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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닉 유대교 | 자라나는 기만

현대의 바리새인 정신으로 진리를 대체하고 있다

신실한 많은 크리스챤들이 히브리인처럼 되는 것에 유용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사탄의 기만으로서 인류 역사가 마쳐지려는 이 시급한 때에,

모든 중요한 주제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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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엄숙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마귀의 분노가 커진 이유는 요한계시록12:12에 나온다: “마귀가 자기 때가 조금만 남은 줄 알므로 크게 진노하여 너희에게로 내려갔도다.”

구주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는다. 현명한 처녀들처럼, 그들은 신랑이 오고 있다는 외침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분을 향한 그들의 사랑으로, 그들은 등불을 준비하며, 온 생애를 그분께 맞추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신실하고 보수적인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 마지막 때의 진짜 중요한 일들로부터 어떤 다른 가르침으로 마음을 빼앗겼다. 히브리인처럼 되어야 구원 받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스라엘이 야후와께서 선택하셨던 백성이기 때문에 자신들 또한 유대인처럼 되어야 하며, 그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신념이다.

john hagee promoting messianic judaism설교가 선포되고, 그 후에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한 수백만 달러가 보내진다. 존 하게는 18,000명 회중의 담임목사로서, 이 신념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62, 이스라엘을 위한 크리스챤 연합의 설립자이자 전국 위원장인 존 하게 목사는 이스라엘의 지원에 집중한 국가적인 풀 뿌리 운동을 일으킬 때가 왔다고 결정했다. 그는 미국 도처에 있는 크리스챤 지도자들에게 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데에 자신과 함께하라고 초청했다. 각 종파, 대형-교회, 미디어 사역, 출판 회사, 크리스챤 대학을 대표하는 400명이 넘는 크리스챤 지도자들이 그 초청에 응했고 이스라엘을 위한 크리스챤 연합이 탄생했다.1

어떤 이들은, 가능한 거룩해지고자 하는 진심 어린 소원을 가지고, 옷과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 랍비의 관습들 중 많은 것을 채택한다. 그들은 말할 때 히브리 단어나 문장들을 섞어 쓰며 –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에 방공호를 건축하기 위한 돈을 마련한다. 이것은 행위로 구원 받고자 하는 매우 교묘하고 주요한 우회 방식이다.

선지자 요엘은 마지막 세대에 관한 생생한 그림을 그리며 선포했다: “야후와의 날이 판결 골짜기 안에서 가까우므로 많은 무리, 많은 무리가 판결 골짜기에 있도다.” (요엘 3:14) 무당, 신부, 목사, 랍비가 무엇을 믿으라고 말하든지 간에, 영적인“전문가”를 원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나 야후와께서는 이 역할을 어떤 특정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모든 사람은 생명수를 받기 위해 구주께 직접 나아 와야 한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만군의 야후와가 이같이말하노라... 너희에게 손을 대는 자는 그분의 눈동자에 손을 대는 것이라.” (스가랴 2:8)

이 구절과, 또 이와 비슷한 구절들에 기초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활,, 관습에 있어서, 만약 유대인처럼 된다면, 그들이 야후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불행하게도, 그들이 채택한 많은 것들이 바리새인들의 사람이 만든 전통들이다.

”성전의 파괴와 함께(서기70) 사두개인들이 모두 사라지며, 바리새인들의 손에 유대인의 모든 일들과 규정이 맡겨졌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삶이 바리새인에 의해 규정되었다. 유대교의 전체 역사가 바리새인의 관점으로 다시 지어졌고, 과거의 산헤드린에 새로운 측면이 주어졌다. 새로운 전통의 사슬이 이전 제사장의 전통을 대체했다 . . . 바리새 정신이 유대교의 특성과 미래 유대교의 삶과 사상을 형성했다.”2

영적인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대인 전통으로 향하는 자들은 실제로는, 바리새인 정신으로 향하는 것이다. 유대인 학자들은 현대의 유대교가 바리새 정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바리새 정신이 탈무드 정신이 되었다 ... [그러나]고대 바리새인의 영이 변하지 않고 살아 남아 있다. 유대인이 ...탈무드를 공부할 때, 그는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교육 기관들에서 사용된 논쟁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 . . [바리새인들의] 교리의 영이 생동감 있게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팔레스타인부터 바빌론까지; 바빌론부터 북 아프리카,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까지; 이런 나라들로부터 폴란드,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까지 일반적으로, 고대 바리새인 정신이 퍼져 왔다.3

구주의 가장 단호한 꾸짖음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분께서 그들을 “눈 먼 인도자,” “어리석은 자들과 위선자들,” “뱀들,” 그리고 “독사들의 세대” 라고 칭하셨다.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들” 이라고 부르시면서, 야후슈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도다.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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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신실한 크리스챤들이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여전히 야후와께 특별한 백성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유대교는 고대 바리새인의 대응물일 뿐 특별한 이점은 없다. 유대인들을 특별한 빛으로 바라보는 자는 그들을 신성의 명령의 수준으로 높이며 사람이 만든 전통들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야후슈아께서 바리새인의 전통으로 향하는 모든 자들의 종말에 대해,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아니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허락하지 아니하는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개종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만들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15)

현대의 유대교는, 수천 가지의 사람이 만든 법들과 전통들로 구성된 고대 바리새 정신일 뿐이다. 그러나 야후와께서는 그분의 명령들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모호하게 만드는 이런 전통들을 ” 증오하신다” 고 말씀하셨다:

오 이스라엘의 집아. . . 내가 너희의 절기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너희의 엄숙한 집회들에서 향기를 맡지 아니하리라. 비록 너희가... 헌물을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아니하며 너희의 화평 헌물도 내가 중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오히려 너희가 너희의 몰록의 장막과 너희의 형상들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너희 신의 별을가지고 다녔나니. (아모스5:1, 21-22, 26)

이러한 절기들은 야후와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집회들” 이었다! 이스라엘이 준수한 방식은 사람이 만든 규칙들과 전통들에 의해 너무도 부패되어 심지어 이교도의 관행들을 수용했으며 야후와의 거룩한 절기들의 영적 본질을 손상시켰다! 신성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고자 하는 바리새인의 시도에서 그들은 규칙들과 요구사항들을 많이 추가했고 그것들을 실행함으로써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일몰부터 일몰까지의 안식일 준수는 성경적이지 않다. 그렇게 지정된 것은 오직 속죄일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 안식일의 경계를 보호” 하기 위한 지나친 열심을 가진 시도로써, 속죄일을 준수하는 방식이 주간 안식일까지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추가적인 행위들을 비난하셨던 야후슈아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또 무겁고 지기에 힘든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로도 그 짐들을 옮기려 하지 아니하도다.” (마태복음 23:4)

자신들이 채택한 그 관습들이 사람이 만든 규칙들과 전통들에 기초한 것임을 이러한 진심 어린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생각한다: ”우리는 나쁜 것들을 거절하고 히브리 뿌리로 돌아가고 있는 거야.” 그러나 그 뿌리들은 바벨론 범주 내에 있을 뿐이다!

 converting to messianic judaism

품성의 개발은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나 당신이 말할 때 추가하는 히브리 단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당신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바꾼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품성의 개발은 소중한 약속들을 믿음으로 붙잡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심지어 기독교의 초기 시대에도,유대인 신자들 사이에 바리새인들로 알려진 보수 계층의 관행들, 전통들과 신념들을 높이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들에 빠진 자들에게 바울은 편지 하기를:

pharisaism

제멋대로 행하며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들이 많은데 특별히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러하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느니라. 이런 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들이 마땅히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뒤엎는도다.

. . .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어 유대인들의 꾸며낸 이야기와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명령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그들이 야후와를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그들은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대해 버림 받은 자들이니라. (디도서1:10-11, 13-16)

이것은 유대인들을 신성의 지혜의 보관소라고 여기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 유대인을 최종적 권위로 여김으로써 신자들은 유대인들이 거절해온 동일한 진리를 거절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참 안식일이다. 애굽에서 유월절 때,야후와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본래의 달력이 있었다. 그러나 니케아 회의 후에 힐렐II가 로마의 심한 핍박 아래서 그 본래의 달력을 ”개혁” 했을 때 유대인들은 성경적인 안식일을 버린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그레고리력의 일곱째 날을 지킨다. 마치 토요일이 야후와의 참 안식일인 것처럼, 진심 어린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이 토요일이 성경상의 안식일이라고 가정한다. 유대인들이 그 날을 지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참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 결코 예배 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단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들이 빛을 가졌다고 사람들이 수용하기 때문에 진리가 왜곡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고대의 유대인들도, 메시야 시대의 유대인들도, 그리고 오늘날의 유대인들도 야후와께서 의도하셨던 방식의, 신성의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다:

야후와께서 모든 대언자들과 모든 선견자들을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증언하사 이르시기를,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돌이키고 내 명령과 내 법규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한 모든 율법 곧 내 종 대언자들을 통해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지키라.” 하셨으나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목을 굳게 하되 야후와 그들의 엘로힘을 믿지 아니하던 자기 조상들의 목과 같이 하여 그분의 법규와그분께서 자기 조상들과 맺으신 그분의 언약과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증언하신 그분의 증언을 거부하고... 또 그들이 야후와 그들의 엘로힘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해 부어 만든 형상들 곧 송아지 두 마리를 만들며 또 작은 숲을 만들고 하늘의 온 군대에게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 . . . (열왕기하17: 13-16)

사람이 만든 전통들은 영혼을 정결케 하지 못한다.그들은 동일한 신념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그런 봉사를 하는 것뿐이다.

”야후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회심시키고 야후와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시편 19:7) 사람이 만든 규칙들과 이 땅의 전통들은 신성의 율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혼돈을 야기하며 거짓 자기-확신을 준다. 창조주의 명령들은 단순하며 명쾌하다. 야후슈아께서 바리새인들의 모든 전통들을 쓸어 버리셨고 신성의 율법의 명확하고 이기심 없는 본질을 이해될 수 있게 하셨다:

그때에 그들 중의 한 율법사가 그분을 시험하려고 그분께 질문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율법에서 큰 명령은 무엇이니이까?”하매, 야후슈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야후와 네 엘로아를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2:35-40)

“오 사람아, 그분께서 무엇이 선한 것인지 네게 보이셨나니, 야후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엘로아와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바울은 새 신자들이 진리의 단순함을 버리고 전통들로 향하는 것을 염려했다: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야후슈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3)

jerusalem유대교에서 발견되는 성경적이지 않은 전통들로 향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들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순종이라는 조건 하에서 주어졌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야후와를 거절한 것이다: ”야후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 그들이 내가 자신들을 통치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 (사무엘상 8:7) 그들이 야후와를 거절했지만 야후와께서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다는 사실이‘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와 같이 - 많이 반복되는 문구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신성의 사랑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는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비록 그 사랑이 오래 연결되어 있을 지라도, 결국은 슬프게도, 고집 센 마음의 소원에 따라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야후슈아께서 죽기 며칠 전, 찢어지는 마음으로 슬퍼하셨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버림 받아 너희에게 황폐하게 되었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말하기를, 찬송하리로다. 야후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이제부터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3:37-39)

바울은 ”유대인처럼 되려는 사람들” 과 이 기만에 완벽하게 속고 있는 진심 어린 크리스챤들에게 경고했다! 어쨌든 유대인처럼 되는 것에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빠져서, 이스라엘에 돈을 보내고, 야후슈아께서 유대인이 개종하기 전까지는 재림하시지 않을 것이며, 신실한 크리스챤들은 재림 때에 갑자기 위로 데려감을 당하게 된다는 가정 위에 세운 종말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야후슈아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보라, 나는 도적같이 온다.” (요한계시록 16:15) 그분께서 재림할 때, 많은 크리스챤들은, 아직 유대인 개종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주인이 늦게 오시는구나.” 라고 말한 악한 종처럼 확실히 그렇게 재림을 지연시킨다.

고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적용되었던 약속들이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된다.

너희가 다 그리스도 야후슈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야후와의 자녀들이 되었나니 너희 중에서 야후슈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야후슈아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야후슈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갈라디아서 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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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각각의 유대인에게 여전히 유효하지만,영적인 축복들은 지금 그것들을 받아들일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며 이것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누가복음21:24) , 이 땅의 역사의 끝까지 유효하다.

구원은 신성의 은혜의 놀라운 선물이다. 그들의 구속자를 사랑하는 자는 성경적이지 않은 교훈이나 교리에 막히지 않고 거룩함의 아름다움 안에서 그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야후와께서 바리새인의 무거운 짐 아래서 고통 받는 자들을 그분께 돌아 오라고 초청하신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영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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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cufi.org/site/PageServer?pagename=about_pastor_john_hagee

2 바리새인들.” 유대 백과, IX, (1901-1906년 판), 666

3 루이스 핑클스타인, 바리새인들: 그들의 신앙에 대한 사회학적 배경, 1, Forward to first edition, p. XXI, emphasis suppl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