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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부활절? 아니면 초실절?

부활절 일요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적으로 큰 행사다. 인기 있는 많은 전통들이 이 축일과 연관된다. 부활절 일요일은 현대 기독교계의 기초다. 그것이 대다수 기독교가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이유다. 일곱째 날 안식일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안식일의 의식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는 신념 위에 모든 신학이 세워져 왔다.

부활절 일요일 교회 안내부활절이, 예수의 부활의 전통적 날로서,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이유다.

“주의 날은 — 사도시대부터 불려온 일요일로서 — 그것이 기독교 신비의 핵심과 연관되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에서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받아왔다. 사실, 주간마다 일요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매주마다 돌아오는 부활절로서, 죄와 사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그분 안에서 첫 창조와 ‘새로운 창조’ 의 시작의 성취를 기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II, 디에스 도미니, 프롤로그, 1, p. 1.)

개신교는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것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을 따라가는 데 빠르다.

“일요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이며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로서, 기독교인들이 예배 드리기 위해 모이는 중요한 날이다. 이 모임 안에서, 말씀이 읽혀지고 선포되며 성찬식이 행해진다.” (The Use of the Means of Grace,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문제는, 구주 야후슈아께서 현대 달력 상의 일요일에 부활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혼란이 있어왔다:

  1. 일요일이 그레고리력 주간의 첫째 날이다.

  2. 성경은 야후슈아께서 “그 주의 첫째 날, 매우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다고 가르친다. (누가복음 24:1)

성경은 야후슈아께서 그 주의 첫날에 부활하셨다는 것에 명확하고, 일요일이 현대 주간의 첫째 날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는 가정이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 달력은 야후슈아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1582 년에 제수잇 천문학자, 크리스토퍼 클로비우스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 전에, 유럽은 줄리안 달력을 사용했다. 그 달력이 줄리안으로부터 그레고리력으로 변경될 때 주간 싸이클은 변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야후슈아께서 부활절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돌 조각에 새겨진 줄리안 달력, 아우구스투스 시대로부터 (63 B.C. – A.D. 14) 티베리우스 (42 B.C. – A.D. 37) 까지의 날짜를 나타내고 있다.

돌 조각에 새겨진 줄리안 달력, 아우구스투스 시대로부터 (63 B.C. – A.D. 14) 티베리우스 (42 B.C. – A.D. 37) 까지의 날짜를 나타내고 있는 줄리안 달력의 예. 일주일이 8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명확하게 인식된다.

줄리안 달력은 기원전 45 년에 이교 천문학자, 소시게네스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것은 일주일이 팔일 이었다. 그 주의 날짜들은 철자 A로부터 H까지로 이루어졌다. 야후슈아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 정복자들의 달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식일과 거룩한 절기들을 이교의 8 일 주간 제도를 가지고 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대의 “모세의” 달력을 사용했다 – 그것은 야후와에 의해 창조 시에 제정되고 출애굽 때 모세에 의해 다시 확인된 시간 계산법이다.

창조주의 달력 에서, 주간 싸이클은 매달 새롭게 시작된다. 그러므로, 매달의 날짜는 언제나 그 주의 같은 날에 해당된다. 레위기 23 장은 유월절 날짜에 관해 설명한다:

“첫째 달 십사일 저녁은 [야후와] 의 유월절이요” (레위기 23:5)

매 월령의 14 일은 언제나 그 주의 여섯째 날이다. 첫째 달에 있는, 유월절은 무교절의 시작으로 바로 이어진다.

“같은 달 십오일은 무교절이니 . . . .” (레위기 23:6)

이것이 “큰 안식일” 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그 절기의 첫날이 주간의 일곱째 날 안식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야후슈아께서 무교절을 위한 “예비일” 이라고 불리는, 그 주의 여섯째 날 유월절 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런즉 그 날은 예비일이므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그 몸들을 십자가에 남겨 두려 하지 아니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고 그 몸들을 치워 달라고 간청하니 (이는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9:31)

십자가 사건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날짜들은 분명히 고대 태음태양력으로부터 나온 날짜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서 그 몸들을 내리고자 했던 이유가 그 날이 F 날 – 줄리안 주간의 (여섯째 날) 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그 다음 날이 H 날 – 로마의 8 일 주간 제도의 마지막 날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야후슈아께서 초실절의 날이라고 불리는, 첫째 달의 16 일에 부활하셨다. 이 날은 또한 월령의 주간에서 첫째 날이었다. 바울은 초실절의 부활의 상징을 인정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제 야후슈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야후슈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 . . 먼저는 첫 열매인 야후슈아요, 그 다음은 야후슈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고린도전서 15:20, 22-23.)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미술관의 바빌론 이스타 문 재현”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미술관의 바빌론 이스타 문 재현

부활절은 이교의 축제로서,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스타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ISHTAR 라고 철자하는, 그녀의 이름은 이스터로 발음되었다. 이교 신앙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것 중 사랑과 다산의 여신을 기념할 때 이교의 의식들이 행해졌다.

부활절 토끼와 색칠한 달걀들은 고대 다산의 상징들로서 이 부패한 여신을 높인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결한 종교는 이교 축제를 결코 지키지 않았으며 그것들을 결코 예배 날짜를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교도 황제, 콘스탄틴에 의해 개최된 니케아 회의가 유월절 준수를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킨 4 세기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나이스 회의 [원문 그대로임] 에서, 기독교를 그것의 뿌리와 연결해주던 마지막 끈이 끊어졌다. 대부분의 경우, 부활절 축제가 지금까지 유대인의 유월절과 같은 시기에 기념되어 왔으며, 유대에 있는 산헤드린에 의해 계산되고 고정된 날짜에 진정 행해져 왔다; 그러나 미래에 그것의 준수는 모두 함께 유대인의 달력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 . . .” (Heinrich Graetz, History of the Jews, Vol. 2, p. 563.)

부활절 달걀을 모으고 있는 아이 (부활절 달걀 찾기)

슬프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이교 전통들에 대해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

부활절을 수용하면서 본래의 안식일 이 사라지자 사도의 에클레시아이교 정신이 온전히 장악하였다.

WLC의 컨텐츠에서 야후와의 신실한 자들을 언급할 때, 우리가 교회를 사용하지 않고 에클레시아 를 사용하는 이유는 “교회”라는 단어가 본래의 그리스어,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에클레시아 는 불러냄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룹을 강조하는 단어로서, 오류가 있는 번역이므로 결코 사용되지 말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문자 그대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 입니다. 야후슈아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은 조직화된 종파들과 타락한 바벨론의 종교들로부터 정말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 입니다. 바벨론을 떠나라는 외침이 들릴 때, 누구도 다시 바벨론의 교회들과 종교의 형태들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기독교 [로마] 황제들이 유대인의 날짜 계산법을 금지하고, 절기 날짜 선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레이스 아마돈, “Historical Basis, Involvements, and Validity of the October 22, 1844, Position, p. 17.)

“부활절과 관련된 이 달력의 변경은 중대한 결과를 수반했다. 그것은 교회에 가장 부패한 타락과 가장 높은 수위의 미신을 불러왔다 . . . .” (A. 히슬롭, 두 바빌론, p. 106.)

고대로부터, 부활절은 춘분점 후 첫 만월에 기념되어 왔었다. “부활절 일요일”은 지금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춘분점 후 첫 만월 후 첫 일요일에 기념되고 있다.

“부활절 일요일” 을 높이며 나타나는, 성경적 안식일로부터 일요일로의 이러한 전이를 로마 카톨릭은 시인한다:

“일요일은…순전히 카톨릭 교회의 작품이다.” (American Catholic Quarterly Review, January 1883)

“일요일은…카톨릭 교회만의 법이다…” (American Sentinel (Catholic), June 1893.)

“일요일은 카톨릭 제도이며 그것을 지키라는 주장은 오직 카톨릭의 원칙들에 의해 옹호될 수 있다…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 주간 예배가 그 주의 마지막 날로부터 첫째날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보증하는 단 하나의 구절도 없다.” (Catholic Press, Sydney, Australia, August, 1900.)

구주의 부활의 날로서 “부활절 일요일” 을 기념하며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모든 자는 고대의 이교 다산 축제에 기초한 로마 카톨릭의 제도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개신교도들]은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왜? 카톨릭 교회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이유가 없다 . . . 일요일 법령의 창시자가 . . . 카톨릭 교회다.” (Ecclesiastical Review, February 1914)

부활: 야후슈아의 빈 무덤 앞에 있는 마리아, 베드로, 요한

 사도들이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초실절의 성취의 의미를 제외하고는, 야후슈아의 부활을 기념했다는 성경적 기록은 없다.

사도들이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초실절의 성취의 의미를 제외하고는, 야후슈아의 부활을 기념했다는 성경적 기록은 없다. 그들은 그분의 죽음을 유월절, 월령으로 첫 달의 14일에 기념했다. 그들은 야후와를 일곱째 날 안식일, 매 월령의 8일, 15일, 22일, 29일에 경배했다.

“부활절 일요일”은 그것이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그러하다: 이교의 다산 축제. 그것을 소위 “기독교식” 이름으로 다시 부른다고 해서 그 이교 정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야후슈아의 하늘의 선물을 감사하며 인정하고자 하는 모든 자는 그분께서 죽으신 날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서 정한 시간측정법인 태음태양력에 의해 계산되는 일곱째 날 안식일에 예배 드릴 것이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야후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 . .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출애굽기 31:12-17)

오늘 모든 신실한 크리스챤에게 외치는 하늘의 초청은 이교 방식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정하신 날, 일곱째 날 안식일에 그분을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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