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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 갈라디아서


천박한 옛 이교도 습관으로 돌아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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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갈라디아서 때문에 혼돈에 빠졌습니다. 일요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갈라디아서는 안식일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토요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동일한 구절을 가지고 야후와의 절기들이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는 주장으로 사용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연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이 이스라
two people reading Bible엘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구절과 관련된 배경을 잘 이해한다면 그 구절의 의미는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 [이방인들] 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 . . .” (갈라디아서 2:7, 8)

바울의 메시지는 매우 명쾌하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 9.)

사단은 이방인들 가운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바울의 사역을 방해할 방법을 찾았다.  사단은 바울의 ‘믿음에 의한 구원’의 메시지를 훼손시키고자 기독교로 “개종한” 바리새인들을 이용했다. 기독교화된-바리새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메시지는 ‘행위에 의한 구원’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야후와의 율법에 추가적인 율법들을 더했다. 이것들이 바로 “장로들의 유전”으로 알려졌다. 야후슈아[아들]는 신성의 율법에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유전들을 추가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꾸짖으셨다.

바리새인들이 . . .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마태복음 23:2 & 4.)

바리새인들이 야후슈아께 왜 그분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들을 깨트리는지 물었을 때, 그분의 대답은 이러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태복음 15:3.)

‘유대인화 된 사람’으로 알려진 기독교-바리새인들은 개종하는 이방인에게 구원받기 위하여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 . .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 . .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사도행전 15:1-6)

Rembrandt's painting of Apostle Paul

램브란트의 "사도 바울"

사도들은 그 ‘유대인화 된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결론지었다. 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위해 할례가 필요치 않을 것이었다. 그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내용이다: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 . .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할례를 받으라’는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사도행전 15:23-29)

이것으로 이와 관련된 이슈들이 해결되어 왔다. 그러나 바울이 반복적으로 언급했던 그 문제에 대해 기독교화된-바리새인들이 계속 그들의 생각을 고집하여 갈등은 계속 되었다. 이 상황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유대인화 된 사람들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믿음에 의한 구원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구원 받기 위해서, 그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갈라디아 사람들이 믿음으로부터 행위로 돌아섰고, 바리새인들이 권고하고 강조하는 그 행위들을 중단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교도였었고, 이제 믿음으로부터 행위로 다시 돌아간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권고하는 행위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교도 행습들까지 계속 행했다. 영으로부터 육으로 돌아섰기에, 그들이 그렇게 하리라는 것은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러한 행습들이 그들의 육신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교도의 방식들이 바리새인들의 방식들보다 그들의 육체를 더 많이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 . .” (갈라디아서 연구, A. T. Jones, 리뷰 & 헤럴드, 1900, #20.)

바울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이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바울은 즉시 갈라디아서를 썼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야후슈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 . .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누가 너희를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꾀더냐 . . . ?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2:16, 3:1-3)

바울은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희생제사로서 구주의 피의 공로를 믿는 그들의 믿음을 다시 세우기 원했다.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어떤 행위도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쓴 바울의 메시지 때문에 혼돈에 빠지는 내용이 4장에 나온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야후와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 본질상 [야후와]가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 . .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라디아서 4:8-11.)

man reading the Bible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쓴 메시지가 유대인화 된 사람들을 반박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말한 “연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이 야후와의 율법, 규례와 법도들을 말한 것이라고 가정해왔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라는 말이, 안식일과 연간 절기들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는 증거로 제시되어 왔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그들이 결코 있지도 않던 그 어떤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사람은 누구든지, 갈라디아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상 숭배 이교로부터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개종하기 전에, 그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행해지던 종교적 관행들을 결코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유대인과 관련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따라서, 그들이 다시 그 속박으로 기꺼이 돌아 가려고 했던, 그 ‘연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유대인의 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이전 이교도 습관들로 다시 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Glad Tidings, E. J. Waggoner, 175.)

바울은 신성의 율법을 사랑했다. 그는 야후와의 율법을 “연약하고 천박한” 것으로 낮추어 말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 7:12)

“사도는 그들이 [야후와]를 알기 전의 그 관습들로 다시, 그 속박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언급했다. 여기서 초등학문이라는 것은 그들이 전에 따르고 속박되었던 그 상태, ‘세상의 법칙들’을 말하는 것이다 . . .” (갈라디아서 연구, A. T. Jones, 리뷰 & 헤럴드, 1900, #20.)

어떤 사람들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갈라디아 사람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질책을 가리키며 달 안식일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야후와의 달력에는, 거룩한 날들과 축제의 주간들과 심지어 안식하는 해들은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거룩한 달들은 없다. 바울은 이교의 관행들을 말하고 있던 것이다. 따라서 “연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이라는 것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되돌아간 이교의 종교 의식들을 말하는 것이 확실하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되돌아 가려는 그 이교도 관행들 중에서 그러한 축제들을 준수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 가나안에 들어갈 때 [야후와]께서 특별히 금지하여 경고하셨던 바로 그 관행들이었다:

“네 [아버지 야후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야후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아버지 야후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신명기 18:9-12)

갈라디아서는, 구원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자랑할 수 없는,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강력한 진술이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라디아서 6:15-16.)

girl sitting in a field of flowers holding a B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