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실을 회복하다!
유대인 학자가 토요일이 고대의, 원래 성경상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다.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즉흥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3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공 연설가는 설득력 있는 발표와 논쟁을 위해서 많은 생각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물며 공공 연설가가 결코 배운 적도 없는 종류의 논쟁에 있어서 감정에 휩쓸리거나 논리적이지 못하다면, 결국 누구도 확신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달에 의한 안식일의 개념에 반대하는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유대인들은 결코 안식일의 흐름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런 논리는 결코 어떤 사실도 입증하지 못하며 오히려 두 가지 허점을 가진다:
1. 이 논법은 그것의 관점을 증명하기 위해 권위에 호소한다. 이 경우에, 현대 유대인들이 참 안식일이 언제인지에 대한 신뢰할만한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추정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그것은 회전 논리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그것 자체를 증거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A)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예배 드린다; 그러므로, B) 토요일은 안식일이다 왜냐하면, C) 그 날은 유대인들이 예배 드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믿거나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진리는 토요일이 성경의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 학자들은 결코 안식일을 “잃어 버린”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이 계산되어 온 달력을 고의로 그리고 알면서 변경하였다. 그리고 그 변경은 매우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며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 스스로도 이 달력의 변화에 영향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니케아 회의는 크리스찬 역사에 있어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회의가, 교회에 이교 사상이 침투하고, 초기 크리스찬들의 순수하고 사도적인 믿음이 오염된 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니케아 회의는 유다이즘의 역사에서도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적인 절기를 지키기 원하는 모든 자에게 심한 박해가 가해진 후, 이루어진 회의이기 때문이다.
이교의 부활절 축제가 그 때까지도 유대인의 유월절과 같은 때에 대부분 지역에서 이루어졌었고, 그 축제를 위해 유대 산헤드린 회의에서 그 날짜가 계산되고 정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축제의 시행은 유대인 달력에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진행되었다.1
콘스탄틴 황제는 그 회의를 자신의 개인적 정치 성향(목적)으로 이끌어 갔으며, 크리스찬이 행해야 할 것들을 법령으로 정하였다. 황제는 크리스찬들로 하여금 유대 민족의 영적 유산들로부터 그들을 완전히 분리시키기를 원했다. 황제는 앞으로의 어떤 종교적 예배들이 유대인의 달력에 의해 계산되지 않도록 하라고 공표하였다:
이 가장 거룩한 이교 [부활절] 축제에 있어서 우리가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몹시 불쾌한 민족들의 방식을 따르지 말자. 우리의 구세주가 우리에게 또 다른 길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유대인의 규칙 ([날짜] 계산법)의 도움 없이 유월절을 지킬 수 없다면, 유대인들이 우쭐댈 것인데, 그것은 분명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2
이 공표는 매우 멀리 퍼져나갔고, 고대에 절기를 지키는 방법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콘스탄틴의 아들 콘스탄티우스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콘스탄틴은 기독교인의 예배를 위한 유대 달력의 사용을 금지하였는데, 콘스탄티우스는 그 달력을 사용하는 것을 유대인에게도 금지시킨 것이다. “콘스탄티우스(337-362)의 통치 아래서 유대인들 박해는 심해졌고… 달력의 사용은 심한 형벌의 고통 하에 금지되었다”3 이 일들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 없다. 심한 박해 하에서, 유대인들 스스로 날짜 계산법을 수정하였다. 산헤드린 마지막 대표, 힐렐2 주교는 그 달력 변경에 책임이 있으며, 안식일을 토요일로 받아들이게 끔 인도하였다.
유대의 참혹한 상황이, 힐렐 대주교의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초하루와 윤년을 계산하여 지키고, 메신저들을 보내 이웃 나라에 있는 유대 공동체들에게 그 날짜를 알리는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콘스탄티우스의 박해 동안에 이 방법이 실행되지 못하고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산헤드린이 윤년 날짜를 정하지 못하게 되자, 멀리 떨어져 있는 유대 공동체는 가장 중요한 절기 날짜를 정하지 못하게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 힐레2는 최종적인, 고정된 달력을 도입하였다… 그 자신의 손으로 그 대주교는 로마와 페르시아에 흩어진 유대 민족들을 묶어 주던 마지막 연결고리를 끊은 것이다.4
이 변화가 1,600년전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왜 사람들이, 그저 유대인들이 그 날에 예배 드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토요일이 참 안식일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인지 설명해준다:
초승달을 관측함으로 새달을 발표하는 것, 그리고 봄이 옴으로써 새해가 왔음을 알리는 것은 산헤드린에 의해서만 행해졌었다. 힐렐2 시대에,… 로마가 이 관행을 금지하였다. 힐렐2는 변경된 달력을 시행하도록 강요당하였다. 그리하여 이후로 달력이 바뀐 것이다..5
유대 학자들은, 그들이 현재 사용하는 달력이 야후와[아버지]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며, 출애굽 당시 모세에 의해 제정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이 기사에서 역사적으로 언급된 내용들 모두는 유대인 그들 스스로의 증언과 기록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들은 토요일이 성경상의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달력 변경
유대인 학자들은 달력 변경으로 인해 안식일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랍비 루이스 핑클스테인은 유명하며 존경 받는 유대인 학자다. 세계 유대인 연맹은 핑클스테인을 인정받는 최고 유대인, “유대의 등불” 12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였다. 1939년 2월 20일 편지에서, 핑클스테인은 이렇게 인정하였다. “유대인 달력은 4세기에 변경되었다.”6
미국 유대인 연합에 의해 발행된 제6권의 그의 글에서, 헤인리치 그래츠는 인정한다: “그 날짜 계산법과 종교적 목적에서의 그 활용이 금지되었다.”7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황 그레고리 달력 이 연속되는 7일 주기를 갖기 때문에, 지금 사용되는 주(week)도 어쨌든 히브리인의 7일 연속되는 주(week)와 같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므로 토요일이 성경상의 제칠일 안식일 이라고 결론 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태양력 달력과 성경상의 태음태양력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고대의 안식일은 달랐다
달에 의한 안식일 |
유대인 학자들은, 안식일이 창조시부터 4세기까지만 해도 매주가 연속돼서 순환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주(week)가 연속 순환이 아니고, 달(month)이 달(moon)의 상태에 의해서 시작되고 끊긴다. 각 주의 순환은 각각의 새달 초하루에 의하여 새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은 현재의 토요일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월삭은 여전히, 안식일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달의 싸이클에 의존한다… 원래 월삭은 안식일과 같은 방식으로 경축되었는데; 안식일이 더욱 더 영혼의 평화와 기쁨을 가지는 신앙의 날이 되면서 월삭은 점차적으로 그 중요성이 감소하였다.8
오늘날도 여전히, 유대오 기독교인들의 연간 절기들을 계산하기 위해 태음태양력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과 속죄일이 그레고리안 달력의 연속되는 매주 순환 싸이클에서 변동되는 이유다. 그러나, 그들의 주간 안식일들은 더 이상 달의 상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토요일에 예배 드리기 때문에, 달과 연관성을 갖는 것은 연간 절기뿐이고, |
토요일이 성경상 안식일이라고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실수를 한다. 달과 연관성을 갖는 연간 절기들이 있긴 하지만, 유대인이 토요일에 예배 드리기 때문에, 성경상 주간 싸이클이 계속되어 왔다고 사람들이 가정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유대 학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가정이다. 유대 학자들은 고대의 안식일 이 달의 상태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주(week)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유니버설 유대 백과사전으로부터 인용된 아래 문구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안식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성별 된 날로서 7이라는 숫자가 강조되면서 달과의 연관성은 더욱 더 사라지게 되었다…..”9
달의 위상과 밀접하게 관련 있던 안식일이 힐렐2 시대에 “고정된” 달력을 통해 연속되는 싸이클의 토요일-안식일로 변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 때에, “연기의 규칙”이 도입되었다. 힐렐 2 때까지는, 연기의 규칙이 필요치 않았다. 연간 절기들과 매주 안식일이 모두 태음태양력에 기초해서 지켜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가 생겼는데, 연간 절기들은 태음태양력으로 계산되고 제칠일 안식일은 태양력 달력에 의해 계산된 것이다. 따라서 종종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연기의 규칙”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두개인들: 달력의 권위
가끔 어떤 사람이 선의로 다음과 같이 논쟁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만약 달력이 야후슈아[아들] 시대에 변경된 상태였다면, 그분이 그것을 바로 잡았을 것이다!” 라고. 이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사용되어 온 달력이 1세기에는 여전히 창조시의 달력이었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 때에는, 대제사장이 달력을 담당하고 있었다. 월삭 초하루를 발표하고 언제 13번째 달의 적용이 필요할지를 결정하는 일이 대제사장의 의무였다. 대제사장은 항상 사두개인들 중에서 선발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록 사두개인들의 믿음에 오류가 있긴 하였지만 그들은, 야후슈아[아들]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바리새인들의 사람이 만든 전통들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유일한 신적 권위의 원천이 되는 모세의 책들인 토라를 관리하였다.
야후슈아[아들]은 바리새인들에 의해 강조되는 “사람의 전통들”이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며 사람들을 그들을 만드신 분께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것을 명백히 보셨다. 그분은 바리새인들에 의해 부과된 많은 규칙들과 전통들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비난하셨다. 이러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규정들이 진리를 막는 짐과 장벽이 되었다. 그분의 죽음 바로 전에, 야후슈아[아들]은 이러한 위선자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셨다. 그의 설교는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돌과 같은 마음을 진리로 돌이키기 위한 마음을 부수는 듯한 시도였다.
신성의 율법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들과 전통들을 높이는 결과로 사람들의 영성은 감소되었다.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들이여, 위선자여! 너는 한 개종자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데, 개종자를 만나면, 너희는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5)
결국엔 바리새인들이 승리하였다. 성경적 달력을 책임지고 있던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성전의 파괴(70 A.D.)와 함께 사두개인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모든 유대인 업무, 규정들이 바리새인들의 손에 넘겨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유대인의 삶은 바리새인들에 의해 통제 받게 되었다; 유대 민족의 모든 역사가 바리새인적 관점에서 재편되었고, 새로운 양상이 과거의 산헤드린에 펼쳐지게 되었다. 새로운 전통이 옛 전통을 대체하게 되었다(1:1). 그 이후로의 유대인들의 특성과 삶과 사상이 바리새파 정신으로 꼴 지어지게 되었다.10
그들의 규칙들과 규정들을 부과하는 자들로 바리새인들만이 남게 된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구두로 전해지는 전통들이 탈무드로 기록되었으며 랍비적 유다이즘이 되었다. 오늘날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는 달력은 본래의 달력이 오용된 것에 불과하다. 바리새인들의 전통들이 탈무드로 기록되고 랍비 유대이즘이 되었다. 랍비 루이스 핑클스테인은 일찍이 아래와 같이 인용하며 언급하였다:
바리새 정신은 탈무드 정신이 되었다… 고대 바리새인들의 정신이 변하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유대인이 탈무드를 공부할 때, 그는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교육 기관에서 사용된 논쟁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 정신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바빌론까지; 바빌론부터 북아프리카,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까지; 그곳에서부터 폴란드,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까지 고대 바리새인들의 정신이 뻗치어 나갔다.11
탈무드의 전통은 만일 누군가 안식일이 언제인지를 잊게 되었다면, 누구든지 앞으로 제칠일마다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일곱째날 안식일로서 토요일을 지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논법이다.
안식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누군가가 잊었다면, 일곱째 날에 예배 드리면 된다고 탈무드 전통이 가르친다. 이것이 일곱째날 안식일로서 토요일을 지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논리이다. |
탈무드는 그것의 권위를 고대 아카데미들(바리새파 같은)로부터 얻는다. 그 아카데미들의 선생들은, 바빌론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는데, 예전 산헤드린의 합법적 계승자들이라고 간주되었다…. 그 당시에, 유대 사람들은 고대 산헤드린이나 후에 아카데미들의 위상과 견줄만한 어떤 중심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종교와 관련된 어떤 결정도, 그들이 존재하는 동안은 바리새인들의 권위의 가르침의 최종 해석으로서 탈무드에 기초를 두어야 했다.12
핑클스테인 자신이 탈무드가 바리새인들의 전통들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하라. 이것은 구주께서 그의 사역 동안 그렇게도 반복적으로 비난하셨던 것과 같은 “사람의 전통들”과 같은 것이다. 이것으로 바리새파 전통들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본래 안식일을 떠나게끔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안식일 논문 7장에는: “사막에서 여행하거나 어느 날이 안식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가 안식일을 잊었다고 깨달은 날로부터 6일을 세어서, 일곱째날을 지키면 된다.” 라고 쓰여 있다.13
창조주의 달력 |
유대인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결코 참 안식일 외에 다른 날에 예배 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 스스로의 증언들도 이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이 안식일이 계산되는 달력을 변경하였을 때 그들은 정말로 안식일을 변경해 버린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신성으로 창조주에 의해 제정된 것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지상의 권위로도, 그것이 교황이든지 유대인이든지, 예배하는 날과 그 날이 언제인지 계산해 내는 방법을 다시 세울 권위가 없는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주와 그의 충성된 피조물들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다. “진정으로 너는 나의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야후와[아버지]인줄 알리라. 그러므로 너는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것이 너희에게 거룩하기 때문이니라.” (출애굽기 31:13-14)
창조주께 순종하고 그분의 안식일에 경배함으로써 그들의 창조주를 경외하고자 갈망하는 모든 자들은, 유대인의 전통들이나 카톨릭의 달력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창조시에 제정된, 본래 태음태양력으로 계산된 거룩한 안식일에 그분을 경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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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einrich Graetz, History of the Jews, Vol. 2, p. 563, emphasis supplied.
2 Graetz, Vol. 2, pp. 563-564.
3 Excerpted fromThe Jewish Encyclopedia, “Calendar.”
4 Graetz, Vol. 2, pp. 572-573, emphasis supplied.
5 "The Jewish Calendar and Holidays (incl. Sabbath): The Jewish Calendar: Changing the Calendar," www.torah.org, emphasis supplied.
6 Box 6, Folder 4; Grace Amadon Collection, (Collection 154), Center for Adventist Research, Andrews University, Berrien Springs, Michigan.
7 Graetz, Vol. 2, p. 571.
8 Universal Jewish Encyclopedia, "Holidays," p. 410.
9 Universal Jewish Encyclopedia, Vol. X, "Week," p. 482.
10 "Pharisees,"The Jewish Encyclopedia, Vol. IX, (1901-1906 ed.), p. 666.
11 Louis Finkelstein,The Pharisees: The Sociological Background of their Faith, (Philadelphia: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46), Vol. 1, Forward to first edition, p. XXI, emphasis supplied.
12 Louis Finkelstein, The Jews - Their History, Culture, and Religion, (Philadelphia: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49), Vol. 4, p. 1332.
13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Talmud/shabbat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