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가고 있다! 곧, 더 이상 시간이 없을 것이다. 세상을 깨트릴 모든 시대들의 절정이 곧 다가 온다. 지극히 위험한 이 때, 하늘은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야후와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그 임박한 위협에 대해 먼저 경고하지 않으시고는 세상에 알려져 왔던 것 중에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세상에 주어질 마지막 자비의 기별에는 가장 엄숙한 경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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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위험한 이 때, 하늘은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야후와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그 임박한 위협에 대해 먼저 경고하지 않으시고는 세상에 알려져 왔던 것 중에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
“이 일들 뒤에 내가 보니 큰 권능을 가진 또 다른 천사가 . . . 그가 우렁찬 음성으로 힘차게 외쳐 이르되, 저 큰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 . . 내 백성아, 너희는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야후와]께서 그녀의 불법들을 기억하셨느니라. 그녀가 너희에게 갚아 준 대로 그녀에게 갚아 주고 그녀의 행위에 따라 두 배를 그녀에게 두 배로 갚아 주며: 그녀가 채운 잔에 두 배를 그녀에게 채워 주라.” (요한계시록 18:1-6 참조)
“바빌론” 성경에서 모든 거짓 종교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상징으로 쓰였다. 이 땅의 마지막 경고는 여전히 바빌론 안에 있는 야후와의 백성들을 향한 외침이다.
그 기별은 영원한 결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일곱 마지막 재앙들로 즉시 따라오는 것이 바빌론, 전 세계의 멸망이기 때문이다. 진노의 그 큰 날에 보호받을 모든 자는 반드시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 바빌론으로부터 나오라는 외침에 주의해온 사람들만이 그 때에 안전할 것이다.
사탄은 그 경고에 주의하는 모든 자들이 그의 기만들로부터 영원히 안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최종적인 미혹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수많은 신실한 크리스챤들을 함정에 빠트리는 것이다. 최종적인 미혹은:
“그 기별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바빌론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늘의 마지막 초청을 무시해 버리는 데에 다양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개신교라는 이유로 그 경고를 거절한다. 그들은 교황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 기별이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다른 이들은, 그들이 그 주의 일곱째 날 예배 드리기 때문에 그 경고를 거절한다. 그들은 교황의 예배일, 일요일에 예배 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 기별이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 기별을 거절하는 모든 자들은, 자신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며, 자신들을 구별되게 하는 어떤 진리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거절한다. 그들이 이 진리를 믿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기별이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당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 때문에 그것이 당신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믿으며, 하늘의 경고를 거절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것은 진정 영적으로 눈 먼 것이며 영적 자살 행위다. 자신에게 있는 빛이 크고 믿고 있는 진리가 많을수록, 더 큰 빛과 더 많은 진리를 거절할 위험은 더 크다. 사탄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성경 진리를 고수한다고 고백하는 많은 자들의 마음을 눈 멀게 한다. 사탄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진리를 그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도록 이끈다.
야후와의 그 큰 사랑의 마음은 그분의 눈 먼 자녀들을 여전히 갈망하신다. 성경은 영적으로 눈 먼 교만이 마지막 세대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3:15-17)
마지막 세대는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 더 큰 성경 진리의 복을 받았다. 그러나 선물로 받은 그 진리들 안에서 교만해지는 것은, 새로운 빛은 어떤 것이든지 자동적으로 거절하는 사고방식을 형성한다. 빛이 클수록, 영적 교만과 영적 맹목의 위험은 더 크다.
그 기별이 눈이 먼 상태를 경고하기 때문에, 미지근한 상태에 대한 그 기별이 당신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 후에, 하늘이 그 치료법을 제공한다: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볼지니라.” (요한계시록 3:18)
바빌론으로부터 나와서 분리되라는 외침은, 야후와께서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를 야후와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자는 이 경고에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그들에게 적용되는지 연구해야 한다. 어떤 신념 체계도 면제되지 않는다. 어떤 특정 종파도 그 선언으로부터 예외 되지 않는다. 야후와께서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모든 자가 바빌론으로부터 나오라는 그 외침 안에 포함된다.
구약 성경에는 마지막 세대를 위한 유사한 경고가 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고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법을,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 주라.” (이사야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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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성경에서 모든 거짓 종교, 거짓 교리, 세속적인 것을 위해 사용된 상징이다. 그들이 바빌론 안에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야후와의 백성들에게 바빌론에서 나오라는 마지막 외침이 나가고 있다! |
경고 받고 있는 자들은 다름 아닌 야후와의 백성들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이, 그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눈 멀어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의를 행하며 자기 [야후와]의 규례를 [마치 그들이] 저버리지 아니한 민족과도 같이 날마다 나를 찾아서 내 길들 알기를 즐거워하나니 . . . ” (이사야 58:2)
이 경고는 그들을 만드신 분을 매일 구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길을 알기를 기뻐하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야후와께서, 무지한 죄들에 대해 회개하라고,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고 계시다.
이사야 58장은 버려진 그 규례를 밝혀준다:
“네가 만일 네 발을 돌이켜 안식일을 범하지 아니하고 내 거룩한 날에 네 쾌락을 행하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야후와]의 거룩한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하고 그를 공경하며 네 자신의 길들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자신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며 네 자신의 말들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스스로 야후와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 . .” (이사야 58:13-14 참조)
마지막 날들에 이루어질 안식일 회복 역사가 그 전 구절에 설명되어 있다:
“또 네게서 나올 자들이 오래되고 폐허가 된 곳들을 건축하며 너는 많은 세대들의 기초들을 일으켜 세우리니;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라 하며, 거할 수 있도록 행로들을 복구하는 자라 하리라.” (이사야 58:12)
바빌론에서 나오라는 그 마지막 외침은, 자신들이 심지어 바빌론 안에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야후와의 백성들에게 주어진다! 바빌론 안에 완전히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볼 수도 없다. 치명적인 영적 맹목이 그들을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진리들 안에서 교만하게 이끌고 하늘의 마지막 경고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무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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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단지, 세상의 이교 종교들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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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단지, 이슬람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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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단지,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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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단지, 일요일을 지키는 교회들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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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단지, 토요일을 지키는 교회들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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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조직화된 종교와 종파들 모두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모든 종파들이 언제 예배 드릴지를 정하기 위해 이교 달력에 기초한 이교 달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토요일 또는 일요일. |
바빌론은 조직화된 종교와 종파들모두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모든 종파들이 언제 예배 드릴지를 정하기 위해 이교 달력에 기초한 이교 달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토요일 또는 일요일
당신이 로마 카톨릭이든지 아니면 제칠일안식일교인이든지; 당신이 정통파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교회든지; 당신이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나사렛 또는 어떤 다른 교회의 교인이든지 만약 당신의 교회가 금요일,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예배 드린다면, 당신은 바빌론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초청은 당신에게 해당된다.
바빌론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삶의 방식이 바뀌는 사건이다.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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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적 목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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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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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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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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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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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 그리고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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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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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관계
바빌론은 우상 숭배와 사단의 기만들과 함께 한 죄들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의미한다. 바빌론으로부터 나오라는 것은 세상과 그 유혹들로부터 완전한 분리를 요구한다. 세속적 유혹들은 다양한 사람들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세상적 성공에 사로잡힌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교회 성도들간의 우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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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다는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
어떤 이들에게는, 바빌론의 닻으로 인식되지 않는 그들의 집, 자동차, 생활방식, 오락, 도시 생활에 대한 사랑이 유혹들이다. 모든 이들에게, 배우자, 가족, 친구들, 교회, 동료들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이 바빌론과 연결되는 가장 강력한 끈이 될 수 있다. 분리된다는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각 개인에게 자신만의 감정적인 유대 관계들과 세상적인 유혹들이 있을 것이다. 그 유혹들이 그 마음으로 하여금 바빌론으로부터 나와서 분리되라는 그 외침을 멀리하도록 합리화하게끔 부추긴다. 성령은 각 개인에게 자신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바빌론”인지 깨닫게 할 것이다. 야후와의 영이 격려하는 대로 즉시 순종하는 것이 영원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바빌론을 떠나라는 외침에 주의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눈 멀었던 과거의 상태를 인정하고 어떠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진리를 기꺼이 다르겠다는 의욕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분께서 “너는 오늘 땅의 것들과 하늘의 것들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말씀하실 때,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받는 모든 자들은 땅에 사는 동안,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분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어린양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당신은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구주를 따르겠습니까? 오늘, 당신은 그 초청을 받아들이겠습니까?당신은 바빌론으로부터 나오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