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톡? 정말? 교황은
테드 톡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 년
4 월에 했다. 바티칸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녹화된 것으로 보이는 이 연설은,
비록 종교-정치적
인물의 전형이긴 했지만, 좋은 것이었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일하자는 호소였다.
그 연설의
정점은 마지막에 교황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였다:
“부디,
나로 하여금 이것을 크고 명확하게 말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여러분이
힘이 많을수록, 여러분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더욱 영향력 있을 것이며, 여러분은
더욱 겸손하게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힘이 여러분을 해치고, 또한 다른 사람을 해칠 것입니다.”
교황을 지켜본
사람들은 즉시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교황의 연설 속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이 많지” 않다. 그가
이 메시지를 일루미나티에게 보내고 있는 걸까?
언제나 야후슈아의 메시지는 단지 거룩하게 행동하라 가 아니라, 거룩하게
되어라 였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정 방식으로 행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교황이 그의
테드 톡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 특히 자신이 구주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말한 것은 언제나 주의 깊이 분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기독교계에
미치는 세계화의 영향
교황은 글로벌* 안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은 기억해야 한다.
매우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는
“세계주의자” 다. 세계
미사로부터 감추인 그의 안건은 자신을 세계 종교 지도자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나팔이 불리기 시작하고 마귀들이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이 땅 위에 들끓을 때를
준비하는 것이며, 그가 마귀들/외계인들과의
협상에서 인류의 대표로서 유일한 논리적 대안이 될 것이다. “세계화” 또한
다른 모든 종교 위에 로마 카톨릭을 높이는 교황의 안건을 촉진시킨다.
왜냐하면 “세계화” 는
개인의 개성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화” 는
민족주의의 반대다. 민족주의는 개인,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들에 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능함으로써 유익을 얻는다는 신념이다.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 더 이상 대세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화” 가
이 시대의 안건이다.
현대 기술이
세계를 훨씬 더 좁은 장소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 는
그 답이 아니다. “세계화” 는
개인에게 순응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순응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그렇게 하라고 압박을 받거나,
멸절될 운명에 있다.
1991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직
제수잇 말라키 마틴은 세계 지배 하의 전쟁에 대해 경고하는 책을 썼다.
이 중요한 작품의 제목은 이 피의 열쇠: 신세계질서의 지배를 위한 교황 요한 바오로 II Vs. 러시아와 서방 세계 이다. 이 책에서, 마틴은 예언적으로 경고했다: 민족주의자, 종교와 다른 모든 개별적 그룹들이
싫든 좋든, 좀더
힘이 센 그룹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새로운 세계화에 그들 스스로 순응함에 따라 일련의 심각한 충격들과 돌연변이를 겪을 운명이다. 전통적으로
지켰던 범위를 벗어나 확대되려고 하는 그 편협성을 허락하지 않는 한 —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고통 당하거나 —, 그들
중 하나도 스스로를 활력 있고 진보적인 힘을 가진 상태로 유지할 방법이 없다 . . . 이는 그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두려운 결과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들이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세계화되거나 . .
.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룹으로서, 처음에는
기존 상태를 유지하다가, 후에 그 수와 영향력이 감소하며, 결국은
신세계질서의 운영 요원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1
25 년이 지난 오늘날, 마틴이
그 때 예언했던 것을 지금 실제로 볼 수 있다.
세계 지배를 위한 교황의 오랜 목표를 알고, 그의
신념과 신학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 (그의
언급들, 삶의
방식과 신념) 과 야후슈아를 비교할 것이다.
야후슈아 vs. 프란치스코: 그분께서 말한 것/그가 말한 것
교황의 행동들과
야후슈아의 가르침 사이에 가장 명백한 차이점은 교황이 세계 지배를 위해 돌진한다는 것이다. 야후슈아께서
빌라도에게 말씀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내 왕국이 여기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복음 18:36)
구주의 나라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는 이 언급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교황권의 야욕과 완전히 상반된다. 그런데
이것이 유일한 차이점이 아니다. 교황과 야후슈아께서 말씀하신 다음 내용들을 살펴보라.
* * *
ABC 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 년 9 월에
뉴욕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야후슈아의 죽음이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성공 측정의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방식은 씨를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의 열매를 보십니다. 만일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실패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삶이, 인간적으로 말해서, 결국
실패, 십자가의
실패로 끝난 그 제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2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읽어도, 이런 언급은 카톨릭에게도 놀라운 것이다! 게다가, 이
언급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야후슈아 자신의 말씀과도 상충된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정죄하여 죽게 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 셋째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마태복음 20:18-19)
야후슈아께서는
이 땅에서의 자신의 사역이 갈보리에서 그 정점을 이룰 것을 아셨다.
더군다나, 그분께서는
아버지께서 그를 제 삼 일에 다시 일으키실 것을 아셨다.
이것은 낙담이나 실패에 대한 언급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승리에 대한 언급이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아버지가 그분에게 이루라고 보내신 모든 것을 신실하게
성취하셨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 * *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과학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창조에 관한 성경적 설명을 부인했다:
진화론과 빅뱅은
진짜이며 하나님은 마술 지팡이를 가진 마법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창조에 관해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마술 지팡이를 가진 마술사였다고 생각할 위험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원이라고
우리가 오늘날 믿는 빅뱅은 신성의 창조 개입과 상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자연
속의 진화는 창조 개념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는 진화하는 것들의 창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3
창조 과학자이자
앤서 인 제네시스의 대표인 켄 함은 말했다:
이 경우에, 다른
많은 종교 지도자들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놓는다. 그뿐
아니라, 그는
오직 “마술
지팡이” 를
가진 마법사만이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창조했다고 말한 방식으로 창조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솔직히, 이것은
하나님은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실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하는 성경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여준다—슬프게도,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개신교에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4
* * *
교황이 되고
몇 개월 후, 프란치스코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설교했다. 그
설교에서 그는 야후슈아의 오병이어 기적이 진짜 기적,
실제 사건인 것을 부인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나눈 것일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바티칸 웹사이트에 기록된 것처럼, 그는
말했다: “이것은
기적이다: 크게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은 믿음과 기도에 의해 고무된 나눔이다. 모든
사람이 먹고 일부가 남았다: 그것이 예수의 표적,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빵이다.”5
거의 일년
후, 볼리비아에
있는 크라이스트 리디머 광장에서 한 설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며, 그
기적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긴 변화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바티칸 웹사이트를
다시 인용하며, 그는 주장했다:
[예수]
가 한 일이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그가
작은 빵 하나와 물고기를 취해서 그것을 축복한 후 군중들에게 나누라고 그의 제자들에게 준다. 이것이
그 기적이 일어나는 방법이다. 그것은 마술이나 마법이 아니다. 그
세 가지 행동으로, 예수는 사람들의 생각을 교감과 공동체 정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 . . 예수는 그를 따르는 자들 가운데 일종의 전류를 생성시켰다.그리하여 그들이 가진 것을 나누고,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서,그들은 배불리 먹었다. 믿기
힘들지만, 심지어 남기까지 했다. 일곱
광주리를 채울 정도였다. 취해진 기억, 축복
받은 기억, 나눠준 기억이 언제나 사람들의 굶주림을 채워준다.6
* * *
2015 년
1 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인터뷰에서 카톨릭은 “책임
부모직” 을
시행해야지 “토끼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7
개신교는 오랜 동안 책임 부모직을 지지하며, 카톨릭과
몰몬교의 피임 사용을 전통적으로 거절하는 것에 대해 비난해왔다.
대부분의 개신교들은, 이
정도까지는, 교황의 그 언급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갔다. “제왕절개 수술로 일곱 아이를 낳은 후, 여덟째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아는 남자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꾸짖었다” 고
말했다. ‘당신은
일곱 아이를 고아로 만들고 싶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실험하는 것입니다!’”8
무슨 말인가? 인공적으로
피임해서는 안 된다고 늘 배워온 한 카톨릭 여성은 그녀가 너무 많은 자녀를 가졌을 때 야후와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그분을 시험한단 말인가? 그녀의 아기들 중 몇을 죽여 달라고? 분만
중에 그녀를 죽여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성경은 말한다: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야후와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 야후와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야고보서 1:13)
이런 언급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흠잡기 위해 투덜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가들은—실수하지
않는다: 그
또한 정확히 그러하다—공개 연설에 정통하다. 그들은
그 언급이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또한,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 * *
야후슈아의
가르침 속에 순환되는 주제는 하늘 아버지께서 각 개인을 그분 자신의 자녀로서 사랑하신다는 것과 각 개인은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 둘 다에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6:27 에서 그분께서 가르치셨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며 또 내가 야후와로부터 나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에 따르면, 그 교회의 감독 밖에 있는, 야후슈아와의
개인적 관계는 “위험하며 해롭다” 2014 년
6 월
25 일에,
교황은 선포했다:
교회 안에서
스스로-하는-것
이란 없습니다. 프리랜서는 없습니다. . . . 때때로 여러분은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지만, 교회는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린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듣습니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교감과 중재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직접적, 즉각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런 유혹들은 위험하며 해롭습니다.그들은, 위대한 교황 바오로 VI 의 말을 빌리자면, ‘터무니없는 이분론자들’ 입니다. 함께 나아간다는 것은 도전적이며, 때론 피곤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 . . 그러나 주께서는 그분의 메시지를 우리 모든 인간에게 증인으로서 맡기셨습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 안에서, 그들의 재능과 한도 내에서, 우리에게
오는 자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9
* * *
2015 년
1 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12 명의
사망자를 낸, 샤를리 엡도의 파리 사무실들을 향한 무슬림의 공격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갔다. 폭력을 용납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언급을 통해, 그는
자유로운 연설에 대한 제한이 있다고 주장하며 말했다:
“만일 위대한 친구인 가스바리 박사가 나의 어머니에 대한 욕설을 한다면, 그에게
펀치를 날려줘야 합니다.” 교황의 여행 일정을 관리하고 비행기에서 교황 옆에 서 있던 알베르토 가스바리를
언급하며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도발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을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10
폭력의 암시와
부정직에 대한 노골적인 인정이 결합된 또 다른 경우다.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주교로 있을 때, 프란치스코는 수상쩍은 몇 사람이 그의 가난한 이웃에게 $400,000 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는데 — 교회가
먼저 상당한 예치금을 그들에게 맡길 경우에만 그렇게 하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들을 모욕하고 태양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그들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바보 짓을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사람들에게 그의 사무실은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사람들이 법원에 있는 교회 재정 전문가들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함으로써 바보 짓을 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만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도록 허용하면서, 그들을
너무 쉽게 벗어나도록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후에 말했다.11
이것은 야후슈아께서
가르치셨던 원칙과 완전히 상반된다: “그들이 말한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악에게 맞서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그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며” (마태복음 5:38-39)
* * *
교황의 언급
중 가장 놀랄만한 것들 중 하나는 2014 년
5 월
12 일의 수락 설교였다. 이방인
개종자들을 수용하는 베드로와 그것이 그 시대의 신도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를 회상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가 외계인들에게도 침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내일 화성의 탐험대가 여기 우리에게 와서, ‘나는
침례를 받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가 정말로
외계인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며,
교황은 말했다: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처럼, 긴 코와 큰 귀를 가지고 있는 녹색의 화성인들, 맞습니까?”
프란치스코가
논리의 극단으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티칸이 외계 생명체에게 침례를 주는 것의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 년의 영국 과학 페스티벌에서의 연설에서, 베네딕토
XVI 교황의
천문학자들 중 하나는 “만일 외계인들이 요청한다면” 그들에게
침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12
교황의 당황스런
언급들은 그의 신념들과, 그가 어떤 원칙 위에 있는 것인지 카톨릭 신자들까지도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로마
카톨릭 신자이자 LifeSiteNews.com
의 공동 설립자이며 편집자인 존-헨리
웨스틴은 교황의 언급들이 카톨릭 신자들을 혼돈스럽게 만들었다고 반복적으로 보도했다. 그는
말한다:
교황이 정확이
어떤 입장 위에 서 있는 것인지에 관해 이 교회 안에 많은 혼돈이 있습니다. 철저한
평가는 비록 교황이 이혼하고 재혼한 카톨릭 신자들을 위한 영성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교황은
그 반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추기경들과 주교들도 있습니다.
호세 베르골리오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그를 알았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브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 온, 여러 시설들에서 베르골리오 추기경과 함께 일했던 몇 명의 사제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혼돈은
그의 사역의 상징이라는 것을 그들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한 예화가 그것을 잘 설명해줍니다. 나는
반대 진영에서 온 사람들이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그들의 입장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고 그 모임으로부터 그와 함께 빠져 나오려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지만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반대 진영으로부터 그를 만난 사람들처럼 말하려고 했습니다.13
프란치스코, 제수잇
이런 모든
혼돈과 함께, 그 모든 모순들과 함께, 교황이
진정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제수잇이 무엇을 믿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 상 최초의 제수잇 교황이다.
제수잇 정책은 언제나 현장 뒤에서 비밀리에 일하는 것이다. 제수잇은
역사 상 가장 악랄한 사건들 중 일부에 책임이 있다.
그들의 신념 체계 속에 있는 모든 오류를 열거하는 것은 이 글의 범주를 넘어선다. 이
글에서는, 제수잇 (그리고
일반적으로 카톨릭) 이 가르치는 특별히 신성모독적인 것 두 가지만 언급하는 것으로 족하다. 제수잇이자
카톨릭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교리들 또한 믿고 지지한다.
첫째는 교황이
누군가의 죄를 면죄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리는 신성모독일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야후슈아께서만 죄를 도말하실 수 있다. 침례 요한은 지켜보는 군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구주를 소개했다: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야후와의 어린양을 보라!”
(요한복음 1:29)
야후슈아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복음 5:22) 용서하는 특권은 온전히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구주의 손에 위임되었다. (히브리서 4:15)
성경은 죄를
면죄해준다는 교황권의 주장을 부인한다. 교황은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의 죄도 면죄해줄 수 없다. 이는
“그분의
아들 야후슈아 기름부음 받은 자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1:7) 더군다나, 교황은
무오하다고 오랜 동안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는 성경과 직접적으로 상충된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1:8)
1512 년의 제 오 회 라테란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마르켈루스는 율리우스 II 교황에게 말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구원,그 생명과 호흡을 우리가 잃지 않게 돌보소서, 이는
당신께서 우리의 목자시며, 우리의 의사이시며, 우리의
통치자이시며, 우리의 농부이시며, 결국
이 땅 위에 또 다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4
이 신성모독적 언급에 대해 말하면서, 알렉산더
히슬롭은 말했다: “이 외에 교황을 정죄할 것이 없다 해도, 그가
자신에게 그러한 신성모독적 호칭들을 허락했다는 것만으로도,
극악무도한 죄를 자신에게 인치는 것이다.”15 요한 XXII 의 교령집에 대한 주석은, “우리의 주 하나님 교황.”16 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17
야후슈아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 사실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러한 직함들을 결코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마태복음 23:8 & 9)
교황은 또한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신도들에게 권고한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전구자” 라고
부르며 그녀를 “공동-구속주” 라고
부르기까지 한다—그 직함들을 교황은 결코 바로잡지 않는다. 2017 년
5 월
12 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의 성모 성지 유령 채플에서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었다: “거룩하신 여왕께 만세, 파티마의
복된 동정녀시여, 성스런 마음이시여,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길이시여!”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쳤다: “당신의
성스런 마음으로,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소서.”18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야후슈아의 말씀과 직접적으로 상충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말했다: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9
야후슈아께서 선포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나에게 나아오라.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마태복음 11:28)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으셨다: “교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영혼의 쉼을 발견하리라.” 그분께서는
그런 교회를 가질 수도 있으셨다. 그분의 시대에 세워진 교회가 있었다.
야후슈아의
말씀과 상충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급들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오월
로마에서의 한 연설에서, 프란치스코는 하나님이 — 크리스챤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까지도, 모두
구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선을 행하며 서로 만나야 합니다.” 라고
교황은 말했다. “ ‘나는 하늘 아버지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 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교황은 말했다. “그래도
선을 행하십시오. 우리는 거기서 서로를 만날 것입니다.”20
야후슈아께서는
교황에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구주께서
선포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마태복음 7:13-14) 교황의 언급을 감안할 때, 야후슈아의
바로 다음 말씀에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변질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20)
그럼 이제
질문해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의 열매는 어떠한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매
교황으로 선출된
후 몇 주 후, 교황은 감옥을 방문하여 수감자들의 발을 씻고—발에
입을 맞췄다—그들 중 몇은 무슬림이었다. 매우
그리스도다워 . .
. 보인다. 그런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이 예식을 시행한 사람의 수가 12 라는 것이며 (야후슈아의
제자들의 수와 정확히 같다), 교황의 이러한 자기-부인의
경건함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 작가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행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한
규칙으로서, 세족 예식을 시행하지 않는다. 모든
뉴스 통신사들에게 사진이 알려지며, 공개적인 방식으로 교황이 그렇게 행한 것은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려는 진심 어린
갈망이 아니라 보란 듯이 나타내며 요란하게 겉으로 드러낸다.
그런 보여주기
식 연출들은 야후슈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겸손하게,
사적인 방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라는 가르침과 반대된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너희가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구제할 때에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마태복음 6:1-4)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외된 자들에게 겸손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교황이 되었을 때, 순금이 아닌, 도금된
어부의 은 반지를 차는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옷들은 십팔 세기 이후로 교황들을 위한 양복점,
가마렐리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 가장
좋은 양모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전반적으로, 교황의
라이프 스타일과 의복 선택은 그의 선임자들보다 훨씬 더 “겸손한” 것처럼
보인다. 타임 잡지가 다음과 같이 보도한 것과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
앞선 많은 교황들처럼, 그의 목에 긴 체인으로 된 십자가를 두른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십자가를 착용했던 그의 선임들의 것보다 훨씬 더 평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십자가는 은이며 어린양을 안고 있는 예수를 묘사한다고 한다.”21
그러나, 우리는
최근에 그가 테드 톡에서 다음과 같이 했던 말을 회상할 때 그의 겸손한 것처럼 보이는 품행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힘이 더 많을수록, 당신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며, 당신은
겸손하게 행동할 책임이 더 많아집니다.” 반대로, 구주의
말씀은 강하게 우리 마음에 다가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도다. 그것은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야후슈아께서는 완전하게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두가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마태복음 5:48, 킹제임스)
야후슈아 안에
있는 완전함은 행동의 동사가 아니라,존재의 상태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다른 것을 믿는 것은 제수잇에겐 흔한 일이다.
그들이 그 조직에 가입하면서 하는 서약은 그들이 편법을 행해야 할 때 그들에게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허용해준다. 결코 잊지 말라: 프란치스코는
제수잇이다. 이는 한 작가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만약
이 나라—미국—의 자유가 파괴된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제수잇 사제들의 교묘함에 의해서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이는
그들은 술수가 가장 뛰어나며, 사회적 종교적 자유에 대한 가장 위험한 원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의 대부분의 전쟁들을 선동해왔다.”22
베네딕토가
교황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카톨릭
신자들을 포함하여—그런 강경 노선이자, 신학적으로
보수적이고, 중세 교황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 그러한 강하고 영향력 있는 지위로 올라갔다는
것에 놀라며 우려했다. 그의 고향 바이에른 지방으로부터 온 한 카톨릭 여성은 조셉 라칭거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우리가 좋은 교황을 얻게 될 것을 그토록 바랬었다.”
부드럽게 말하며, 온화한
프란치스코의 위험은 훨씬 더 크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양의
옷을 입은 늑대처럼, 그는 마법을 걸며 모든 신앙의 대중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신실한 신도는 그의 말과 야후슈아의 말씀을 주의 깊이 비교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급된 말들은 언제나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과
상충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급들을 들을 때,
야후슈아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그분의 말씀들을 기억해야 한다: “오
독사들의 세대야, 너희가 악하니 어찌 선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겠느냐?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마태복음 12:34)
당신 스스로
질문해보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들은 그의 마음, 그의
신념 . . . 그의 숨겨진 안건에 관해 무엇을 밝혀주는가?
지혜로운 자에게
한 말씀 . .
. .
관련 내용:
* 지구는 구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기사의 목적을 위해 “세계화” 와
“세계주의자”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 M. Martin, The Keys of this Blood, pp.
291-292.
2 http://abcnews.go.com/US/read-pope-francis-yorks-st-patricks-cathedral/story?id=34023376
3 http://www.natureworldnews.com/articles/34445/20161220/climate-change-big-bang-theory-shocking-things-pope-francis-name.htm. See also: 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europe/pope-francis-declares-evolution-and-big-bang-theory-are-right-and-god-isnt-a-magician-with-a-magic-9822514.html
4 https://answersingenesis.org/blogs/ken-ham/2014/10/29/is-the-pope-right-that-god-is-not-afraid-of-new-things/?utm_source=khsocialtwitterpope&utm_medium=social&utm_campaign=twitter
5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angelus/2013/documents/papa-francesco_angelus_20130602.html
6 https://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5/documents/papa-francesco_20150709_bolivia-omelia-santa-cruz.html, italics in original; bold supplied.
7 https://www.youtube.com/watch?v=1lVdnoJra9c
8 https://www.lifesitenews.com/blogs/confusing-even-the-elect-the-troubling-statements-of-pope-francis
9 See 2:25 to 4:16 at https://www.youtube.com/watch?v=uzOknuZ1d5w.
10 http://kdvr.com/2015/01/19/top-10-most-shocking-comments-from-pope-francis/
11 Ibid.
12 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europe/pope-francis-says-he-would-baptise-aliens-9360632.html
13 https://www.lifesitenews.com/blogs/pope-francis-is-playing-with-fire.-hell-fire
14 Alexander Hislop, The Light of Prophecy
Let In On the Dark Places of the Papacy, p. 91, emphasis supplied.
15 Ibid., emphasis original.
16 http://amazingdiscoveries.org/R-Pope_Rome_blasphemy_power_Jesus#footnoteiii
17 Click here for images of these documents.
18 http://en.radiovaticana.va/news/2017/05/12/popes_prayer_to_the_blessed_virgin_of_fatima/1311799, emphasis supplied.
19 See 4:10-4:11 of https://www.youtube.com/watch?v=uzOknuZ1d5w.
20 http://kdvr.com/2015/01/19/top-10-most-shocking-comments-from-pope-francis/
21 http://time.com/4046511/pope-francis-us-visit-the-meaning-behind-the-popes-clothes/
22 Eric Jon Phelps, Vatican Assassins,
p. 54, emphasis sup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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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대를 향한 하늘의 메시지는 조직화된 모든 종교와 교단으로부터 달아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교회에 나오도록 만든다. 그들은 교회가 배도 상태에 있다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팔장과 구장을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교회 구성원으로 머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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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놀라서 나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신디아는 세계 하나님의 교회의 평생 신도였다. 그 설립자, 허버트 W. 암스트롱의 죽음에 이어 신학적 변화가 생겼을 때 그 교단이 얼마나 심하게 분해되었는지 그녀는 이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교단이 절기와 일곱째 날 안식일 을 포기하고 주요 복음주의 노선에 가까워지면서, 교인 수는 50 % 까지 감소했다.
“완전히 황폐해졌어,” 신디아는 눈물을 흘리며 회상했다. 우리는 바로 우리가 남은 자손들이며 다른 모든 교회는 타락한 교회들이라고 배웠었지. 우리는 일곱째 날 안식일—그 때, 우리가 토요일이라고 믿었던 그 날에 예배를 드렸지. 우리는 야후와의 절기들을 지켰어. 우리는 삼위일체 이설을 믿지 않았어. 우리는 진리를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이 그러한 모든 신념들을 버리고, 절기를 거절하고, 일요일에 예배 드리기 시작했지. 그것은 내 평생에 가장 슬픈 경험이었어.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
“성경에 기초한 신념들 모두를 포기하려는 교회에 머물기를 거절했을 때, 우리는 거의 모든 친구를 잃게 되었어. 사람들은 우리에게 교회에 남아서, 변화를 위해 교회 안에서 노력하라고 말했지. 우리가 떠나자, 우리의 친구들은 우리를 거부했어.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그들 스스로를 남은 자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떠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이제 잃어버림 당한 자들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한 것이지.”
난 1990 년대에 세계 하나님의 교회가 분해되는 것을 인지했다. 그들이 일요일에 예배 드리기 위해 안식일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지 놀란 것을 제외하면, 그것은 나에게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타락한 교회였으니까! 난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인이었고 우리가 남은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계 하나님의 교회는 타락한 또 하나의 교회일 뿐이었다. 신디아가 그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자신도 남은 자손에 속한다고 배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 교회를 타락한 교회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교회들은 자신의 교단이 유일한 참 교회이며 다른 모든 교단은 버림받았거나 “타락한” 교단이라고 여긴다. 결국, 당신이 “남은 자손” 에 속하려면 반드시 유일한 참 교회, 그들의 교회 교인으로 머물며 (십일조를 내야) 하는 것이다. 목사, 사제, 랍비들이 가능한 많은 교인을 확보하는 데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그들의 십일조와 헌금을 내는 그 조직은 그 지도자들의 월급을 지불하는 같은 조직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종교 지도자들은 에스겔 8-9 장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성경 구절을 해석하는 방식은 기만적이며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조화되지 않는다.
예루살렘의 가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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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들은 설득력 있는 논법을 매우 잘 이용하여 마음이 신실한 신도들로 하여금 야후와께서 그들이 교회 안에 머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도록 확신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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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다니엘과 동시대 인물이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에스겔 8 장에는 예루살렘과 그 안의 성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증한 것들에 대하여 야후와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때, 성전은 아직 유다에 대한 느브가넷살의 제 삼 차와 최종 침공에 의해 파괴되지 않았었다.)
선지자는 네 가지 가증한 것을 보았다. 갈수록 더 나빠지고, 성읍과 성전으로 갈수록 더 심해졌다. 이러한 것들에는, 다른 것들 가운데, 숨겨진 우상 숭배와 담무스를 위해 우는 여인들이 포함된다—이것은 로마 카톨릭 에서 사순절로 알려진 행사이며 많은 개신교 교회들에서 영적 헌신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심지어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조차 “부활절 기념 증가” 를 목격하고 다양한 재림교회 출판물들은 사순절에 대한 긍정적 암시를 주어 왔으며, 다소간 개인과 회중들이 참여해왔다.
에스겔이 본 마지막 가증한 것이 최악이었다: “그분께서 나를 데리고 야후와의 집의 안뜰에 이르셨는데, 보라, 야후와의 성전의 문에 주랑과 제단 사이에 스물다섯 명 가량이 있더라. 그들이 자기들의 등은 야후와의 성전을 향하게 하고 자기들의 얼굴은 동쪽을 향하게 한 채 동쪽을 바라보며 태양에게 경배하더라.” (에스겔 8:16) 이것은 야후와를 경배한다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태양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야후와를 대적하는 중대한 범죄다. 그 죄가 아무리 끔찍하다 할지라도, 종교 지도자들은 오늘날까지 야후와는 그 백성들이 그들의 교회 안에 머물기를 원하신다고 계속 주장한다. 교회로부터 스스로 분리되어 나가는 자들은 오류 속에 있는 것이며 버림 당하는 위험 속에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야후와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며 야후와의 말씀과는 반대되게, 신실한 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 머물라고 이끌고 있다. 야후와께서는 말씀하신다: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 18:4)
야후와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
대학에서, 학위 취득을 위해 필요한 수업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수업은 논증 & 토론이었다. 교수님이 우리에게 설명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상대방의 주장을 그를 위해 언급하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 자신의 순서에서, 당신이 당신의 논법에 반대되는 주장을 명확하게 인정한다면, 당신은 왜 그러한 주장들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할 좀 더 나은 입장에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의 입장에 반대되는 주장들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강하지 못하다. 반대 의견을 말로 표현하고 그 다음 그 반대 의견이 왜 잘못되었는지 논리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이것이 정확히 그 사역자들이 에스겔 8 장과 9 장을 인용하며 행하는 일이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잘못 행해지는 일들이 있다고 인정한다. 거기엔 권위의 남용이 있고, 교회 자금의 부적절한 사용이 있으며, 오류를 가르치는 신학 교수들이 있고,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을 사용하는 목사들이 있고, 로마와의 화해를 분명히 권장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다 … 그러나, 그들은 주장한다, 교회가 그것들을 이겨낼 것이다. 교회와 함께 머물라.
이것에 대한 예가 캐리 뉴호프의 글에서 발견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이런 말을 항상 듣는다.
난 교회랑은 끝이야.
나는 정말 교회 갈 필요가 없어…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개인적인 거야.
나는 조직화된 종교를 가져봤어.
교회는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는지 난 확실히 알아. 심지어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도 결석을 자주 하지…
… 알겠어. 교회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어. 인생은 복잡해. 많은 것들을 선택해야 하지. 포스트-모던 사고 방식은 조직화되거나 제도화된 대부분의 것을 불신하지. 그러나 교회를 낮게 평가하는 최근의 흐름처럼, 그것은 실수야.
교회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 세련된 생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야. 그것이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끄는, 바보 같은 환원주의적 사고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쩌겠어?1
이런 논리로부터, 뉴호프는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교회에 남아 있는 것이 그들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라고 믿도록 만들기 위해 설계한 복잡한 언어의 거미줄 망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만약 당신이 크리스챤이라면, 교회는 당신이 갈 어떤 곳이 아니다. 교회는 당신 그 자체인 어떤 것이다. 당신이 사람으로서 인류와 분리될 수 없듯이, 당신은 크리스챤으로서 교회와 분리될 수 없다. 당신은 교회 나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교회다.”2 이러한 논리의 문제는 그것이 진리와 오류를 섞는다는 데에 있다. “당신이 교회다,” 라는 말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교회” 는 에클레시아, 즉 “불러냄을 받은 자들”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교단이나 에클레시아이거나 에클레시아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뉴호프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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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은, 그들이 교회 안의 문제들을 볼 때, 강대상으로부터 선포되는 오류를 볼 때, 교회 안에 혐오스러운 것들에 대하여 “탄식하고 울어야” 하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결국, 지도자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교회가 마지막 남은 교회이기에, 만약 그들이 떠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남은 무리가 아닌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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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완전히 비논리적인 주장으로 결론을 낸다: “만약 당신이 교회를 없애기 원한다면, 당신은 예수까지도 없애야 한다. 당신은 이것 없이는 저것도 가질 수 없다.” 이런 논법은 불러냄을 받은 자들/에클레시아가 교단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이와 같은 논법은 성령이 그들에게 떠나라고 명하는 그런 종교 조직에 사람들로 하여금 머물도록 만들기 위해 설계되었다. 교인들은, 그들이 교회 안의 문제들을 볼 때, 강대상으로부터 선포되는 오류를 볼 때, 교회 안에 혐오스러운 것들에 대하여 “탄식하고 울어야” 하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결국, 지도자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교회가 마지막 남은 교회이기에, 만약 그들이 떠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남은 무리가 아닌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동시에, 교인 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교가 선포되고, 컨퍼런스가 열리고, 책과 글들이 쓰여진다. 그 논리들은 매우 좋게 들린다. 데이브 퍼거슨은, 교회 수혈: 당신의 교회를—내부로부터 유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법, 이라는 그의 책 서문에서 “교회를 사역적으로 역동성 있게 만드는 과정” 세 가지 단계를 기술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이십사 개월 동안 나는 이러한 교회들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중요한 세 가지 운동을 발견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길을 따라가며 훈련 받게 하라.
예수의 사명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라.
예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라.3
복잡한 그 장황은 차치하고라도, 초점이 구주와 개인과의 일대일의 영적 관계가 아닌, 그룹에 맞춰져 있다. 구원은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다. 에스겔이 기록한 바와 같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그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자기 의로 자기 영혼만 건지리라. 야후와 엘로힘이 말하노라.” (에스겔 14:14)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숫자에 집중한다. 당연히! 그들은 복음의 사명을 성취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경제적 후원 체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에스겔의 이 구절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야후와께서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머물며 변화를 일으키길 원하신다고 말하며, 교인들의 환상을 깨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에스겔 8 장과 9 장을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읽을 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총체적 파멸
예루살렘과 그 성전 안에서의 가증한 행위들에 대한 야후와의 대응은 명확하다: 총체적 멸망이 요구된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오 사람의 아들아,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유다의 집이 여기에서 가증한 일들을 범하나니 그들이 이 일들을 범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벼운 일이냐? 그들이 그 땅을 폭력으로 채우고 또 돌이켜서 내 분노를 일으켰나니, 보라, 그들이 나뭇가지를 자기들의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격노로 그들을 대우하리니 내 눈이 아끼지 아니하며 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8:17-18)
그 선고는 신속하다.
그분께서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치며 이르시되, 그 도시의 책무를 맡은 자들로 하여금 각각 파괴하는 무기를 손에 들고 가까이 나아오게 하라, 하시니라. 보라, 여섯 사람이 북쪽을 향한 높은 문의 길로부터 나오는데 각 사람이 살육하는 무기를 손에 가졌으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옆구리에 기록관의 잉크통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 놋 제단 곁에 섰더라. (에스겔 9:1-2)
이것은 심각하다! 야후와의 명령이 살인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여기에서조차도, 야후와의 은혜가 보인다. “야후와께서는 …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그분께서 아마포 옷을 입고 옆구리에 기록관의 잉크통을 찬 사람을 부르시니라. 야후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 도시의 한가운데 곧 예루살렘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그것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찍으라, 하시니라.
또 그분께서 내가 듣는 데서 다른 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그 도시를 지나가며 사람들을 치되 너희 눈이 아끼지 말고 너희가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여자를 철저히 죽이되 표가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 하시니 이에 그들이 그 집 앞에 있던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더라. (에스겔 9:3-6)
이 멸망에서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행해지는 모든 가증한 것들에 대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은 해를 입지 않는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떠나라고 반복적으로 촉구하심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교인으로 머물라고 확신시키기 위해 이 구절을 이용한다. 사역자들은 교회 안에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서둘러서, 구원의 표를 받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가증한 것들에 대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것들에 대해 탄식하며 울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구절은 야후와의 백성들이 중대한 가증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성경은 그 반대로 가르친다.

매주마다, 신도들은 “교회 안에 머물라!” 라고 세뇌 당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렇게 명하신다, “야후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고린도후서 6:17)
당신의 생명을 위해 탈출하라!
하늘은 마지막 세대에게 명한다: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야후와께서 그녀의 불법들을 기억하셨느니라.” (요한계시록 18:4-5) WLC 의 다른 글 에서도 다루어졌듯이, 이 명령은 모든 신자들을 향한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교회, 교단이나 조직이 예외가 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진하는 빛을 모두가 거절하며 배도해왔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배도한 조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킬 의무가 있다고 명확하게 가르치는 구절들이 있다. 야후와께서는 소돔에서조차 롯을 보존하실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주저하고 있는 롯과 그의 가족을 끌어내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시며 긴박한 명령을 내리셨다: “네 생명을 건지기 위해 도피하라. 너는 네 뒤를 돌아보거나 이 온 평야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피하라. 네가 소멸될까 염려하노라.” (창세기 19:17)
롯은 소돔으로부터 나와 구원을 받았지, 그 안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노아도 악한 자들, 그 옛 세상으로부터 나아와 구원을 받았지, 그 속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이 개념을 매우 잘 이해했다:
야후와께서 …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들을 뒤엎으심으로 정죄하사 재가 되게 하여 그 뒤에 경건치 아니하게 살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으며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해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건져 내셨으니 (이는 저 의로운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의 불법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자기의 의로운 영혼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야후와께서 경건한 자들은 시험에서 건질 줄 아시고 또 불의한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사 벌할 줄 아시되. (베드로후서 2:4-9.)
롯은 그 평야의 극악한 도시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것들에 대해 탄식하고 울었다. 야살의 책에 따르면, 그 자신의 딸들 중 하나가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유로 인해 타락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한편, 아브라함의 기도로, 그가 즉시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천사들이 보냄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신실한 자들이 행하길 하늘이 원하는 것이지, 교회에 머묾으로써, 그 참석함을 통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도를 침묵으로 지지하길 원하지 않는다.
인을 받고 & 안전한 것
에스겔의 계시에는 성읍 안에서 탄식하고 우는 백성이 나온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것이 백성들이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탄식하고 우는 것이 그들이 바로 남은 자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반드시 “남은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모든 변화는 그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탄식하고 우는 것 자체로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 야후슈아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거룩함을 입증하기 위해 겉으로 많은 것들을 나타내며, “탄식하고 울며”, 금식하는 대단한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들을 고용하여 장례식장에서 탄식하며 울게 했다. 자신의 노력을 보이기 위해 외적으로만 나타내는 탄식과 울음은 야후와께 아무런 호소를 하지 못한다. 이는 야후슈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반복의 말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마태복음 6:7)
라오디게아 사람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크게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탄식하고 울음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라오디게아인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한다. 결국, 그들은 탄식하며 울 것이 있음을 인지할 영적 분별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눈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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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를 받는 자는 영혼의 진정한 비통으로 인해 탄식하고 우는 자들이다. 하늘은,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타락한 교회로부터 분리되라고 호소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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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탄식하고 우는 자들은 기록관의 잉크통을 가진 자에 의해 표를 받게 될 자들이 아니다. 교회 안에 있는 배도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지만, 교회를 실제로 떠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는 자들은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탄은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들을 낙담시키기 위해 그러한 위선자들을 이용한다. 신실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떠나라고 촉구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그들이 침묵시킨다.
그 표를 받는 자들은 영혼의 진정한 번뇌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헌신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바리새인적으로 나타내는 라오디게아적 위선이 아니다. 그 표를 받는 자들은 교회를 떠나는 데에 개방적이다—또한 그렇게 하고자 한다!—야후와께서 그들에게 머물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말이다.
야후와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 비록 모든 진리를 배울 시간과 기회가 없었다 할지라도, 대가에 상관없이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자를 그분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슬픔은 그들의 심령이 성경의 지도에 민감하다는 것을 밝혀준다. 왜냐하면 교회 안의 배도를 인지하는 것이 결국 교회를 떠남에 있어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떠날 수 있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지점에 갑자기 도달한 것이 아니다. 야후와께서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어찌하든 그들 위에 표를 놓아주셨다.
그 표 자체가 그들이 결국 떠날 것이라는 추가적 증거다. 만약 그들이 더욱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말이다. 그 표 자체가 진리로 인도하는 야후와의 영이다. 성령의 사역은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고 더 많은 진리로 인도하는 것임을 야후슈아께서 설명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돕는 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요한복음 16:7-8)
이것이 누군가가—이 마지막 시대에서도—어떻게 교회 안에서, 탄식하며 울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구원의 표를 받을 수 있는지 이해하는 열쇠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것들에 대해 우는, 신실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죄의 죗됨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통해 그렇게 한다. 이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성경은 언제나 인 받는 자를 성령으로 충만한 자와 동일시한다: “야후와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에베소서 4:30)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야후슈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야후와이시니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봉인하시고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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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먼저 야후슈아를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에베소서 1:12-14, 킹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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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빠져 나오라고 호소하신다. 우리는 머무는 자들을 판단하는 자들이 아니다. 야후와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친밀하게 아시지만, 우리는 모른다. 야후와께서는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이끄실 지혜를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 각자는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반응해야 한다.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최선이 되는 때와 방식으로 각 사람을 인도하실 것을 우리는 신뢰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을 밖으로 빼내라.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하늘 아버지의 이끄시는 영에 반대하지 않으며 아직 완고해지지 않은 자가 누군지 아시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라. 성령에 반응하는 모든 자는 그들을 구별하는 표를 받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기 위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이해에 있어서 다른 지점에 있는 자들을 하늘 아버지께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아직 교회를 떠나라는 빛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여서, 그것이 빛을 받은 우리 중 일부가 타락한 교회에 남아 있어도 된다는 구실은 주지 못한다. 빠져 나오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지금.
순종하라 …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그 길을 보이라.
오늘날 모든 교회와 종교 조직이 타락하였다. 왜냐하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전진하는 빛의 어떤 부분들을 거절해왔기 때문이다. 어떤 단체는 어떤 한 부분이나 다른 분야를 수용하지만, 다른 진리들은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수용하면 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돔으로부터 빨리 빠져 나오게 하기 위해 천사들이 보냄을 받았던 것처럼, 하늘의 메시지가 울려 퍼지며 이러한 조직들과 교단들로부터 빠져 나오라고 모든 이에게 경고하고 있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모두가 “마귀들의 처소가 되고 모든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며 모든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다.” (요한계시록 18:2) 주저하거나 지연시키지 말라.
그렇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것들에 대해 탄식하고 울라. 그러나 그것을 교회 밖에서 행하라. 당신의 순종의 본을 통해, 조직화된 종교로부터 나아와 어린양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라. 구원은 야후슈아를 믿음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교회의 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야후와께서는 세상에 의해 타락되지 않은, 비록 그 수가 적을지라도, 남은 자손을 가지실 것이다. 이렇게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 야후와의 참 교회며 그분의 눈에 보물이다.
1 http://careynieuwhof.com/a-response-to-christians-who-are-done-with-church/
2 Ibid.
3 Dave Ferguson, in the foreword to Church Transfusion, by Neil Cole & Phil Hel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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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크리스챤들이 “늦은 비”, 또는 약속된 성령의 “활력을 줌” 이 재림 직전의 큰 외침을 제공하도록 그들로 준비시켜줄 것으로 예상해왔다. 신명기에서 간과된 한 구절은 그 “늦은 비” 가 기대되어왔던 것과는 매우 다르게, 이미 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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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쿼이 공연장, 시카고, 일리노이, 1903 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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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쿼이 공연장이
1903 년 11월 23 일에 문을 열었을 때, 그것은 공연장들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예시로서 널리 칭송을 받았다. 경찰이 순찰하는 상점 구역 근처에 위치하여 매우 안전했다.시키고 데일리 뉴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어떤 다른 공연장도 이로쿼이보다 멋지진 않다. 파리의 오페라를 제외하고, 나는 건축에 있어서 그렇게 휘황찬란하게 영감을 받은 공연장을 본 적이 없다.”1 시카고 트리뷴은 더욱 야단스럽게 칭찬하며 보도했다:
그 모든 면에
있어서 공연장이 너무도 멋져서, 그 모든 부분에 있어서 매우 아름답고, 훌륭하면서도 편안하여서, 시카고는 이제까지 그것을 부를 수 없었다. 서부 지방의 일반적인 오락 시설들은 분명 그 완성도에
있어서 이로쿼이와 경쟁이 되지 못하며, 동부 지역에서조차도 그것과 동등한 수준의 건물이 하나 또는 둘이라도
있을지 의심스럽다.2
광고지와 안내문들은
그 건물이 “완벽한 불연성” 이라며 칭찬했다.3
38 일 후, 12월 30일에, 그 공연장은 꽉 찼다. 약 2,100-2,200 명으로 추산되는 인원이 공연장에 모였기에 붐볐다. 적어도 200 명의 고객이—대부분 여성들과 아이들—자리가 없었지만 뒤에 서거나 통로에 앉도록 허락을 받았다.
제 이 막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모슬린 커튼에 불이 붙었다. 이 분 안에, 무대 위의 무대 장치 조작대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극 중 배우, 에디 포이는 관객들이 위험하게 몰리는 것을 막고자 시도하며 말했다,
“자리에 앉아 계세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잠시 후면 해결될 겁니다. 시작합시다, 딜레아,
시작합시다!”4 음악 감독, 조셉 딜레아는 포이의 조언을 따라 속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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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겼거나, 또는 무리들이 뒤로 밀기에 불충분했던 출입문 안쪽에 10 피트 깊이로 시체들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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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명 이상이, 대부분 수 분 이내에 그 불로 인해 죽었다.
“완벽한 불연성” 건물에서의 이 비극은—“아무 것도 아닙니다. 잠시 후면
해결될 것입니다” 라는 말로 무시된 화재—미국 역사상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간 공연장 화재였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간 단독-건물 화재로 남아있다.
관객들은, 그 불이 사소한 불편일 뿐이라는 말을 듣고,
생각 없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앉아 있었으나, 화염은 더 가까이, 맹렬하게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그들은 유쾌한 여가 시간으로 즐겁게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몇 시간 후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의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이미 발생하고 있었다.
침울한 사실은
이와 매우 동일한 현상이 오늘날 반복되고 있으며, 지금은, 훨씬 더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것이다.
이른 비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진 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사건이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그것이 가득하며 또 불의 혀 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더라. 그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사도행전 2:1-4, 킹제임스)
성령의 그
엄청난 선물이 측량할 수 없게 부어졌고, 급한 능력을 제공하여 초기 신도들로 하여금 복음의 메시지를 한 세대 동안 세상에 알리게 했다. 이것은 약속된 “위로자” 가 임한 것이었다.
그것이 “이른 비” 로서 부어졌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더욱 소중한 것은, 오직 이 때에만, “늦은 비”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 선물의 반복을 약속하는 구약 성경에서의 한 문장의 발견이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그때에 즐거워하며 야후와 너희 엘로아를 기뻐하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셨으며 또 너희를 위해 비를 내려 주시되 이른 비와 첫째 달의 늦은 비를 내려 주시리니.”
(요엘 2:23, 킹제임스)
소중한 약속! 영혼과 삶을 정결하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야후슈아를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할 능력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성령의 부으심. 많은 신자들은 이 약속된 사건을 갈망하며 기대한다.
그들은 정결하게 되기를 열망한다. 그들은 큰 외침 (마지막 경고) 을 세상에 전함에 있어 하늘과 협력하기를 원하며, 야후와께서 늦은 비를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 마지막 때를 위해 준비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비극적으로, 이로쿼이 공연장에서 그 사람들이 했던 실수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행하고 있다. 그들이 자리에 안주하고 앉아 음악을 잠잠히 들으며, 그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했던 것과 같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그 늦은
비를 미래의 일로 여기고 있지만, 바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은 그들로 하여금 하늘 본향으로의 그들의 기대하는 여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 혼돈이
왜 발생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어떠한 것인지, 또한 그것들이 상징으로 사용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폭풍우
나는 완만한
언덕의 밀 농장 지역에서 자랐다. 그것은 매우 건조했다. 연간 강수량은 약 20 인치
(50 센티미터) 였고, 대부분 가을과 봄
비 그리고 겨울의 눈을 통한 것이다. 농부들은 건조한 땅의 농사를 완벽하게 해 내었다. 그들은 겨울 밀을 가을에 심었다. 그것은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한다. 겨울이 왔을 때, 신생의 밀은 기다리며, 눈의 보호막
아래서 혹독한 추위로부터 보호되었다. 봄 비가 내릴 때, 밀은 빠르게
여물어갔다. 그리고 칠월에 추수되기 전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건조되었다.

건조한 밀 농장은 고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농부들의 관개되지 않은 경작 관행과 매우 유사하다.
( Michael Brandt Photography 의 허락에 의해 사용된 이미지 )
이 연간 사이클은, 여러 면에서, 팔레스타인의 건조한 기후에서 곡식이 어떻게 자라는 지와 유사하다. 농부들은 가을에 심었다.
그들은 봄에 보리를 수확하고 여름에 밀을 수확했다. 이스라엘 농부들은 그들의 작물들이
자라기 위해 비가 오는 두 계절에 의존했다. 그 “이른 비”
가 가을에 심고 얼마 후 내렸다. 이것이 낟알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했다.
“늦은 비” 는 그 성장 사이클의 마지막,
봄에 내리며, 곡식을 여물게 했다. 그 늦은
비는 풍성한 수확을 보장했다.
감화의 영이
오순절과 그리고, 다시, 재림 직전에 영적 성장과 성숙의 상징으로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사용할 것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렇다, 그런데…그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그 늦은 비는 성령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어떻게 신자들을 하늘을 위해 준비되게 만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놀라운 진리를 밝혀준다: 늦은 비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이 지금 부어지고 있다!
야후슈아께서
성령의 특별한 역사를 설명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6:7-14, 킹제임스)
성령은 지도하기 위해 주어진다! 하늘의 진리들을 겸손하게 배우는 자를 교육하기 위해.
그러므로, 그 “늦은 비” 는 전진된 진리다!
이 사실이
신명기에 숨겨진, 중요한 두 구절에 의해 확립된다: “오 하늘들이여,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오 땅이여, 내 입의 말들을 들을지어다. 내 교리가 비처럼 내리며 내 말이 이슬처럼 맺히되 연한
채소 위에 내리는 가는 비와 풀에 내리는 소나기 같으리니.” (신명기 32:1-2, 킹제임스)
늦은 비는
교리다. 이것이 새로운 빛이다! 거룩한 야후와의 목전에 중재자 없이 서기 위해서는 오래 동안 감추어졌던 진리들의 회복이 필요하다. 무지, 미신과 사람이 만든 전통들 속에 묻혔던 진리들이 늦은 비를 통한, 생명을 부여하는 소나기 아래 회복되고 있다.
이것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
증가하는 빛
오랜 관습과
진부한 실수들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야후슈아] 를 따르는 모든 자들의 길 위에 빛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잃어 버렸다. 진리는 끊임없이 야후와 [아버지] 의 백성들에게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만일 하늘에 계신 우리의 지도자를 따라가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계속적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열린 진리에 순종하면서 우리를 비추는 빛
안에서, 우리가 받은 더 큰 빛 안에서 걸을 때이다. 우리는 백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가졌던 빛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만약 야후와 [아버지]
를 경외한 우리 선조들이 우리가 보는 것을 보았고 우리가 듣는 것을 들었다면, 그들은
그 빛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 빛 안에서 걸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신실함을 따르고자 열망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열린 진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그들에게 제시된 것들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들이 우리 시대에 살았더라면 행하였을 그것들을 우리는 반드시 행해야 한다.5
증가된 빛은
엄청난 축복이다. 야후와께서 계속 증가하는 지식, 지혜와 그분의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선물로 주심으로써 그분의 자녀들에게 힘을 공급하신다. 무한한 사랑이 진리를 거절하지 않을 때 나타나며, 그것을 받아들일 때, 이 땅에서의 여정 가운데 있는 영혼들은 힘을 공급받고 채비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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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지고 있는 빛에 따라 사는 자들만이 더 큰 빛을 받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적극적인 크리스챤의 미덕의 본보기로 매일 전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늦은 비를 통한 성령의 현시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주변 모두의 마음에 내릴 수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식별하거나 받지 못할 것이다.” (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50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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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슈아께서
선포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마태복음 5:6, 킹제임스) 더 큰 빛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야후와께서 보상하신다. 그 대가가 어떠하든지, 진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따라가는
자는 이생에서 풍성한 영적 보상을 거두며, 다가올 생애에서는 더 큰 보상을 거둘 것이다. 야후와께서 그분의 은혜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새로운 빛의 광선과 함께, 진리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더욱 깊게 하신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영적 선물은 그들에게 엄청난 영적 의무도
가져다 준다. 그렇다, 배운 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계속 증가하는 빛을 찾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크리스챤 교회들이 너무도 오랜
동안 그들이 이미 받은 빛에 대하여 만족해왔다. 가장 오래된, 조직화된
종파, 로마 카톨릭 교회 는 자신들의 오랜 전통들을 자랑하며 “교부들의 가르침들” 에 지나지 않는 것에 그들의 많은 교리들을 기초한다. 이것이 야후슈아께서 그토록 심하게 비난하셨던
랍비적 “장로들의 유전” 과 무엇이 다른가?
프로테스탄트
개혁 운동을 통해 일어난 종파들은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 신분, 믿음에 의한 의, 물 속에 잠기는 성인 침례와 다른 것들에 대한 하늘의
소중한 빛의 광선들을 수용했으나 후에 그들은 멈추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제 이 세대와 삼 세대는 그들의 부모들과
조부들에 의해 얻은 빛에 만족했다. 그들은 더 많은 진리를 찾는 일을 계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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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선생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정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그들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며, 다른 이들이 진리를 찾으라고 유도될 때 심히 불안해 한다. 새로운 빛이 제시될 때,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유대 나라를 위한 새로운 빛을 가지고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느꼈던 것처럼 느낀다. 그들은 빛의 증가를 막기 원한다. 그들은 스스로 성경 연구하기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연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한다.” (리뷰 & 헤럴드, 1886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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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19 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후-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 종파들이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 이상의 진전을 이루었다. 제칠일 감리교가 제칠일 안식일 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와 공유했다. 몰몬교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수용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야후와의 참 이름을 찾고 이교의 모든 축제일들을 거절했다. 제칠일
안식일과 건강 기별 수용에 더하여,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는 광대한 성소 진리와 그것이 구속의 계획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에 관해 연구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한 종파들 모두 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고, 그들 역시 정지하였다. 그들은 빛으로 나아가기를 계속하지 않았다.
새롭고, 더욱 심오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진리를 찾는 각 사람은 반드시 사람이 만든 모든 전통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그 또는 그녀는
선입견을 버리고 성령이 진리로 밝혀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
당신의 선입견과
유전적, 후천적 생각들을 조사라는 문 앞에 내려놓으라.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생각들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한다면, 당신은 결코 진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그 문 앞에 내려놓고, [야후와] 께서 당신에게 말하시고자 하는 것을 듣기 위해 뉘우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
당신의 신념을 성경으로 가져가지 말며 당신의 기존 관점으로 말씀을 읽지 말라. 모든
것을 당신의 신념과 맞추려고 시도하지 말라. 편견 없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주의 깊이 연구하라.
말씀을 읽으면서, 확신이 오고,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온 신념들이 그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말씀을 당신의 신념들에 맞추려고
시도하지 말라. 당신의 신념들을 그 말씀에 맞추라. 과거에 당신이 믿어왔거나 실행해온 것이 당신의 이해를 조정하도록 허용치 말라.
율법으로부터 놀라운 것들을 보기 위해 당신의 마음의 눈을 열라. 기록된 것을 찾아내고,
당신의 발을 그 영원한 반석 위에 올려 놓으라.6
이것을 행함으로써만, 선입견을 뛰어 넘어 진리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것을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
교회들의 실패에
의해 남겨진 것을 충족시키고 전진하는 빛을 따르기 위해, 다양한 독립 사역들이 하늘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일으켜졌다. 이러한 사역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신실하게 공유해왔지만,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의 빛의 광선 하나에
묶여있기를 선택하고, 더 많은 진리를 연구하고 따르는 것은 거절했다. 더 슬픈 일은, 그들 전의 다양한 종파들과 같이, 대부분의
독립 사역들이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서는 빛은 무엇이든지 거절하도록 가르쳐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큰
비극이다. 이것은 또한 전진된 빛을 거절하는 자들의 영혼들에게
큰 위험이다. 하늘의 진리들은 그것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의 것이다! 그것들은 신중하게 연구되고 간절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단 하나의 보석도,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인다 할지라도, 부주의하게 버려지거나 기각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함께 모아져야 하고,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며, 순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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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모든 신도의 의무는 이러하다: 1) 진리를 찾으라; 2) 주어진 진리를 받아들여라; 3) 밝혀진 빛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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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통해 성화됨
“빛” 은 진리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것은 진리의 증거로서, 지력을 가지고 순종의 삶을 살아내는 자들에게 본향을 가져다 준다.
단순한 지적 동의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마귀들도 야후와의 능력을 믿고 떨지만,
반역하기를 계속하기에, 진리가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 온전히 수용되기 위해, 진리는 반드시 순종되어야 한다. 진리의 영이 영혼을 성화시키는 것은 그 마음이 순종하기로 결심할 때이다.
바울은 바로
이 진리로 인하여 야후와를 찬양했다: “그러나 [야후슈아]께 사랑 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야후와]께 감사
드려야 하나니, 이는 [야후와]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13, 킹제임스)
여기 영어에서
“믿음 (belief)” 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꽤 수동적이다. 아랍어에서, 그것은
더 능동적 단어 믿는 것 (believing) 이다. 그것은 성결하게 하는 (그 동반되는 순종과 함께) 믿는
행동이다. 정신적인 수동적 동의가 아니다. 그 단어는 확신,
신조와 보증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pis’tis (#4102) 로부터
왔다.
영혼은 순종을
통해 성화된다.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사항이다. 새로운 개념이, 그것에 기초하여 실행되고, 기본 원칙이 된다. 이러한 기본 원칙들이, 그 결과로,
그 개인의 태도와 신념의 일부가 된다.
그 태도와 신념들이 생각과 감정을 꼴 짓는다.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이 품성을 형성한다.
품성은 우리가
하늘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 누구도 빛의 가장 작은 광선이라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각각의 광선이 더 큰 빛을
위한 토대를 놓으며, 그것이 순종으로 이끌고 영혼을 성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리를 온전히 수용하지 않고 진리로부터 돌아서는 첫 발걸음이 그 영혼을 위험에 빠트린다.
불순종으로
인해 마음이 완악해진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는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하나의 엄숙한 경고다. 그것은 전진하는 빛에 대하여 마음을 닫는 것의 두려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주를
거절하며 취했던 맨 처음 단계는 그것이 진리를 거절하는 선례를 이룸에 따라 위험한 것이었다. 후에,
그분의 크신 지혜, 그분의 뛰어난 품성의 보고로, 그분께서 행하신 이적들이 이르렀고, 야후슈아께서 정말로 오랜 동안 기다려온 메시야라는 증거가
이르렀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지도자들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이 그 민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구주를 거절하게 만들었으며 그 백성들은 너무도 교만하여 그들이 잘못된
지도자들을 믿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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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는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수확을 위해 준비되도록 만들기 위해 주어진다. 전진된 이 빛을 수용하는 자들만이 야후슈아 안에서 온전한 성숙함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James Richman 의 허락에 의해 사용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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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찾는
모든 신실한 사람은 이와 동일한 과정이 오늘날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교회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빛이 제시될 때, 너무도 종종, 그들의 첫 반응은 그들의 목사, 신부 또는 랍비에게 달려가 “이것이 사실인가요?” 라고 묻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 새로운 빛이 그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그 조직의 이미 확립된 교리와 상충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최고 관심사가 그 안에 있기에 그들은 새로운
모든 빛을 거절한다. 본 저자는, 달 안식일 이 사실인 것을 확신하지만 그것을 그들의 교인들에게 가르치지는 않는, 제칠일안식일 목사들 몇 명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침묵을 유지한다. 그들은 이 증가된 빛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월급을 계속 받는다. 이러한 일이, 누군가가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하여
어떤 다른 사람에게 최종적 권위자로 설 때 매 번 반복된다.
왜 이 백성이 야후와께 묻지 않고 사람에게 묻는가? 하늘 아버지께서 지혜를 위해 그분께 나아오라고 모든
이를 은혜롭게 초청하셨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야후와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킹제임스)
야후슈아 시대의
바리새인들처럼,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식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신학대학을 다녔다! 그들은 히브리어와 성서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들어보지도 못한 스콜라 철학 작품들을 읽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월한 지식을 가졌으며 그들의 신념들 중 어떤 것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에 분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교만하게 되며, 그들은 그들보다 더 전진된 진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경멸한다. 그들은,
때때로 겉으론 그럴싸한, 때때로 혼돈스러운 논쟁들과 함께 제시되는 증거를 묵살한다.
그 지도자들 스스로 열린 마음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개인적 최고
관심사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본보기에 의해, 그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어떤 새로운 빛을 의심하며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누구든지 불신하도록 이끈다.
추가적인 증거가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에 이르고 그들이 그 진리에 대해 확신하게 될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증거라도
그 굳어진 마음을 깨트릴 수 없다. 그들은 고집스럽게 그들의 과정을 계속 이어가며,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야후와] 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빛을 보내실 때, 그들 또한 그들 자신을 바리새인 자리에 둘 위험이 있다.
그러나 전진된 빛을 가진 그 백성들 중 한 사람도 모든 때를 위해 밝혀져야 할 모든 빛을 가졌다거나 [야후와] 의 말씀으로부터 그들의 경로를 밝혀줄 더 이상의 빛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게 하라.
우리 백성들이 성경을 더 연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진리의 풍성하고 소중한 보석들이
밝혀질 것이다. 교회의 형제들로부터 압박의 정신을 느낀 자들이, 그들이
다른 이들을 정죄한 것을 행할 것인가? 독선적인 바리새인들이 한 것처럼 그들도 행할 것인가?
조롱, 농담, 빈정댐으로 그들이 논쟁할 것인가?
“그는 마귀를 지니고 있다”? 라고 바리새인들이 세상의 구속자에 대하여 말한 것처럼,
그들이 빛을 가진 자들에 대하여 그렇게 말할 것인가? 그들은 “그가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기 때문에”? 라는 그분의 메시지를 금하려고 하는가?
[야후와] 께서 특별한 빛과 함께 보내실 메신저가, 바울이 “이 수다쟁이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들어 보자” 라고 말하는 이교도들에게 취급 받았던 것처럼, 조롱과 멸시를 당해야 하는가?7
빛 안에서
즐거워함
당신이 야후와께 당신 스스로 나아갈 때,
그분께서 당신을 개인적으로 가르치실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의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배운 진리들은 매우 소중한 것이 된다. 야후와께서
당신의 선생님이 되실 때, 그분께서 당신을 진리 속으로 안착시켜 어떤 것도 당신의 믿음을 흔들 수 없게 된다.
야후와께서
가르치신 진리들을 통해 그분께서 이끄셨던 경험들을 되돌아 보는 것은 믿음을 북돋우어준다.
WLC 팀은 당신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저 겸손한 신자들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며, 야후와를 사랑하고 진리가 우리에게 이른 것처럼 그 진리를 나누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때때로 과거의 오류 에 대한 공개적 고백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진리는 너무도 소중하여 언제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결코 과거의 실수들을 인정하지 못할 만큼 교만하게 되길 원치 않는다. 진리만이 중요하다.
모든 전진된
빛의 수용과 함께, 늦은 비의 다시 새롭게 하는 빗줄기가 더 많은 진리를
계속 가져다 주는 것처럼 더 많은 진리가 주어진다. 세상 마지막 때에 수확을 위해 영혼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들이다.
WLC 팀의 이 여정은 2000 년에 시작되었다. 그 때는 우리가 타락한 모든 배교 조직들 로부터 달아날 필요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때다. 야후슈아를 따르기로, 또한 야후슈아 그분만을 따르기로 결정한 후,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위에 그분의 하늘 소나기를 아래의 시간표대로 관대하게, 또한
지속적으로 내려왔다:
2002 년:
2005 년:
2006 년:
2009 년:
2010 년:
2011 년:
2012 년:
2013 년:
2015 년:
2016 년:
빛을 수용하고, 오류를 버림
새로운 빛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엄청난 선물이다! 새로운 빛의 모든 광선은 또한 오류를 드러낸다.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순종을 통해 삶에 적용시키면, 그것은 그 마음으로 하여금 하늘을 위해 준비될
수 있도록 만든다.
새로운 빛을
위해 기도하세요. 마치 감추인 보석처럼, 그것을 부지런히 찾으세요. 그분께서 여전히 그분의 교리를 당신에게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만큼
야후와께서 당신을 인도하신다는 더 좋은 증거는 없습니다.
당신 자신의
마음을 살피세요. 당신이 받은 새로운 빛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거절한
빛이 있나요? 당신이 거절한 것이 빛이 아니라 오류라고 당신은 확신하나요? 다시 돌아가서 다시 연구하세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연구한다는 것은 만약 성령께서 그것이 진리라고 당신에게 확신을 준다면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든 증거를 당신이 고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 가능한 모든 빛을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더 많은 빛을 위해 간청하세요.
늦은 비가
부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용 가능한 정보와 진리의 풍성함은 세상을 뒤엎었던
오랜 세기의 영적 흑암 동안에는 전례 없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빛은 당신의 영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후슈아께서 오실 때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당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바로 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곧
오십니다!
영원한 동틀녘의 광선이 지금도 그 지평선 상에서 빛나고 있다. 야후와께서 부어주시며 하늘을 위해 준비시키시는 이 새로운 교훈들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라.
(James Richman 의 허락에 의해 사용된 이미지)
1 Amy Leslie, quoted in Chicago Death
Trap: The Iroquois Theatre Fire of 1903, by Nat Brandt, p. 25.
2 W. H. Hubbard, ibid.
3 Brandt, p. 5.
4 Christopher Cerf, The Experts Speak,
p. 247.
5 엘렌
G. 화잇, Historical Sketches, p. 197.
6 엘렌 G. 화잇,Manuscript Releases, No. 209, pp. 431-432.
7 The Home Missionary, September 1,
1894.
두 증인의 상징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그분께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적 상징들을 주셨을 때 그것들이 많은 방식들로
이해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WLC는 견고하게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혼돈을 불러 오는데, 우리의 사랑의 아버지는 혼란의 엘로아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고전 14:33). 그러나 혼돈은 많은 예언적 상징들에 대해 이원적인 해석을 이해하는
것에 실패할 때 종종 온다.
두 증인은 4절에서 “두 올리브 나무”와 “두 등잔대”로 정의된다. 이 상징은 스가랴 4:1-6, 11-14으로부터 나왔다. 거기서 그것들은 “기름 부음
받은 두 사람으로, 전 세계의 [주] 곁에 서는 자들”을 의미하기 위해 언급됐다. 그 두 증인에 연관된 올리브 나무와 등잔대의 영적 의미를 푸는 것은,
다음 인용절에서 보여질 수 있다: 두 올리브 나무에서 금 같은 기름이 흘러나와 금관을
통해서 등대 기름통으로 들어가고, 거기서부터 성전에 빛을 비춰 주는 금 등잔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야후와] 앞에 서 있는 거룩한 분들에게서
나온 성령은 당신의 사업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기름부음을 받은 두 사람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온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인데 이 천혜(天惠)만이 주의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에 빛이 되게 할 수 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 {그리스도의 실물교훈, 408.1}
그분의 영에 대한 그와 같은 충분히
많은 표현이 구약과 신약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들이
두 증인을 의미한다는 것이 추정될 수 있다. 이것이 두 증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다 (즉, 이중적 상징에서 첫째 적용). [두 증인]
상징의 이중적 적용의 첫째 해석은 중요하며,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마지막 날들에 사는 우리들에게 둘째 적용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WLC의 관점이 있다. 요한계시록
11장의 문맥 안에서 두 증인에 대한 둘째 적용이다:
두 증인은 우리 사랑의 아버지의 신실한
군대를 의미한다. 이 군대는, 42개월 곧
3.5년 (2절) 동안 지속될 큰 외침이라고
알려진 기간 동안에, 타락한 세상을 향한 그 마지막 부름을 외치기 위해 지금 준비되고 있다.
그 큰 외침 동안, 그분의 신실한 자들은 늦은 비(성령)의 부어짐에 의해서 그들의 사역에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 기간은 현재 여덟째 왕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 중에 시작될 것이며, 그의 중요한 안건은
전 세계적인 일요일 법령의 실행이 될 것이다. 이 전 세계적인 법을 강제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예언에 따른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일요일 준수는 세계적 번영을 다시 이루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강요될 것이다.
-42개월 동안 진리를 위한 많은 순교자들이 생길 것이다 (2절).
-인류를 위한 유예 기간이 그 42개월의
끝에 닫혀질 것이며, 살아 있는 신실한 자들의 숫자는 144,000이
될 것이다.
-일곱 재앙들이 그 유예 기간이 끝난 후에 곧 바로 시작되며 30일간 지속될 것이다. (1290-1260 문자 그대로의 날짜 계산 = 문자 그대로의 30일, 여기서는 1일이 1년이라는 예언적 계산 방식을 따르지 않음).
-여섯째 재앙 동안에, 문자 그대로의
3.5일 끝에 (9절) 신실한 자들에게 일요일
법령에 순응하든지 죽임을 당할 것인지에 대한 최후 통첩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야곱의 환란의 때가 야후와의 백성들 144,000명에게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임박했다는 것과 그 도시들에 남은 자들은 격렬해진 제수잇의 종교재판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하며 가장 공격
받기 쉬울 것이라는 점을 신중하게 다시 주목하라.
-그 3.5일의 최후 통첩의 만료되는 시점에
악한 자들이 144,000을 멸할 준비가 되었을 그 때, 우리 사랑의
아버지께서 “다 이루었도다”라고 “큰 음성으로” 공표하시며, 일곱째 재앙이 내릴 것이다
(요한계시록 16:17). 144,000의 고통이 끝나고 둘째 세상이 그분의 음성에
의해서 흔들린다.
-그리고 우리 주 기름 부음 받은 자 야후슈아[아들]의 재림 전까지 45일이 있을 것이다
(다니엘 12:12).

그들이 시작된 이후로, 제수잇은 악명 높게 기만적인 그룹이어왔다. 겉으로는 그들이 무해한 기독교 인도주의자들처럼 보이지만,
그들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 속을 보면 탐욕스러운 늑대들이다. 이 글은 매우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 했던 말들을 모은 것이다. 종종 베일로 가려진 예수회 즉 제수잇의 통탄할 만한 행동들과 비열한
평판들에 관한 것이다.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최근에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이 되었다. 이것은 세상이 이전에 결코 목격하지 못했던 전례 없는 사건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제수잇 조직의 멤버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장 높은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세계의 반응은 환호, 그저 사실로 받아 들임, 무관심
등 다양하다. 이러한 반응들은 제수잇 조직의 실체에 대해 사람들이 끔찍할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을 밝혀준다.
자애로운 선교사 조직으로 널리 알려졌고 교육 기관들로 유명하며 일반적으로 예수회로 알려진 제수잇 조직은
나라들, 조직들, 개인들의 운명들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영향력과 비밀스런 역할을 오랜 동안 해왔다. 이 강력하고 멀리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에 의해 침투되는
해악을 인지하는 통치자들, 대통령들, 학자들 그리고 심지어 카톨릭 자신들
스스로가 모두가 주의해야 할 중대한 경고들을 기록으로 남겨왔다.
다음은 다양한 출처들로부터 인용된 글들을 편집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악마적 조직들이 제수잇의 원칙들을 모델로 했다고 인정한다. 다른 이들은 경고한다. 그 경고들은 그들 중 다수가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서 경고했던 것이다.
WLC는 여러분 모두가 다음의 자료들을 주의 깊이 연구하기를 권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혜로운 권고들을 얻어서.”
(잠언 1:5)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1491-1556, 예수회 설립자이자 제1대 총장)

“만약 그것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이익에 공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고하며 비밀스럽게 왕들과 중요한 인물들 사이에 반감을 조장하고 심지어 그들이 서로를 약하게
만드는 정도까지 적대감을 일으킨다. 그런데 만일 거기에 어떤 화해의 분위기가 생길 것 같으면,
다른 자들이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가능한 빨리 그 사이에 중재자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자.”1
“최종적으로, – 왕들, 귀족들, 그리고 모든 곳에서 치안 판사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자. 그러면 그들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것은 우리에게 이익과 이점이 된다고 말할 때,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과 가장 친한 친구들까지 희생시킬 것이다.”2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적대감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적당한 방법들을 사용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차이점들 속에서 화해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방법들에 의해 우리는 점차로 그들의 친구들과 비밀스런 일들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이익을 위하면서 그 당사자들 중의 하나로 참여할 수 있다.”3
“요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즉시,
그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우리 조직 중 어떤 친구들로 그들을 적시에 보살피도록 하라; 그러나 이것은 은밀하게 행하여 그 왕의 권위를 찬탈하기 위한 우리의 의도를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
. . ”4
“모든 개인적인 판단을 제쳐놓아라.
우리는 언제나 이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그 교회 조직이
흰색을 검정색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내가 보는 흰색을 검정색이라고 믿을 것이다.”5
“모든 곳에 있는 왕들과 저명한 인물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우리가 하는 말을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쉽게 장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은 우리의 피조물이 될 것이며, 그 누구도 우리 조직에 대하여 조금의 동요와 반대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 . . 결국, 이 조직은 왕들의 호의와 권위를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6
파올로 사르피 (1552-1623, 베네치아의 수도사, 학자, 과학자이자 교회 개혁가)
“그들은 하나의 공적인 재앙이며,
세상의 재앙이다 . . . 제수잇 대학으로부터 온 학생 중에는 그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그의 나라에 헌신하며, 그의 왕에게 충성하는 학생이 결코 없다.”7
“모든 종류의 범죄에는 그들이 장려하고 있는
것들이 발견된다. 어떠한 위증, 신성모독, 근친상간, 존속살인, 강탈, 사기, 배신도 자신들의 특별 허가라는 덮개 밑에서 칭찬 받지 못할 것이 없다.”8
무티오
비텔레스치 (1562-1645, 예수회 제6대
총장)

“주권자가 어떠한 주제에 대하여 제수잇의
의견을 물을 때, 제수잇은 그 문제를 그의 상관에게 보고하고, 상관은
회의를 열어 그것을 몇 명의 제수잇 앞에 내놓는다. 이 회의 후에 형성된 해결책이, 보고했던 제수잇에게 건네지고 그 제수잇은 의견을 물었던 주권자에게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9
앙투안 아르노 사제 (1612-169410)
“당신은 혁명을 일으키고, 당신의 나라를 완전히 망치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가? 제수잇을 부르라 .
. . 그리고 이러한 뜨거운 광신자들을 위한 장엄한 대학들을 세우라; 그리고 그러한
철면피의 사제들이 독단적이고 독재적인 어조로 국가의 업무들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11
미켈란젤로
탐부리니 (1648-1730 예수회 제14대
총장)

“보십쇼, 각하, 이 방에서 제가 파리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통치하며,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를 통치합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죠.”12
교황 클레멘스 14세 (1705-1774)

다음은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제수잇을 억제하고 소멸시킨다는 교서(불 Bull)에 사인하면서 말이다. (이 불이라는 교서는 교황이 발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법적 서류다):
“진압이 이루어졌다. 나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평가한 후에 진압을 결정했고 이 교회를 위해 진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진압으로 나는 죽게 될 것이다.”13
교황 클레멘스 16세는 제수잇을 매우 잘 알았고, 그들의 손에 죽게 될 것을 예상했다. 그는 옳았다. 그는 독살당했다:
“ . . . 한 시골 여자가 위장하고 바티칸에
들어가서 그 교황에게 독이 숨겨진 무화과를 주었다. 클레멘스는 이 과일을 매우 좋아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먹었다. 그날 첫 중병의 증상들이 나타났고 곧 위장에 심한
염증으로 이어졌다. 그는 곧 자신이 독을 먹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말했다: ‘아! 나는 그들이 내게 독을 먹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천천히 잔인한 방식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끔찍스러운
고통은 몇 달 동안 계속됐고, 그가 죽을 때, ‘불쌍한 희생자,’라고 코르메닌이 말했다. 그는 제수잇 중역 리키의 조카이자 상속인 스키피오 디 리키,
피스토이아의 주교에 속한 밉살스런 제수잇의 한 사람이다.”14
교황 비오7세 (1742-1824, 예수회를 회복시킨 교황)
교황 비오 7세가
1814년에 나폴레옹의 감옥에서 풀려나자 곧, 그는 빠르게 교황 교서,Solicitudo omnium ecclesiarum [모든 교회들의 책임]을 공표하며 예수회를 부활시켰다.
“ . . . 만약 누군가가 그것
[예수회]을 폐지하고자 다시 시도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진노를 초래할 것이다.”15
존 애덤스 (1735-1826, 미국의 제2대 대통령)

1816년에, 존 애덤스는 토머스 제퍼슨 (미국의 제3대 대통령)에게 예수회의 부활에 관한 편지를
썼다:
“제수잇에 대한 나의 역사는 설득력 있게
쓰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권위들에 의해 지지된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매우 무서운 것이다. 그들의 부활은 정말로 어둠, 잔혹,
불신, 폭정, 죽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 . . 나는 제수잇의 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이 땅과 지옥에서 영원한
천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로욜라의 예수회다.”16
“화가들, 출판업자들, 작가들, 교사들 등 가능한 많은 위장을 하고
나타나는 그들의 정기적인 무리들이 여기에 없으면 안 되는가? 만약 이 땅과 지옥에서 영원한 천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로욜라의 예수회다 . . . 우리는 우리
제도에 의해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17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1821; 프랑스 황제)
“제수잇은 종교 조직이 아니라 군대 조직이다.
그들의 대장은 단순한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아니라 한 군대의 장관이다. 이 조직의
목적은: 권력이다. 가장 포학한 방식의 권력. 절대 권력, 전 세계적 권력, 한 사람의 결의에 의해
세상을 통제하려는 권력. 제수잇 정신은 가장 독재적이며 동시에 가장 거대한 폭력이다 . .
. 제수잇의 장군은 주권자들 위에 군림하는 주인, 주권자가 되고자 한다.
제수잇이 허용되는 곳은 어디든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이 주인이 될 것이다. 그들의 조직은 본질적으로 독재적이다. 그러므로 그 조직은 설립된 모든 정부들과 조화 될 수 없는 적군이다. 모든 행동,
모든 범죄, 심지어 아주 흉악한 일도 그것이 예수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그 수장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면 칭찬 받는 일이 된다.”18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1748-1830, 제수잇 독일 철학자이자 일루미나티 조직 설립자)

“바이에른에서 예수회의 대리인들이 확보할
수 있었던 권세의 정도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조직의 요원들은 유권자들의 고해신부들과 교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부의 정책들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졌었다. 종교 검열은 그들의
권위와 힘을 인식하도록 강요당할 정도까지, 그들의 열심 있는 손아귀에 쥐어졌다. 모든 개신교의 영향력을 멸절하고 카톨릭 제도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이 공공 교육 기관들을
소유했다. 바이에른 대학의 다수가 제수잇에 의해 세워졌고, 그들에 의해
통제된다. 그 나라의 중등학교들 역시 그들에 의해 지휘되었다.”19
마르퀴스 라 파예트 (1757-1834; 프랑스 정치가이자 장군)

“만약 이 나라 – 미국 –이 파멸한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제수잇 사제들의
치밀함에 의해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와 종교적인 자유에 대한 가장
교활하고 위험한 적들이기 때문이다.”20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 (1772-1801, 독일 철학자)

“세상 역사의 과정에서 그런 조직
[즉. 제수잇 조직]이 나타난 적은 이전에
결코 없었다. 고대 로마 원로원 자체도 그 보다 더 큰 성공의 확실성으로 세계 지배를 위한 음모를 꾸미지
못했다.”21
앙드레 마리 장 자크 뒤팽 (1783-1865, 프랑스 정치가)

“제수잇은 빼든 칼이다. 그 자루는 로마에 있고 그 날은 모든 사람을 향하며 그 일격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22
새뮤얼 모스 (1791-1872; 전신기를 발명한 미국인)
“그들은 제수잇이다. 이들의 조직은, 200년 이상 동안 폭정을 행사한 후, 모든 사회 조직을 전복하겠다고 위협하며, 마침내 세상에 매우 무서운 존재가 되어,
심지어 교황조차도, 교황의 신하들인 그들을 해체시키도록 압박 당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자유의 빛을 방해하기 위해 그들의 유용한 노력들을 필요로 했던 천주교와 그 독재 세력이 쇠퇴하기 전까지
그들은 50년 동안 진압되지 않았었고, 교황 (비오 7세)가, 거룩한 동맹의 형성과 동시에, 제수잇 조직을 부활시켰다. ‘로마 교황에 대한 전폭적인 복종’이라는 그들의 맹세와 함께, 그들은 교황의 경호원이라 불려 왔다.
“미국인들은 제수잇이 어떤 사람들인지 들을
필요가 있는가? . . .그들은 하나의 비밀 조직이며, 메이슨 조직의
한 종류이고, 혐오스러운 반란과 또한 수천 배 더 위험한 여러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종교적 사제들이 아니라; 상인들, 법률가들,
편집인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나라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는,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배지는 없으나 그들은 당신의 모든 사회 안에 들어와 있다.
“그들의 목표와 그들이 보내진 그 임무를
이루기 위해, 그 임무가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빛의 천사들,
어둠의 사역자들, 어떤 모습으로도 가장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교육 받은 사람들이며, 그들 조직의 상관에 의해 명령되는, 어떤 순간, 어느 방향, 어떤 임무에서도 시작할 준비와
맹세가 되어 있으며, 사람을 구속하는 어떤 가족, 공동체,
국가, 일상적 유대 관계에도 묶여 있지 않다; 그들은 로마 교황에게 종신토록 팔린 자들이다.”23
“이 요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부분 제수잇으로 세계적으로 소문난 교회 조직이며 교활하고 이중적이며, 도덕 원칙이
전혀 없다; 모든 종류의 기만에 매우 숙련되어 있는 조직이어서, 심지어
카톨릭 국가들, 이탈리아 그 안에서 조차도, 그것은 용납될 수 없고,
사람들이 그 조직의 진압을 원하는 그런 조직이다.”24
오레스테스 어거스투스 브라운손 (1803–1876, 뉴잉글랜드 지식인이자 활동가, 설교자,
노조 설립자, 유명한 카톨릭 개종자이자 작가)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나라
[미국]을 소유하는 것이 교황의 의도다. 이
목적 안에서 그와 모든 성직자들과 사제들이 제수잇의 지원을 받는다. 만약 카톨릭 교회가 여기서 주권을 가지게
되면, 개신교도들은 모두 멸절될 것이다.”25
에이브러햄 링컨 (1809-1865; 미국 제16대 대통령)

“이 전쟁 [미국 남북 전쟁, 1860-1865]은 제수잇의 사악한 영향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황권 때문에 우리는 지금
가장 귀한 아들들의 피로 붉게 물든 우리의 땅을 보고 있다. 노예 제도에 관하여 남과 북 사이에 큰 의견
차이가 있을 지라도, 제프 데이비스나 그 당의 지도자 중 누구 하나라도, 그들이 제수잇의 약속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감히 북부군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가면 아래, 로마 카톨릭의 재정과 무기가, 심지어 프랑스의 무기까지, 그들이 우리를 공격한다는 조건하에 그들의 재량에 맡겨졌다.”26
“그들의 종교를 전한다는 구실 하에,
우리의 해변에 매일 상륙하는 사제들, 수녀들, 수도승들이 교황, 나폴레옹 3세, 유럽의 폭군들이 보낸, 우리의 기관들을 침식하고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우리의 헌법,
법률로부터 소원하게 만들고, 우리의 학교들을 파괴하며, 그들이 아일랜드, 멕시코, 스페인 그리고 국민들이 자유로워지기
원하는 모든 곳에 무정부 상태를 준비하기 위한 밀사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약 북과 남의 개신교도들이 안다면, 그들은 그 사제들과 제수잇을 멸절시키기 위해 확실히 연합할 것이다.”27
“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나서 매우 기쁘다.’고 그가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친구들,
그 제수잇들이 아직 나를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 도시, 볼티모어를 통과할 때, 내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들이 예상했던 몇 시간 전에 내가 잠행하고 지나감으로써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확실히 나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 . . ’
“ ‘성 바르톨로뮤의 학살과 화약 음모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야만적인 상황들을 동반한 암살의 새로운 계획들이 거의 매일 감지된다. 그들을 조사해보면,
우리는 그들이 같은 고용주, 살인의 대가 제수잇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느낀다
. . . ’
“ ‘이미 매우 많은 음모들이 나의 생명을
노리며 진행되어 왔다. 그들의 대다수가 제수잇에 의해 훈련된, 로마
카톨릭의 숙련된 살인자들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것들이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 정말 기적이다.’ ”28
“나는 제수잇이 결코 잊거나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사람이 명예로운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게 되는 것이라면, 그는 그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죽는가에 대해 신경 써서는 안 된다.”29
챨스 치키니 (1809-1899, 전 카톨릭 사제 캐나다인)

“카톨릭 사제들은 가장 감탄할 만한 능력과
성공으로 아일랜드 군단을 미국의 큰 도시들로 모아왔다. 만약 미국 국민들이 그것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정말로 눈이 먼 것임에 틀림 없으며, 이 거대한 공화국
안에, 워싱턴의 장엄한 백악관으로부터 가장 작은 시민 그리고 군대 부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나라를 제수잇이
통치할 날이 매우 가까이 온 것이다.”30
브리가이더 장군 토마스 M. 해리스 (1817-1906, 의사이자 남북 전쟁 동안 연합군 장군)
“로마 카톨릭 계층 조직은 완전한 군대 독재정치다.
교황이 표면상 수장이며 . . . 검은 교황이 제수잇 조직의 수장이고 일반적으로
장군이라 불린다. 그는 자신의 조직에게 명령할 뿐만 아니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일반적인 정책들을 직접 지시하고 통제한다. 그는 보좌 뒤에 있는 권세이며, 그 계층 조직의 실제적인 우두머리다 . . . 그 예하 부분들에서, 어떤 독립적인 생각이나 행동도 없다. 모든 계급의 사제들은 상관에게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 . . .
“그 전쟁 [1861-1865 미국 남북 전쟁]의 매우 처음부터, 제수잇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절단 [암살]하기 위한 기회를 찾기
위해 마음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수잇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 암살이다.”3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1881; 유명한 러시아 소설가)

“제수잇은 . . . 미래에 세상의 주권자를 위한 로마 군대다. 황제를 위한 로마 교황과 함께 .
. . 그것은 그들의 이상적인 . . .
그것은 권세의 욕망이며, 불결한 이 땅의 이득이고, 지배다 – 그들을 주인으로 하는 전 세계적인 농노 제도와 같은 것이다 – 그것이 그들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다. 그들은 아마 하나님조차도 믿지 않을 것이다.”32
마가렛 F. 쿠삭 (1829-1899, ‘켄메어의 수녀’로 전향한 사람) 마가렛 F 쿠삭에 대해 더 많은 것,여기를 클릭.
“제수잇의 위대한 생각은 언제나 전 세계적인
영적 [그리고 일시적] 군주국이 되는 것이다, 그 안에서 . . . 제수잇은 대권을 장악해야 한다. 잉글랜드는 언제나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작전 기지가 되어왔다. 피와 눈물이 흘려졌으며,
그 계획들이 제수잇에 의해 이 나라에서 행해졌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잉글랜드를 통하여, 세계를 로마에 복종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다한다.”33
“제수잇이 한 곳에서 방출되면 그는 다른
곳을 찾기에 느리지 않다. 프랑스가 어떤 이유로 그를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그에게 팔을 벌린다. 카톨릭 국가 이탈리아가 그에게서, 제수(Gesu)에 있는 한 때 유명했던 그의 고향의 영광을 박탈할 수 있지만,
미국이 그에게 문을 열어 준다. 그는 카톨릭 교회의 방랑하는 유대인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불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사랑 받던 자이었으나, 이제는 그들로부터
통렬한 비난을 받는다.”34
챨스 스펄전 (1834-1892, 영국 침례교 설교가, “설교가 중의 왕”으로 알려짐)
“우리의 옛 적들은 만약 그들이 우리가 그들을
신뢰할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제수잇과 같은 교활함과 이중성의 깊이를 매우 자주 보여준 후에야,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 안에서 작은 신념을 가졌었다. 우리가 그들의 의도들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그들과 어떤 것도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 대주교들과 추기경들에게 빨리 확신시켜 줄 수록, 우리와 우리 나라를 위해 더욱 좋다. 물론, 우리는 고집통이라며
그들로부터 으르렁거림을 당하겠지만, 우리는 그 부르짖음에 맞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종교 재판을 고안했던 그 교회가 다가 올 때,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로마와 평화는 없다’는 것이 좌우명이 되어야 한다.”35
리차드 W. 톰프슨 (1809-1900, 미국 해군 장관)
“[제수잇]은 시민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치명적인 적들이다.
“[제수잇 수장]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대중의 평안과 복지가 아무리 위태로워 질지라도,
또한 그 나라들이 중심으로부터 둘레까지 격변이 일어나더라도 그에게 복종되어야 한다. 무정부 상태가 만연하거나 온 세상이 전 세계의 파멸의 파편들로 덮일지라도 예수회는 지배력을 얻어야 한다!”36
“ ‘거룩한 동맹’의 군주들이 거대한 군대들을 가졌었고, 곧 자유로운 정부를 위한 백성들의 모든 봉기들을 진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는 [비오 7세] 교황의 권세에 의해 지원되는 그 제수잇들이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헌신되기를 갈망했다.
그는 그들이 얼마나 신실하게 그 일에 자신들을 바치는지 알고 있었고, 부활에 대한 포고를 내리며 그들에게, 로욜라가 그 조직의 절대적 초석으로
만들었던 ‘유용한 충고들과 유익한 조언들’을 엄격하게 행할 것을 충언했다.”37
루이기 데산티스 (19세기 조사 기관의 전직 검열관)

“이러한 모든 것들로 인해 교황과 군주들이
[제수잇의] 그 장군을 두려워하게 된다. . . [제수잇의] 친구가 아닌 군주는 조만간 그들의 복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38
“제수잇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에 따르면,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더 큰 영광만을 구한다; 그러나 당신이 사실들을 조사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전 세계적인 지배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교황에게 절대 필요한 존재로 자신들을 바치며, 그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카톨릭 정신이 그들과 함께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통치자들에게 절대
필요한 존재로 자신들을 헌신하며 그들의 손으로 혁명들을 유지한다; 이 방식으로, 하나의 이름이나 또 다른 이름 하에서, 그들이 세상을 통치한다.”39
“제수잇의 정체를 알기 위해 지난 세기
[18세기]에 쓰여진 모든 책들을 읽고, 자신이
그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크게 속을 것이다. 그 당시의 제수잇
정신은 복음과 사회를 대항한 전쟁의 시작이었고; 현재의 제수잇 정신은 느리지만 전염성이 있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그것은 비밀스럽게 주입되며; 그것은 약이라는 이름 하에 투입되는 독이다.”40
G. B. 니콜리니 (이탈리아의 전 카톨릭 신자. 1854년에, 현존하는 제수잇에 대한 이탈리아의 역사를 발표했다.)

“ . . . 그가 해야만 하고 또 나타내야 하는 것을 위해 제수잇을 받아 들인다면, 당신은 가장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런던에서 보았던 제수잇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로마에 있는 그 제수잇을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제수잇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이다. 스페인에서는 독재적으로, 잉글랜드에서는 법치적으로,
파라과이에서는 공화주의자로, 로마에서는 고집통이로, 인도에서는 우상숭배자로, 그는 칭찬 받을 만한 유연성을 가지고 각기 두드러지게 다른 모습들로,
가장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는 극장에 여성 동성애자와 함께 나타나,
매우 방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는 엄숙한 용모를 하고 교회에서 종교적인 사람 옆에 앉을 것이다. 그는 여관에서 폭식가와 술고래와 함께 흥청대며 놀 것이다. 그는 모든 옷을 입고,
모든 언어를 구사하며, 모든 관습들을 안다. 어디서도 발각되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나타난다 – 이 모든 것이 (오 말도 안 되는 신성모독이여!)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 ad majorem Dei gloriam .”41
“그 조직의 요원들은 네 부류로 나뉜다 –
공직자, 보좌 주교, 학자, 신참자. 그리고 또한 그 장군과 몇 명의 신실한 제수잇에게만 알려진 비밀스런 다섯째 부류가
있다. 그들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그 조직의 두렵고 신비로운 권세에 기여한 자들일 것이다.
그것은 사역자로부터 비천한 구두닦이 소년까지 모든 서열의 평신도들로 구성된다 . . . 이들은 그 조직에 가입되어 있지만, 어떠한 맹세도 하지 않은 자들이다 . .
.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유용하게 만들 사람들이다 . . . 그들은 그 조직의 스파이처럼
활동한다 . . . 그리고 종종 자기도 모르게, 어둡고 신비스러운 범죄들의
도구와 연루자로 봉사한다. [제수잇] 프란치스코 펠리코 신부는 .
. .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 조직의 뛰어난 많은 친구들이 오묘하고42
침묵을 지켜야만 하는 상태로 남겨져 있다.’ ”43
“사람들과 시대의 모든 공격들에 의해,
삼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조직을 가진 단체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운명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 .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격언이다; 그리고 우리가 설명해왔던 대로, 그들의 유일한 목적으로서, 제수잇은 그 명령에 어떠한 범죄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조직이다.”44
“제수잇의 거대한 부는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
유언들에 의해 유증되고 있다!”45
프란시스 파크먼 (1823-1893, 미국 역사학자)
“제수잇은 교황 지상권론에 대한 가장 강제적인
주창자들이었다. 세상을 통치하는 그 교회; 그 교회를 다스리는 교황;
그 교황을 다스리는 제수잇: 그런 것이 그 예수의 조직의 단순한 프로그램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 그리스도의 부섭정과의 오해의 몇 가지 드문 경우들만을 제외하고 그들은 그것을 굳게 유지해왔다.”46
헥토르 맥퍼슨 (1851-1924, 스코틀랜드의 다작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제수잇 조직은 너무도 해로워서,
1860년까지, 그 조직은 그 조직의 음모들로부터 고통 받았던 나라들로부터
70번 이상 추방되었으며 . . . 유럽 대륙의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1877년에 바티칸과 교류를 개시하고 그 조직으로 두번째 아일랜드 대학살
(1845-1850)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 빅토리아 여왕 시대 (1837-1901) 하에] 제수잇 쓰레기 하치장이 되어왔다. 다른 나라들은
그들이 원수들이라는 것을 슬픈 경험으로부터 알게 되었으나, 영국은 그들로 하여금 해변에 상륙하여 방해 받지
않고 그들의 불의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지나친 관용을 베풀고 있으며, 정책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어느 날 무거운 응보를 치르게 될 것이다.”47
신부 제리미야 J. 크로울리 (1861-1927, 미국의 전직 카톨릭 사제)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기간 내내 교황들은,
그들 자신의 가족과 영토상의 이점들을 위해 이탈리아를 소란과 유혈의 참사로 만들었고, 그들은 종교 개혁 후 이 세기 동안 전 유럽을 종교의 전쟁들 속에서 혼란 상태로 만들었다 – 사실, 단지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동안만 – . . . 그들의 모든 정책은 그들이 세속적 이득을 얻기 원하는 곳에 갈등을 일으키고 증오를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교황들과 그들의 제수잇 요원들은 전쟁의 선동자들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세계가 진정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로마는 샴페인을 들고 있다.”48
“[제수잇 수장] 장군은 이 검고 말이 없는 군대의 우두머리며, 그 계획들의 도구로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복종한다 – 그들의 모든 삶은 하나의
목표만을 가져야 한다 – 그들이 붙어 있는 그 [제수잇]
조직의 발전이다.”49
“로마 카톨릭 조직이 얼마나 오래 백성들을
바보로 만들 것인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교황에 의한 정부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를 위한 우리의 대통령을 로마의 교황이 임명하지 못하도록 만들자. 당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제수잇의 음모들, 로마의 정치적 권세와 대통령직에
손을 뻗치는 정치인들의 달콤한 말들을 인지하라!”50
엘런 G. 화이트 (1827-1915, 다작 작가이자 미국의 크리스챤 선구자)
“ . . . 제수잇 정신은 그 추종자들에게
광신적인 행위를 고무시켰다 . . . 그들이 저지르지 못할 너무 큰 범죄도 없었고, 그들이 실행하기에 너무 비열한 기만도 없었으며, 그들이 가장하기에 너무 어려운 변장도 없었다
. .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그 조직의 기본 원칙이었다. 이 강령에
의해, 거짓, 도적질, 위증,
암살이 그 교회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 허용될 뿐만 아니라 칭찬 받을 일이었다.
그 제수잇들이 다양한 변장들을 하고 정부의 부서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방식으로 일했으며, 왕들의 상담자라는 자리까지 올라가서 국가들의 정책을 형성하였다.”51
에드몬드 로냔 (1832-1911, 키스톤 랏지의 사무관이자 주인으로 일했던 전직 프리메이슨)

“메이슨이라는 종교는 절대적인 독재정치 시스템이며,
로마의 그것과 같이, 그들의 모든 법에 ‘옳든지
잘못되었든지’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 . . 조직의 냉담,
비굴, 비겁에 대해 얼마나 간단한 주석서인가. 그런 교활한 목적들을 위해 간교한 악당들 [제수잇]에
의해 조직되었고 사기, 거짓, 기만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그렇게 하도록 허락되었고, 만약 그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없다면 공동체들 안에 공포심을 조성하여 심지어 그 조직의 비열한 사상들을 몹시 싫어하는 기독교 종파들과 그 조직이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을
보기 원하는 사역자들조차도 비밀스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피의 복수가 일어날까 두려워서 설교단이나 기도 모임 또는 안식일 학교에서 그 조직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심히 두려워하게 된다.”52
아돌프 히틀러 (1889-1945,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독일의 정치가이자 나치당의 지도자)

“나는 제수잇 조직으로부터 모든 것의 대부분을
배워왔다 . . . 지금까지, 카톨릭 교회의 계층 조직보다 이 땅에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없었다. 나는 그 조직의 좋은 부분을 내 자신의 정당에 직접 옮겨 왔다
. . . 카톨릭 교회는 하나의 본보기로서 반드시 떠 받쳐져야 한다 . . . 내가
당신에게 비밀 하나를 말해주겠다. 나는 하나의 조직을 설립하고 있다 . . . 히믈러 안에서 나는 우리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를 본다!”53
발터 프리드리히 셸렌베르크 (1910-1952, 친위대의 계급들을 거쳐 국외 정보국의 수장이 되기까지 올라갔던 독일 친위대–소장)

“친위대는 히믈러에 의해 제수잇 조직의 원칙들에
따라 조직되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 의해 규정된 그 임무와 정신적 훈련의 규칙들은 하나의 본보기를 구성하였다.
히믈러는 그 본보기를 모방하기 위해 신중하게 노력했다. 절대적인 복종이 최고의 규칙이었다;
모든 명령은 말대꾸 없이 실행되어야 했다.”54
아브로 맨하탄 (1914-1990, 작가이자 철학자)
“제수잇은 미국 철강 회사,
리퍼블릭 앤 내셔널의 최대 주주들 중 하나다. 그들은 또한 미국에 있는 가장 큰
4대 비행기 제조업체, 보잉, 록히드,
더글라스, 커티스-라이트의 가장 중요한 소유주들에
속한다.”55
“어떤 정치적 사건과 환경도 그 안에 포함된
바티칸의 부분에 대한 지식 없이 평가될 수 없다. 그리고 어떠한 중대한 세계적 상황도 그 안에,
그 역할이 밖으로 드러나든지 아니면 내포되어 있든지, 바티칸의 중요한 역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56
알베르토 리베라 (1935-1997, 전 제수잇 요원)

“내가 제수잇 조직 안에서 높이 올라갈 수록,
그 조직 내부에 있는 더 많은 부패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고위층 제수잇
[최고위 장군 페드로 아루페를 포함하여]에 의해 스페인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열리는
비밀스런 암흑 미사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았다. 내가 한 고위 관료의 반지에 키스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
나를 오싹하게 만드는 그 반지에 있는 한 심벌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싫어했고 내가 그것에 대항하여 싸워 왔던,
메이슨의 상징 [컴퍼스와 직각자]이었다!
. . . 나는 그 제수잇 장군 역시 메이슨이자 스페인에 있는 공산당의 한 멤버라는 것을 알았다.”57
그의 간증이 여기 있습니다: 전 제수잇 요원, 알베르토 리베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제수잇의 침투에 관해 말한다(영어만 나옴)
프레드릭 투퍼 쏘우시, III (1936-2007, 미국 작곡가, 음악가, 작가 겸 예술가)
“. . . 로마의 종교재판이…제수잇에 의해 1542년부터 집행되어 왔다.”58
애드몬드 파리 (1894 – 1970, 제수잇의 비밀의 역사의 저자)
“대중은 바티칸과 그 제수잇의 재량 하에
있는 그 거대한 자금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상황인,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의 발단에 있어,
바티칸과 그 제수잇에 의해 행해진 그 압도적인 책임을 거의 알지 못한다 – 특별히
그 마지막 갈등 이후로, 그들은 매우 많은 영역들에서 권력을 얻었다.”59
“제수잇은…하나의 비밀 조직이다 – 메이슨 조직의 일종이며 – 혐오스러운
불쾌함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고, 또한 천 배는 더 위험하다.”60
“카톨릭 젠트룸 [제수잇 루드비히 카스가 주관하는 중앙당]의 표 덕분에, 그 독재자는 권력을 갖게 되었고, 불과 5년 전에[1933],나의 투쟁에서 냉소적으로 밝혀진 그 목적들의 대부분이 이미 실현되었다; 이 책은 . .
. [통제되는] 제수잇 신부 [베른하르트]
스템플에 의해 쓰여졌고 히틀러가 서명했다. . . . 이 책에 설명된 그 유명한
범-독일 프로그램을 완성한 것이 예수회였기 때문에, 그 독재자는 그것을
지지했다.”61
니노 로 벨로 (1922-1997, 미국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바티칸에 관한 글에 있어
전문가다)

“교황의 고해 신부는, 일반 사제로서, 반드시 제수잇이어야 한다. 그는 반드시
바티칸을 일주일에 한번 정해진 시간에 방문해야 하며, 그만이 홀로 교황의 죄들을 면제해줄 수 있다.”62
마이클 벙커 (미국 작가, 역사가, 신학자)

“기독교계를 대항한 음모가 하나 있다.
. . . 이 음모 안에 있는 사탄의 요원들은 누구인가? 그 “요원들”은 제수잇이다. 제수잇이 신학, 교육, 기록된 역사와 현재의 언론의 영역들에서 막대한 영향력과 통제력을 발산하고 있을지라도,
나는 주요 개신교계에 대한 제수잇의 영향력을 폭로하는 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여전히 당혹스럽다.
. . . 이 일에 있어, 그 작가는 제수잇의 구원신학에 관한 잊혀진 역사를 밝힌다.
. . . 가인부터 챨스 [G.] 피니까지, 이 책은 현대 개신교계가 은혜의 교리들을 포기하고 [사단의] 협력하는 구원이라는 교리를 수용했다는 것을 증명한다.”63
에릭 존 펠퍼스 (1953–, 작가이자 미국에서 진실을
찾는 사람들의 운동의 주창자)
“20세기에 제수잇은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그리고 현재는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명목 하에 아돌프 히틀러,
프란시스코 프랑코, 이오시프 스탈린 그리고 현재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그들의 재판관들과
함께 그들의 종교 재판을 집행해오고 있다. 오늘날 검은 교황은 1965년에 개명된 ‘믿음의 교리를 위한 성스러운 신도들’이라는
거룩한 종교 재판소를 지휘했다. 그것은 해골단 요원 조지 W. 부시를
포함한 교황의 기사단에 의해 지휘되는 국제 정보 연맹을 통해 진행된다.”
“우리는 잘 계획된 암살들에 이어,
국왕 시해 (왕들을 죽이는 것)라는 증오스런
제수잇의 정책까지, 모든 나라들의 지배권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계산된 정책들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 그 조직의 암살자들은 쟈크 클레멩 같은 제수잇이나 그 단체에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존 윌크스 부스 같은 살인자들이었다. 오늘날 이러한 전문적인 “종결자들”은 명석하게 그들의 주인, 메이슨,
검은 교황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고, 교황 밑에서 국제적으로 관리되는 언론 회사들,
법리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무정부주의자들”, “허무주의자들”, 정보국 내에 있는 “악당들”,
또는 단지 “단독 암살자들”과 같은 기만적인
직함들이 주어진다. 때때로 이러한 개인들은 사실, 의식적으로 또는 알지
못한 상태에서 (“꼭두각시”로 각본이 짜여 있는 대로)
살인을 행하게 된다: 그들은 그 행동을 하다가 또는 그들의 범죄로 인한 형벌로 죽게
되며,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을 물리치고 “흰 교황”과 함께 세계의 보편적 군주로서 그의 일시적 권세를 실행하여 암흑 시대를 부활시키고자, 로욜라
(1534)에 의해 만들어지고 바오로 3세 (1540)에 의해 승인되어, 트리엔트 종교 회의 (1545-1563)의 25세션을 작성했고, 그들 스스로를 유럽 군주들의
고해 신부들과 조언자들로 확립했으며, 거대한 전쟁들을 점화시킨 절대적인 군주 독재주의를 촉진하며,
다음의 사건들에서 개신교도들과 무죄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대량 학살했다:
독일 혁명 1568 – 1648
30년 전쟁 1618 – 1648
청교도 혁명 1644 – 1653
7년 (프랑스와 인디언) 전쟁 1754
– 1763
“1540년부터 1773년까지, 말타 기사단과 후에 스코트 의례 프리메이슨에 의해 지원된 ‘거룩한 종교 재판소’와 함께, 그 나라들과 셈족 히브리/유대인 종족을 압제하고 약화시켰다.
“미국 연방 헌법 수정 14조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무오한 성경 – 1611년의 공인된 킹제임스 버전에서 설명된 그분의
복된 복음에 따라 우리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여 왔다.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국가적 죄들을 회개해야만 한다.
그 후에, 우리는 그 죄들을 버려야 한다. 그러한 죄들 중 일부가 다음과 같다:
1. 검은 교황의 군대가 우리의 국경 내에서, 그것의 외교 협회를 통해 존재하도록,
힘차게 번영하고 미국의 정부를 완벽하게 통제하도록 허용한 것;
2. 이십 세기 내내 계속적으로 거짓말하고 우리를 계속 속여온, 제수잇이
통제하는 미국 언론을 믿은 것;
3. 제수잇의 “거룩한 동맹”에 따라서
성공적으로 대중의 자유와 세계 모든 나라의 국가적 주권을 파괴해온 두 단체, 제수잇의 연준 은행 제도와 유엔이
우리의 국경 내에 존재하도록 허락한 것;
4. 우리의 제 4조와 5조의 권리
(버지니아의 침례교의 주장과 우리의 프로테스탄트 선조들의 엄청난 피를 지불한 권리장전의 “진술과 제한 조항들”에 의해 보장된) 를
4월 15일마다 우리의 죄에 대한 고백들을 “서류로 정리함”으로 포기한 것, 압제적이고 진보적인 공산주의
소득세를 내며, 수 많은 죄들에 대해 자금을 지원한 것;
5. 교황의 해외 전쟁들 (베트남 전쟁과 최근의 세르비아, 이라크 그리고 현재의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들) 에 참전하기 위해 우리의 아들들을 징모하고,
백신을 접종시키고 해외로 보낸 것, 그 결과로 미국인들의 “자유”와 제수잇의 트리엔트 공회에 의해 정죄된 외국의 “이단자들”을 파괴한 것;
6. 미국 제국이라는 정부의 통제 안에서, 제수잇이 로마에 첫째로 충성하는
전 세계의 독재자들을 왕좌에 앉히기 위해 우리의 군대와 재정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것, 그로 인해 제수잇의
“무오한” 교황의 일시적 권세를 부활시킨 것, 세계를 암흑시대로 돌아가게 한 것;
7. 제수잇이 매우 싫어하는 – 미국의 자유의 방어벽인 공립학교 제도에서
개신교 성경과 기도를 없애는 제수잇의 대법원 결정들에 동의한 것;
8. 우리의 프로테스탄트의 헌법과 정부의 공화주의 형식에 충성하는 것보다 교황과 그들 자신의 종족,
종교와 민족의식에 충성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수백 만의 로마 카톨릭과 이교도 사람들의 이민에 동의한 것,
그로 인해 워싱턴 디씨에 더 많은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정당화하고, 제수잇 맹세에
따라 예수의 단체에 의해 의도된 대로 미국의 백인 켈트족-앵글로 색슨 족 (역사적으로 제수잇 조직의 가장 큰 적) 의 아프리카화, 성경을 믿는 개신교도들과 침례교인들의 융합을 통해 수많은 동요를 일으킨 것;
9. 각 종족의 독특한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들이 교환되면서 저항력이 없고, 약하고 자식을 못 낳는 인구들을 만들어 내는,
자손들 안에 강한 조합을 만드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통해 두 종족 다의 파멸을 초래하는 강제 인종 통합에 대한 제수잇의
대법원의 몇 가지 결정들에 동의한 것;
10. 무죄한 피로 땅을 더럽히고 태아들의 대량 살해를 초래한, 합법적 낙태에
대한 제수잇의 대법원 결정에 동의한 것, 궁극적으로 붕괴되는 “사회
보장 제도”라 불리는 폰지 사기가 다가오는 파시스트 독재자에 의해 노인들의 대량 살해를 정당화하고,
나라들의 동맹으로 구성된 대대적인 군대의 침입에 의해 “이 땅에서 탈출하지도 못하고
남겨진 자도 없을 때까지, 우리를 없애 버리기 위해, 우리를 대항하여
주를 화나게” 한 것, 회개하지 않고 용서 받지 못한 미국의 살인자들의
피로 이 땅을 일소하게 한 것;
11. 도시의 빈민 지역에서 인종 전쟁들이 시작될 때 계엄령 시행을 정당화하며, 큐 클럭스 클랜의 백기사들과 이슬람의 블랙 네이션과 같은, 제수잇에 의해 통제되는 메이슨의
선동자들의 결과로 생긴 인종간 적대감에 굴복한 것;
12. 양처럼 마음 약하게 우리의 진정한 부, 금과 은 동전들을 “지불유예” (“연방 준비 은행권”이라 불리는 제수잇의
가치 없는 종이 돈)와 교환함으로 포기한 것, 그로 인해 일에 치이고,
원칙이 없고, 돈에 굶주린 도둑들의 나라가 된 것;
13. 제수잇의 국제 정보 협회에 의해 사용되기 위한 신원 확인 수단이며, 다하우에서 히틀러의 친위대에 의해 시작된 제수잇의 “사회 보장 번호”라는 캐틀 브랜드에 동의한 것;
14. 나치에서 유래된 1968년의 그 악한 총기 법에 복종한 것,
새로운 화기들을 구매하고 우리의 – 단지 방어를 위한 우리의 검인 –
총기들을 암중에 등록하고, 트리엔트 회의에 따라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전멸을 확실하게
가져올 제수잇이 통제하는 백인, 파시스트, 군사 독재를 가능하게 한
것;
15.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목전에서 우리의 전멸이 옳은 조치가 될 것을 확실히 하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수많은 개인적인 죄들을 지은 것.”64
많은 사람들이 예수회를 자비심이 많은, 선교 교육 기관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제수잇 조직은 기록된 역사에 있어 가장 가증스런
어떠한 행동들에 책임이 있다. 그들은 진리와 정의와 싸움을 벌여 왔으며, 종교적 자유를 짓밟고, 왕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그들의 안건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를 만들었다.65 이 조직의 한 멤버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시적인 수장이
된 지금, 제수잇 조직의 권력이 완성되었다.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로 교황 프란치스코 1세라는 사람 안에서 세상이 직면하고 있는 그
위험을 주의하고 인지하게 하자. 오류와 악함은 언제나 진리와 정의에 대항하여 권력을 사용하기 위해 힘쓴다.
지금이 야후와께 가까이 하기 위해, 매우 쉽게 따라 다니는 죄를 내려 놓고 창조주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릴 때다. 그분께서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자를 받으실 것이다.
“분별
있는 자는 재앙을 미리 보고 숨거니와:
단순한 자들은 나아가다가 벌을 받느니라.”
(잠언 22:3)
1 W. C. Brownlee, Secret Instructions of
the Jesuits, (New York: American and Foreign Christian Union, 1857), p.
141.
2 M. F. Cusack, The Black Pope, (London: Marshall,
Russell & Co., 1896), p. 86.
3 Brownlee, op. cit., p. 45.
5 Ignatius Loyola, 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us, tr.
Anthony Mottola, (New York: Doubleday Publishers, 1989; originally written in
1523), pp. 139, 141.
6 Brownlee, op. cit., pp. 39 and 143.
7 Mary Frances Cusak, The Black Pope: A History of the Jesuits, (London:
Marshall, Russell & Co. Ltd., 1896), p. 356.
8 John Alfred Kensit, The
Jesuits: Their History and Crimes, (London: Protestant Truth Society, 1918),
p. 30.
9 E. Boyd Barrett, The Jesuit Enigma, (New York: Boni and
Liveright, 1927) p. 253.
10 Antoine Arnauld was
considered by many of his contemporaries to be one of the most preëminent
intellectuals of the 17th century.
11 Hector Macpherson, The Jesuits in History, (Springfield,
Missouri: Ozark Book Publishers, 1997; originally published in Edinburgh,
1914), p. 32.
12 Jacopo Leone, The Jesuit Conspiracy: The Secret Plan of
the Order, (London: Chapman and Hall, 1848), p. 134.
13 John Dowling, The History of Romanism, (New York:
Edward Walker, 1845), p. 604.
14 Richard W. Thompson, The Footprints of the Jesuits, (New
York: Hunton & Eaton, 1894), pp. 227, 228.
15 Ian R. K. Paisley, The Jesuits, (Belfast: Puritan Printing
Co., LTD., 1968), pp. 9, 10.
16 J. E. C. Shepherd, The Babington Plot, (Toronto, Canada:
Wittenburg Publications, 1987), p. 18; quoting a letter dated May 5, 1816.
17 George Riemer, The New Jesuits, (Boston, Massachusetts:
Little, Brown & Co., 1971), p. xiv.
18 Charles Chiniquy, Fifty Years in the Church of Rome,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68; originally published in 1885) pp. 487, 488; quoting Memorial of the Captivity of Napoleon at St.
Helena, by General Montholon, Vol. II, pp. 62, 174. Chiniquy was a
priest who was framed by the
Jesuits for a crime he did not commit.
He could not find anyone to represent him because all of the lawyers he
approached were too afraid of the Jesuits.
Finally, a young lawyer convincingly demonstrated in a court of law his
innocence and Chiniquy was declared not guilty, thus saving his life.
Had he been found guilty, he would have been
sentenced to death. Upon hearing the not
guilty verdict, Chiniquy wept. When his
attorney asked him why, Chiniquy explained that he was afraid his own
life had
been purchased at the cost of his defender’s life. His words proved
prophetic. His lawyer was Abraham Lincoln. One of the men responsible
for Lincoln’s
assassination was later tracked back to Vatican City and the pope’s
private
army.
20 James L. Chapman, Americanism versus Romanism: or the
cis-Atlantic battle between Sam and the Pope, (Nashville, Tennessee: 1856),
p. 127.
21 Theodor Griesinger, The Jesuits:
Their Complete History, (London: W. H. Allen & Co., 1903; originally
published in 1873), p. 654.
22 Burke
McCarty, The Suppressed Truth About the
Assassination of Abraham Lincoln, (Merrimac, Massachusetts: Destiny
Publishers, 1973; originally published in 1924), p. 57.
23 J. Wayne Laurens, The Crisis: Or, the Enemies of America
Unmasked, J. Wayne Laurens, (Philadelphia, Pennsylvania: G. D. Miller,
1855), pp. 265-267.
24 Samuel Morse, Foreign Conspiracy Against the Liberties of
the United States, (Boston, Massachusetts: Crocker & Brewster, 1835),
Vol. I, p. 55.
25 Chiniquy, op. cit., p. 483. See also, The
Papal Conspiracy Exposed, by Edward Beecher, (New York: M. W. Dodd, 1855),
p. 26.
26 Charles Chiniquy, Fifty Years in the Church of Rome, (London:
The Wickliffe Press, Protestant Truth Society), 1885, p. 388. See also footnote 18.
28 Chiniquy, op.
cit., 1968 ed., pp. 493, 501 and 506.
30 Chiniquy, op.
cit., 1885 ed., p. 476.
32 Fyodor Dostoyevsky, The Brothers Karamazov, (New York:
Random House, 1950; originally published in 1880), p. 309.
33 Cusak, op. cit., p. 285.
35 Charles Haddon Spurgeon, Geese in Their Hoods: Selected Writings on
Roman Catholocism, (Publisher unknown, 1873).
36 R. W. Thompson, The Footprints of the Jesuits, (New
York: Hunt & Eaton, 1894) p. 59.
38 Luigi Desanctis, Popery,
Puseyism and Jesuitism, (London: D. Catt, 1905; Maria Betts,
translated from the original, Roma Papale, 1865), p. 136.
41 G. B. Nicolini of Rome, History of the Jesuits: Their Origin,
Progress, Doctrines, and Designs, (London: Henry G. Bohn, 1854) p. 42.
42 “Occult” used in this
context means secret, hidden, and concealed.
43 Nicolini, op. cit., pp. 45 and 46.
44 Ibid., pp. 495 and 496.
46 Francis Parkman, France and England in North America, (New
York: The Viking Press, 1983; originally
published in 1865) Vol. I,
pp. 1172, 1173.
47 Hector Macpherson, The Jesuits in History, (Springfield,
Missouri: Ozark Book Publishers, 1997; originally published in Edinburgh,
Scotland, 1914), pp. 148 and 149.
48 Jeremiah J. Crowley, Romanism: A Menace to the Nation, (Wheaton,
Illinois, 1912), p. 144.
49 Crowley, Ibid., p. 196.
51 Ellen G. White, The Great Controversy, (Deland, Florida:
Laymen for Religious Liberty, 1990; originally published in 1888) pp. 234, 235.
52 Edmond Ronayne, The Master’s Carpet; Or Masonry and
Baal-Worship Identical, (South Pasadena, California: Emissary Publications,
1988: originally published in 1879), pp. 69, 211, 212.
53 Edmond Paris, A. Robson,
tr., The Vatican Against Europe, (London:
P. R. MacMillan, Ltd., 1961), pp. 252, 256.
55 Avro Manhattan, The Vatican Billions, (Chino,
California: Chick Publications, 1983), p. 184.
56 Edmond
Paris, The Vatican Against Europe,
(Springfield, Missouri: Ozark Book Publishers, 1993), p. 308.
57 Jack Chick,
Alberto, (Chino, California: Chick Publications, 1979), Part 1, pp. 27, 28.
58 F. Tupper
Saussy, Rulers of Evil: Useful Knowledge
About Governing Bodies, (New York: HarperCollins, 2001), p. xviii.
61 Edmond Paris, The Secret History of the Jesuits,
(Chino, California: ChickPublications, 1975; originally published in 1965), p.
138.
62 Nino Lo Bello, The
Vatican Empire, (New York: Trident Press, 1968), p. 78.
63 Michael Bunker, Swarms of Locusts: The Jesuit Attack On the
Faith, (New York: Writers Club Press, 2002), pp. 13-14.
65 “The Black Pope” is a
term long applied to the Superior General of the Jesuit Order, a position many
contend is actually more powerful than that of the more visible pope. That the Jesuits now have one of their own
occupying the papal throne is proof of how powerful the Jesuits have become.
마지막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한 제수잇은 어떤 사람들인가?
역사상 처음으로, 제수잇
교황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선출되었다. 요한계시록 17장은
“8번째 “왕”이 바닥이 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단이 이전 일곱 명의 교황들에게서
보여지지 않았던 수준으로 이 마지막 왕/교황을 통제하고 지시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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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1세가 계시록 17장의 8번째 왕이다… 마지막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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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 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
. . 또 일곱 왕이 있는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으되 그가 오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물리라. . . .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곧 여덟째며 그 일곱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느니라.” (요한계시록
17:8-11)
이 사람이 마지막 날들에 야후와[아버지]를 따르는 자들에 대항하여 맹렬한 전쟁을 일으킬 8번째 왕으로서 전 세계적인 일요일 법령을
통해서 로마의 거짓 안식일 일요일을 높일 것이다. 이 8번째 왕이 매우
가까운 미래에 거의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짐승의 표를 강제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 사단이 역사상 마지막
교황이 될 자로 제수잇 조직에서 한 멤버를 택하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제수잇은 모든 교황청 조직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극악하며 기만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군사 조직의 역사적 발단
16세기의 개혁 운동이 교황권을 상대로 승리하기 시작하면서, 이 때에 제수잇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 군사 조직은 교황권의 모든 전사들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며
힘이 센 것으로 증명됐다. 세상의 모든 인연과 인간적 관심사를 끊고 자연스러운 감정, 이성의 요구들에 대해서 죽고, 양심도 완전히 묵살하며, 명령 외에는 어떤 규칙도, 어떤 제재도 알지 못하며 그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것 외에는 어떤
의무도 없다. 야후슈아[아들]의
복음은 그 신도들로 위험을 마주하고 고통을 견디며 추위와 배고픔과 고생에 태연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고문, 감옥, 화형에 대하여도 진리의 깃발을 치켜 들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힘과 싸우기 위하여 제수잇 정신은 그 조직원들이 위험들을 견디고 기만이라는 모든 무기들을 가지고 진리의 힘과 싸우기 위하여
광신적 정신을 가지고 그 조직원들을 고무시켰다. 그들에게는 저지르지 못할 너무 큰 범죄는 없었고,
실행하지 못할 너무 비열한 기만도 없었으며 취하지 못할 너무 큰 변장도 없었다. 영속적으로 가난하고 겸허할 것을 맹세했지만, 프로테스탄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헌신하고 교황의
최상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부와 권세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연구 목적이었다.
그 조직의 멤버로서 나타날 때, 그들은
고결한 옷을 입었고 감옥과 병원을 방문하고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섬겼으며 세상을 포기한다고 고백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처신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 나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흠잡을 데 없는 겉모습 하에서, 가장
괘씸하고
지독한 목적들이 숨겨졌다. 이것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 조직의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의해서 그들이, 그 교회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할 때, 거짓말하고 도적질하고 위증하고 암살하는 것이 용서될 뿐만 아니라 권장됐다.
다양한 위장들 속에서 제수잇은 정부의 기관들 안에 그들의 길을 내었고 왕들에게 조언하고 국가들의 정책을 형성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그들은 그들의 고용주를 위해 스파이로 활동하는 하인들이 되었다. 그들은 왕들과 귀족들의 아들들을 위한 대학들을 설립했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학교들을 세웠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부모들의 자녀들은 로마 카톨릭 의식들을 거행하는 데에 끌어 들여졌다. 로마
카톨릭 예배의 외적인 모든 화려함과 표현은 정신을 혼돈시키고 상상력을 현혹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선조들이
자유를 위하여 고생하고 피 흘린 것이 후손들에 의하여 저버려졌다. 제수잇은 빠르게 유럽에 퍼져 나갔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카톨릭의 부흥이 따라왔다.
그들에게 더 큰 권세를 주기 위하여, 종교
재판소가 다시 세워졌다. 카톨릭 국가들에서 조차도 일반적으로 혐오스럽게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끔찍한 재판소가
다시 카톨릭 통치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낮의 빛 가운데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함이 너무 지독하여 그 일들이 비밀스런 지하 감옥에서 반복됐다. 많은 나라들에서,
그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수천 수만의 가장 순결하고 고상한 사람들, 가장 지능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경건하고 헌신된 목사들, 근면하고 애국적인
시민들, 찬란한 학자들, 재능 있는 예술가들, 기능이 많은 숙련공들이 살해되거나 다른 땅으로 도망가도록 강요 받았다.
요한계시록은 곧 닥쳐올 마지막 갈등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요한계시록 6:11) 이 시간 동안,
그분의 신실한 증인들은 1,260일 동안 극심한 조건들 속에서 예언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1:3) 중세 시대의 종교 재판이 다른 모습과 이유들 속에서 다시
재현될 것이다; 제수잇이 이 두려운 일들을, 그들의 축적된 전문성을
가지고 집행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달 안식일 을 지키는
야후와[아버지]의 신실한 자들에 대항하여 그의 주인을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이면서 종교 재판의 업무가 교황의 재량에 맡겨질 것이다. (시간을 내셔서 이 글을 읽어 보세요.“안식일 | 파트
3 – 야후와의 인.”)
제수잇의 피의 맹세
로마 카톨릭 군사 조직의 비인간적인 잔인함이 그 맹세에서보다 더 명확하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 그 조직 내에서 명령권을 갖는 위치로 올라가는 자들이 그 맹세를 하게 된다.
그것은 장황한 맹세인데, 우리가 그 내용을 아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지금 교황을 자기들의 멤버로 둔 것을 뽐내고 있는 이 사단의 조직에 의해 누구도 속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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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바오로 3세와 “예수회”로도 알려진 제수잇 조직의 설립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 대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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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단계의 제수잇이 명령권을 가진 위치로 승격되려고 할 때, 그 조직의 수도회의 예배당 안으로 인도되며 거기에는 오직 세 명의 사람이 있다. 제단 앞에
수도원장이나 또는 상관이 선다. 양편에는 교황의 색깔들인 노랑이나 하얀색의 기를 들고 있는 수사가 한 명
서며, INRI라는 글자와 그 밑에 IUSTUM, NECAR, REGES, IMPIOUS라는 글자가 박혀 있고 해골과 뼈를 엇갈려 놓은 모양 위에 칼과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검정색 기를 다른 한 사람이 들고 있다.
이것은 불경하거나 이단적인 왕들, 정부들, 통치자들을 전멸하고 몰살한다는 의미이다. 바닥에 빨강 십자가가 있고 거기에 지원자 또는 후보자가
무릎을 끓는다. 상관이 그에게 작고 검정 십자 고상을 건네고 그는 그것을 왼손으로 받고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며, 그 동시에 상관은 그에게 칼을 선사한다. 그는 그 칼날을 잡고
그 끝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놓는다. 상관은 여전히 그 칼의 손잡이를 잡고서 지원자에게 말한다:”
상관:
“내 아들아, 지금까지 너는 가면
쓴 사람으로 활동하는 것을 배워왔다: 로마 카톨릭 신자들 안에서도 한 명의 로마 카톨릭 신자가 되고,
네 자신의 형제들 속에서 조차도 스파이가 되는 법; 어떤 사람도 믿지 말고 단 한
명의 사람도 신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개혁자들 속에서 한 사람의 개혁자가 되는 법; 위그노 교도들 속에서 한 명의 위그노 교도가 되는 법; 칼빈주의자들 속에서 한 명의 칼빈주의자가
되는 법; 다른 프로테스탄트들 속에서 평범한 한 사람의 프로테스탄트가 되어서 그들의 신뢰를 얻고 심지어 그들의
강단에서 설교하며 우리의 거룩한 종교와 교황을 너의 모든 열정을 가지고 공공연히 비난하는 법; 교황의 충실한
병사로서 너의 조직의 이익을 위해 모든 정보를 모을 수 있도록 심지어 유대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의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 그토록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법을 배워 왔다.”
“너는 평화로운 공동체들, 지역들,
국가들 사이에 질투와 증오의 씨앗들을 교묘하게 심고 그들로 서로 전쟁에 참여하게 하여 피를 불러 오도록 자극하는 법과,
예술과 과학이 신장되고 있고 평화의 축복을 누리고 있으며 독립적이며 번영하고 있는 국가들 안에서 혁명들과 시민 전쟁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워왔다. 그 전투원들의 편을 들고 다른 편에 속해 있는 너의 형제 제수잇과 비밀스럽게
활동하며, 한편 네가 연관을 맺고 있는 그것에 공개적으로는 반대 입장을 보이며, 평화 조약에서 조건들이 결정될 때 결국에는 이 교회가 승자가 되게 하라.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너는 스파이로서 모든 소스들로부터 네 힘을 다해서 네 의무를 행하고
모든 통계들, 사실들과 정보를 모으는 것을 배워 왔다; 네 자신을 상인,
은행가, 법조인, 학교들과 대학들,
국회의원들과 입법자들, 사법관과 국무 위원들, 모든 부류와 신분의 프로테스탄트들과 이교도들의 모임 속에서 확신 있게 조화를 이루는 법,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들이 되는 법, 교황을 위하여, 우리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하인들이다.”
“너는 신참, 신임으로서 지금까지 너의 모든
지시들을 받고 동료와 고해 신부와 사제를 섬겨 왔다. 그러나 너는 교황의 봉사에서, 로욜라의 군대에서, 명령하는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었다. 너는 반드시 적당한 때에 너의 상관들이 지시하는 대로 그 도구로서 그리고 그 집행자로서 봉사해야 한다; 이단자의 피로 자신의 노력들을 헌신하지 않아온 자는 누구도 명령하는 위치에 설 수 없다; “피 흘림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너의 과업에 맞게 네 자신을 맞추고 네 자신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라, 너의 조직에 대한 복종과
교황에 대한 충성에 대한 너의 이전 맹세에 추가하여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라:”
(맹세는 그 조직 전체의
특성을 나타낸다,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에 관해 묵살된 진실, 이라는 책에서, 저자 버크 맥카티(Burke McCarty), 21-23쪽. (참조:http://www.masters-table.org/forinfo/jesuit%20oath.htm) 그 맹세는 찰스 다이디에르(Charles Didier )의 책, 지하의 로마(Subterranean Rome)에서도 인용됐다 (뉴욕, 1843), 그 책은1967년에 제수잇 조직으로부터 탈출한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프랑스어로부터 번역된
것으로 그 취임식 행사와 제수잇 맹세의 내용을 알려준다. 그 내용을 우리가 밑에 인용했다. |
“나 __________는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복된 동정녀 마리아, 복된
천사장 미가엘, 복된 침례 요한, 거룩한 성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
그리고 모든 성도들과 하늘의 군대들, 하나님의 모태, 동정녀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교황 바오로 3세 때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
의해 설립되어 지금까지 계속되는 예수회의 총장인 당신 나의 영적 아버지께, 공표하고 맹세하기를,
거룩한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며 이 땅의 우주적인 카톨릭 교회의 유일하고 참된 수장이시며; 묶거나 풀 수 있는 열쇠들을 가졌고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은 거룩하며, 교황의
성스러운 확약이 없는 이단적인 왕들, 왕자들, 국가들,
연방들과 정부들, 모든 불법적인 것들을 안전하게 파멸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교황의 권위를 빼앗는 이단자나 프로테스탄트 권위나 특히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의 루터교, 그리고 지금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교회들과 거짓 권위, 또한 아일랜드와 아메리카 대륙과 또 다른 곳들에서 설립된 그 가지들, 로마의 성스러운 어머니
교회에 반대하거나 침해하거나 이교도적이라고 간주되는 모든 추종자들을 누가 되었든지, 내 힘을 다해 교황의
거룩함의 권리와 관습의 교리를 방어할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떠한 관계와 충절도 포기하며 어떠한 이교도의 왕,
왕자, 프로테스탄트나 자유주의자, 어떠한 법과
재판소와 사무관들에 대한 순종도 모두 끊는다.”
“나는 또한 칼빈주의, 위그노교도 그리고
어떠한 다른 종류의 프로테스탄트들 또는 자유주의자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교회들의 교리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며, 나는 그 같은 것들을 버리지 않을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저주하는 것임을 공표한다.”
“나는 또한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잉글랜드, 아일랜드, 아메리카 등 내가 가게 될 어떠한 나라나 영토에서든지,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분의 거룩함의
대리인들이면 누구든지 모두 돕고 보조하고 조언할 것이며, 이단스런 프로테스탄트들 또는 자유주의자들의 교리를
제거하고 그들의 모든 거짓 권세, 법률 또한 다른 어떤 것이든지 파멸하기 위해 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다.”
“나는 또한, 내가 관면되는 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교회의 이익을 위한 선전을 위해 나의 종교를 이단적인 것으로 가장하며, 그
교회의 모든 대리자들의 상담들의 비밀을 유지할 것이며, 그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말로나 글로나 어떠한
환경적인 것으로도 나를 신뢰하고 폭로하지 않도록 하며; 나의 영적 아버지 당신에 의해 내게 주어지거나 밝혀지는
모든 것들과 이 거룩한 계약의 어떤 것이든지 실행할 것이다.”
“나는 또한 심지어 송장이나 사체와 같이 내 자신의 의견과 의지,
어떠한 정신적인 비밀도 갖지 않을 것이며, 교황과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에 있는 나의
상관으로부터 내게 주어지는 모든 명령을 주저함 없이 복종할 것이다.”
“북쪽의 얼어 붙은 지역이든지, 아프리카의
불타는 사막의 모래든지, 인도의 정글이든지, 유럽 문명의 중심이든지,
아메리카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짐승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든지, 내가 보내지는 곳은
세상 어디든지, 나는 중얼거리거나 불평함 없이 갈 것이며, 내게 지시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순종할 것이다.”

“나는 또한 기회가 주어질 때 비밀스럽게 또는 공개적으로 모든 이단들,
프로테스탄트들, 자유주의자들을 대항하여 끈질긴 전쟁을 벌일 것이며,
나에게 하라고 지시되는 대로, 지구상에서 그들을 근절시키고 멸종시킬 것이다.그리고 나는 연령, 성별
또는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이러한 증오할만한 이단들을 매달고 버리고 끓이고 가죽을 벗기고 질식시키고 산 채로 묻어 버릴 것이며 그들의 저주스런
종족을 영원히 소멸시키기 위해 그들의 여자들의 배와 자궁을 갈기 갈기 찢고 그들의 유아들의 머리를 벽에다 깨부술 것이다. 그런 일들을 공개적으로 할 수 없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직위, 명예, 존엄, 권위에 관계 없이 또한 그들의 생명의 상태가
어떻게 되든지, 비밀스럽게 독이든 음료, 압박하는 노끈,
쇠 단검, 납 총을 이용할 것이다. 교황 또는
예수회의 거룩한 믿음의 형제애를 가진 상관의 어떠한 대리인에 의해 나에게 하라고 지시되는 것을 어느 때에든지 시행할 것이다.”
“내가 지금 받는 이 단도와 함께 나는 여기에 나의 삶, 나의 영혼, 내 육체의 모든 힘을 헌신할 것이며 그 증거로 내 자신의 피로 나의 이름을 여기에
새길 것이다. 나의 결정이 잘못되었거나 연약해진 것이 증명된다면, 교황의
군대의 나의 형제나 병사들이 나의 손과 발을 자르고 나의 목을 이쪽 귀로부터 저쪽 귀에까지 자르며, 나의
배를 열고 유황으로 태워도 좋다. 이 땅에서 모든 형벌이 내게 부어질 것이며 나의 영혼은 마귀들에 의해 영원한
지옥에서 끝없이 고통 받을 것이다!”
“나_______는 지금 내가 수행하고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받을 복된 삼위일체와 복된 성찬식에 의해 맹세한다. 성체의 복된 성찬을 증거하기 위해 모든
하늘의 영광스러운 무리들을 초청한다. 이 단검의 끝으로 내 자신의 피를 떨어 트려 이 거룩한 계약 위에 나의
이름을 씀으로 인치며 증거한다.”
(그는 상관으로부터 성체 빵을 받고 그의 단검 끝으로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피를
내어 자신의 이름을 쓴다.)
상관:
“이제 일어나라. 내가 네 자신을 이 지위에
속하는 예수회의 멤버들에게 알리기 위해 필요한 교리문답으로 너를 인도할 것이다.”

“첫째로, 제수잇의 한 형제로서 너는 로마
카톨릭의 평범한 신도가 하는 것처럼 서로 상호간에 십자가의 일반적인 표시를 할 것이며; 한 사람은 자신의
손바닥을 펴서 손목으로 십자가를 만들고, 다른 사람은 그 응답으로 자신의 발을 엇갈려서 십자가를 만든다;
먼저 한 사람이 오른손의 집게 손가락으로 왼손의 손바닥 중앙을 가리키면, 다른 사람은
왼손의 집게 손가락으로 오른손 손바닥의 중앙을 가리킨다; 처음 사람이 그의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 주변에
원을 그리면, 다음 사람이 그의 왼손 집게 손가락을 자신의 가슴 바로 밑에 왼쪽 면에 갖다 댄다;
처음 사람이 자신의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목에 십자가를 그리면, 다음 사람은 그 처음
사람의 배와 복부 밑에 단도를 가지고 한다. 처음 사람이 “루스툼(Iustum)”을 말하면; 다른 사람은 “네카(Necar)”라고 답하고; 처음 사람이 “레지스(Reges)”를 말하고 다음 사람이 “임피오스(Impious)라고
답한다. (이 의미들은 앞에서 설명했다.) “처음 사람이 독특한 방식으로
네 번 접혀진 작은 종이 쪽지를 줄 것이다. 다음 사람은 그것을 세로로 나눌 것이며, 첫 부분에, 십자가의 머리와 팔 위에 세 번 적혀진 예수(Jesu)라는 이름이 발견될 것이다:-“
질문:-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 거룩한
믿음.
Q.:- 너는 누구를 섬기는가?
A.:- 로마에 있는 거룩한 아버지, 교황,
그리고 세계의 우주적 교회 로마 카톨릭.
Q.:- 누가 너에게 명령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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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1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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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예수회의 설립자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계승자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
Q.:- 누가 너를 받아들였나?
A.:- 흰 머리를 가진 한 훌륭한 남자.
Q.:- 어떻게?
A.:- 단도와 함께, 나는 교황의 깃발과
우리의 성스러운 조직 아래 있는 십자가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Q.:- 너는 맹세를 하였는가?
A.:- 나는 연령, 성별,
조건을 가리지 않고 이단들과 그들의 정부와 통치자들을 파멸시킬 것과 내 자신의 어떤 의견이나 뜻도 없이 송장이 될 것과
중얼거리는 주저함 없이 모든 것들에 있어서 나의 상관들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Q.:- 너는 그렇게 할 것인가?
A.:-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Q.:- 너는 어떻게 여행하는가?
A.:- 어부 베드로의 돛배를 타고.
Q.:- 너는 어디로 여행하는가?
A.:- 지구의 네 구역으로.
Q.:- 무슨 목적을 위하여?
A.:- 나의 대장과 상관들의 명령들에 복종하기 위하여 그리고 교황의 뜻을 실행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맹세의 조건들을 신실하게 성취하기 위하여.
Q.:- “그러면 모든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땅들을 교황의 이름으로 차지하라.
이 땅에서 예수의 대리자와 부섭정으로서 그를 받아 들이지 않는 자는 저주 받게 하고 전멸당하게 하라.”
마지막 말

그들의 악명 높은 잔인함조차도 과거에 야후와[아버지]의 진리를 잠잠하게 하지 못했다. 중세 시대에 그분을 따랐던 자들은 그분을 배신하는 대신에
그들의 생명을 포기하기를 선택했다. 그와 같이, 이 마지막 날들에 야후와[아버지]의 참 제자들은 죽음에 이를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신실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의 군대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야후와[아버지]의 사랑에서 그들을 떼어 내는 데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신실한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 박해가 아무리 격렬하다
할지라도, 야후와께서 우리가 겪어야 할 모든 어려움과 고통에 우리와 함께 견뎌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라.“환난에서 내가 그와 함께 하리라”
(시편 91:15)는 것은 그분의 소중한 약속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단의 대리자인 8번째이자 마지막 왕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을 통한 사단의 진노에 마주할 준비를 갖추면서 다음의 성스러운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야후와[아버지]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떠받쳐 주리라.
보라, 네게 분노하던 모든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당황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고 너와 다투는 자들이 멸망하리라. 너와 다투던 자들을 네가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요, 너와 싸우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보잘것없는 것같이 되리니, 너의 야후와[아버지]가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리라. (이사야 4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