 그들을 만나 주시는
집을 준비하는 데에 그와 같은 희생 정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아버지]께 예물을 가져 오기를 원할 것이다. [야후와]를 위한 집은 빚이 남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분께서 멸시를 받으신다. 그 일을 완성하는 데에 충분한 양이 자유롭게 채워져서 성막을 지을 때처럼
일꾼들이 “더 이상 예물을 가져 오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여정 동안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성막은 분해하고 운반할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그러므로 성막은 길이가 55피트(약 16미터), 너비와 높이가 18피트(약5미터) 이하로 작았다. 그러나 그것은 훌륭한 구조물이었다.
그 구조물과 기구들을 위해 사용된 나무는 아카시아 나무였다. 그것은 시내산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것들 보다도 잘 썩지 않을 재료였다. 상판 벽들은 이음관으로 은을 사용하여 기둥과 연결 막대들을
견고하게 잡아 주었고; 모든 것은 금으로 덧입혀져서 구조물 외관이 견고해 보였다. 지붕은 “청색, 자색, 주홍색의 가늘게 꼬아 만든 베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무늬 놓아” 네 개의 휘장을 달았으며,
염소털,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으로 휘장을 만들어 다른 삼면을 각각 덮어서 보호막을 온전하게 만들었다.

성막은 값지고
아름다운 휘장으로 두 구역으로 나뉘어졌다. 금으로 도금한 기둥들로 지탱됐고; 한 휘장으로 그 첫 구역의 입구를 막았다. 천장은 가장 화려한 청색 자색 홍색으로 아름답게 장식됐고, 금과 은으로 수놓은 그룹이 하늘
성소의 일과 연관되어 땅에 사는 [야후와]의 백성들을 돕는 영들로서
천사를 묘사했다.

놋 기둥들로
지탱되며 훌륭한 울타리 막으로 둘러 쌓인 뜰이라 불리는 열려진 공간 안에 거룩한 장막이 둘려 쌓여졌다. 이 내부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동쪽 끝에
있었다. 성소의 그것들보다는 못하지만, 값진 재료와 노련한 장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휘장들로 덮여졌다. 뜰의 울타리 막들은 성막 벽들의 높이의 반 밖에 되지 않았고, 백성들이 밖에서 그 구조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뜰에 번제를 위한
놋 제단이 세워졌다. 이 제단 위에서 모든 희생 제물들이 [야후와]께 불로 태워졌고 . . . 그 속죄하는 피와 함께 그 뿔들이 뿌려졌다. 제단과 성막의 문 사이에 이스라엘 여자들의 자원 예물이었던 거울들로 만들어진 놋대야가 있었다. 제사장들이 거룩한 구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리고 [야후와]께 번제를 드리기 위해 제단에 다가갈 때마다 놋대야에서 그들의 손과 발을 씻었다.

첫째 구역
곧 거룩한 곳에 진설병과 촛대와 등불과 향단을 올려 놓는 탁자가 있었다. 진설병을 놓는 탁자는 북쪽에 있었다. 그 장식 테와 함께, 그 탁자는 순금으로 덧입혀졌다. 이 탁자에서 제사장들이 매 안식일에 12개의 떡을 두 줄로 진열하여 올려 놓았으며 유향을 뿌렸다. 거룩하게 구별된 그 상들은 제사장들이
먹기 위해서 옮겨졌다. 남쪽에는 일곱 등을 가진 일곱 가지가 있는 촛대가 있었다. 그 가지들은 섬세하게 수놓은 백합 모양의 꽃들로 장식됐고 그 전체가 한 덩이의 금으로 만들어졌다. 성막에 창문은 없었고, 등불은 동시에 모두 꺼지는 일이 결코 없었고 밤낮으로 그 빛을 비추었다.
[야후와 아버지]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부터 성소를 구별하는 휘장 바로 앞에 금향단이
세워졌다. 이 단에서 제사장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향을 피웠다; 그
뿔들에 속죄 제물의 피가 묻혀졌고, 대속죄일에 피와 함께 뿌려졌다. 이 단 위에 불이 . . . [야후와] 그분에 의해 붙여졌고
신성하게 흠향됐다. 밤과 낮으로 그 거룩한 향은 그 거룩한 구역들 전체에 그 향을 발산했고 성막을 넘어서까지
향이 퍼져 나갔다.

휘장 너머에
지성소가 있었고, 그곳이 속죄와 중재라는 표상적 봉사의 중심지였고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이 곳에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상판에는 금테로 둘러져 있고 안과 밖이 금으로 덧입혀진 궤가 있었다.
그것은 [야후와] 그분께서 직접 십계명을 새기신
돌판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궤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야후와]의 증거궤 또는 언약궤라고 불렸다. 십계명은 [야후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체결된 언약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거룩한
궤의 덮개는 보좌라 불렸다. 이것은 한 덩이의 금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그 양쪽 끝 위에 금으로 만든 그룹으로 둘려졌다. 각 천사의 한 날개는 위를 향해 뻗쳐졌고, 다른 한 날개는 존경과 겸손의 표시로 몸을 가리면서
접혀져 있었다. (에스겔 1:11 참조) 그들의 얼굴은 서로를 마주 향하면서 그 궤를 공손하게 내려다 보았고 [야후와]의 율법을 존중하는 하늘 천사의 공손한 태도와 구속의 계획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보좌 위에
그룹 사이로부터 신성의 임재의 현시인 쉐키나가 있었고, .
. . [야후와]께서 그분의 뜻을 알리셨다. 신성의 메시지는 때때로 구름 속에서 한 음성이 대제사장에게 들려와서 뜻이 전달됐다. 때로는
승인 또는 승낙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 빛이 오른쪽에 있는 천사에게 내려왔고, 불승인 또는 거절을 나타내기
위해서 왼쪽에 있는 천사에게 그림자나 구름이 머물렀다.

그 궤 안에
모셔진 [야후와]의 율법은 의와 심판의 위대한 원칙이었다. 그 율법은 범죄자에게 죽음을 선포했고;
그 율법 위에 보좌가 있었고, 그 위에 [야후와]의 임재가 드러났으며, 그것으로부터 속죄의 효력과 용서가 회개하는 죄인에게 주어졌다.
우리의 구속을 위한 [야후슈아 아들]의 일에서,
성소 봉사에 의해 표상화됐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시편 85:10

어떤 언어도
성소 안에 나타난 장면의 영광을 묘사할 수 없다. 금으로 입힌 벽들은 금 촛대로부터 빛을 반사했고, 빛나는 천사들과 금으로 반짝이는 탁자,
향단과 함께 풍부하게 수놓은 휘장들의 색상이 화려했다. 둘째 휘장 너머에 거룩한
궤는 신비의 그룹과 함께 했고 그 위에 [야후와]의 임재의 현시인 거룩한
쉐키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류의 구속 사업을 위한 중요한 중심지로서, 하늘에 계신 [야후와]의 성전의 영광의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성막을 짓는
데에 약 반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그것이 완성됐을 때, 모세는 산에서 자신에게 보여졌던 양식과 [야후와]께로부터 그가 받았던 지시사항들과 비교하면서 그 건축가들의 모든 업무를 조사했다.
“[야후와]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들이 그
일을 마쳤으니: 모세가 그들을 축복했다.” 큰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많은 무리가 그 거룩한 구조물을 보기 위해서 모였다. 그들이 존경스러운 만족감으로 그 현장을 관찰하는 동안,
구름 기둥이 그 성소 위를 덮으며 내려왔다. “[야후와]의 영광이 성막을 채웠다.” 신성의 위엄이 나타났고 모세조차도 한 동안 들어갈 수 없었다.
깊은 감동과 함께 백성들은 그들의 손으로 행한 일이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를 보았다. 거기에는 기쁨의 큰 소동은 없었다. 엄숙한 경외감이 모든 사람 위에 머물렀다.
그들의 마음의 즐거움은 기쁨의 눈물로 북받쳤고, [그들의 창조주]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신 것에 대해 진지한 감사의 말들을 나지막이 속삭였다.

신성의 지시에
따라 레위 족속이 성소의 봉사를 위해 구별됐다. 가장 초기 시대에는 모든 남자가 자신의 가정의 제사장이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이
장자의 상속권으로 간주됐다. 이제, 모든 이스라엘의 첫-태생을 대신하여, . . . [야후와]께서 성소의 업무를
위해 레위 족속을 받으셨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경배로 배교했을 때 그분의 봉사를 맡고 그분의 심판을 행했던
그들의 충성에 대한 그분의 승낙을 이 명예로운 신호에 따라 그분께서 나타내셨다. 그러나 제사장 직분은 아론의
가족에게 한정됐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야후와] 앞에서 사역하는 것이 허락됐다; 그 족속의 나머지 사람들은 제사장들의 사역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고
성막과 그 기구를 맡게 됐다. 그들의 업무는 희생을 드리거나 향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들이 덮여지기까지
그 거룩한 것들을 봐서는 안되었다.


그들의 업무에 따라, 특별한 옷이 제사장들을 위해 제정됐다. “네 형제 아론을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답게 거룩한 옷을 만들라.”는 신성의 지시가 모세에게 내려졌다. 일반 제사장의 예복은 흰 세마포로 한 통으로 짠 것이었다.
그것은 거의 발까지 내려왔고 청색 자색 홍색으로 수놓은 흰 세마포 띠로 허리를 둘렀다. 그리고 세마포 두건을 쓰면 그의 복장이 완성됐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그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와 같이 제사장들은 신을 신고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의 발에 묻은 미량의 먼지들이 성소를 더럽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신을 벗어 뜰에 두도록 되어 있었고 또 성막에서나 번제단에서 봉사하기 전에 그들의 손발을 씻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야후와 앞에 가까이 나아갈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더러움도 제거되어야 한다는 교훈이 계속 가르쳐졌다.

대제사장의 의복은 그의 높은 지위에 적합하게 값진 재료로 아름답게 만든 것이었다. 대제사장은
보통 제사장이 입는 세마포로 짠 의복 외에 역시 통으로 짠 푸른 의복을 입었다. 옷자락 둘레에는 금방울들이
달려 있었고 청색, 자색 그리고 홍색의 석류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이 밖에 금색, 청색, 자색, 홍색과 백색으로 된 짧은 옷인 에봇이 있었다. 그것은 같은 색깔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띠로 묶도록
되어 있었다. 에봇에는 소매가 없고 금실로 수놓은 견대(肩帶)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호마노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에봇 위에는 흉패가 있었다. 그것은 제사장의 제복 중에서 가장 신성한 부분이었다.
이것은 에봇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고 그 모양은 사방이 모두 한뼘이 되는 정방형이었으며 금고리에 꿰어진 푸른 끈으로 어깨에서
늘어뜨렸다. 그 가장자리는 [야후와 아버지]의 [거룩한] 도성의 열 두 기초와 같은 다양한 보석들로
이루어졌다. 그 사각형 안에는 견대에 있는 것들과 같이 지파의 이름들이 새겨진, 금에 물린 열 두 보석들이 네 줄로 배열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명령은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창조주]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출
28:29)는 것이었다. 그와 같이 크신 대제사장이신 [야후슈아 아들]께서 죄인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그분의 피로 탄원할 때에 회개하고 믿는 각 영혼의 이름을 그분의 마음에 지니신다. 시편 기자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야후와]께서는
나를 생각하”(시 40:17)신다고 말한다.

흉패의 좌우에 찬란하게 빛나는 두 큰 보석이 있었다. 이것들은 우림과 둠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야후와 아버지]의 뜻이
대제사장을 통해서 알려졌다. [야후와] 앞에 결정을 구하는 문제가 제출되었을
때에 빛이 둘러싸면 그것은 [야후와]께서 동의 혹은, 승인하신다는 표이며 구름이 왼쪽 보석을 둘러싸면 그것은 거부 또는, 불찬성의 증거였다.

대제사장의 관은 흰 세마포 두건으로 만들었으니 거기에 “야후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금판이 청색 끈으로 매여 있었다.
제사장들의 복장과 태도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지 [야후와]의 거룩하심과 그분에 대한 예배의 신성함과 그분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성결함을 깨닫고, 보는 사람에게 감명을 줄 만한 것이라야 하였다. {PP 351.3}

성소 자체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봉사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의 구실을 해야 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은 매우 중대하였다.
그래서 야후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 예표적 봉사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고 자세한 지시를 주셨다.
성소의 봉사는 매일의 봉사와 연례적인 봉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일의
봉사는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성소에서 수행되었고, 연례적인 봉사는 지성소에서 거행되었다.

대제사장 외에는 어떤 사람도 성소의 안쪽 칸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었다. 대제사장도 오직 일년에
단 한 번만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몹시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준비를 갖춘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떨리는 마음으로 [야후와] 앞에 들어갔으며
백성들은 신성의 축복을 열심히 간구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엄숙한 침묵으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대제사장은
속죄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였고 [야후와]께서는 영광의
구름 속에서 그와 만나셨다. 그가 보통 때보다 그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백성들은 그들의 죄나 대제사장
자신의 죄로 인하여 그가 [창조주]의 영광으로 죽임을 당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향의 매일의 봉사는 조석으로 드리는 번제와 금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드리는 일과 개인들의 죄를 위한 특별한 제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외에 또 안식일과 월삭과 특별한 절기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있었다.

조석마다 일년 된 어린양을 적당한 소제물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그 민족이 매일
야후와께 헌신하고 야후슈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드려지는
제물은 모두 “흠(이) 없”(출
12:5)어야 한다고 [아버지 야후와]께서
명백하게 명령하셨다.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로 가져온 모든 짐승들을 검사하여 흠이 발견되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했다. “흠 없”는 제물만이 자신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바치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상징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야후슈아의 추종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설명하는 실례로서 이 희생 제물들을 지적하였다. 그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아버지 야후와]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아버지 야후와]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버지 야후와]께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바쳐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거의 완전한 제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 야후와]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보다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애의 최선의 봉사를 그분께 드리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 야후와]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촉진시켜 주는 율법과 일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들의 모든 힘을 경주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제사장이 향을 드릴 때에 매일의 봉사 중 다른 어떤 행위에서 보다 더 직접적으로 [아버지 야후와]께 가까이 접근하였다. 성소 내부의 휘장이 건물 천장에까지 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속죄소
위에 나타난 [아버지 야후와]의 영광을 부분적으로 첫째 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제사장은 야후와 앞에서 분향할 때에 법궤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향연이 올라갈 때에 [아버지 야후와]의 영광은 속죄소
위에 내려와 지성소를 채웠으며 때로는 두 칸을 다 채웠으므로 제사장은 부득불 성막 문에까지 물러서야 하는 일도 있었다. 상징적 봉사에서 제사장이 그가 볼 수 없었던 속죄소를 믿음으로 본 것처럼 [아버지 야후와]의 백성들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하늘 성소에서 그들을 위하여 탄원하시는 대제사장 야후슈아께 지금 저들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스라엘의 기도와 함께 올라가는 향연은 야후슈아의 공로와 중보 곧 그분의 완전한 의를 표상하며 그것은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전가(轉嫁)된다. 그것만이 죄 많은 인간들의 예배가 [아버지 야후와]께 가납될 수 있도록 한다. 지성소의 휘장 앞에는 끊임없는 중보의 제단이 있었다.
성소 앞에는 끊임없는 속죄의 제단이 있었다. 피와 향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야후와]께 접근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크신
중보자를 가리키는 상징들이었다. 그분을 통해서 죄인들은 야후와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을 통해서만
자비와 구원이 회개하고 믿는 영혼에게 허락될 수 있다. 제사장들이 조석으로 분향할 시간에 성소에 들어갔을
때 매일 드리는 희생 제물이 바깥뜰에 있는 제단 위에 드려지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이 때는 성막에 모였던
예배자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그들이 제사장의 봉사를 통하여 [아버지 야후와] 앞에 나아가기 전에 열심히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죄를 자복하는 일을 해야 하였다.
그들은 얼굴을 성소로 향하고 묵상함으로 연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믿음으로 속죄의
희생으로 예표된 약속된 구주의 공로를 굳게 붙잡는 동안 그들의 탄원은 향연과 같이 올라갔다. 조석으로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정해진 시간들은 거룩하게 여겨져서 그 시간은 유대 민족 전체를 통하여 예배를 위한 정한 시간으로 지켜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먼 지방으로 흩어졌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정한 시간에 그들의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이스라엘의 [엘로힘1]께 탄원을 올렸다.
이러한 관습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조석 예배의 표본이 된다. [야후와 아버지]께서는 예배에 대한 진정한 정신이 없이 단순히 의식만을 반복하는 것을 정죄하시지만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필요한 축복을
간구하기 위하여 조석으로 머리 숙이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큰 기쁨으로 바라보신다.

진설병은 항상 드리는 제물로서 [야후와 아버지] 앞에
늘 놓여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 그것은 매일 드리는 제물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야후와] 앞에 항상 있으므로 “진설병”(차려 놓는 떡)이라고 불렸다(출
25:30 참고). 그 떡은 사람이 영적 양식과 육신의 양식 모두를 창조주께 의존한다는
것과 또 [야후슈아]의 중보를 통해서만 그것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였다. [야후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늘에서 떡을 내리사
그들을 먹이셨으며 그들은 영적 축복과 육신의 양식을 그분의 관대하심에 계속 의존하고 있었다. 만나와 진설병은
둘 다 우리를 위하여 야후와 앞에 항상 계시는 산 떡 곧 [야후슈아]를 가리킨다. 그분은 친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요 6:48~51)라고 말씀하셨다. 떡 위에는 유향이
있었다. 매 안식일 있던 떡을 물리고 새 떡을 차려놓을 때에 [야후와
아버지] 앞에 기념물로서 제단 위에서 유향을 태웠다.

매일의 봉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봉사이었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기의
제물을 성막 문으로 가져와서 그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들을 고백하였다. 이 상징적인 행위에
의하여 죄는 그에게서 흠 없는 제물에게 옮겨갔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였고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죄인이 범한 신성한 율법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 있는 휘장 앞에 뿌렸다. 이 의식에
의하여 그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럴 때에는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속하게 하려고 [야후와]께서 . . .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레 10:17)고 명령한 것처럼 그 고기는 제사장이 먹어야 했다. 이 두 의식은 다 같이 죄가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성소로 옮겨짐을 상징하였다.

이런 것은 연중 매일 진행되는 봉사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가 성소로 옮겨져 성소가 더럽혀졌으므로
이 죄를 제거할 특별한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야후와 아버지]께서는
성소와 지성소의 각 칸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제단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레 16:19)라고 하셨다.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다. 지성소에서
거행된 이 봉사로 연중 일체의 봉사가 완결되었다.

대속죄일에
두 염소 새끼를 성막 문으로 끌어 왔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를 뽑아 “한 제비는 [야후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였다.
먼저 뽑힌 염소는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로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속죄소 위에 뿌리게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레
16:16).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1, 22). 이와 같이 염소가 광야로 끌려가 버려지기 전까지는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들의 죄짐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속죄 사업이 진행될 동안 각 사람은 그의 영혼을 괴롭혀야 하였다.
모든 일을 중지하고 온 이스라엘 회중은 기도와 금식과 마음의 깊은 반성으로 [야후와
아버지] 앞에서 겸비하게 그날을 보냈다.

백성들은 이 연례적 봉사로 속죄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배웠다. 일 년 동안 드려지는 속죄제를
통해 죄인을 대신하여 대치물이 가납되어졌지만 그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완전히 속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 방편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피를 드리는 제사로 죄인은 율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동시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로 되어 있던 그분께
대한 믿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율법의 선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회중을 위한 한 제물을 취하여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율법이 기록된 돌비 위에 있는 속죄소에 뿌렸다.
이와 같이 하여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중보자의 신분으로 그 죄를 자기가 지고 성소에서 나옴으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짐을 지게 되었다. 그는 성막 문에서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었다. 그리고 죄를 담당한 이 염소가 광야로 보내어졌을 때 죄가 백성에게서 영원히
분리된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로서 수행한 봉사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상 성소는 [야후와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식양대로 모세에 의하여 건축되었다. 그것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이었다.
그것의 두 거룩한 곳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었으며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 [야후슈아]는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창조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히 9:9, 23, 8:2).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 있는 [야후와]의 성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 때에
그는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다. 그가 보니 한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 4:5, 8:3). 여기서 예언자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첫째 칸을 보도록 허락받았다. 거기서 그는 지상 성소에서
금 촛대와 향단으로 예표된 “일곱 등불”과 “금 단”을 보았다. 다시 “야후와의 성전이 열”렸을 때 그는
안쪽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를 보았다. 거기서 그는 [야후와 아버지]의 율법을 넣어 두기 위해 모세가 만든 거룩한 궤로 대표된 “야후와의 언약궤”(계
11:19)를 보았다.

모세는 “저가 본 그 식양대로” 지상 성소를 만들었다. 사도 바울은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이 완성되었을 때에 그것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행 7:44; 히 9:21, 23)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한은 하늘에
있는 성소를 보았다고 말했다. [야후슈아 아들]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성소는 참 성소이며 모세가 지은 성소는 그것의 모형이었다.

만왕의 왕께서 거하시는 하늘의 성전에는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단 7:10), 그 성전은 영원한 보좌의 영광으로 충만하였다. 빛나는 수호자인 스랍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의 얼굴을 가리는 그 곳은 지상의 어떠한 건물을 가지고도 그 크기와 영광을 나타낼 수
없다. 그러나 하늘 성소에 관한 중요한 진리와 사람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해지는 위대한 사업은 지상 성소와
그 봉사에서 배울 수 있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승천하신 후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그 곳에서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시기로 되어 있었다. 바울은 “[야후슈아 아들]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야후와 아버지]
앞에 나타나신”(히 9:24)다고 하였다.
[야후슈아 아들]의 봉사가 두 큰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늘 성소에서 각 봉사마다
일정한 시간과 구별된 장소를 가지는 것처럼 이 지상의 예표적인 봉사도 매일의 봉사와 연례적인 봉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각 봉사에 성막의 한
칸씩이 바쳐졌다.


[야후슈아 아들]께서 승천하신 후 회개한 신자를 위해 자기의 피로 탄원하시기 위하여
[야후와 아버지] 앞에 나타나시는 것처럼 제사장도 매일의 봉사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렸다.


[구주]의 피가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줄 것이었지만 죄를 완전히 없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형에 있어서도 속죄 제물의 피는 회개한 사람에게서 죄를 제거하였으나 그것은 속죄일까지 성소에 남아 있었다.

최후의 보상의 큰 날에 죽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계
20:12)을 것이다. 그 때에 [야후슈아
아들]의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회개한 모든 사람의 죄가 하늘 책에서 도말된다. 이와 같이 하여 성소는 죄의 기록에서 해방 혹은 정결케 되는 것이다. 모형에 있어서 이 속죄의
대사업 곧 죄를 도말하는 일은 대속죄일의 봉사 곧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소를 더럽혀 왔었던
죄를 제거함으로써 성취된 성소의 정결로 예표되었다.

최후의 속죄 때에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도말되고 다시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게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 상징에 있어서도 죄는 회중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광야로 옮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단은 죄의 창시자이었으며 [야후와]의 아들의 죽음의
원인이 된 모든 죄의 선동자이었으므로 공의는 사단이 최종적 벌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구속과 우주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기 위한 [야후슈아 아들]의 사업은 하늘 성소에서
죄를 제거하고 마지막 형벌을 받게 될 사단에게 이 모든 죄를 돌리므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모형적
봉사에 있어서도 연중 봉사는 성소의 정결과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의 머리 위에 죄를 고백함으로 끝났다.

이리하여 성막과 후에 그 대신 세워진 성전의 봉사에서 백성은 날마다 [야후슈아 아들]의 죽으심과 봉사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배웠고 해마다 한 번씩 [야후슈아 아들]과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종국의 사건들 곧 우주에서 죄와 죄인들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사건에 그들의 마음이 이끌려갔다.


1 "엘로힘"은 신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다. 그것은 창조주뿐만 아니라 모든 거짓 신들을 위해서도 사용됐다.

세상에 율법이 없다면…

10 Commandments displayed in front of Texas Capital Building거기에 정의가 있겠는가? 율법을 깨트리는 데에 형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에게 평안이 있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당신이 행복하겠는가?

“. . . 율법을 지키는 자가 행복하다.” (잠언 29:18)

미국 정부 건물에 십계명을 전시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슈가 2005년 3월에 대법원까지 갔다. 십계명을 지지하며 법원 밖에서 집회가 열렸다. 그 후에 5월마다 “십계명 주말”이 신성의 율법을 높이기 위해 기념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십계명을 정부 건물에 다시 전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여 지고 있는 동안, 십계명을 우리 삶에 돌려 놓기 위한 노력은 매우 적다.

야후슈아[아들]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 (요한복음 14:15)

계명들은 야후와의 품성을 반영한다:

    • 공평한:야후와 3:26;
      그분의
      7:12.

    • 참된:야후와 3:33;
      그분의
      9:13.

    • 순결한: 야후와요일 3:3;
      그분의
      19:7,8.

    • : 야후와요일 1:5;
      그분의
      6:23.

    • 신실한: 야후와고전 1:9;
      그분의 119:86.

    • 선하심: 야후와 1:7;
      그분의
      7:12,16.

    • 영적인: 야후와 4:24;
      그분의
      7:14.

    • 거룩한: 야후와 6:3, 벧전 1:15;
      그분의
      20:8, 7:12.

    • 진리: 야후와 14:6;
      그분의
      119:142,151.

    • 생명: 야후와 14:6;
      그분의
      19:17.

    • 의로움: 야후와 23:6;
      그분의
      119:172.

    • 완벽한: 야후와 5:48;
      그분의
      1:25.

    • 영원한: 야후와 8:35;
      그분의
      111:7,8.

    • 평안: 야후와 9:6;
      그분의
      119:165.

    • : 야후슈아 14:6;
      그분의
      119:30-32.

    • 확실한: 야후와딤후 2:19;
      그분의
      19:7, 111:7,8.

    • 변함없는: 야후와 3:6;
      그분의
      111:7,8.

    • 달콤한: 야후와 34:8;
      그분의
      19:10, 119:103.

    • 지혜로운: 야후와 111:10;
      그분의
      19:7.

    • 우리의 묵상: 야후와 63:6;
      그분의
      1:2.

    • 심판: 야후와 50:6;
      그분의
      2:12.

    • 계발: 야후와 18:27;
      그분의
      19:8.

    • 사랑: 야후와요일 4:7,8;
      그분의
      13:8-10.

    • 정결한: 야후와 19:9;
      그분의
      22:26.

    • 축복: 야후와 28:6;
      그분의
      20:11.

    • 기쁨: 야후와 37:4;
      그분의
      1:2.

    • 권능의: 야후와 9:6;
      그분의 119:18.

    • 자유: 야후와 61:1;
      그분의
      1:25, 119:45.

    • 위로: 야후와 23:4;
      그분의 119:50.

    • 우리의 노래: 야후와 15:3;
      그분의
      119:54.

    • 지식: 야후와 11:2;
      그분의
      119:66.

    • 희망: 야후와 130:7;
      그분의
      119:74.

    • 생명: 야후와 36:9;
      그분의
      3:1,2.

    • 온전한: 야후와 8:13,14;
      그분의
      119:80.

    • 이해: 야후와 147:5;
      그분의
      119:99.

    • 행복: 야후와 146:5;
      그분의
      29:18.

    • 즐거움: 야후와 16:11;
      그분의
      119:162.

    야후와의 독생자 야후슈아는 “완전”하고 “순결”하며 죄가 없으시다. 죄가 무엇인가요?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 (요일 3:4)

    그러므로, 율법의 목적은 우리에게 죄를 보여주고,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 . . 율법이 아니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였으리라.” (롬 7:7)

    율법을 범한 것(죄)에 대한 형벌은 무엇인가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 . . .” (롬 6:23)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율법이 적용되나요? 한 젊은 부자 관원이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야후슈아[아들]께서는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 . . 만일 네가 영생에 들어가기 원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태복음 19:17)

    야후슈아[아들]의 부활 이후 수년이 지나서, 사도 요한에 의해 기록된 다음 문장도 숙고하세요: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야후와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요한계시록 14:12.)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졌음이라, 그 성의 문들을 통하여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22:14)

    그런데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요?

    “나에게 힘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 (빌립보서 4:13)

    너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 야후슈아[아들]의 날까지 그것을 이루시리라. (빌립보서 1:6)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목사들”조차도, 계명들이 우리에게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돌판에 그분 자신의 손으로 번이나 직접 쓰신 야후와의 계명들이 이상 상관 없다고요?

    계명 #1:

    “너는 내 앞에 다른 엘로힘을 두지 말라.” (출애굽기 20:3)

    그렇다면 바알 숭배와 자녀를 희생 제사로 바치는 일이 구약에서만 잘못된 일인가요?

    계명 #2:

    “너는 어떠한 새긴 형상도 너에게 있게 만들지 말라, 하늘 위나 바다 밑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 너는 그것들에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도 말라 . . .” (출애굽기 20:4-5)

    그렇다면 오늘날 금송아지를 경배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나요(출애굽기 32장)?

    계명 #3:

    “야후와 너의 엘로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치 말라 . . .” (출애굽기 20:7)

    그렇다면 야후와의 이름을 대적하는 바로의 대담한 신성 모독이 오늘날 죄로 분류되지 말아야 하나요?

    계명 #4: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 엿새 동안은 네 노동을 하고 너의 모든 일을 행하라: 그러나 일곱째 날은 야후와 너의 엘로힘의 안식일이니: 그 날에 너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 야후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만들고 일곱째 날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야후와가 안식일을 복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음이라.” (출애굽기 20:8-11)

    이사야 66장 23절은 구속받은 자가 새 땅에서도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있을 것 처럼, 너의 후손과 네 이름도 내 앞에 있을 것이라. 야후와가 말하노니, 한 월삭부터 다른 월삭까지, 한 안식일부터 다른 안식일까지, 모든 육체가 내 앞에 경배하러 나아오리라.” 이사야 66:23

    그렇다면 안식일 계명이 오직 구약과 새 땅(영원히 존재하는)에서만 적용되나요?

    계명 #5: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야후와 너의 엘로힘께서 네게 주신 땅 위에서 너의 날이 길 것이라.” (출애굽기 20:12)

    압살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을 멸시한 것이 구약에서만 잘못된 것입니까 (사무엘하) ? 그의 행동이 오늘날 하늘에서 볼 때 인정받을 만한 일인가요?

    계명 #6: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3)

    가인이 그의 형제 아벨을 죽인 것이 오늘날 죄로 여겨지지 않나요?

    계명 #7:

    “간음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4)

    다윗이 다른 남자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한 것이 하늘에서 보기에 오늘날 받아들여질 만한 일인가요? 간음이 더 이상 죄가 아닌가요?

    계명 #8:

    “도둑질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5)

    아간이 여리고에서 은을 훔쳤을 때, 결과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단지 죄를 되받은 것 뿐인가요 (여호수아 7장)? 도적질이 오늘날 괜찮은가요?

    계명 #9:

    “네 이웃에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6)

    동산에서 사단이 아담과 이브에게 거짓말한 것이 오늘날 죄로 간주되지 않습니까? 거짓말하는 것이 오늘날 하늘에서 볼 때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까?

    계명 #10:

    모든 죄의 시작이 되는 죄… 마귀를 마귀 되게 한 죄: 야후와의 보좌를 탐낸 것.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어떤 것도 탐하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17절)

    탐심이 오늘날 하늘에서 볼 때 죄가 아닙니까? 사단의 탐하는 영이 야후와의 의와 하늘의 계명들 앞에서 더 이상 괴괴망측한 것이 아닙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열가지 질문 모두에서! 이것들 모두는 여전히 죄입니다. 그것들이 죄라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입니다.

    “율법을 통해 죄를 안다.” (롬 3:20)

    happy family율법은 우리에게 짐이 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하늘과 땅의 어떤 정부도 법 없이 지탱될 수 없다.

    이것이 야후와의 사랑이라, 우리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킨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요일 5:3)

    “율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하다.” (잠언 29:18)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화가 있도다: 어떤 것도 그들을 상하게 할 수 없도다.” (시 119:165)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부 관물에 계명들이 겉으로 전시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계명들이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것들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 (히브리서 8:10)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결론을 들어보자: 엘로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라. (전도서 12:13)


    네째 계명 안식일 계명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계명은 오늘날도 구속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위해 . . .

    모든 법을 지키다가, 한 법에 걸리면, 그는 모든 법에 유죄하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다. 만일 당신이 간음하지 않으나, 살인한다면, 당신은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 자유의 법[십계명]에 의하여 심판을 받을 자처럼 말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야고보서 2:10-12)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은 슬픔, 유감, 둘째 기회에 대한 갈망, 그리고 종종 . . . 질문을 가져다 준다.

    이 고통스럽고, 연약한 인생의 시점에, 마음 속에서는 답을 구한다

    묘지

    “이게 전부인가?”

    “그녀는 영원히 사라진 것인가?”

    “그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

    “그는 어디에 있지?”

    “분명 내 아이는 지금 하늘에 있을거야… 그렇지 않을까?”

    “내가 확신할 수만 있다면!”

    “난 그가 연옥에서 고통 받는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

    “사람을 태우는 무슨 그런 하나님이 다 있어?”

    “그녀가 저 위에서 날 보고 있을까? 언제나?”

    “심지어 내가 . . . . 이럴 때에도 누가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랑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분의 자녀들이 그런 질문들을 할 것을 아셨다. 모든 영혼이 간절히 찾는 그 답을 그분께서는 성경을 통해 제공하셨다. 사람이 죽으면, 끝도 없이 영원히 산다고 많은 사람들은 배워왔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사탄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히며 두 가지 원칙을 설명한다.

    디모데전서 6:16은 말한다, “오직 야후와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분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성경은 가르친다:

    “죄를 짓는 영혼은 죽으리라.” (에스겔 18:4)

    성경은 계속 명확하게 설명한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사오니” (열왕기상 8:4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야후와]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죽음은 모든 사람의 몫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죄 아래서 고통 받는 것을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던,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창조주께서는 죽음 이후에 관한 모든 의혹을 제거하셨다. 공원 묘지에 앉아 있는 남자“영혼” 이란 몸을 떠나 떠도는 어떤 것이 아니다. 태초에, 야후와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영혼이 되니라.” (창세기 2:7) “영혼” 은 몸을 떠난 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을 이루기 위해 생명의 호흡과 몸 둘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숨이 내 속에 있고 [야후와] 의 영이 내 콧구멍에 있을 동안에는.” (욥기 27:3)

    죽음 이후에 의식은 없다.

    “통치자들을 신뢰하지 말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의 아들도 신뢰하지 말라. 그의 숨이 떠나가면 그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바로 그 날에 [그의 죽음의 날에] 그의 생각들이 사라지는도다.” (시편 146:3, 4)

    죽음 이후에 의식이 없다는 명확한 성경 기록을 무시하는 모든 자는 스스로 위험에 빠진다. 죽음 이후에 삶이 있다는 신념을 고집하는 사람은 마귀에 의해 속는 문을 열어 놓는다. 교령은 악한 천사가, 사랑했던고인의 모습을 가장하여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관습은 성경에서 격렬하게 정죄 받는다.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의 품성이 성경에 매우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요한일서 4:8 은 야후와께서는 완전히 전적으로 사랑이시다 라고 말한다. 온전한 사랑은 한 번의 인생의 죄에 대하여 영원히 불타는 것으로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a)

    사망, 그것은 고통 속에 영원히 사는 것 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다시는 보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잊혔기 때문이로다.” (전도서 9:5)

    죽음에서조차, 사랑의 하늘 아버지의 부드러운 돌보심은 빛난다. 구주께서 야이로의 집에 가셨을 때, 야이로의 딸은 막 죽은 상태였으나, 주께서는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문상객들은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을 비웃었다.” (마태복음 9:24)

    펼쳐진 성경

    성경을 정직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언제나 증거의 무게를 따라야 한다.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 놓고 고찰하는 방식과 전통은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이해에 묶여 있도록 이끌었다.

    제자들조차도 창조주께는 죽음이 그저 “잠” 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나사로가 죽은 후, 야후슈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자노라,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말했다, “그가 자는 것이면 그는 좋아질 것입니다.” 야후슈아께서는 그의 죽음에 관해 말씀하고 계셨으나, 그들은 그분께서 잠 자며 휴식을 취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시다고 생각했다. 야후슈아께서 그들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나사로가 죽었노라.” (요한복음 11:11-14)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의 사랑의 창조주께서는 삶에 있어서 그들의 새로운 몫을 슬프게 설명하셨다: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 3:19)

    사람이 죽을 때, 생명의 호흡은 창조주께 돌아가고 몸은 그 취해진 흙으로 돌아간다.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모두에게 권고했다:

    “이제 네 젊은 시절에 네 창조자를 기억하라.
    곧 [노령의] 재난의 날들이 이르기 전에
    혹은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 해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는 그런 해들이 가까이 이르기 전에
    혹은 은줄이 풀리기 전에 . . . 기억할지니
    그때에 흙은 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며
    영은 그것을 주신 [창조주] 께로 돌아가리로다.”
    (전도서 12:1, 6-7)

    사람이 죽고 그 호흡이 창조주께 돌아갈 때 생각은 멈추고 영혼은 잠을 잔다.

    “죽음 속에서는 주를 기억할 수 없사오니 누가 무덤 속에서 주께 감사하리이까?” (시편 6:5)

    “죽은 자들은 [야후와]를 찬양하지 못하며 적막한 곳으로 내려가는 자도 다 그러하도다.” (시편 115:17)

    야후슈아의 재림

    재림 | 1편 – 승리의 재회

    구주를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죽음은 잠에 불과하다 – 생명을 주신 분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을 다시 생명으로 끌어올리실 것을 기다리면서 그들의 수고로부터 쉬는 것이다. 야후슈아께서 두 번째 오실 때, 그분을 신뢰하며 죽은 모든 자를 생명으로 다시 들어올리실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의인들과 부활한 자들이 그분과 함께 하늘로 올려질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을 격려했다: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야후슈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우리가 믿을진대 그와 같이 야후슈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아버지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야후와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야후슈아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 (죽은 자들) 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야후슈아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야후와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야후슈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구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야후슈아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13-18)

    불멸은 야후슈아를 사랑하고 신뢰했던 모든 자에게 그분의 재림 때에 주시는 선물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야후와] 의 은사는 [우리 구주 야후슈아] 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6:23)

    재림 때에 살아 있을 자들에 관하여 바울은 말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린도전서 15:51-53)

    기뻐하는 여자창조주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모든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야후와께서 약속하셨다:

    “내가 그들을 무덤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으로부터 구속하리니, 오 사망아, 내가 네 재앙이 되리라. 오 무덤아, 내가 네 파멸이 되리라.” (호세아 13:14)

    그 기쁜 날에, 새롭게 불멸이 된 모든 입술이 부를 노래는: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5)

    죽음은 전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 재림 때의 부활을 기다리며 쉬는 쉼이고, 사랑의 아버지께서 연약한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쉼이다.


    성경은 성경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Open Bible being held up to the sky(1) “모든 성경은 야후와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야후와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2) “. .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야후와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0-21)

    (3) “야후와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4) “. .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요한복음 10:35)

    다음과 같은 비상한 내용들에 대해서 성경은 어떤 증거를 제시할 있나요?

    과학

    현대 과학보다 앞서간 성경 과학의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일관성

    성경 66권은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경 66권 모두 서로간에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경의 자체 일관성은 그 출처가 신성으로부터 왔다는 뚜렷한 증거다.

    예언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엘로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 . .” (이사야 46:9-10).

    Bible with Hebrew Text그분의 영감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야후와께서는 우리에게 수 백개의 신성의 예견을 주셨다. 성경의 약 30%는 예언이다. 성경 구절의 삼분의 일이 예언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성경 예견들의 약 85%가 예보된 대로 정확히 이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나머지 미래에 대한 다른 예견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오늘날까지 성취된 가지 예언들을 들어 본다:

    다니엘 책은, 지금은 역사가 2,500 이상의 일들을 정확하게 예보하였다!

    야후슈아는 그분의 탄생, 사역, 거절, 배신, 죽음의 정확한 때, 장소들, 세부 사항들을 포함하여 350개 이상의 구체적인 메시아적 예언들을 모두 성취하셨다.

    이제 나사렛의 야후슈아를 보자

    야후슈아는 그분의 탄생, 사역, 거절, 배신, 죽음에 대한 정확한 때, 장소, 세부적인 환경들을 포함한 350개가 넘는 모든 구체적인 예언들을 성취하셨다. 이러한 예언들 중 61개는 학자들이 “중요한 예언들”로 간주하여, 그 예언들의 주장대로 사건들이 실현됐는지 역사학자들이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야후슈아가 구체적으로 성취하신 예언들의 몇 가지를 들어 본다:

    Crucifixion Nails, Crown of Thorns, & Hebrew Bible

    로마에 의해서 십자가 처형 방법이 도입되기 수 백년 전에,
    성경은 야후슈아가 손과 발에 못박힐 것을 기록했다.
    (시편 22:16-17 & 스가랴 12:10.)

    *시편 22 & 이사야 53장을 읽어보세요 놀랍습니다! 이사야의 책은 기원전 700년 전쯤 기록되었고 시편 22편은 기원전 1,000년 전쯤 기록됐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읽어보세요;

    수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이 예언들 중 8개를 성취할 확률은…………………..1 in 1017
    1 in 10:17 = 1 in 100,000,000,000,000,000

    한 사람이 이 예언들 중 16개를 성취할 확률은…………………1 in 1045
    1 in 10:45 = 1 in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한 사람이 이 예언들 중 48개를 성취할 확률은…………………1 in 10157
    1 in 10:157 = 1 in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4:29)

    성경의 주장들을 지지하는 외부의 증거는 무엇이 있나요?

    경험적인 일관성

    성경의 독특한 내용은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한 자나 매인 자 등 모든 환경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부유케 했다: 중독은 정복되어져 왔다. 상한 마음들은 치료되어 왔다. 두려움, 혼돈, 불안, 우울, 화, 죄책감, 병듦 그리고 모든 종류의 어두움이 언제나 살아 있는 성경 진리의 빛에 의해 극복되어왔다.

    보존성

    Isaiah Scroll (Dead Sea Scrolls)고대 성경 경전은, 내용들을 모호하게 만들려는 수많은 시도들과 그것을 모두 파괴하려는 수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수 천년 간 놀랍게 보존되어 왔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왔다. 오늘날 거의 25,000개의 고대 신약 성경 사본이 여전히 존재한다. 현존하는 어떤 고대의 책도 1,000개의 부분적인 사본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1947년 “사해 두루마리들”의 발견이 구약 성경 번역의 놀라운 정확성뿐만 아니라 뛰어난 보존성을 입증하고 있다.

    삶의 증거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로마 교황의 “종교 재판” 기간 동안 그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려 놓았다. 그들은 말뚝에서 화형 당했고, 맞고 돌로 치이고, 단두대 처형을 당하고, 매달리고, 사나운 동물들에 찢기고 인간이 목격해온 것 중에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가차없이 고문을 당했다. 그 기간은 로마 교회-정부에 의해 성경의 빛이 의도적으로 숨겨지고 가려졌기 때문에 종종 “암흑의 시대”라고 언급된다. 성경을 읽거나 심지어 집에 성경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단”이었다. 셀 수 없는 남자와 여자들이 그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려 놓은 것은 그 성경 안에 담겨진 진리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리를 알았다… 성경은 정죄와 상상의 책이 아니다; 희망, 약속, 계몽, 자유의 책이다; 사랑의 창조주의 살아있는 말씀; 오직 진리의 기둥 – 살아계신 엘로아의 아들 야후슈아를 기초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의 계시!

    young woman in great despair contrasted with joyful young woman


    성경에 관한 사실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구주께서 극복하신 것처럼 극복하기 위해, 성도들은 야후슈아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는 그분의 믿음만이 악의 모든 공격을 넉넉히 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야후슈아의 믿음을 갖기 위해 기도할 때, 그분께서 성도들에게 아버지를 믿는 그분 자신의 믿음을 주실 것이다. 야후슈아께서 야후와의 크고 소중한 약속들을 믿음으로써 정복자가 되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죄와 사탄과의 전투에서 정복자가 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마지막 세대에 관한 흥미로운 묘사가 나온다: ”그들은 야후와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더라.” ”그들은 야후와의 계명들과 야후슈아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 (요한계시록 14:5, 12) 역사의 모든 세대들 중에서 마지막 세대는 흠이 없다고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특별하다. 이것은 그들이 야후와의 명령들과 야후슈아의
    믿음 둘 다를 지키기 때문이다.

    ”지킨다” 는 것은 소유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그것은 또한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세대는 야후슈아의 믿음을 지키고, 방어하고, 보호했기 때문에 야후와 앞에 흠 없이 선다. 야후슈아의 믿음은 그들로 신성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고 흠 없이 발견될 수 있게 한다.

    ”야후슈아의 믿음” 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하여 많은 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야후슈아를 믿는 믿음인지
    궁금해한다. 사실은, 거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야후슈아를 믿는 믿음과 야후슈아의 믿음. 구원을 위해 둘 다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더 느끼는 이유는 정확히 믿음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해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좋은, 들뜬 감정을 가지지 못했으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종 이 결핍을 한탄하고, 믿음이 충만했다고 느꼈던 때를 회상하며 좋은 감정을
    만들려고 시도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데 실패하면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은 비극적인 실수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 믿음은
    단순히 다른 누군가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마음 속에 합의하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사전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념; 다른 사람에 의해 선포된 것에 관해 그의 권위와 진실성에
    의지하여, 다른 증거 없이, 사실이라고 마음에 찬성하는 것;
    다른 사람이 말하고 증거하는 것이 진리라고 판단하는 것…1

    믿음이것이 야후슈아의
    순전한 믿음이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께서는 그분의 아버지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행사하셨다. 야후슈아께서는 자신이 야후와의 아들이라는
    것을 언제나 알았지만, 그분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실 때,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축적된 기억력의 이점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셨다. 대신, 그분께서는 매일의 교감과 교제를 통해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만약 그 아들께서
    하늘에 계셨을 때의 하늘 아버지와의 경험들을 모두 기억하신 채 태어나셨더라면 그분께서는 우리보다 유리한 위치에 계시는 것이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를 위한 온전한 본이 될 수 없으셨을 것이다. 구주께서는 온전한 모본이시다;
    그분의 이름을 찬양한다! 그분께서는 시험 받을 수 있으셨고 또한 시험 받으셨다.
    이것이 죄인들을 구하기 위한 야후와의 계획 중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브리서 2:10, 킹제임스성경2)

    우리의 구원의
    대장으로서, 야후슈아께서 야후와를 온전하게 믿으셨다.
    이것이 그분의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나타났다. 야후슈아께서 믿음의 가장 큰 시험을
    받으신 때에 관하여,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유혹의 광야 십자가.
    가장 격심한 투쟁의 두 시기에 야후슈아께서 그분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행사하심으로써 극복하셨다. 야후슈아께서는 그분 자신의 감정의 끊임없는 요구를 무시하시고 하늘 아버지의 약속을 믿었다.

    구주께서는
    우리의 특권이 아닌 권능들은 역시 행사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야후와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셨다. 하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통한 야후슈아의 승리의
    실체가 가장 큰 시험의 기간 동안 그분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나타나 있다. 야후슈아께서 성경을 인용하셨다,
    그분의 고통의 부르짖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메시야의 선택에 관한 직접적인 예언으로서 시편 22:1
    로부터 나왔다. 가장 통렬한 고통으로 괴롭고, 하늘 아버지의 선하심을 의심하라는 사탄의 유혹에 휩싸일 때조차도, 그분의 마음은 성경에 있는
    하늘 아버지의 변함없는 약속을 고수했다.

    시편 22 편은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예언이었다!
    14-16 절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몸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묘사한다.
    18절은 로마 병사들이 야후슈아의 옷을 가지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예언했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서 나의 옷을 나누고, 나의 옷을 제비 뽑나이다.” 제사장들의 조소는 마태복음 27:41-43 에 기록된 대로 시편 22:7-8 의 말씀 성취를 위한 말씀이었다: ”나를 보는 모든 자들이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그가 야후와를 신뢰하여 그분께서 자기를 건지실 줄로 믿었도다. 그분께서 그를 기뻐하셨으니 그를 건지시리로다! 하나이다.”

    그분의 마음을
    성경으로 채움으로써, 야후슈아께서는 야후와에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행사하셨다.
    그분께서는 버려진다는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시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셨다. 십자가에서의 야후슈아의 시험을 완벽하게 예언한 이 정확한 시편에는 믿음을 북돋우어 주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 ”주께서는 거룩하시오니, 오 주여 당신께서는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나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당신을 신뢰하였나이다. 그들이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았고 주를 신뢰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22:3-5)

    사탄은 맹렬한
    유혹으로 [야후슈아] 의
    마음을 쥐어짜듯이 괴롭혔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그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야후와] 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아버지와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야후와] 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이신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 갑자기 어둠이 십자가에서 걷혔다. 그 때 삼라만상을 울리는 듯한 나팔 소리 같은 맑은 음조로 [야후슈아] 께서 부르짖으셨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한줄기 빛이 십자가를 둘렀으며, 구주의
    얼굴은 해와 같은 영광으로 빛났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 머리를 가슴 위로 떨구고 운명하셨다.

    표면상으로 [야후와] 께
    버림받으신 [야후슈아] 께서는 무서운 흑암 중에서 인간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이 무서운 시간 동안 그분께서는 이제까지 당신에게 주셨던 아버지의 가납하심의
    증거에 의지하였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성을 잘 알고 계셨으며 그분의 공의와 자비와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분은 항상 기쁨으로 즐겨 순종하였던 그분을 믿음으로 의지하셨다. 그분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야후와] 께 맡겼을 때에 아버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믿음으로 [야후슈아] 께서 승리자가 되셨다.3

    야후슈아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셔서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를 위한 그분의 승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 144,000 이 가질 믿음으로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야후와 앞에
    흠 없이 서도록 만든다. 그들은 구원의 비밀을 배웠고 그들의 감정과 상관없이, 야후와의 약속을 믿기로 선택하였으며 하늘이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그분을 신뢰한다.

    당신은 믿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야후와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죄와 자아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이브가 야후와의 말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2:17) 대신에, 뱀의 말
    (”네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 창세기 3:4) 을 믿은 이후로,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은 야후와의 말씀을 의심하였다.

    여기에서 야후슈아에
    대한 믿음이 들어오며, 그 밖의 모든 것들과 같이, 믿음 역시 선물이 된다. 야후와께서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주셨다. ”[야후와] 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신대로.” (로마서 12:3) 이 믿음의 분량은 넉넉하여 우리가 야후슈아의 믿음과, 그분의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신 그 믿음을 기도하며 구할 때, 그는 야후슈아의 믿음을 받는다는
    것을 믿기에 충분한 믿음을 갖는다. “[야후와] 께서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기 때문에 죄인은 약속된 구주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4

    사람들은 너무도
    종종 신앙 초기에는 믿음을 행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을 겪고 후에는 그들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든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그들은 야후와께서 그들의 지난 죄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행사하지만, 현재의 유혹들을 극복하기 위해 야후슈아께서 그분의 믿음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계속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야후와 앞에 흠 없이 서게 하는 승리하는 기독교인의 살아있는
    순종
    은 당신 안에 살아계신 야후슈아에 의해서만 발견된다.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야후와] 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로새서 1:26, 27)

    당신 스스로 죄를 극복하는 것은 무용한 일입니다. 당신의 믿음을 복되신 구주, 야후슈아께 두기로 선택하고, 모든 죄를 극복하기 위한 참 능력이신 그분을 믿는다면 그 일을 능히 이루어낼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시험 당하는 모든 부분에서 야후슈아께서 극복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믿기로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께서 당신을 위해 이루신 승리를 그분께서 당신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으라. 그분의 말씀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며 당신에게 또 다른 “증거” 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믿을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이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순결한 사랑, 모든 지식, 온전한 공의, 절대적 권능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선물이지만, 당신이 할 일이 있다. 당신은 믿기로 선택해야 하며, 그 믿음을 매일 행사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야후와의 사랑의 품성을 연구하라. (요한일서 4:8) 그분께서 사랑의 친절과 공의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예레미야 9:23,
    24) 양성되는 믿음은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당신의 감정과 관계없이 신뢰하는 습관을
    기르라. 당신이 좋은 감정 상태에 있다면 당신은 믿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이 심히 좋지 않을 때에도, 그런 감정에도 불구하고 신뢰하기로 선택하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히브리서 11:1)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를 표현하는 습관을 만들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것에 감사하라.
    이는 [기름부음 받은 자 야후슈아] 안에서
    너희를 향한 [야후와] 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이것은 약속 있는 명령이다. 당신이 그것을 행한다면, 당신은 풍성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인생에서 그러하듯이, 시험이 일어나면, 신뢰하기로 선택하라. 모든 상황에서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 감사할
    것을 찾으라.

    야후와의 많은
    축복들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믿음을 향상시키는 열쇠다.
    야후와의 선물들을 인정하면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나온다. 감사는 사랑을 일깨우고,
    사랑은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향상시킨다. 야후와의
    품성을 연구하라.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사랑의 친절에 주목하라. 그분은 신뢰하기에 너무도 안전하신 분이다!

    오늘, 당신의 영원한 구원, 지난 죄들에 대한 용서, 현재의 시험들에 대한 승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늘이 제공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야후슈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3, 4)

    야후와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하늘의 선물, 야후슈아의 믿음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사세요.

    펼친 손

    1 Noah Webster,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1828.

    2 모든 성경 구절은 킹제임스성경으로부터 인용하였다.

    3 E. G. 화잇, 시대의 소망, pp. 753 and 756, emphasis supplied.

    4 E. G. 화잇,
    Manuscripts, Vol. 6, p. 147.

    5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의 모든 이교식 이름과 직함을 인용문으로부터 빼고, 그 대신 본래 주어진 이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 WLC 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거룩한 안식일을 거절할 때, 매우 특별한 한 그룹의 사람들이 그분의 거룩한 안식일에 예배 드림으로 그들의 창조주를 공경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은 사독의 자손들이라 불린다. 사독의 자손들은 독특하다. 그들은 야후와[아버지]께 그들의 삶을 드렸기에, 그들의 뜻은 그분의 뜻으로 합치된다. 그들의 삶은 신성의 형상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사독의 자손들은 야후와[아버지]께서 지시하는 대로, 입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그분의 이며, 그분은 그들의 이다. 그들이 그들의 동료 이웃을 섬길 때, 매우 특별한 의미에서, 사독의 자손들은 야후와[아버지]께 시중 들고 있는 것이다.

    “사독의 자손들은, . . . 그들은 내게 시중 들기 위해 나에게 가까이 오리라; 그들은 내 앞에 서리라 . . . 주 야후와[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은 내 성소에 들어와서, 나를 섬기기 위해 내 상에 가까이 오리라, 그들이 나의 직분을 유지하리라.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 (에스겔 44:14-16, 24)

    solitary walk사독의 자손들은 매우 고귀한 부름을 받았다. 여러 세대를 통틀어서도, 그런 부름을 받은 사람은 소수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섬기는 데 철저히 헌신하였기에 그들은 영원하신 분과 하나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과 말은 그들이 사랑하고 섬기는 분의 생각과 감정의 현시(顯示)이다. 이와 같은 높은 직무는 특별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이런 훈련은 세상의 대학에서 얻을 수 없다. 어떤 세미나로도 사독의 아들과 딸들이 되려는 자들을 충분히 교육시킬 수 없다.

    신성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지도 아래 있게 된다. 야후와[아버지]께서 그분을 섬기는 위대한 업무를 위해 그들의 성품을 형성하는 삶의 경험들을 지도하신다. 사독의 아들과 딸들의 삶은 매우 부요하고 성취감을 주며 영적으로 보람되다 . . . 그러나 그 삶은 매우 고독한 걸음이다. 야후와[아버지]의 대변인으로 준비되기까지 모세는 광야에서 양치기로 40년을 보냈다. 하늘 학교에서 40년의 훈련은 그의 위대한 삶의 과업을 위해 그를 준비시켰다. 모세는 하늘로부터 크게 존귀함을 받은 자였다. 그가 야후와[아버지]의 얼굴 보기를 구했을 때, 전능하신 분의 자비로운 응답이 있었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함으로 네 앞에 지나가게 하리라 . . . 그러나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내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 . . . 내 옆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 . .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갈 때에 나의 손으로 너를 덮으리라; 그리고 내가 나의 손을 치우고 너는 나의 등을 볼 것이라;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3:20-23)

    야후와[아버지]께서 사독의 자손들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너희 가운데 선지자가 있으면, 야후와 내가 그에게 계시로 나를 알리고; 내가 그에게 꿈으로도 말하노라. 그러나 내 종 모세는 그처럼 아니 하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함이라. 내가 그와 대면하여 명백하게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니; 그는 야후와[아버지]의 형상을 봄이라.” (민수기 12:6-8)

    man walking alone in the desert

    존귀한 부름에 대한 모세의 준비는 세계 최고 교육기관인 애굽의 왕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의 영혼이 그를 만드신 분과 일대일로 친하게 사귄 곳인 고독한 사막에서 이루어졌다.

    존귀한 부름에 대한 모세의 준비는 세계 최고 교육기관인 애굽의 왕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의 영혼이 그를 만드신 분과 일대일로 친하게 사귄 곳인 고독한 사막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준비는 사독의 자손들이 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된다. 이것은 세상의 명예 특권과는 꽤 거리가 먼 매우 고독한 행보이지, 야후와[아버지]를 위해 전적으로 삶을 드리지 않은 의자만 데우는 사람들과의 “친교”가 아니다.

    야후와[아버지]께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모든 자는,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포함하여 신성의 모든 세부 사항들에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순종이 이루어지면 곧 바로, 각 사람은 홀로 서야만 한다. 일곱째 날 안식일은 창조 시의 고대 태음력 달력을 사용해야만 계산될 수 있다. 이것은 제사장들, 목사들,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모두에게 지극히 인기 없는 일이다. 그분의 안식일에 창조주를 경배해야 하는 의무를 거절하는 모든 자는 순종하고자 하는 자를 대항하여 일어설 것이다. 그런 일은 야후와[아버지]를 섬기는 자와 그분을 섬기지 않는 자 사이에서 언제나 있어 왔다. 지난 시대의 형제 자매들처럼, 오늘날의 사독의 아들과 딸들은 종종 혼자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껴질 수 있다.

    아름다운 착색 유리창 아래서 감동시키는 설교와 날아오를 듯한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한 어떤 남자에게는, 호숫가에서의 고요함은 덜 “예배답게” 보일 것이다.

    교회 예배 후에 포트럭 디너(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안식일 학교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도 모임에 참석하는 데 익숙한 어떤 여성에게는, 자신의 침실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는 너무도 외로워 보일 것이다. 사람이 만든 예배 습관들은 창조주를 높이는데 필요하지 않다. 신도들로 자리가 꽉 채워지기 전까지 아름답게 불려지는 노래가, 만일 자기 예찬으로 꽉 찬 마음에서 불려지는 것이라면 야후와[아버지]의 귀에 도달하지 못한다. 자신의 집에서 고독하게 홀로 부르는 단순한 찬미가, 만일 헌신된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흐르는 것이라면 야후와[아버지]의 축복을 받는다. 그러한 노래를 들으며, 천사들은 겸손한 신도의 찬양에 그들의 소리를 합하여 힘찬 후렴을 이루며 합창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늘의 천장을 통해 울리며 찬양 받는 분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린다.

    고독 속에서 드리는 당신의 예배가 수백명의 사람들과 함께 무릎 끓고 노래하는 것보다 야후와[아버지]께 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느끼도록 시험 받지 말라. 야후와[아버지]를 받아 들이는 것은 각 개인의 마음이며, 그분이 가까이 다가 오시는 것도 각 개인의 마음이다. 성경은 홀로 예배 드리는 모든 자에게 약속한다: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거기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이 구절은 두 명이 안 된다고 예배가 성립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다. 야후와[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땅에 속한 자녀들의 발걸음에 동반하는 특별한 보호 천사들을 임명하신다.
    야후슈아[아들]께서 주의를 주시면서 그분은 이 개인적인 보호 천사들에 대해 언급하셨다:

    “이 소자들 중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복음 18:10)

    야후와[아버지]의 자녀들이
    숲 속의 작은 빈터에서,
    해변가에서, 또는 조용한 방에서,
    홀로 예배 드릴 때
    천사들이 참여한다.

    숲은 작은 빈터에서, 해변가에서, 고요한 방 안에서, 야후와[아버지]의 백성들이 홀로 예배 드릴 때 천사들도 참여한다.

    “구원 받을 자들을 섬기기 위해 모든 천사들이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냐?” (히브리서 1:14)

    여럿이든지 혼자이든지, 최고로 정숙한 가정 교회는 거기 거하는 믿음의 부자를 위한 왕궁과 같다. 참 예배는 사랑과 감사로 넘쳐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헌신의 행동이기 때문에,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예배자들의 무리에서 보다 홀로 예배 드리는 것이 더 단정하다. 성경은 예배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기술하지 않는다. 그를 만드신 분께로 마음을 이끌어 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예배 중에 행해질 수 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지,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2:27)

    당신의 예배 중에 새로운 것들을 기꺼이 시도하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했던 것은, 한 가족이나 개인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예배를 야후와[아버지]께서 받지 않으신다거나 마음에 주는 감화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많이 천연계에서 거룩한 시간을 보내라. 이렇게 하는 것은 마음을 하늘로 끌어 올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엘리야는 사독의 아들로서 매우 고독한 삶을 살며 하늘 학교에서 자신의 과업을 준비하였다. 영원하시며 높고 존귀하신 분은 바람에서도 지진에서도 불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분임을 야후와[아버지]께서 친히 그에게 알려주셨다. 큰 소동과 요란한 행동들 속에서 신성과 인성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후와[아버지]께서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다. (열왕기상 19:12) 그런 세미한 음성은, 다른 기대들을 하며 진행되는 전통과 형식의 틀 아래 묻힌 예배 중에는 들려질 수 없다. 불신자들의 혼란으로부터 떠나고 현대 사회의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야, 마음은 사랑하는 분의 음성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우주의 창조주와의 이런 소중한 친교의 시간을 통해 사독의 아들과 딸들은 하늘 왕국을 위한 땅에서의 증인들로 설 준비를 하게 된다.

    man rejoicing by a lake고독한 예배의 고요함 중에 계신 전능자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들에게 풍성한 영적 보상이 있다고 야후슈아[아들]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네가 기도할 때 너의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곳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공개적으로 상을 베푸실 것이라.” (마태복음 6:6)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너의 찬양과 기도를 드려라. 너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너의 예배를 그분이 받으셨다는 확신 속에서 안식하라.

    구주 야후슈아[아들]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제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체를 쫓지 않고 영을 쫓아 걷는 자들이라. (로마서 8:1)

    그분의 거룩한 안식일에 영과 진리로 창조주를 경배하라. 그분은 당신을 결코 떠나 보내지 않을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신다. 세상적인 꾸밈없이, 당신이 단순하게 홀로 드리는 예배를 그분은 받으신다.

    그분의 말씀이 당신을 초대한다:

    “일어나라 내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함께 가자 . . . 오라. 나의 사랑하는 자여, 우리가 함께 들로 가자; . . .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자 . . . 거기서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가서 2:10, 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