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은 지구본과 같이 공처럼 생기지 않았다. 이 땅은 반구형 보호 지붕 안에 고정되어 있다. “온 땅이여, 그분 앞에서 두려워할지어다. 세상도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역대상 16:30)
요나의 표적과 연계하여 야후슈아[아들]의 삼일 삼야에 관하여 그 기간이 언제 시작됐는지와 “땅의 심장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아본다.
하루의 시작은 동틀녘부터 시작한다. 창세기 1장에서 태양과 달과 별들이 창조되는 과정과 야후슈아[아들]의 십자가 처형, 매장과 관련된 제자들의 준비 과정을 공부하면서 깨달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올리브 나무와 두 등잔대 상징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이고, 둘째는 마지막 날들에 있을 야후와의 신실한 군대를 의미하며, 그들이 타락한 마지막 세대들에게 야후와의 말씀을 증언할 것이다.
지구가 지구본처럼 구형체라는 것은 제수잇과 로마 카톨릭과 관련 있는 거짓이며, 요한계시록 9장에 예언된 첫째 화 곧 다섯째 나팔인 “외계인” 침공이라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대 사기극을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성경은 살아 있다. 과학보다 앞선 것, 자체 일관성, 보존성, 예언의 성취, 고고학적 증거들,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의 증거로 증거된다.
갈라디아서의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라는 구절이 성경의 참 안식일과 절기들이 폐해졌다는 뜻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구절의 뜻은 그와는 정 반대로, 갈라디아 사람들은 이방인들로서 야후와를 알기 전 이교도 관행들을 준수하던 옛 습관들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스겔 46:1은 월삭에 일곱째 날 안식일과 같이 상거래가 제한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일곱째 날 안식일과의 차이점은, 월삭에는 만나가 내렸고, 요리도 할 수 있었음이 추정된다.
손으로 만든 거룩한 장소인 성막은 참 것의 그림자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이었다. (히브리서 9:24, 23) – 성막은 우리의 대제사장 [야후슈아 아들]이 계신 하늘의 성전을 나타내는 작은 모형이었다.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라는 문구는 (로마서 14:5)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돼 왔다. 그 구절은 어느 누구에게도 신성의 율법을 깨트리고 그들 자신의 예배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는다. 대신에, 그 문장에서, 바울은 각 개인이 율법에 순종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각자가 개인적으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을 절기들은 회개하고 받은 축복들에 대해 감사하며 지나온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세 절기가 특별히 가을을 위해 제정됐다: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각 절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들의 창조주께로 돌려 놓으며 그렇게 함으로 서로를 더 가깝게 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율법이 없는 세상이 행복할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야후와[아버지]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자비롭고 인자하신 야후와[아버지]의 성품이 율법, 십계명을 통해 이 세상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상 참 안식일에 예배 드리는 사람은 홀로 또는 몇 이서 단출하게 예배 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야후와[아버지]께서는 감사와 사랑으로 넘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 요란한 음악과 많은 군중들이 있을 때 보다 야후와의 세밀한 음성을 듣기에 더 적합한 예배이다.
율법은 결코 폐해지지 않았으며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 율법이 변경될 수 있었다면, 야후슈아[아들]께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야후슈아[아들]께서 그 큰 희생을 치르신 것은 율법을 깨트린 자들의 형벌이 반드시 치러져야 했기 때문이다.
십계명 중에서 유독 넷째 계명이 쉽게 범해져 왔다.
안식일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십자가에 의해 폐해진 것도 아니다.
신성의 율법으로서 제칠일 안식일은 영원히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지옥은 영원하지 않다. 지옥이 영원하다는 교리는 카롤릭의 면죄부 판매와 연관돼 있다. 사람이 죽으면 각자의 죄값에 따라 불의 형벌을 받고, 영혼과 육 모두 불에 타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그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영혼만 살아서 영원히 고통 받는 그런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인 학자들도 토요일이 성경상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성경상 안식일을 계산하는 유일한 달력인 태음력 달력이 4세기에 핍박을 통해 사라지게 됩니다.
본래 달의 위상과 밀접한 연관을 갖던 안식일이 4세기 핍박을 통해, 달과의 연관성이 없어지고, 7일 연속 싸이클의 안식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유대인 학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침례는 목사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야후와[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은혜를 끼치는 성도는 누구든지 침례를 줄 수 있다.
성경상 참 안식일은 달에 의하여 결정된다.
야후와[아버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전통과 오류를 통해 참 안식일이 잊혀지고 토요일 안식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는 계 18장 천사의 외침을 듣고, 참 안식일을 회복할 때 창조주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