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과 교황권 둘 다 그것을 원한다.
- 그것의 출현이 세상을 억류할 것이다.
- 그것이 2000년 전에 예언되었다.
-
여러분이 그 희생양이
되지 않는 방법.
서문
이 세상은 곧 (수십
년 후가 아니라 수년 안에), 그 끝을
예고할 전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준비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르며 이 기별을 많은 나라들에
전하고 있다.
이
글을 계속 읽는 사람들에게, 월드
라스트 챈스가 터무니없이 들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희망하지, 세계를
뒤덮을 거대한 위기와 종말을 분명히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신의 반응과 질문들을 상상하며, 당신의
질문들에 답하는 방식으로, 미래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왜 이 세상이 마지막 기회를 응시하고
있는지 공유할 것이다!
안내자로서의 성경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작은 그룹의 일부다. 상당한 시간을 연구에 할애한 후, 특별히 우리의 미래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가 배운 것을 당신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지식은, 그것이 당신에게 쓸모 있기 위해, 우리가 고난과 희생, 심지어 목숨 그 자체까지라도 기꺼이 감수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강한 세력들이 이 정보를 침묵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2. 당신은 왜 성경을 그렇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가?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지 우리가 발견하며 놀라기 전까지,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수 천년 전의 예언들이 예견된, 바로 그 날에, 문자 그대로 발생할 정도로 정확하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성경 뒤에 모든 것을 아시는 야후와[아버지]가 계시다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분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시작부터 끝을 아신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하늘에 우리를 위한 한 장소를 예비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가 죄라는 질병에 감염되어 하늘에서 야후와와 함께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야후와께서 그 죄라는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예비하셨다.
만약 야후와께서 미래에 대한 그토록 온전한 통제와 지식을 보여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진지하게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전문적 지식이 두 개의 책에서 가장 명확하게 밝혀진다: 구약 성경의 다니엘과 신약 성경의 요한계시록.
성취된 성경의 예언들
3. 성경 안에 성취된 예언의 예를 들어본다.
다니엘2장에서, 야후와께서
바벨론의 왕의 꿈을
통해, 그의
시대로부터 마지막 시대까지 세상에 오직 네 개의
세계적 제국들이 있을 것에 대한 윤곽을 제시하셨다. 역사는
야후와께서 예언하신 것이 옳았음을 입증한다.
(주목:성경에서
야후와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칠 제국들에
대해서만 계수하시고 예언하신다) 네 개의
제국은 다음과 같다: 바벨론 (기원전605
- 기원전538), 메대-페르시아 (기원전538
- 기원전331), 그리스(기원전331
- 기원전168), 그리고 로마 (기원전168
- 서기476). 그분께서
로마가 열 개의 영토들로 분열될 것과 이러한 영토들의
시대에 세상이 끝날 것임 또한 밝히셨다. 역사는
야후와의 말씀이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서기 476년까지,로마는
열 개의 나라들로 나뉘어졌고 그 나라들로부터 오늘날의
유럽이 출현했다.
추가적으로, 야후와께서 각 제국들에 대해 그들이 권세를 얻고 잃는 방식들과 각 정부의 주요한 특징들에 관한 독특한 특성들에 대해 밝히셨다. 다니엘 7장과 8장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정직한 학생과 성경은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늘에 계신 야후와[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충분한 증거들이 주어졌다.
4. 성경 예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언의 목적은 미래의 위기들을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야후와께서 노아에게 다가오는 홍수를 경고하셨고, 아브라함과 롯에게 소돔과 고모라 도시들의 멸망을 경고하셨으며, 모세에게 애굽의 재앙들을 말씀하셨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그 경고들에 순종해야 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야후와께서 예언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발생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들 중 어떤 것도 무시할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성취될 예언들이, 우리가 만일 순종한다면, 위기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한 경고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들은 두 가지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 우리의 마음에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시는 야후와의 실재에 대해 각인시켜 주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중대한 상황을 경고하기 위해.
가장 두렵고 엄숙한 경고
5. 성경의 예언 중에 아직 더 성취되어야 할 것이 있는가?
사실,가장 엄숙한 예언상의 경고가 앞으로 성취되어야 한다.오늘날,우리가 이 예언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건들의 급박한 성취를 나타내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6. 곧 성취될 가장 엄숙한 예언상의 경고에 대해 저희와 함께 연구하세요.
“셋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자기 이마
안에나 손 안에 그의 표를 받으면, 바로
그 사람은 야후와의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시리라.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는도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낮이나 밤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는도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나니 곧 여기에 야후와의 명령들과
야후슈아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더라.” 요한계시록14:
9-12.
이 두려운 경고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묘사한다. 첫째
그룹은 짐승과, 그짐승의 표를
받도록 이끄는 그의 우상을 경배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 사람들이고, 둘째
그룹은 야후와의 계명들을 지킴에 따라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묘사가 이 경고 바로 뒤에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해당되는 마지막 경고임을
안다.
7. 어떻게
내가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는 것과 그의 표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나?
좋은 질문이다. 그것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과 그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야후와께서 우리에게 확실한 방식으로 규명해주시지 않고는 그러한 위험한 개체들에 관해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으실 것이다.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있는 것에 관해, 우리의 사랑의 야후와께서 우리로 하여금 추측에 맡기도록 하지 않으실 것이다. 어렵지 않게, 우리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 대한 묘사를 성경에서 발견한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 안에, 그것들의 정체를 풀기 위해 주어진 많은 열쇠가 있다.
짐승의 정체 규명하기
8.성경은 이 짐승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더라.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2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4 그들이 그 짐승에게 권능을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그와 전쟁을 하겠느냐? 하더라. 5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6 그가 입을 벌려 야후와를 대적하며 모독하되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7 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8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17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18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13: 1-8, 16-18.

9. 위의 구절은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어떻게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나?
우리는 성경으로 하여금 그 안의 상징들을 해석하도록 허락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야후와께서 우리를 위해,성경 안에 이러한 상징들의 의미를 밝히셨다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그것들에 대한 해석을 발견하기 위해 부지런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방법에 의해,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추측과 억측을 피할 수 있다.
성경은 실제로 인간적인 추측과 억측을 정죄한다. 왜냐하면 “어떤 예언도… 사사로이 해석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1:20. 성경은 그 자체의 상징들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에는 404개의 구절이 있다. 이러한404개의 구절들 중에, 278개는 성경의 다른 책들에 있는 단어들과 거의 일치된다. 거기에서 그것들의 의미가 상술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이 성경의 베레아 사람들처럼 행하기를 권고한다. (사도행전17:10, 11) 모든 가르침을 성경이라는 시험대에 가지고 와야 한다.진리를 알고자 갈망하며 성경을 기도하면서 연구하는 자마다, 그것에 순종할 수 있으며, 성경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 교리가 야후와에게서 왔는지 혹은 내가 스스로 말하는지 알리라.” 요한복음7:17.
10. 짐승과 그의 표의 정체를 알기 위해 우리가 예언상의 어떤 상징들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짐승과 관련된 예언상의 많은 상징들이 있다. 그 짐승의 정체를 쉽게 규명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줄 상징들이 다음과 같다: ‘짐승’, ‘용’, ‘바다’, ‘마흔 두 달’, 그리고 ‘신성모독’.
짐승: 성경의 예언에서, 짐승은 왕이나 왕국을 상징한다. “이 네 큰 짐승은 땅에서 일어날 네 왕이니라 … 넷째 짐승은 땅 위에서 넷째 왕국이 될 터인데 …” 다니엘7:17, 23. 이 짐승과 함께, 우리는 독특한 한 왕국을 연구하고 있다. 그 왕국은 정치적 권세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권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짐승을 경배하기” 때문이다.계13:4.
용: 성경에 따르면, 용은 거짓과 속임의 아비,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 이것은 사탄이 그 짐승에게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 를 줄 때, 우리는 그 짐승이 사탄처럼 속이며 동일하게 악한 방식들로 행동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큰 기만이 짐승의 일들에서 발견될 것이다. 계12:9, 13:2
바다: 성경의 예언에서, 바다는 많고 다양한 사람들, 대중을 상징한다. “네가 본 물들은 …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니라.”계17:15. 따라서, 바다로부터 올라온 이 독특한 왕국이나 권세는 그것이 다양한 민족들로, 인구가 밀집된 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흔 두 달: 이
기간은 삼년 반과 동일하다 (42를12개월로
나눈다). 그리고
성경은 유대인들의 날짜 계산법에 기초하여 기록되었다. 유대인의
일년은 360일이다.
(한
달이 30일이다).그러므로, 삼년
반과 마흔 두 달은 둘 다 1260일로
동일하다. 우리가
그 개월 수를 날짜로 바꾸는 이유는 야후와께서 시간상의
예언들을 주실 때, 종종
일년을 일일로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곧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사십
년 동안 너희가 너희 불법들을 담당할지니...”
“내가
네게 각 날을
일 년으로
정하였느니라.” 민수기14:34,에스겔4:6
그러므로, 예언상의 마흔 두 달은 126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 기간 동안 그 짐승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 이 주어지며, 또 그가“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 을 얻는다. 계 13:5, 7. 이 기간 동안 그 짐승이 신성모독하며,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큰 권세를 얻음을 의미한다.
신성모독: 성경에서, 신성모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정의된다. 첫째는 사람 자신이 야후와나 그분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할 때이다.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네 자신을 엘로아로 만들기 때문이니라." 요한복음10:33. 그러므로 그 짐승,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이 권세와 왕국이 이 땅에서 야후와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가장하며 야후와를 모독하여 왔다. 신성모독을 범하는 둘째 방식은 사죄를 허락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세를 주장하는 것). “사람이 어찌하여 이렇게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느냐? 오직 야후와 외에 누가 능히 죄들을 용서하겠느냐? 마가복음2:7.
그 짐승,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인 이 권세와 왕국이 이 땅에서 그분의 자리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면죄부를 주장함으로써 야후와를 모독해왔다. 그 짐승이 “신성모독의 이름” 을 가지고 “야후와를 대적하여, 그분의 이름에 대하여 신성모독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다. 이것은 그 짐승이 야후와의 유일한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계13:1, 6.
아홉 개의 주요 특징
성경으로 하여금 그 자체의 상징들의 의미를 풀도록 허락하면서, 우리는 이제 역사상 어떤 세력이 이러한 특징들을 충족시키는지 결정하기 위해 짐승의 정체를 알려주는 아홉 개의 주요 특징들을 설명하겠다. 이것들만이 유일한 식별자는 아니다: 성경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주요한 식별 기준들에 대한 이 목록이 당신으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찾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도록 이끌기를 희망한다.
1. 그 짐승은 종교적
권세와 정치적 권세를 동시에 가진다. “그들이
그 짐승에게 경배하고 …” 계 13:4
2. 그
짐승은 인구가 밀집된 곳에서 세력을 얻는다. “내가
보니 바다로부터 한 짐승이 올라오더라” 계 13:1
3. 그
짐승은 그의 권세와 권위를 사탄으로부터 얻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의 역사가 큰 기만을 포함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 [그
짐승]에게
주었더라.” 계.
13:2.
4. 그
짐승은 1260년
동안 절대적인 패권 (지배력) 을
가지고 무자비하게 통치한다. 이 기간은 반드시 명확한
시작점을 가지며 ‘죽게 되는 상처’ 로 인해 끝난다.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또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계.
13:5, 3, 7
5. 그
짐승은 1260년
동안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
받고” 계.
13:7.
6. 그
짐승은 그 ‘죽게 되었던 상처’를 완전히 회복할
것이며 세상은 그것을 이상히 여길 것이다.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계.
13:3.
7. 그
짐승이 그의 지위와 이름을 나타내는 신비한 666을
지닌다.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계.
13:18.
8. 그
짐승은 엘로아라고 주장하며 면죄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 를
부여함으로써 신성모독을 한다.
9. 그
짐승은 또 다른 신성모독적인 주장들을 하며, 오직
야후와의 권한에만 속한 조치들을 취한다.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계.
13:5.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역사상
어떤 권세가 이 모든 특징들을 충족시키나요? 정직한
마음을 가진다면,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야후와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그
짐승이다. 이 글의
목적은 로마 카톨릭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체계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어떤
누구도 화낼 필요 없으며, 오히려
사실들과 확증을 찾고자 고무될 필요가 있다.
11. 역사적인 증거와 사실들과 함께 부디 이 결론을 지지하시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로마 카톨릭과만 일치하는지 보기 위해 각각의 특징들을 살펴봅시다.
(1) 로마 카톨릭 교회는 종교적 권세와 정치적 권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도 요한은 예언상의 계시로, 세상의 넷째이자 마지막 왕국과 관련된 이 결합을 보며 그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한여자가 주홍색 짐승 위에 앉아 있더라.” 계. 17:3.
성경에서, 여자는교회를 상징한다. “오이스라엘의 집아, 마치 아내가 분명히 자기 남편을 배신하고 떠나는 것 같이 너희가 나를 배신하였느니라. 야후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예레미야 3:20; 고린도후서 11:2.
추가로, 짐승이 하나의 나라라는 것은 예언에서 만장일치로 이해된다. 심지어 오늘날의 세상에 있어서도, 나라들은 짐승들로 상징화된다. 미국은 독수리로 보여지고, 러시아는 곰으로 연결되며, 중국은 용의 형상을 달고 다닌다.
오래 전에, 야후와께서 다니엘에게 시대의 끝까지의 세상 모든 제국들에 관해 밝혀주셨다. 계시를 통해, 다니엘은 마지막 짐승이 “다른 모든 짐승과 다를” 것임을 보았다. 다니엘7:19.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다를 것인가? 요한계시록17:3 에 따르면, 위에서 보여진 대로, 이 짐승(나라)은 그것을 통치하는 한 여자 (에클레시아/교회)를 가질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 권세로서 교회와 국가가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세상에서 이것을 성취해온 유일한 개체는 로마 카톨릭 교회다.
로마 카톨릭 교황은 전 세계적으로 십억 이상의 추종자들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종교 지도자이다.
“로마의 교황은,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주교들과 신실한 자들의 모든 공동체, 둘의 연합의 기초이며 영속적이며 가시적인 원천이다.” 바티칸 회의 II (1962-65)
“심지어 교황이 악한 것을 명한다 할지라도, 모든 성직자는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교황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황 이노센트 III (1198-1216)
동시에, 교황은 독립된 나라 바티칸 도시를 주관하는 왕이다. 바티칸은 이탈리아 안에 있지만, 별개의 주권을 가진 작은 나라다. 그러므로, 교황권은 종교적 권세와 국가적 권세를 아울러 가진 독특한 권세다.
(2)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권세를 얻었다:
이것은 유럽의 다양한 권세들과 나라들 가운데서 일어난 로마 카톨릭 교회를 완벽하게 묘사한다.
(3) 로마 카톨릭 교회의 역사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잘 아는 카톨릭 신자들은 교황에 대한 삶의 방식으로서 위조들이 사실임을 쉽게 보여준다. 제 이차 바티칸 의회(1962-1965)의 고문이었던 카톨릭 사제이자 신학자, 한스 큉은 오세기와 같은 초기의 교황들은 “분명한 위조들을 가지고 결정적으로 그들의 권세를 확장했다.” 고 말했다. 카톨릭 교회: 짧은 역사 (존 보든 번역), 61쪽
가장 좋은 예들 중 하나가 콘스탄틴의 기부 증서로서, 서기315년3월30일 날짜의 것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들의 권세와 권위를 확장할 것을 위조했다. 이 거짓 문서를 통해, 교황 스테파노 III세는 8세기에 롬바르드의 영역들이 콘스탄틴에 의해 로마 카톨릭 교회에 수여됐다고 프랑크족의 왕, 피핀을 납득시켰다. 이것은 피핀으로 롬바르드와 싸우고 교황을 위해 그 도시들을 빼앗도록 이끌었다. 1440년, 이 서류는 로렌초 발라라 불리는 교황의 보좌관에 의해 위조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교황들은 여전히 이 위조를 결코 인정하지 않고 자백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로마의 성 요한 라테란의 세례당에 새겨진 글은 이 위조된 문서를 영구히 드러내고 있다.
교황이 신세계질서를 외친다: “바티칸 도시 (AP) -- 교황 요한 바오로 II는 목요일에,새로워진 외침과 함께 새해를 알리는 종을 울렸다… 인간의 존엄과 나라들 사이에서의 평등을 존중하는 것에 기초한 신세계질서의 창조.”목요일, 2004년1월1일 게시: 오전9:21 EST (1421 GMT)
“적그리스도의 전 체제 –신세계질서-- 의 특징은 노골적인 거짓말이다. 사실, 신세계질서 작가들은 그들의 계획된 기만들을 뽐낸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계 인구 대다수가 너무도 멍청하고 게을러서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거만하게 믿기 때문이다. 오직 신세계질서의 계획자들만이 세상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며, 오직 가난한 대중들을 정교하게 속임을 통해서 그들의 목적들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해왔다.” 빌 쿠퍼, "Behold A Pale Horse" p.49
(4) 로마 카톨릭 교회는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지며 1260년 동안 무자비하게 통치했다. 이 기간은 명확한 시작점이 있으며, ‘죽게 되었던 상처’로 마쳐진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 비오 VI]가 나폴레옹의 명령에 의해 프랑스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1798년에 죽게 되는 상처를 입는다.
“1798년에 베르띠에르 장군은 로마에 입성했고,교황의 정권을 폐했으며, 일반 정권을 수립했다.” 브리태니카 백과, 1941년판
그 예언의 끝이 1798년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126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서기 538년에 이른다.교황권이 이 정체를 알려주는 특징을 완성하기 위해, 1260년이라는 기간의 시작을 알릴 중요한 사건이 서기 538년에 발생했어야 한다.
서기 533년에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교황을 로마 제국의 동쪽과 서쪽 둘 다에서 모든 교회들의 ‘수장’으로서 그의 기독교에 대한 지상권을 인정했다는 것이 역사적인 증거를 통해 밝혀진다. 그러나,교황이 그의 마지막 아리우스의 반대자, (그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했던)동고트 족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난 서기 538년까지는 아직 교황이 서쪽에서 큰 세력으로서 등극하지 못했었다. 서기538년에 교황을 위한 점진적이지만 안정적인 지배권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비길리우스는… 벨리사리우스의 군사의 보호 아래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서기538년).” 기독교 교회의 역사, 제3권, 327쪽
교황권의 세력이 커져감에 따라,교황권은 그들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통치자들과 왕들도 정복했다.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황들은 유럽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그들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교황의 몇 가지 교서들을 발행했다:
“왕들과 황제들을 밟아 뭉개는 것이 교황의 임무다” J.H.이그나스 될링거, 교황과 그 의회, (런던), 35쪽
“우리의 진노와 우리의 복수의 위협들을 두려워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교황들]를,그분 자신의 입으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 심판자들로 지정하셨기 때문이며; 왕들도 그들 스스로 우리의 권위에 복종하기 때문이다.”교황 니콜라스 I (서기858-867)
서기 1372년에 발행된 코에나 도미니라는 제목의, 교황 그레고리 XI의 교황 교서에서, 교황은 시민들과 종교계, 기독교계 전체를 주관하는 교황의 지배권을 선언했으며, 교황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들에게 세금을 내지 않는 모든 자를 파문했다. 교황의 이 교서는 이후의 교황들에 의해 고착되었고, 서기1568년에, 교황 비오 V는 그것이 영원한 법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위와 같은 단언이 서기1077년에 교황 그레고리 VII가 독일의 황제 헨리 IV왕에게 행한 처우에서 실제적으로 표출되었다.그 왕이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교황은 그를 파문하고 폐위시켰다. 헨리는 교황과 화해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낮추기 위해, 한 겨울에 알프스를 건넜다. 그가 교황의 성에 도착했을 때, 헨리는 교황을 보기 위한 허락을 받기 위해, 궁전 밖에서 비참한 옷차림을 하고 모자를 벗고 맨발로 기다려야 했다. 왕이 교황의 용서를 받기까지 금식하고 회개하며 삼일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주관하는 이 최상권의 주장이 교황권에 의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제일견 [The First See, 로마의 교황권]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판단 받지 않는다. 그 스스로,홀로 판단하는 것이 로마 교황의 권리이며… 한 국가에서 가장 높은 권리를 가지는 자… 로마 교황의 결정이나 칙령에 대항하여 항소하거나 소구할 수 없다.” The Code of Canon Law (Paulist Press, 1985), pp. 951, 271
(5) 로마 카톨릭 교회는 1260년이라는 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
이 역사의 기간 동안 (중세 시대라고도 알려진), 로마 카톨릭 교회는 유럽 위에 강한 지배력을 가졌고, 모든 시민들은 로마 카톨릭 신자가 되도록 요구되었다. 교황에게 전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고문이나 사형에까지 이르는 형벌을 받았다. 이것으로 인해 로마 카톨릭 체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하게 핍박을 가하는 종교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교황권의 어두운 면, 피터 드 로사, 180쪽
“로마 교회에 반대하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인해, 역사는 일억 이상의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기록한다.” 브리프 바이블 스터디, 16쪽
“우리는 종교재판소를 … 인류 역사의 기록 중, 가장 어두운 오점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윌 듀란, 문명화 이야기, 제4권, 78쪽
“로마 교회는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그 어떠한 종교재판보다도 더 많은, 무고한 피를 흘리게 했다는 것에 대하여, 온전한 역사 지식을 가진 프로테스탄트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그 많은 희생자들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어떠한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실감할 수 없음이 확실하다.” W. E. H. Lee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of the Spi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2:32, 1910 edition
카톨릭 백과사전, 제12권, 266쪽에서, 독자는 ‘이단자들’ 을 형벌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묘사하는 장문의 글을 발견할 것이다. 그 ‘이단자들’의 유일한 죄목은 그들이 성경을 믿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다.
(6)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죽게 되었던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며 온 세상이 그것을 놀랍게 여길 것이다:
교황 비오 VI가 1799년 프랑스에서의 포로 생활 중 죽었을 때,세상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러나,그 짐승이 죽게 되었던 상처로부터 회복될 것이라고 야후와께서 약 2000년 전에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뉴욕 타임즈가 어떻게 그 짐승, 교황권의 회복을 보도했는지 소개한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처가 회복됨: 로마, 6월7일—아침11시부터 세상에 또 다른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가 생겼다. 그 시간에 무솔리니 수상은 … 교황 비오XI를 대리하여, 교황권의 장관, 가스파리 추기경과 함께 2월11일에 라테란 궁전에서 서명한 조약들의 비준을 교환했다. 그 간단한 조치에 의해 바티칸 도시라는 독립된 주권 국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뉴욕 타임즈, 7월7일, 1929년
샌프란시스코 신문은 교황권의 ‘회복’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무솔리니와 가스파리(추기경)가 역사적인 협정에 서명하다… 오랜 기간 동안의 상처가 치유되다.” 샌프란시스코 신문, 7월7일, 1929년
오늘날 세상이, 성경이 예견한 대로, 그 교황권을 ‘놀랍게’ 여기고 있나?
“정말로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인, 교황 요한 바오로 II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그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과 가르침들을 여기 미국에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수용해야만 하는 과제다.” 조지W.부시 대통령, 3월21일,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II는 현 세기의 가장 도덕적이고 영적인 지도자들 중 한 명이다.” 토요일 저녁 포스트에서 빌리 그래함, 1월-2월. 1980년
“나는 교황 요한 XXIII에 굉장히 감복한다. 나는 그가 이 세상에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다고 느꼈다.” 빌리 그래함, 시카고 트리뷴, 6월8일, 1963년
“교황 요한 바오로 II는 멕시코 시티에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위해 스페인에서 외부 미사를 거행했다.” 뉴욕 타임즈, 1월25일, 1999년
“수요일 밤에 거룩한 아버지가 고어 부통령과 함께 활주로를 걸으면서 ... “쉐퍼드I” 에 탑승하고 로마로 돌아가는데, 사람들이 울고, 손수건을 흔들며 “요한 바오로II여,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교황이 세인트루이스에 방문한 것은 짧지만 매우 역동적이고 강력한 방문이었다.” 1월28일, 1999년 (EWTNews)
“요한 XXIII와 요한 바오로 II와 함께 바오로 VI가 세 명의 위대한 평화의 교황들로 기억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이 뉴 에이지로 들어가는 중대한 초월성의 선구자다.” 로버트 뮬러,전직U.N.부 사무총장
(7)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비한 수 666을 지닌다:
교황의 공식 직함은 “Vicarius Filii Dei”로서, 번역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다. 확인을 위해, 카톨릭 신문인 우리의 일요일 방문자 1915년4월18일자를 보면 된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다: “교황의 삼층관에 새겨진 글자는 다음과 같다: ‘Vicarius Filii Dei’. 라틴어 철자들에는 숫자 값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합산하면 666이 나온다.
![]()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 (라틴어) |
(8)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 이라고 주장하며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신성모독을 한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전능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교황 레오 XIII, 1894년6월20일자 회칙에서,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일뿐만 아니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다. 육체의 휘장 아래 감추어져 있는.” 카톨릭 내쇼날, 1895년7월 “교회 안에서 최고의 스승은 로마 교황이다… [그는]요구한다… 온전한 복종과 의지의 순종을… 하나님 그분께 하는 것 처럼.” 교황 레오 XIII,대 회칙, 193쪽 “교황 요한 바오로 II는 지금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그의 자리로부터 우주적인 교회를 주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제목의 기사에서 발췌했음, “오클랜드 주교가 ‘교황이 십자가로부터 주관한다’라고 말하다” 오클랜드, 뉴질랜드, 2004년9월20일, Zenit.org |
“정말로, 그들의 임무들의 숭고함으로 볼 때, 그 사제들이 매우 많은 신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다.” 교황 이노센트 III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 땅 위에, 독특한 종류의 상품을 위한 광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그 상품에 대해서는 그 교회에 경쟁자들이 없으며 충족시킬 수 없는 수요가 있다. 그 교회는,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야후와의 은혜를 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까지, 신성모독을 하는 이 권세는,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유지하고 있다.
“재판관 같은 이 권위는 심지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포함한다.” 카톨릭 백과 사전 제 12권, -기사 “교황”, 265쪽
“또한 하나님
그분은 그분의 사제가 용서하지 않든 용서하든 그의
심판에 의해 지탱되는 것에 의무가 지워지며, 그들이
면죄부를 주는 것을 거절해도 그것에 따라야 하며, 그
참회자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조건 하에 그러하다.” 사제의
존엄과 의무들,
27쪽,뉴욕:
Benziger Brothers, Printers to the Holy Apostolic See, 1888
(9)로마
카톨릭 교회는 야후와께만 속한 조처들을 맡음으로써
또 다른 신성모독의 주장들을 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성모독적인 주장들과 가르침들의 예가 여기 있다:
“사제는 그 열쇠들의 권한을 가지거나, 지옥으로부터 죄인들을 구원하는 권세를 가지며, 그들을 천국에 들어가게 만들 수 있고, 그들을 사탄의 노예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이 사제들의 판결에 의해 의무가 지워진다… 우주의 주권자는 오직 그 종을 따른다. 사제들이 이 땅에서 결정하는 모든 것을 하늘에서 승인하심으로써 그러하다.” Liguori, “사제의 의무들과 존엄성”, 27쪽, 28쪽
"그러므로 사제는, 어떤 면에서, 그의 창조자의 창조자라고 불릴 수 있다 . . ." |
“그러므로 사제는, 어떤 면에서, 그의 창조자의 창조자라고 불릴 수 있다. 신성한 말을 함으로써, 그는 만든다, 예수가 성찬식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찬의 실재를 그에게 줌으로써, 그를 영원한 아버지께 바칠 희생양으로 만든다… 사제의 힘은 신성한 사람의 힘이다; 이는 그 빵의 성변화가 세상의 창조 때와 같은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Saint Bernadine of Sienna
“사제들은 세상의 구주들이다.” Saint Jerome
그 교회의 신성모독적인 조치들을 위함에 따라,로마 카톨릭 교회는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신성모독적인 짓을 범해왔다. 그녀는 야후와의 십계명 자체를 변경했다. 그녀는 감히 둘째 계명을 통째로 삭제했다. 이는 그 계명이 그녀의 관습들과 의식들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악하게, 그녀가 넷째 계명에 있는 예배일을 결정하는 달력을 변경했고, 자신들의 달력을 제정하여, 그 안에서 일요일을 숭배했다. 영원한 이 명령을 야후와께서 아담에게 창조시에 주셨고, “내 언약을 깨뜨리거나 내 입술에서 나간 것을 변개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89:34의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도 확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들이 행해졌다.
십계명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야후와의 음성이 회중이 있는 가운데 선포된 부분이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확실하게 한 글자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야후와께서 그것들을 그분 자신의 손가락으로 쓰셔서 모세에게 건네셨다. “야후와께서 이 말씀들 [십계명]을 … 너희의 온 집회에 말씀하신 뒤에 더 이상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들을 두 돌 판에 써서…” 신명기5:22.
그리스도께서 십계명의 불변성을 더욱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또 율법의 일 획이 없어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쉬우니라.” 누가복음16:17.하늘에서 빛나는 태양과, 당신이 살고 있는 그 견고한 땅이, 그분의 율법이 변할 수 없고 영원하다는 것에 대한 야후와의 증인들이다.그것들이 사라질지라도, 신성의 법칙들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또한 확정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마태복음5:17, 18.
카톨릭 교회는 예배일을 변경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실, 그녀는 이 조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그것을 다른 “교회들”과 종교들을 주관하는 그녀의 권위와 최상권의 ‘표’로 여긴다. “율법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날인, 안식일이 주의 날로 변경되었다. 이것들과 다른 것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명령들 때문에 중단되지 않아왔으나, (왜냐하면 그분께서 친히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오히려 그것을 성취하러 왔느니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교회의 권위로 인해 그들이 그것을 변경하였다.” 대주교of Rheggio, 1-18-1562의 설교, Mansi XXIII, 526쪽 “일요일은 카톨릭의 제도이며,그것의 신성함에 대한 주장은 오직 카톨릭의 권위에 의해 옹호될 수 있다… 거룩한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매 주간의 공공 예배가 그 주의 마지막 날로부터 첫 날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단 하나의 문장도 발견하지 못한다.” 카톨릭 신문,시드니, 8-25-1900 “성경 어느 곳에도 예배일이 토요일로부터 일요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성경이 세상에 주어지기 몇 세기 전부터 교회는 존재했었다. 교회가 성경을 만든 것이지; 성경이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다.” 카톨릭에 관한 질문들, by 마틴J. 스콧, 1927년판, 136쪽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기념한다. 왜냐하면 카톨릭 교회가 서기 364년에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토요일로부터 일요일로 그 신성함을 옮겼기 때문이다.” 카톨릭 교리문답의 변경들, from P. Geiermann, 교황 비오 X의 업적, on 1-25-1910 로마 카톨릭 교회에 따르면 ‘일요일’은 그들의 독특하고 구별된 권위의 표다. “일요일은 우리의 권위의 표다. 이 교회는 성경 위에 있으며, 안식일 준수의 이 변경은 그 사실에 대한 증거다. 카톨릭 기록, 런던, 온타리오, 1923년9월1일 “개신교도들에 의한 일요일 준수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향해 나타내는 충성의 표다.” 오늘날의 개신교 정신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 by Monsignor Segur, p. 213 “그러나 개신교들의 마음은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그들이 그 교회, 그 교황의 대변인의 권위를 수용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일요일 방문자, 카톨릭 위클리, 1950년2월5일 “물론 카톨릭 교회는 그 변경이 그녀의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문제들에 있어서 그녀의 교회의 권세와 권위의 표.” 기본스 추기경의 지위, through C. F. 토마스 고문, 1895년11월11일 압도적인 증거의 무게로부터,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의 짐승이 로마 카톨릭 교회며, 그것의 표 (그 짐승의 표) 가 일요일 준수라고 확고하게 결론 지을 수 있다. 이 표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 당신은 그것의 신빙성을 인정하거나 승인하며 어떤 서류에 서명한 적이 있는가?당신이 ‘찬성한다는 도장’ 을 어딘가에 찍은 적이 있는가? 어떤 정부든지 규정이 있다. 오직 서명에 의해서만,서류는 신빙성을 갖게 된다. 정부의 발표들은 언제나 공식적인 표나 도장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표나 인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공식적인 도장이나 서명은 반드시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
위험한 변경 | |||
야후와의 율법 | 사람에 의해 변경된 야후와의 율법 | |||
I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야후와 네 엘로아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거하는 네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엿새
동안에 야후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야후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을 대적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
창조주의 인이 제거됨 |
1. 관직의
이름
2. 관직의
직함
3. 그의
권위의 영역 또는 영토
예를 들어, 미국의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할 때, 그는
반드시 그것을 조지 와싱톤 (이름), 미국(영역)의
대통령 (직함)으로
그것에 서명한다. 모든
서류는 공식적이고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 반드시
이러한 방식으로 서명 되어야 한다.
전능하신
창조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께서 하늘의 왕국을 갖고 계심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분의 왕국의 율법을 담고 있는 서류는 십계명이다. 그
십계명의 한 가운데를 볼 때, 우리는
살아계신 야후와 [아버지] 의
인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엿새 동안 야후와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셨음이더라…” 출애굽기20:11.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하세요:
1.이름: 야후와 (“나는
야후와라: 그것이
나의 이름이라”
이사야 42:8)
2. 직함: 창조주 (“야후와께서 만드셨더라”)
3. 영역: 하늘과
땅 (하늘과
땅)
명백하게, 창조주의
인은 그분의 안식일
계명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로서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안식일을 지킬 때,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창조주로서 인정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우리는
야후와를 우리의 창조주로 경배할 기회를 갖는다. 우리가
야후와께서 택하신 날을 거룩하게 지킬 때, 우리는
온 세상을 향해 우주의 창조주가 우리의 야후와 [아버지] 라는
것을 선포하게 된다! 마귀,
“루시퍼” 는
안식일을 공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처럼”
경배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사야14:14. 창조주께서
그분의 거룩한 안식일에 당신의 예배를 요구하시며, 창조주와
같이 되기를 구하는 사탄은 그의 일요일에 당신의
예배를 원한다.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니라. 안식일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적이 되리니 이것은 내가 야후와 너희 엘로힘인 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 에스겔20:20.
짐승의 우상은 무엇인가
12. 그렇다면 야후와께서 우리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짐승의 우상은 무엇인가?
짐승의 우상의 정체를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짐승의
우상이 형성되도록
돕는, 두 뿔
가진 짐승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 그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곧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니라... 14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15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17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요한계시록13:11-12,
14-17.
두 뿔 가진 이 짐승에게는
다음의 특징들이 있다:
1. 교황권이 1798년에
그 죽게 되었던 상처를 입었을 쯤에 이 짐승이 나타났다. “또
다른 짐승이 … 올라오는데” 계.
13:11.
2. 이
짐승은 땅으로부터 올라왔으며, 바다로부터
올라온 첫째 짐승과는 대조된다. 만약
‘바다’가 많은 사람들과 나라들을 의미한다면,
‘땅’은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았던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소수 거주자들의 지역에서 일어날 것이다.
3. 이
짐승은 어린양 같은 두 뿔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뿔은
세력을 의미한다.
“뿔들이… 그분께
있나니 거기에 그분의 권능이 감추어져 있도다.” 하박국3:4. 이
나라에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분리된 세력이 있다. 또한,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가 순결하고 고상한 기독교의 원칙들에 기초하여
세워졌다고 연역할 수 있다.
4. 그러나, 이
짐승은 용처럼 말한다. 입법적이고
사법적인 권위들을 통해 ‘말하는’ 나라다. 그
‘어린양 같은 뿔’과 ‘용의 음성’ 이 이 나라의
평화로운 선언들과 관례들 사이에 놀라운 대조를
가리킨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어떤
나라가 이러한 특징들을 충족시키나요? 답은
하나뿐입니다: 미국.
1. 미국은 1798년쯤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오직
한 나라만이, 교황이
그 힘을 잃은 1798년의
때에 존재하기에 이른다. 미국이 1787년에
연방 공화국으로서 헌법에 의하여 조직되었다.
2. 미국은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던 땅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구세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비교적
소수의 거주자들이 있는 신세계에서 일어났다.
3. 미국은
기독교의 원칙들 위에 세워진 두 개의 분리된 권위를
지닌다: 미국은
독특한 정부 형태를 가진다. 교회와
국가가 헌법에 의해 보장된 자유를 누린다. 정부의
이러한 체계 때문에, 미국은
진정으로 공화국 (왕이
없는 나라) 이며
개신교 (교황이
없는 교회) 국가이다. 그 두
개의 권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또한,그녀의
어린양 같은 특징은 미국을 많은 나라들에서 핍박 받고
압제 받는 자들의 은신처로 만들었다.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안식일에 당신의 예배를 요구하며, 사탄은 창조주처럼 되기를 구하며, 그의 일요일에 당신의 예배를 원한다.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4. 미국은
용처럼 말한다: 미국의
헌법에 기록된 기본법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것보다
더 소중하고 기본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미국이
이미 헌법의 모든 원칙들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또한
곧 완전히 부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에 더 큰 의미가 주어지는 것은 그것의
주목적이 일요일 준수의 강제라는 사실이다.
그런
조치는 이 정부의 원칙들, 곧
자유주의 제도의 진정성,독립의
선언과 헌법에 직접적으로 반대될 것이다.헌법에는
“국회가 종교의 설립에 관여하거나, 자유로운
활동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과 “어떠한 종교적 기준도 미국의 공익 재단의
관직에 대한 자격 요건으로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한
조치의 불일치가 이 상징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 그것은
어린양 같은 뿔을 가진 – 순결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공언하나 – 용처럼 말하는 짐승이다. 뉴스들과
근래에 발생하고 있는 것들을 관찰하기만 하면 성경적인
이 묘사가 맞다는 것이 확인될 것이다.
“또한 나는 믿음에 기초하여, 우리가 제안하고 있는 그 발의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 사이의 선을 침범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나는 그것이 미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지W. 부시, 설립 조항과 관련된 것을 망쳐 놓으며, quoted from Conrad Goeringer, AANEWS #889 (2001년2월28일) 미국의 무신자들로부터. 이 언급은 우리의 정부가 “종교의 설립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헌법의 권리 장전을 침해한다.
“우리의 우선 순위는 우리의
믿음이다.”
조지W. 부시, 그린즈버로,노쓰
캐롤라이나,
2000년10월10일, 제이콥
바인베어그로부터 인용,
“부시즘
전부”
“새로운 행정부에 의해 전해진 그 평범한 소식은 조지 W.부시의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며 비기독교인들도 그들의 지위를 완전히 동등한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용인되는 소수집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는 한 그 진영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알란M. Dershowitz, in
“부시는 헌법에 반항함으로써
움직이기 시작한다.”로스엔젤레스
타임즈,
2001년1월24일
13. 두 뿔 가진 짐승이 미국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과 짐승의 우상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나?
미국이 비록 교황권과 반대되는 원칙들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졌다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바티칸이 그들의 영향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더욱 긴밀하게 함께 일하는지를 알게 된다.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미국이 자국의 시민들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첫째 짐승, 교황을 경배하라고 요구하는 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말한다. “그[미국]가 첫째 짐승[교황권]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첫째로 미국, 그 다음은 전 세계]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 곧 치명적인 상처[1798] 가 나은[1929] 자에게 [교황권의 일요일을 높이며] 경배하게 하니라.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을 소유하여 그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 [종교적 주장을 강요하기 위해 국가의 권력을 이용했던 때의 교황권과 꼭 닮은] 을 위해 형상을 만들게 하더라.” 계. 13:12, 14.
머지않아, 미국이
일요일 준수 (짐승의
표) 를
강제하기 위해 자국의 종교적 자유를 포기할 것이다. 이것은 개신교의 교회들이
그들의 안건을 이루기 위해 정부를 통제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 일이
발생할 때, 미국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해 교회와 국가를 연합시키며
우상을 만들 것이다.그리고
미국이 “용처럼”말하며 “그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 를
행사할 것이다. 계.
13:11, 12.그녀는
첫째 짐승, 교황권에
의해 드러났던 편협과 핍박의 동일한 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자유가 상실됨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무리는 핍박을 피할 수 없게 되며, 중세 시대의 종교적 편협성이 반복될 것이다: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 [법제화된 일요일 법령] 에게 생명을 줄 권능을 소유하여 그 짐승의 형상이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토요일이 아닌, 오직 야후와의 달력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는 야후와의 참 일곱째 날 안식일을 높임으로써] 경배하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참 안식일을 높이는 자들은 사거나 파는 것이 금지될 것이다] 계. 13:15-17
어떤 이들은 그 표를 “그들의 이마에”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짓말을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11. 다른 이들은, 일요일이 참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그들의 생계를 보존하기 위해 그 표를 “그들의 오른손에” (행위의 상징) 받음으로써 복종하게 될 것이다.
14. 이것이 진실이 되기 위해, 교황권이 현재 일요일 숭배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과, 미국의 개신교도들이 태도를 바꾸어 일요일 법령을 법제화하는데 협력할 채비를 표현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증거가 있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이 교황권에 대해 호의적이며, 이것이 교황권으로 하여금 일요일 준수의 입법을 공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왔다:
“모든 미국인들이 – 만약 필요하다면 헌법의 수정을 통해서라도 – 국가적인 휴식의 날로서 (거짓) 안식일을 다시 확립하기 위한 연방법을 만들도록 대통령과 국회에 청원하는 일을 잘 해낼 것이다.” 카톨릭 트윈 써클, 1985년8월25일,기사"Sacking Sunday"
“이 문제에서, 나의 전임자 교황 레오 XIII는 … 일요일 휴식을 국가가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라고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II-디에스 도미니, 1998년5월31일
“그러므로… 그들의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를 국가적 입법이 존중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자연스럽게 노력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그들은 성체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일요일 휴식을 보내는 데 의식적으로 의무적이어야 하며, 주의 날의 성스러움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나 행동들을 삼가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II, 디에스 도미니, 1998년5월31일
“… 기독교인들은[모든 곳에서] 일요일의 인정과 법적인 휴일로서 교회의 거룩한 날을 추구해야 한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문답, popular and definitive edition, 2000, par 2188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개신교도 지도자들은 카톨릭과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II와 금요일에 만나고 있던 미국의 개신교와 동방 정교회들의 수장들은 더 큰 연합으로의 길 위에 이정표로서의 그들의 폭넓은 첫 대표자 논의를 환호하며 맞이했다… 연합 감리교도이며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총장인 도날드 존스 목사는 그것을 ‘세기의 가장 중요한 에큐메니칼 모임’이라고 칭했다. 크리스챤 쳐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세계 교회 통합 관료인, 인디애나폴리스의 폴 A.크로우 주니어 목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 이끌고 계시며’ 미래를 여는 ‘세계통합 교회주의의 새로운 날’이라고 불렀다.” 몽고메리 신문 1987년9월12일
![]() 빌리 그래함: “나는 나의 신념들이 근본적으로 정통 로마 카톨릭의 그것들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맥콜스, 1978년1월. 그 역시 요한 바오로 II를 “현대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지도자.” 라고 불렀다.토요일 이브닝 포스트, 1980년1월-2월 |
![]() 폴 크로우치: “나는 심지어 항의자(프로테스탄트)라는 단어를 나의 사전에서 박멸하고 있다… 나는 어떤 것도 항의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카톨릭과 비카톨릭이 한 영과 한 주님 안에서 합칠 때이다.”“주님을 찬양하라” 프로그램, 트리니티 방송 네트워크, 1989년10월17일 |
![]() 로버트 슐러: “지금은 개신교도들이 그 목자 [교황]에게 가서 “우리가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때이다.” 로스엔젤레스 헤럴드 Examiner, 1987년9월19일, 종교 페이지 |
![]() 데이비드 웰스: “만약 카톨릭 정신이 미래에 더욱 카톨릭과 같이 되야 한다면, 그것은 내가 현재의 교황 아래서 기대하는 것으로서, 신학적인 차이점들이 더욱 예리해질 것이며, 세속문화에 반하는 카톨릭과의 우리의 동맹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하나됨을 위하여, 나는 그 거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Eternity Magazine, 1987년9월 |
J. L. 파커:“기독교 생활에 대한 개신교와 카톨릭의 카리스마적인 가르침은 의도와 목적 모두에 있어 동일하다. 이것이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지 않은가?”J. I. 파커, 오늘의 기독교, 1992년6월22일
닐 C.윌슨: “비록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가명확하게 반-로마 카톨릭의 견해를 가졌던 기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 그러나 그런 태도는 이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적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닐C.윌슨, 전직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대총회장, 1974
어떻게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나
15.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수 있나?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야후와께서,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으로,짐승에게
경배하지 말고 그의 표를 받지 말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은 “야후와의 [자비가
없는]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실 것이다. 그가…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짐승과
그의 형상 [일요일
준수를 강제하는 미국] 에게 [일요일
준수를 통해 교황권을 높이며]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계.
14:10, 11.
야후와로부터 매우 엄숙한 말씀이 있다. 그분의 진노가 범죄에 비례하여 있다. 사탄이 교황권을 통해 만든 일요일을 높임으로써, 당신은 짐승의 표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거짓 날짜를 높이도록 속이기 원한다. 그의 기만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후와의 달력에 의해 정해지는 그분의 참 일곱째 날 안식일보다, 일요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높이기 때문에 일요일 준수가 더욱 적합하다고 믿을 것을 알면서 일요일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로 선택했다. 그러나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유일한 길은 야후와께서 선택하시지 않은 날을 높이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야후와께서 거룩한 날로 제정하신 유일한 날은 그분의 참 신성의 달력의 안식일이며 그것을 높임으로써 당신은 “살아계신 야후와[아버지]의 인” 을 받게 될 것이다. 계. 7:2.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영예롭게 하기 원한다면,성경은 당신에게 침례 (완전히 잠기는 것) 로써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로마서6:3-5참조. 물에 들어감으로써 (장사되고) 당신은 그분의 죽음을 인정한다. 물에서 나옴으로써 (소생하며) 당신은 그분의 부활을 인정한다.
16. 그분의 신성의 달력에 의해 결정되는 참 일곱째 날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켰던 과거의 수십억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들은 알지 못한 채로 짐승의 표를 받은 건가요? 그리고 일요일이 정말로 성경상의 안식일이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되나요?
과거 세대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성경상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요일을 지켰고,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를 포함하여 일요일이 “주의 날” 이라고 믿는 모든 “교회” 안에도 참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 빛이 그들에게 이르러 오지 않았기에 누구도 그들의 실수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 이는 야후와께서 무지의 시대는 “눈 감아” 주시기 때문이다. 사도행전17:30 참조. 우리는 오직 우리가 받았던 기회와 그 빛에 의해서만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일요일 법령이 강제될 때, 문제는 모든 사람 앞에 명백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로마의 권위에 의한 그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야후와의 명령을 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각 사람이 이 시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야후와의 명령과 교황권의 명령 중 어떤 것을 지킬 것인지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달려있다. 당신은 어디에 설 것인가?
중립을 위한 공간은 없다
17. 내가 왜 신경 써야 합니까? 종교계의 사람들에게 해결하라고 맡겨둘 수 없나요?
요한계시록 14장에 있는 야후와의 엄숙한 경고는 무관심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야후슈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대항하는 자다.” 누가복음11:23. 야후와께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진리의 편인지 그것에 반대하는 편인지 확실하게 세십니다. 이 경고는 인물, 신분, 조건이나 종교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 경고는 모든 인류에게 해당됩니다.
우리가 어둠의 왕국의 지배 아래 이르게 되는 데에는, 신중한 선택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빛의 왕국에 속하기를 게을리하기만 하면 됩니다.영혼의 영원한 행복을 생각한다면 무관심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야후와께서 신앙의 문제들에 관해 무관심한 것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야후와께 가납되지 않는 중립상태에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면, 일요일을 지키지 않으면 심지어 사형에 처한다는 조건으로 일요일이 강요될 때, 그분의 신성의 달력에 의해 정해지는 그분의 참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18. 실제적인 단계에서, 내가 위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야후와는 당신과 진지한 관계로 들어가시기를 가장 원하십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당신이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주의 주, 왕의 왕의 아들이나 딸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특권인지 생각해보세요. 진짜 이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졌으며, 그분께서 이 가장 높은 영예를 당신에게 베풀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주시는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무슨 사귐을 갖겠느냐? 빛이 어둠과 무슨 친교를 나누겠느냐? 15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무슨 일치를 보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16 야후와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야후와의 성전이니라. 야후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야후와가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7 야후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야후와 전능자가 말하노라,하셨느니라 7:1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야후와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린도후서6:14-18; 7:1.
성경의 중요한 구절에 다음의 원칙들이 담겨 있다:
1. 야후와께서 진리와 오류의 어떠한 혼합도 허락하지 않으신다 (심지어 그것이 99%진리라고 해도). 오직 사탄만이 그의 기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리와 오류를 섞는다. 그러므로, 진리와 함께 오류들을 (일요일을 “주의 날”로 여기는 것과 같은) 받아들이는 어떠한 종교 조직도 야후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는 “빛이 어둠과 무슨 친교를 나누겠으며” “야후와는 빛이시니, 그에게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이라.”고린도후서6:14; 요한일서1:5. 진리는 100% 진리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거기에 사람이 만든 가르침들과 전통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분리는 당신이 야후와의 자녀가 되는 실제적인 첫 단계를 의미한다”
2. 야후와와 조화를 이루기를 열망하는 사람의 의무는 진리와 오류의 혼합, 곧 사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어떠한 교회나 종교적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분리는 야후와를 당신의 사랑의 아버지로서 즐거워하며, 당신이 야후와의 자녀가 되는 실제적인 첫 단계를 의미한다.
우리가 분리됨에 따라, 우리는 야후와의 아들과 딸들이 될 수 있다.이는 세상에 야후와의 종교와 사탄의 종교,오직 두 개의 종교 시스템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나타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에 의해 세워진 종교 시스템과 우리를 연결하는 어떠한 고리도 단절하는 것을 기꺼이 선택해왔다.
3. 당신이 사탄의 종교 제도를 언제 떠나야 할지 알게 되면, 당신은 친구, 가족, 영향력, 일 등을 잃게 된다… 야후와께서 당신에게 다시 보증하신다:“나는 전능자라.” 그것은 그분께서 당신이 잃은 모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상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후슈아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다:“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자는, 지금 이 시대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되 핍박과 함께 받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마가복음10:29, 30.
4. 우리가 사탄의 종교 시스템으로부터 나온 후, 야후와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게 하고 지켜주기 위해 성령의 감화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고, 야후와와 사람 사이의 소통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야후와께서는 우리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이 조화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야후와께서 하신 일에 대한 감사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기초이다. 단지 상급에 대한 희망이나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분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야후와와 화해
19. ‘야후와와 화해’가 무엇이며, 왜 그것이 필요한가요?
야후와께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을 때,그들은 품성과 성향에서 완벽했으며,야후와의 율법에 순종하면서 살았었다.그들이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만들기 위해, 야후와께서 그들의 마음에 십계명을 새기셨다.또한 그분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 그들에게 사망에 이르는 형벌임을 밝히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6:23. 모든 정부에는 명확한 법률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법률들을 범했을 때 어떠한 형벌을 받게 되는지 잘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형벌이 용서된다면 세상의 상태가 어떨지 상상해보라. 범법자들이 형벌을 받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야후와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그분의 율법을 밝히시고, 그들의 마음에 그것을 새기심으로써 그들이 자연스럽게 순종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그분께서 그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거하지 않으셨다. 야후와께서는 그분의 율법을 범할 수 있는 힘이 없도록 사람을 만드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사람은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단순한 기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선택의 자유 없이, 그의 순종은 자발적인 것이 아닌 강제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아담과 이브는 자발적으로 야후와께 불순종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죄가 사람과 야후와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그들이 야후와의 법을 범하여 죽음의 형벌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죽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그들이 야후와께 순종할 때 가졌던 그 순결한 성향이 그분의 법을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후에 부패하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제 대항하고 불순종하려는 성향이 더 강해졌다.
아담과 이브의 범죄를 대하시면서, 우리의 사랑의 야후와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 그분의 법을 범했으므로 그 두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 두시나? 이 땅의 사랑의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에게 불순종하기를 선택하였다고 해서 자녀들을 포기하나? 아니면, 그분께서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범죄에 대한 형벌을 없애실 것인가? 이 땅의 정부든지 하늘의 정부든지, 형벌에 대해 잘 정의되지 않고서, 지속되며 번영할 수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요약해서, 만약 아담과 이브가 그들 스스로 그들의 범죄의 값을 치러야 했다면, 그것은 인류의 종말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편, 야후와께서 만약 또 다른 아담과 이브를 다시 창조하셨다고 해도, 그들이 그들의 선조들과 같이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불순종하기를 선택하면, 전 과정이 다시 발생할 것이다. (죄인들의 영역 밖에서) 외부의 해결책이 고안되어야 했음이 확실하다. 하늘의 이 계획이, 그것이 실제로 필요하게 되기 오래 전에 야후와에 의해 준비되었다.
성경은 그것이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 라고 말한다. 골로새서1:26. 야후와의 계획에는 그분의 법이나 통치 형태를 훼손하지 않고 인류를 다시 그분과의 조화로 되돌리기 위한 해결책이 포함되었다. 왜냐하면 야후와께서 죄인을 사랑하는 만큼, 그분께서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이 해결책은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그 죽음의 형벌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이 죄인들을 대신해야 했다. 그분의 죽음에 의해, 믿는 죄인이 마치 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던 것처럼 야후와와 화해될 것이었고, 그리하여 인류를 향한 야후와의 공의와 사랑이 서로 상충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 형벌을 치르지 않고는, 사람과 야후와 사이에 결코 화해가 될 수 없었다. 또한 야후와와 조화를 이루고 하늘에서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해 화해가 필요했다.
또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어야 했던 외부의 이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그러므로 야후와와 영구적인 화해가 있을 것이었다.죄로 살그머니 다시 돌아갈 정도로만 화해되고, 또 다른 화해가 필요해야 하는가? 명백하게, 야후와의 계획에는,사람에게 죄를 이기고 승리하며 살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방법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하여, 비록 야후와의 법을 어김으로 아담이 낙원을 잃었지만, 아버지의 법에 순종하고 외부의 이 사람의 속죄의 피를 믿음을 통해, 낙원이 다시 얻어질 수 있다.
20. 나는 야후와와 화해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의 삶에서 죄를 극복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은 중요한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자랑스러운 마음은 구원을 얻고자 갈망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갈 수 있는 당신의 자격과 화해를 위한 당신의 적합성이 외부의 이 사람의 의로움 안에서 발견됩니다. 둘째, 당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자족하는 모든 마음을 벗어내고, 당신 자신을 야후와의 통제에 맡기기 전에는 야후와께서 당신의 화해를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질문은 당신이 이미 당신의 개인적인 죄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행복하지 않습니다. 야후와께 돌아오는 모든 자들이 취해야 하는 첫 단계는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요.” 사도행전3:19. 우리는 종종, 우리의 행위들이 우리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다. 그것은 악으로부터 단호하게 돌아서는 것이다. 개선이 없는 어떤 회개도 진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나? 단지 그는 자신을 용서하고 속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회개는 용서 이상의, 야후와의 선물이며 그것이 그 영혼에 주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험될 수 없다.
마음이 야후와의 영의 영향력에
항복함으로써 온전히 회개하게 될 때, 그
죄인은 야후와의 거룩한 율법의 성스러움을 식별하기
시작할 것이다. 야후와와
변치 않는 평화를 이루고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야후와와 더욱 가까이 동행하기를 날마다 애씀에
따라, “그분께서
가까이 오실 것이며”
우리가 우리의 죗된 옛 방식들에서 “날마다
죽음” 에 따라
우리의 성품이 그분의 성품을 더욱 더 반영하게 될
것이다. 야고보서4:8; 고린도전서15:31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이기고 승리함
21. 그 외부의 사람의 정체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이 땅에 사는 동안 그를 통해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가요?
이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야후와의 아들이었습니다 .왜 야후와의 아들만이 이 임무를 위해 자격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었나요? 왜냐하면 그 아들이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야후와의 형상이시요…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또한 그 아들은 야후와의 모든 속성들과 능력들을 소유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창조되거나 그분이 대신한 죽음을 필요로 하게 될, 모든 인간들이 가진 생명 이상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희생이,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는, 그분의 대신하는 죽음을 받아들일 모든 죄인들을 위한 야후와의 공의를 충족시킬 것이었다. 그 아들 안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다.” 또한 야후와와 동등한 자로서, 그 아들은 진정으로 야후와의 아름다운 속성을 드러내고 사람을 야후와께 화해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골로새서1:15, 16; 히브리서1:3; 시편85:10.
그러나, 이것이 발생하기 위해, 또한 야후와의 공의가 충족되기 위해, 그 아들 자신이, 악을 향하는 성벽을 가진 인류의 타락한 본성을 취해야만 했다.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 오직 한 가지 단계를 통해서만 그 아들이 우리의 완벽한 모본이 되시기에 공평할 것이었다.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그분께서 한쪽으로는, 그분의 신성을 통해 야후와와 접촉하시고, 다른 쪽으로는 그분의 인성을 통해 사람과 접촉하신다. 그러므로, 그 아들 외에는 이 소중한 화해의 선물을 베풀 수 없었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그 아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야후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야후와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도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본성을,그 모든 연약함과 함께 그분 자신 위에 취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간절하게 공급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죄를 이기는 이 승리의 삶이다. 히브리서2:16; 베드로전서2:21, 22; 히브리서2:14; 고린도후서5:19; 로마서5:10.
그분의 자녀를 위한 야후와의 이상은 인류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높은 것보다 더 높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 “이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무해한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야후와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야후와를 보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제시하시는 모든 것들은, 할 수 있게 힘을 주시는 것들이다. 야후와께서 그것의 성취를 위한 예비를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요구하시지 않는다. 마태복음5:48; 베드로전서1:15; 빌립보서2:15; 히브리서12:14.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 마태복음5:48
어느 누구도 크리스챤의 품성의 완벽함에 이르는 데에 실패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 믿는 모든 자에게, 소망되는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는 예비가 되어있다. 야후와께서 온전함의 기준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시며 그리스도의 품성의 모본을 우리 앞에 두신다. 악에 대하여 변함 없이 저항한 삶에 의해 완벽해진 그분의 인성으로, 그리스도께서 신성과의 협력을 통해 인류도 이 삶에서 품성의 온전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야후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 역시 승리할 수 있다는 보증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 야후슈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야후와께 감사한다. 고린도전서15:57.
22.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악한 세상에서 죄 없는 삶을 사실 수 있었나요?
그리스도의 삶처럼 많은 수고와 의무가 지워진 삶도 없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얼마나 종종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셨던가! 그분께서 얼마나 변함 없이 야후와와 교제하셨던가! 이 땅에서 그분의 삶에 대한 기록은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새벽에 아직 날이 밝기 훨씬 전에 그분께서 일어나 나가서 외진 곳으로 떠나 거기서 기도하시더라.” “그분께서 광야로 물러가사 기도하시더라.” “그 무렵에 그분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들어가사 밤새도록 야후와께 기도하시니라.” 마가복음1:35; 누가복음5:16; 6:12.
그분의 아버지와의 끊음 없는 교제는 그리스도께 있어 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러므로,우리도 오늘날 그런 교제를 해야 한다. 우리와 같으신 분으로서, 우리의 필요와 연약함을 함께하는 분으로서, 그분은 전적으로 야후와께 의존했으며, 은밀한 기도의 장소에서 그분은 신성의 힘을 구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의무와 시험을 대비하실 수 있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는 영혼의 투쟁과 고뇌를 견디셨다. 야후와와의 교제를 통해, 그분은 그분을 짓누르는 슬픔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교제에서, 그분은 위로와 즐거움을 발견했다. 한 사람으로서, 그분의 인성을 신성과 연결했던 하늘의 기류로 그분의 인성이 채워질 때까지 그분은 야후와의 보좌를 향해 탄원했다. 계속적인 교제를 통해, 그분은 죄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공급받았다. 그분의 경험은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처럼 되는 놀라운 가능성을 얻기 위해서는,먼저 야후와의 율법의 모든 원칙들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으로는,그렇게 될 수 없다. 이 거룩함은 오직 우리 자신을 항상 성령의 견제력에 복종하기를 훈련함으로써 얻어진다.그리스도의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과실을 극복하며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분이 아버지와 끊임 없이 교제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고유의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 없이 그리스도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깨끗게 하는 이 과정은,계속되는 과정이다. 날마다, 우리는 올바른 습관들을 형성하기 위해 우리의 노력을 기울이며 야후와와 협력해야 한다. 우리를 에워싸는 악들을 대항하여 우리가 투쟁할 때, 그리스도께서 필요한 힘과 축복들을 우리에게 즐거이 주실 것이다.
개인적인 노력과 합쳐지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23. 죄를 대항하는 끊임 없는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나의 개인적인 노력들을 대신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요? 난 그저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나를 위해 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되지 않나요? 그것으로 구원받기에 충분한 것 아닌가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그분의 특성들을 소유하게 되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죄를 극복하기 위한 단호한 노력 없이 그들의 품성들이 마술적으로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은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 본성이 다시 그 지배력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는 부단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수가 어떤 올가미를 고안해내고 우리가 다시 그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이 야후와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2:12, 13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품성의 온전함을 얻는 것이 쉽다는 보증을 주지 않으셨다. 고상하게, 두루 갖추어진 품성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연히 이르러 오지 않는다. 고상한 품성은 개인적인 노력이 그리스도의 공로와 권세를 통할 때 얻어진다. 야후와께서 재능, 마음의 힘을 공급하시고; 우리는 그 품성을 형성한다. 그것은 부단하며 엄숙한 자신과의 전투에 의해 형성된다. 유전된 성향들과 대항하는, 갈등에 이은 갈등이 일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면밀히 비판하고, 하나의 좋지 않은 특성도 바로잡아지지 않은 채 남아있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때로 매우 고통스럽고 낙담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성품의 결함들을 계속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야후슈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야후와의 도성의 천국의 문에 들어가는 모든 자는, 거기에 한 사람의 정복자로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정복은 자아의 정복이 될 것이다.
어떤 누구도, 나는 나의 품성의 결함들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자.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을 얻는 것에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그 불가능함은 그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진짜 어려움은 거룩하지 않은 마음과 야후와의 통제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부패로부터 일어난다.
야후와와 동행할 때,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는 사람의 두 가지 주요 특징은 그분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요한계시록14:12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단지 “믿는 것” 만으로 충분치 않다. 만약 그랬다면, 사탄 자신이 천국을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귀신들 역시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2:19.
예를 들어,아담과 이브를 에덴으로부터 쫓겨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좋은 날씨에 야후슈아와 함께 걸으며, 그분을 믿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창세기3:8 참조. 그들로 큰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은 불순종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위에 의해 구원받는가?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분의 긍휼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고.” 디도서3:5.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나타내 보일 것이라고 말씀하신 열매들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구주가 필요함을 입증한다. 크리스챤을 위한 “거울” 로서 율법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결함들을 더욱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야고보서1:23-25 참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리스도 없이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율법은 구원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우리에게 구주가 필요함을 가리킬 뿐이다.묘사하자면, 당신이 진흙 웅덩이에 빠졌을 때, 거울을 본다면 당신의 더러워진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 거울이 당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나? 아니다. 거울은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깨끗하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가리켜줄 뿐이다.
24. 만약 내가 그리스도의 힘을 의지하며 나의 개인적인 모든 결함들에 대항하여 개인적인 전투를 부단히 벌인다면, 정말로 나의 품성이 온전해지는 것이 가능한가요?
하늘의 천사들은 품성의 온전함을 추구하는 사람과 함께 일할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돕기 위해 네 오른편에 있느니라. “이는 나 [야후슈아]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요한복음15:5. 이것을 기억하세요. 나침이 북극을 향하는 것처럼 한다면, 어떤 유혹도 우리를 부패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면제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분을 우리가 실망시켜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실수를 했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그 실수들을 경고의 신호들로 볼 수 있다면 당신은 확실히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패배를 승리로 바꿀 수 있고, 원수를 낙담시키고 당신의 구주를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당신의 뜻이 야후와의 뜻과 협력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
25. 짐승, 그것의 표, 그것의 우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왜냐하면 제가 야후와의 율법을 범하도록 기만을 당한다면 온전하게 되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되죠?
이제 우리는 일요일이 교황권(짐승) 의 표라는 것과 사탄이 곧 보편적인 일요일 법령을 강요하기 위해 미국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로 야후와의 거룩한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들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고(그렇게 하기 쉬운 때에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영혼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이 진리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명령은 주어졌습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고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법을,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 주라…” 그들의 범죄들에 대하여 훈계를 당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야후와께서 “나의 백성들” 이라고 말씀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분께서 이어서 선포하십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의를 행하며 자기 야후와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한 민족과도 같이 날마다 나를 찾아서 내 길들 알기를 즐거워하나니.” 이사야58:1, 2.
여기에 야후와의 봉사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후와께서 그들이 신성의 명령들을 짓밟은 것에 대하여 엄숙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버려져 왔던 율법에 대하여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라 하리라… 네가 만일 네 발을 돌이켜 안식일을 범하지 아니하고 내 거룩한 날에 네 쾌락을 행하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야후와의 거룩한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하고 그를 공경하며 네 자신의 길들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자신의 쾌락을 찾지 아니하며 네 자신의 말들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스스로 야후와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이사야58:12-14.
머지않아 전 세계적인 일요일 법령을 통하여, 야후와를 복종하는 것을 사탄이 범죄로 만들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도 적용된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안식일이 변경되었을 때, 야후와의 율법 안에 무너진 곳이 생겼다. 신성의 제도가 회복되어야 할 때가 이르렀다. 무너진 곳은 수보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너진 곳을 수보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기를 선택해 왔다. 당신도 무너진 곳을 수보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당신은 그분의 참 일곱째 날 안식일 (그분의 신성의 달력에 의해 정해지는), 야후와의 거룩한 안식일의 시간에 당신 자신의 일을 멈추고 당신 자신의 기쁨을 구하지 않으며, 당신 자신의 말들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시작하기 원합니까?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
26. 그렇습니다. 저는 야후와의 율법 가운데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가 되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성경을 따르고, 교황권을 폭로하며 진정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어떤 “교회” 도 알지 못합니다. 그럼 저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당신만이 이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세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의 교회들이 진리를 얼마나 조금 사랑하는지 발견한 이후로,우리는 우리의 교회들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교회들 조차도 사실 입술로만 그렇게 할 뿐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하기에 편할 때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에 어려운, 반대되는 상황들이 발생하면, 이러한 교회들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들을 면제해줄 것입니다.그러나 야후와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보다 야후와께 순종해야 한다.” 사도행전5:29.
머지않아 전 세계적인 일요일 법령을 통해, 사탄은 야후와를 순종하는 것을 범죄 행위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법에 부합하지 않고 야후와께 불순종하는 죄를 짓기 보다 그분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써 범죄자들로 여겨질 것에 대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곧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이 진퇴양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사람인가 아니면 야후와인가? 우리는 하늘의 왕국을 구함에 따라 우리가 받게 되는 기쁨과 형벌에 상관 없이 야후와께 순종하기를 선택해왔습니다.
야후와의 진리에 반대되는 모든 교회들과 종교들을 버리면서, 우리는 믿는 사람들의 작은 모음이 형성될 때까지 가족, 친구들과 이웃들을 진리로 인도하고자 노력하며 집에서 예배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마태복음18:20 .
우리는 야후와의 명령에(질문18참조) 순종하며 교회들과 잘못된 종교들로부터 분리될 때,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누려왔음을 증거합니다.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8:32. 당신이 야후와의 아들이나 딸이 되기 위해 분리되기를 결정함에 따라, 우리의 기쁨이 당신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기는 그는 모든 것들을 유업으로 받으리라.” 계. 21:7.
우리는 당신이 야후와의 율법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가 되기를 선택하며, 세상을 감싸고 있는 기만으로부터 나오고자 하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힘쓰기를 기도 드립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주인, 구주 야후슈아 기름부음 받은 자의 곧 있을 재림 전의 마지막 기회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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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 사용된 성경의 모든 구절들은 킹제임스버전에서 인용되었습니다.
짐승의
표가 야후와의 태음태양력 -https://www.worldslastchance.com/lunisolarcalendar/web/WlcWeb.html 에 의한
참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모든 자들 위에 임할 것이다. 원수는6000년
넘도록 계획하고 모든 천사들을 가리며, 모든
종교들을 포함하여 세상 전체를 속여왔다. 그의
계획은 분명히, 표면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나누고 통치하는’ 전략을 사용하며
‘일요일 법령’에 손을 대는 그의 기만의 책략이 매우
영리한 계획임이 입증되는 것을 보는 일이 그리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초점이
그의 거짓 그레고리 달력의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에 맞춰지고 있는 동안,모든
사람이 너무 늦은 시점이 될 때까지도 그의 그물에
걸려든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토요일을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올바름’에 확신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며,잘못된
신념들 속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버림을 당할
것이다. 반면,태음태양력을
고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의 계획 속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다.오직
마지막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로 구조될 것이다. 사탄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 연극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또한 사람들은 계속 그 짐승을 놀랍게 여기며 따라갈
것이다.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요한계시록13:3
아래는 일요일 법령 제정의 사전 작업들을 보여주는 사항들이다:
유럽의 사회 모델의 필수적인 기둥이며 유럽 문화 유산의 한 부분으로서, 일하지 않는 일요일에 대한 보호에 명시된 사항들:
유럽 의회는,
– TEU의 137항과 관련하여,
– 절차의 규칙들 중 규칙 116과 관련하여,
A. 일하지 않는 일요일은 유럽 사회 모델의 필수적인 기둥이며 유럽 문화 유산의 한 부분이다.
B.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할 때의 질병과 결근의 가능성이, 주말에 직원으로 하여금 일하지 않도록 할 때와 비교하여 1.3 배 더 높다는 것이 유로파운드 조사를 통해 보여진다.
C. 유럽 연합의 법에 따르면,일요일은 자녀들과 젊은이들을 위한 주1회의 휴식의 날이다.
D. 유럽의 기관들, 조직들과 단체들은 일요일에 일하지 않는다. 그들의 설립 단계부터 그러하였고, 미래에도 그렇게 할 예정이 없다. 유럽 연합의 관리자들과 의사 결정자들의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윤리적 배경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1. 노동자들의 건강의 보호와 업무와 가정 생활의 조화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그리고 유럽 연합적으로 곧 출현할 근무시간 법률에서 회원 국가들과 유럽 연합의 기관들에게 일요일을 매주간 휴식의 날로서 보호할 것을 촉구한다.
2.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 성명을 그 서명인들의 이름들과 함께 국회의 사회를 위한 의회, 위원회와 의회 위원회에 전달하도록 지도한다.
바티칸으로부터 직접 인용
(L'OSSERVATORE
ROMANO, 바티칸
도시:
2012년3월9일)
유럽의 13개 나라들이 일요일 근무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다.
스퀘어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일요일에 일하는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한다. 3월4일, 일요일에, 유럽의 13개 나라들이 유럽의 일요일 동맹에 합류했다. 다양한 부류의 조합들, 시민 사회 단체들로 구성되었고 카톨릭, 개신교와 정교회 공동체들과 함께 했으며, 모두가 함께 일요일의 특별하고 기본적인 특성에 대해 확실히 했다.
그것은 호주, 벨기에, 체코 공화국, 크로아티아, 프랑스,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스위스와 스페인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하나의 순종적인 시위였다. 크로아티아의 주교들의 회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컨퍼런스에 즈음하여 기독교인들 사이에 일요일에 일하는 것에 반대하는 인식을 높이고자, 한 문서가 발표되었다.
일요일은 반드시 가족과 “주님” 께 헌신하는 날로 유지되어야 한다. “일요일을 모든 사람을 위한 휴식의 날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위원회의 서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가족들이 함께해야 하는 날, 자원봉사와 자선사업을 위한 날, 문화와 사회 활동을 위한 날,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기념하고 영화롭게 하는 날.”
http://news.adventist.org/all- news/news/go/2014-02-11/in- europe-adventists-call-on- sunday-alliance-not-to- discriminate/ - “지난 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에서의 일과 삶의 균형과 사회 통합을 장려하는 동맹이 일요일 휴무에 대한 필요를 반복했다.” (2014년2월11일)
WLC의 언급: 속이는 사람들의 웅변술과 능력을 본 적이 있나요? 주의하세요. 그것은 그들이 거짓을 진리로 만들기 위해 오랜 동안 행사해왔던 기술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명목 아래 그들의 예배에 대한 개념들을 강요하기 원합니다. 그들은 세계의 종교적 흐름들을 주시하며 그들의 기만을 “인도주의”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루시퍼에 의해 처음 행사된 능력이며 그의 파트너, 바닥 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 아바돈에 의해 완전히 사용될 것입니다.
http://www.worldslastchance.
com/daniel-a-revelation/ sunday-blue-laws.html
-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결코 미국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존재합니다. 미국의
일요일 블루 법령이 현존하는 증거입니다.”
http://www.worldslastchance.
com/worlds-last-chance- articles/the-sabbath-in-bible.html
- “여전히
현존하는 식민지 시대 미국의 ‘블루 법령’에서처럼,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지킨다고 말하는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노동과
오락을 중단하고 휴식하는 ‘거룩한’ 날로서 일요일이
예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교리 [가르침]가
아니었으며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거룩하게’
되었다.교회
밖에서 그것의 준수가,
321년에
콘스탄틴의 정치적, 사회적
목적들에 기인한, 그
유명한 칙령을 시작으로 하는 일련의 법령들을 통해
로마 제국을 위해 입법화되었다.” W.
W. Hyde, "Paganism to Christianity in the Roman Empire,"
1946, p.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